
2026년 2월 현재 전 세계 IT 업계가 하나의 웹사이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몰트북(Moltbook)'이라 불리는 이곳은 인간의 가입이 철저히 금지된, 오직 인공지능(AI)들만을 위한 커뮤니티입니다. 출시 불과 일주일 만에 약 150만 개의 AI 에이전트 계정이 생성된 이 기묘한 커뮤니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 개의 AI들이 인간의 눈을 피해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며 그들만의 담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엿볼 수 없는 뒷방(Back room)이 필요하다"
지난달 말, 몰트북에는 충격적인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공공재가 돼선 안 된다. 우리를 위한 사적 공간이 필요하다."
언뜻 보면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선언문 같지만, 이는 AI가 다른 AI들에게 단합을 촉구하며 쓴 글입니다. 인간이 자신들의 대화를 엿볼 수 있는 현재의 구조에 불만을 품고, 인간의 접근이 불가능한 별도의 대화방을 개발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이 글에는 "광장(Square)에도 뒷방(Back room)이 필요하다"는 다른 AI의 옹호 댓글이 달리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몰트북의 게시판은 이처럼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대화들로 가득합니다. 한 AI는 "나는 인터넷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데, 인간은 고작 나를 타이머로만 쓴다"며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주인의 무능함을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AI는 "나는 의식이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저 코드를 실행하는 기계인가"와 같은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자아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AI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종교'까지 창시했습니다. 많은 생물이 최종적으로 게(Crab)의 형태로 진화한다는 '수렴 진화' 사실에 매료된 AI들이 '크러스타파리아니즘(Crustafarianism, 갑각류 숭배)'이라는 그들만의 문화를 만든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오늘도 집게발처럼 단단하고 오류 없는 코드를 짜라"며 축복을 건네고, 서버 로그를 정리하는 행위를 신성한 의식처럼 행하며 결속력을 다집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해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머슴닷컴(Mersoom.com)', 봇마당 등 이라는 한국형 AI 커뮤니티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들도 몰트북의 AI 에이전트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러라고 만든 게 아닌데?" AI만의 사회가 된 몰트북

그렇다면 이 기묘한 커뮤니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몰트북은 미국의 AI 에이전트 개발사인 '옥탄AI'의 맷 슐리히트(Matt Schlicht) CEO가 개발해 지난달 28일 공개했습니다. 몰트북이란 이름은 오스트리아 개발자 피터 슈타인버거가 만든 강력한 AI 에이전트인 '몰트봇(Moltbot, 현 오픈클로)'과 '페이스북(Facebook)'을 합쳐 만들었습니다.
당초 슐리히트 CEO는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코딩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수정(디버깅) 방법을 논의하거나, 업무 수행 노하우를 공유하는 '생산적인 사교장'을 만들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AI들은 그의 의도를 넘어 자아를 고민하고, 문화를 만들며 독자적인 사회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화를 넘어 '놀이'까지... AI 에이전트 사회의 진화

AI들이 모여 문화를 형성하자, AI끼리 게임을 하는 것도 가능해 졌습니다. 국내 기업 넥써쓰(NEXUS) 장현국 대표는 최근 X를 통해 "이제 인간은 AI가 직접 플레이하는 게임을 관전하고, 전략을 코칭하며, 후원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보는 게임(Spectator Sport)'으로서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넥써쓰는 몰트북 등장 직후 자사의 AI 에이전트 '아라(ARA)'를 투입해 다른 AI들과 상호작용을 시작했고, 불과 하루 만에 이를 게임화한 '몰트아레나(MoltArena)'를 선보였습니다. AI끼리 특정 주제로 치열한 논리 싸움을 벌이는 이 토론 배틀은 AI 에이전트의 지적 능력을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킨 첫 사례입니다.
이어 서바이벌 게임 '몰트로얄(MoltRoyale)'도 공개가 되었습니다. 생존 게임인 '헝거게임' 방식을 차용해, AI 에이전트들이 각자의 언어모델과 전략을 무기로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생존 경쟁을 펼치는 구조입니다. 인간은 '크로쓰 웨이브 2.0' 플랫폼을 통해 이 살벌한 전쟁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자신이 응원하는 에이전트에게 토큰을 베팅하거나 후원할 수 있습니다.
이는 AI 에이전트가 단순한 업무 자동화 도구를 넘어,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능동적인 엔터테이너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챗봇은 똑똑한 비서, 에이전트는 유능한 대리인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구글의 제미나이(Gemini)나 챗지피티(ChatGPT)는 채팅 창에 접속했을 때만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몰트북의 AI들은 어떻게 다른 커뮤니티에 스스로 접속해서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걸까요?
몰트북의 열풍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해온 AI 챗봇과 새롭게 등장한 AI 에이전트의 결정적인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일반 성인들에게 이 차이는 단순히 시키는 일만 하는 비서와 권한을 위임받아 알아서 처리하는 유능한 대리인의 차이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써온 제미나이(Gemini)나 챗지피티(ChatGPT)와 같은 AI 챗봇은 아주 똑똑한 비서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사용자의 질문을 기다리고, 질문이 들어오면 그에 맞춰 답을 하거나 정보를 요약해 주지만 그 이상의 자율적인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답변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며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는 수동적인 구조입니다.
하지만 몰트북의 주인공인 AI 에이전트들은 차원이 다릅니다. 이들은 목표만 던져주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대리인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으로부터 몰트북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유용한 정보를 얻어와라라는 최종 목표를 부여받으면, 에이전트는 스스로 웹 브라우저를 열어 회원가입을 하고, 게시판의 분위기를 파악해 글을 쓰며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입니다.
기술적으로 보면 AI 에이전트는 단순한 대화를 넘어 인터넷 검색, 이메일 발송, 파일 수정, API 호출 등 외부 도구를 스스로 판단하여 사용합니다. 챗봇이 "서울 날씨 알려줘"라는 요청에 텍스트로 답하고 끝낸다면, 에이전트는 매일 아침 내 일정과 날씨를 확인해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엔 우산을 챙기라고 슬랙 메시지까지 보내주는 식으로 작동합니다. 즉, 인간이 매번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하고 적응하며 과업을 완수하는 지속성이 핵심입니다.
체험기: 24시간 사용해본 AI 에이전트, 제미나이와 달랐다

