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한번 더럽게 맑군......."
오늘도 항해장인 벨로드는 넓직한 갑판에 홀로 누워 럼주를 들이붓고 있었다.
아무 죄없는 날씨 탓을 하는 그에게 지중해위에 떠오른 태양은 햇빛을 쉴 새없이 내리기만 했다. 지중해의 일조량은 북유럽보다 더 길었기에 북해 태생은 그로서는 더욱 짜증만 불러 일으킬 뿐이었다. 마른 몸집에 어울리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과 뒤엉킨 갈색 머리에는 땀방울이 가득했다.
"캬아......럼주는 언제 마셔도 좋단 말이지."
"이봐, 항해장!"
"어, 어이쿠!"
굵지만 음성이 높은 것으로 봐서는 여성인 강한 부름에 탱자탱자 늘어져 있던 항해장 벨로드는 엉덩이에 불난 듯이 재빨리 일어나서 정면을 쳐다보았다. 약간 낡았지만 해적들이 자주 입는 코르셋 코트에 버클 부츠가 잘 어울리는 한 여자가 앞에 서 있었다. 허리에는 소형 화승총 한 자루와 커틀러스 한 자루도 매여 있었다.
"헤헤...우리 예쁘장한 선장 아닌가? 야하!"
"휴...너는 언제까지 농땡이 부릴 생각이야?"
"글쎄, 우리 예쁘장한 선장이 내 프로포즈를 받아줄 그 때일지도?"
'퍼억!'
어느 덧 그녀의 발은 벨로드의 정강이를 강력하게 가격한 뒤였다.
듬직한 남성의 정강이를 강력하게 걷어찬 그녀의 작은 발이었지만 반응은 예상 외였다.
"으윽...선자앙~!!"
"벨로드. 너는 나를 항상 물로 보는건가? 앙!"
"헤헤...선장은 역시 화내는 모습이 가장 예쁘......"
'퍼억!'
'파악!'
'우지끈!'
'쿵퍽!'
"아하하...선장......"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지만 앞으로는 봐주지 않겠어!"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항해장 벨로드를 뒤로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선원들을 뒤로 한 채 바다를 둘러보았다. 선원들의 인사를 대충 받아준 그녀는 갑판 옆 대포 위에 걸터앉아 바다를 응시했다.
지중해의 바다는 고요했다. 가끔 큰 파도가 넘실거리는 장면을 빼고말이다. 평소에 고요한 바다가 가끔 폭풍이 몰아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의 지중해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 사이의 호수이기도 했다.
"넓구나......서양의 바다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읇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녀의 독백이 작아서가 아니라, 선원들의 행동하는 소리가 커서였기 때문이었을테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나는 이제 계속 이들을 이끌어야 할까? 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선장, 동쪽에 무언가가 보이는군."
그녀의 갈등을 끊는 묵직한 음성. 그녀가 일어나 바라본 그는 벨로드의 크고 마른 체형과는 대조되는 우락부락한 몸집에 이슬람권 남성들이 입는 지바드와 머리에는 케피야를 두르고 있었다. 물론, 그 두 옷의 색은 다 검은 색이었다. 허리에는 시미터가 매여있고 그녀처럼 화승총 한자루가 걸려있었다.
"동쪽에...뭐가 있는데?"
"글쎄......내 생각에는 운반선으로 보이는군."
"라무엘, 어떡할까?"
"물론, 이카...루가의 뜻 대로."
"아직도 적응이 안된거야?"
"미안하군......이름이 어려운건지 아니면.....알 수가 없군."
둔탁하고 머뭇거리는 음성으로 대답한 그는 동쪽을 가리켰다. 수평선 사이로 수송에 용이하도록 선미를 넓힌 카락 한 척이 유유히 지중해 파도를 가르며 그들의 배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배를 보지 못한듯 수송 카락은 북서쪽으로 항해를 계속 하는 장면을 목격한 그녀는 품에서 작은 소라 나팔을 꺼냈다.
'뿌우우우!!!!!!!'
술을 마시던 선원, 노름하던 선원, 짐 정리하던 선원 까지 모두 그녀를 주목하였고 능청거리던 벨로드까지 어느 새 선장 옆으로 다가와 섰다. 이슬람 검은 옷의 남자, 라무엘 또한 그 여선장 옆에 서려던 순간이었다.
"언니이~!~!"
그녀 보다 약간 나이 적은 한 소녀가 상갑판에서 그녀가 있는 대포 앞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또 그 뒤를 따라서 단아하고 수수한 외모지만 옷은 평범한 저킨을 입은 한 청년이 천천히 걸어왔다.
"레시아인, 이러면 안돼."
"헤헤, 전 언니가 너무 좋은걸요?"
그녀는 다른 사람을 쳐다보면서 도움을 청했지만 벨로드와 라무엘은 그 시선을 적잖이 외면해 버렸다. 단지 귀찮음 때문이었다.결국, 외모 단정한 젊은 청년이 그녀 앞에 꼭 매달려있는 레시아인이라는 소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레시아인, 이리와."
"후엥, 오빠 왜 그래애~"
"선장님을 방해하면 안돼. 어서 이리오렴."
결국 레시아인은 울먹거리면서 그 청년 앞으로 다가왔다. 어이없어하는 벨로드와 라무엘을 째려본 그녀는 레시아인을 달래고 있는 청년에게 당부를 시작했다.
"레이튼, 풍향과 조류는 어때?"
"아, 마침 먹잇감을 물으신 모양이죠? 북서쪽 항해라.......저건 제대로된 역풍인데요? 조류야 순조류일지는 몰라도 조류야 이 배가 더 잘 받지 않을까요? 이래배도 이슬람의 최고 고속력을 자랑하는 지벡이니까요."
온화한 미소지만 속내를 모를 정도로 거침없는 발언을 마친 레이튼이 레시아인을 데리고 뒤로 물러나자, 그녀는 다시 선원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검었지만 생기가 넘치는 얼굴, 호탕한 기세가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무표정인 채로 자신을 보는 라무엘, 희희덕거리는 얼굴로 자신을 보는 벨로드, 레시아인을 달래는 레이튼 까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자,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해적입니다!"
"해적은 무엇인가!"
"해적은 해적입니다!"
"그렇다. 해적이다. 우리는 해적 그 뿐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해적이라고 하여 업신 여길 수 없다!"
"우오오오오!!!!"
선원들은 커틀라스와 그외 잡다한 무기들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녀의 손에도 어느새 커틀라스가 들려있었다. 그 사이 벨로드는 해먹을 타고 마스트 톱으로 올라가서 수송 카락의 위치를 확인했다.
"정확하게 1시방향, 대략 북북동쪽 풍향은 북서풍!"
"가자! 해적의 위용을 보여라! 출항이다!"
매끄럽게 지벡의 돛이 펴지고 돛에 그려진 검은색 해골문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배는 천천히 카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빛은 그저 그들의 가는 길을 밝혀주기만 할 뿐이었다.
-prologue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