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소설/카툰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소설] CAPTAIN - 각성 (36)

퀘드류
조회: 948
2011-05-29 21:08:02

데제라는 아이는 너무 말라서 볼품없어 보이는 흑인 소녀였다. 더군다나 온 몸에는 멍이 가득했다. 얼마나 심하게 두들겨 맞았는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때문에 혼자 걷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업혀야 했다. 심지어 얼굴도 심하게 부어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그나마 브리엘이 데제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지만, 브리엘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브리엘은 데제와 자신이 노예 중개소를 빠져나온 것이 얼마나 기쁜지, 브리엘의 얼굴에서 미소를 그칠 줄 몰랐다.

 

땅거미가 지고, 노을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오늘 써버린 금액을 생각하면 한 푼이라도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메데이로스 섬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겠지만, 어쩐 일인지 아고고가 배에 타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아마도 노예가 된 사연 때문인 것 같았는데, 마치 가야할 곳이 있어서 떠나야 한다는 몸짓을 했다. 그러나 50골드나 지불한 아고고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데제를 통해서 통역을 해야 했으나 문제는 데제가 도저히 통역을 할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퉁퉁 부은 얼굴의 데제와 웃음꽃이 만발한 브리엘을 돌아본 로자레일이 말했다.

 

“맞아서 아픈 것이었군.”

 

“고작 10살 남짓한 아이를 왜 저렇게….”

 

말을 잊지 못하는 마렐에게 제브릭이 핀잔을 주었다.

 

“뻔하지. 반항했거나, 도망치려했거나. 아무래도 둘 다인 것 같지만.”

 

제브릭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데제가 마르탱에게는 절대 업히려 하지 않았지만, 아고고가 업으려 하자 바로 업혔기 때문이었다. 데제의 이러한 행동은 백인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 기인한 것으로 보였다.

 

여관에 도착한 일행은 종업원에게 따뜻한 목욕물과 차가운 물을 준비해줄 것을 부탁했다. 따뜻한 물로 멍을 풀어주고 차가운 물로 얼굴의 붓기를 빼주기 위해서였다.

 

일행이 머무는 곳은 8인실이었다. 밤이 깊었으나, 따뜻한 물로 씻기고 차가운 물을 적신 수건으로 찜질을 해주자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해진 데제에게 얼른 아고고의 통역을 시키기 위해 모두 깨어 있었다. 특히나 아고고는 될 수 있으면 빨리 통역이 가능해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데제의 반항으로 인해 잠시 소란이 일었지만, 제브릭의 협박 덕분에 금방 가라앉았다.

 

아고고가 스스로 노예가 된 것은 부족 때문이었다. 예로부터 부족 간의 전쟁에서 패한 부족은 승리한 부족의 노예가 되는 것이 관례였다. 즉. 전쟁에서 패해 노예가 된 부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자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고고의 허리춤에는 45골드라는 거액이 담긴 돈주머니가 메어져있었다. 그것이 부족을 구하기 위한 생명줄인 셈이다.

 

왕복 3달의 시간을 준다면, 부족을 구하고 꼭 이곳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이 아고고의 말의 요지였다.

 

아고고의 이야기를 들은 로자레일은 머리가 아파졌다. 아고고의 태도를 보니, 그냥 배에 탈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고고를 강제로 배에 태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마르탱과 제브릭과 힘을 합하면 제압이야 가능하겠지만, 그래서야 아고고를 산 의미가 없었다.

 

“사정이 딱하기는 해도, 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아무리 신뢰가 간다고 해도, 혹시 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러게, 왜 그런 돈을 주고 기껏 노예를 산단 말이오. 참나.”

 

“흠, 골치 아프군.”

 

아고고를 순순히 떠나보내는 수밖에 이외에는 딱히 방도가 없는 것 같아, 로자레일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로자레일은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꿈틀거림에 눈을 떴다. 로자레일이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니, 애나벨이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애나벨은 그곳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애나벨이 로자레일의 가슴팍에서 고개를 내밀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특히나 애나벨을 처음보는 데제와 브리엘의 눈은 화등잔만하게 커져 있었다.

 

“괜찮아.”

 

“그래, 그래.”

 

애나벨의 첫마디에 로자레일은 잠꼬대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로자레일의 대답이 시원치 않다고 느꼈는지, 애나벨이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진짜 괜찮아!”

 

애나벨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생각한 마르탱이 물었다.

 

“뭐가 괜찮아?”

 

“믿어도 돼!”

 

“도대체 뭘?”