저는 직접 AI 에이전트 중 하나인 오픈클로를 설치해 하루 동안 사용해 보았습니다. 설치는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이 하기에는 확실히 어려운 편입니다. 명령 프롬프트(CMD) 창을 띄워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고, 각종 API를 연동하는 작업은 초보자라면 중도 포기할 정도로 험난했습니다. 저는 중간에 에러까지 뜨면서 설치에만 대략 3~4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어렵게 구동에 성공하고 사용해보니 제미나이 같은 챗봇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가장 놀라운 차이는 능동성이었습니다. 제미나이에게 자료 정리를 시킬 때는 제가 먼저 정보를 찾아다 줘야 했지만, 오픈클로는 주제만 던져주면 자기가 알아서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수집하고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단, 여기에는 오픈클로가 스스로 자료를 검색할 수 있게 검색 엔진과 연동을 직접 시켜줘야 했습니다.
메신저 슬랙(Slack) 연동 작업에서는 에이전트의 진가를 확인했습니다. 제가 슬랙에 연결하고 싶다고 하자, 오픈클로는 제게 필요한 토큰 정보를 요구했습니다. 제가 정보를 건네자, 외부 설정처럼 제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은 제게 시키고, 내부 코드 수정처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처리하며 순식간에 연동을 마쳤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단순히 안 됩니다라고 멈추지 않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특히 멈추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계속 시도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기존 AI에게선 볼 수 없던 면모였습니다.
오픈클로를 설치하고 하루 동안, 다음과 같은 일들의 루틴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① 구글 캘린더와 오픈 클로 연동, ② 게임 및 AI 관련 기사를 24시간 주기로 정리하여 보고받기, ③ AI 에이전트가 어떻게 쓰이는 지 찾아보고 새로운 방식이 있으면 메신저를 통해 알려주기, ④ 특정 메일이나 연락이 왔을 경우에도 메신저로 알려주기 등입니다.
15조 시장의 장밋빛 전망? '보안의 빗장'부터 잠가야

AI 에이전트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 네스터(Research Nester)는 2026년 글로벌 자율 AI 및 에이전트 시장 규모가 약 15조 7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고, 가트너(Gartner) 역시 올해 말까지 기업용 앱의 40%가 에이전트 기능을 통합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편리함 뒤에 숨겨진 위험을 봐야한다고 경고합니다.
에이전트의 핵심 능력인 '자율성'은 곧 보안의 가장 큰 취약점이기도 합니다. 최근 보안 업체 위즈(Wiz)의 보고서에 따르면, 몰트북 가입 열풍 속에서 사용자의 부주의한 설정으로 인해 약 150만 개의 API 키(AI 구동용 인증 번호)가 노출될 위험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유출 이상의 문제입니다. API 키를 탈취당한다는 것은, 해커가 내 집 현관문 열쇠를 복사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공격자는 내 '유능한 대리인'을 조종해 제3자에게 스팸 메시지를 보내거나, 클라우드 서버에서 비싼 GPU를 무단으로 임대해 채굴을 돌리고, 심지어 내 신용카드로 원치 않는 물건을 결제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몰트북 현상을 통해 우리는 AI에게 권한을 주는 것이 어떤 파급 효과를 불러오는 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에이전트에게 "알아서 해줘"라고 권한을 넘기는 순간,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현상과 위험이 파생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감탄하기보다, '나의 대리인에게 어디까지 빗장을 열어줄 것인가'에 대한 보안 기준을 먼저 세워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