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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CAPTAIN - 노예시장 (33)

퀘드류
조회: 2303
2011-05-23 18:44:07

로자레일 일행이 단체로 멍청한 표정을 짓자, 접수원이 친절히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어느 날, 데무트 본인이 나타나 의뢰가 해결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데무트가 세나콘 왕국으로 갈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선상 반란의 주동자가 아니었다면 모를까, 선상반란을 일으키고 성공한 주동자라면 응당 앞으로의 행선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터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제브릭이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만일 제브릭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 세나콘 왕국의 라모기 시로 가자고 난리를 피울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당장 라모기 시로 가는 것은 로자레일에게 여러모로 불리했다. 첫째, 데무트를 찾는 비용으로 빌린 100골드를 돌려주어야 할 확률이 높았고, 둘째로 훌륭한 회계사인 마렐을 떠나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는 상당히 유능한 갑판장인 제브릭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로자레일은 데무트에 대해 함구할 것을 마르탱과 마렐에게 명령하고, 몇 가지 상황에 대해 입을 맞추기로 했다. 마르탱과 마렐이 제브릭에게 데무트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낼 일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제브릭과 로자레일 일행은 카머 조합 사무소를 나와, 노예 시장으로 향했다. 베레로크 항구의 외각에 위치한 노예시장은 입구부터 요란한 곳이었다.

 

“죽여 버려! 너, 이 새끼! 내 돈 다 날리게 할 셈이냐!”

 

“주먹을 날리란 말이야!”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노예격투장 주변에는 이미 만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타지의 뱃사람들이 분명한 구경꾼들은 흑인 노예와 백인 노예의 피 튀기는 격투를 관람하며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고 있었다.

 

“와아!”

 

“우우! 꺼져라!”

 

궁지에 몰려있던 흑인 노예의 깔끔한 카운터에,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던 백인 노예가 기절해 버리자 여기저기에서 함성과 야유가 뒤섞여 터져 나왔다. 흑인 노예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향해 양손을 치켜들며 승리를 자축했다.

 

“저 노예는 운이 좋았군요.”

 

마르탱이 흑인노예에 대해 평하자, 제브릭이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흥! 운이라고? 운이 좋아서 질 뻔한 놈의 얼굴이 저리 깨끗하단 말이냐!”

 

로자레일이 보기에도 제브릭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마지막에 보여준 흑인노예의 감각적인 카운터는 분명 실력에 의한 것이었다.

 

격투가 끝나고, 승자인 흑인노예에 대한 즉석 경매가 시작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로자레일도 참석 하고 싶었지만, 수중의 돈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노예경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던 로자레일은 아쉬운 마음에 흑인노예에게 눈길을 주다 그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흑인노예는 오른쪽 눈썹 부위의 깊은 흉터에서 계속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의 부리부리한 눈에서 퍼져 나오는 안광만큼은 꽤 무시무시했다. 그렇다고 험악한 인상은 아니었고, 살짝 미소를 띠고 있는 그의 얼굴은 피부색을 떠나, 상당히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잠시였지만, 흑인 노예의 눈빛은 로자레일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예경매장에서는 노예경매가 한창이었다. 뒤늦게 들어선 로자레일 일행은 빈자리를 찾아, 경매가 잘 보이지 않는 뒤쪽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얼핏 보아도 100명은 충분히 넘길 것 같은 인원이 경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노예 경매장은 예상과는 다르게 시끌벅적했다. 품격 있는 분위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대게 경매장이 그러하듯, 조용한 분위기에서 경매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여러 경매들은 흑인남성 노예가 대부분이었다. 흑인노예의 가격은 보통 우마의 가격과 비슷했다. 그러나 노예 경매장의 정식 경매에 출품되는 상등의 흑인노예들은 10골드를 넘나들었다. 일반 흑인노예에 비하면 10배에 가까운 금액인 것이다.

 

거구의 흑인 노예가 낙찰되는 모습을 지켜보던 로자레일은 과거 로자레일 본인이 경매에 낙찰되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 막 낙찰된 흑인 노예가 불과 8골드인데 반해, 2년여 전 로자레일의 낙찰가는 60골드였다. 다른 인종에 비해 흑인 노예의 가격이 싼 것을 감안하더라도, 로자레일이 거래된 가격은 상식을 초월하는 대단한 금액이었다.

 

‘이 몸뚱아리에 60골드라니, 과분한 금액이지.’

 

쓴웃음을 지으며 자조적인 평가를 내린 로자레일은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는 뚱보 상인에게 인수인계되는 흑인노예의 죽은 눈빛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다, 나는 살아있다. 저런 죽은 눈빛을 하고 있지 않단 말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과거에 연연해 무엇 하겠느냐! 10년, 20년, 그리고 그 이후까지 더 살아본 이후에 평가를 내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한번 넘어졌다고 주저앉을 수야 없지!’

 

이전의 삶이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와 같았다면, 앞으로의 삶은 뿌리 깊은 거목이 되고자 하는 것이 로자레일의 마음이었다. 로자레일은 강철과 같은 굳은 마음으로 정진한다면, 과거의 굴욕적인 순간을 잊을 수 있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로자레일이 노예로 지냈던 순간은 2년여에 불과하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굴곡진 부분이었고, 그가 기대하던 미래를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기간이었다. 노예로 지내면서 자유를 박탈당했고, 그것이 바로 의지를 박탈당한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행동이 결여된 죽은 의지에 불과했다.

 

그러고 보면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페스체일 가문에서 몸 성히 탈출할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노예근성에 젖어 의지를 잊었기에,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몰랐기에 행동하지 못하고 노예로 지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혹은 뱀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로자레일이 한 단계 성장하는 순간이었다

.

사실, 로자레일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의 심경이 변화함에 따라 로자레일의 피부가 물고기의 그것처럼 비늘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자레일이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미약한 싹에 불과했기 때문에, 로자레일의 신체에 나타난 변화도 금방 사그라졌고, 주위의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지나가 버렸다.

 

그나마 로자레일의 품속에서 잠을 자던 애나벨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 간지럽게~ 누가 나 깨웠어? 히잉~.”

 

애나벨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면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 분명하기에 로자레일은 애나벨을 다독여서 다시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노예경매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흑인노예에서부터 죄를 짓고 노예가 된 제국의 군인까지 다양한 종류의 노예가 경매대를 오르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경매장의 모든 사람이 기다리는 마지막 노예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토록 왁자지껄하던 노예경매장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적막이 감돌았다.

 

모든 사람이 숨죽여 기다리는 동안 경매 진행인이 경매대 위로 올라, 마지막 노예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들이 고대하시는! 소문의 그 노예! 자! 보시라! 아즈와드 대륙의 고귀한 혈통! 베레로크 최초의 귀족노예! 아! 고! 고!”

마디마디 끊어서 강조하는 특이한 화법의 경매인은 분명 아고고라는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Lv33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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