 

“아이참!”

 

대화가 겉돈다고 생각한 로자레일이 손가락으로 애나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뭐가 괜찮은지, 뭐를 믿어도 되는지 구체적으로 말을 해줘야지.”

 

로자레일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애나벨이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고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 말, 믿어도 괜찮다고!”

 

애나벨의 말에 로자레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왜 믿어도 되는데?”

 

“난 알아, 믿어도 돼.”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애나벨의 모습은 매우 귀여웠다. 그러나 그 모습이 귀여운 것과 말에 신빙성을 얻는 것은 별개였다.

 

마르탱이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애나벨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난 안다니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렐이 끼어들었다.

 

“진실을 보는 눈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요?”

 

마렐의 말에 마르탱이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애나벨이?”

 

“아무래도 요정인데….”

 

마렐도 처음에는 말을 그렇게 했지만, 마르탱의 반문에 대답을 하면서 선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자니, 애나벨에게 심안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아 말을 흐려버렸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결국 마렐도 애나벨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버리자, 애나벨은 로자레일에게 매달려 엉엉, 울어버렸다.

 

잠시 애나벨을 달랜 로자레일은 아고고를 믿어보기로 했다. 흔들린 없는 아고고의 까만 눈동자와 자신의 안목, 그리고 아고고를 믿어도 된다는 애나벨의 말까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아고고를 믿기로 결정한 것이다. 물론 딱히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조합의 의뢰도 한건 해결할 겸, 아고고와 함께 아쓰와드 대륙의 내륙으로 들어간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겠지만, 왕복 3개월이나 걸려서야, 레토라 대령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배를 타고 갈 수 있다면 빠를 텐데.’

 

“아!”

 

배를 타고 갈 생각을 하자, 로자레일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레토라 대령의 허가를 얻어, 아쓰와드 대륙의 서쪽 바다를 통해 간다면, 아쓰와드 대륙의 중서부에 위치한 아고고의 부족이 있는 지방까지 육로보다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레토라 대령의 허가였다. 아쓰와드 대륙 서쪽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거부당한다면, 아고고로서는 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되면 아고고의 부족을 구하는 것은 족히 한 달은 늦추어질 것이 분명했다.

 

로자레일은 데제에게 시간의 여유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도록 했다.

 

데제가 퉁명스런 어조로 아고고의 말을 전달했다.

 

“빨리 가지 않으면, 부족민들이 노예상인에게 팔려서 뿔뿔이 흩어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군.”

 

결국 로자레일은 처음 결정을 내린 데로 아고고를 믿기로 했다. 로자레일이 결정을 내린 것 같자, 일행의 시선이 모두 로자레일에게로 모였다.

 

주위를 둘러본 로자레일이 결정을 내렸다.

 

“아고고를 믿어 보자.”

 

모두들 조금은 의문이 있는 듯 했지만, 로자레일의 결정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러나 데제가 조그맣게 중얼 거리는 소리가 로자레일의 귀에 들렸다. 바로 옆에 있는 브리엘이나 들을 수 있을 만한 크기였지만, 오감이 예민한 로자레일은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군.”

 

로자레일은 데제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데제를 비난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데제를 잠시 응시 했을 뿐이다. 로자레일의 시선이 데제에게 머물자, 데제는 딴청을 부렸지만, 브리엘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데제는 아무 말도 안했어요, 헤헤.”

 

“그래.”

 

로자레일은 브리엘의 해명 아닌 해명을 웃어 넘겼다.

 

아고고의 일이 일단락되자, 일행은 잠에 취했다. 워낙 여러 가지 사건도 있었고, 돌아다니기도 많이 돌아 다녀서 피곤했기 때문에 모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단잠에 빠져있던 로자레일은 귀를 어지럽히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버렸다. 경매장에 다녀온 이후로 예민해진 감각 때문이었으나, 로자레일은 알지 못했다.

 

로자레일은 잠에서 깼지만 눈을 감은 채로 다시 잠을 청했다. 빗방울이 후두둑,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로자레일은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문 쪽에서 나는 인기척에 그 쪽을 바라보니, 두 명의 그림자가 숨소리를 죽인 채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데제와 브리엘이었다.

 

어린아이들이라고 방심했으나, 앙큼하게도 탈출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로자레일은 일행을 깨울까 하다가, 고작 어린애 두 명을 잡아오는데 단잠을 방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 일행을 깨우지 않은 채, 데제와 브리엘을 따라 나섰다.

Lv33 퀘드류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게시판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