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객관적인 자료나 정밀한 조사 분석 없이 기억만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실제와 다소 어긋날지도 모릅니다. 그럴 경우 가차없이 태클 걸어주셨으면 합니다. 단, 더 정확한 정보가 있을 때에만요.
흔히 지칭하는 "패키지 게임", "온라인 게임"이라는 구분은 사실 대충 부르는 이름들이고 이 이름들이 그 게임의 성격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혼자만 할 수 있거나, 같이도 할 수 있지만 혼자 하는게 주 컨텐츠인 게임들을 전자라고 대체로 칭하고, 타인과 같이 온라인 상에서 플레이 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게임들을 후자라고 대충 부르는거죠.
디아블로는 이런 면에서는 사실 명확하게 그 선이 그어지지는 않지만 일단 패키지 게임 이라고 부르고 있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비슷한 형태인 던스는 온라인이고 디아는 패키지라는 얼핏보면 납득하기 힘들어 보일 수도 있는 구분이지만, 디아는 혼자 하더라도 무리 없이 모든 컨텐츠를 즐길 수 있으니까요. 이는 워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도 마찬가지이고, 블리자드가 내세운 "배틀넷"이라는 시스템의 고유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패키지 게임인데 온라인 서비스를 과도하게 주는 형태랄까요... 어쨌든 저로서는 업계 용어도 모르고 더 적절한 네이밍도 못하겠으므로 그냥 패키지 게임과 온라인 게임이라고 일단 구분하겠습니다.
여튼 이건 앞으로 할 얘기들에서 혼동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한 말일 뿐이고 말하고자 하는 바는 패키지 중심이었던 과거와 온라인 중심인 현재의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내용은 국내에 관한 것으로 전 외국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 분위기는 잘 모릅니다. 또한 불법복제 이야기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크게 관계가 없다고 판단하여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패키지 게임들이 주를 이루던 때에는 대부분의 게임들이 수명이 매우 짧았습니다. 게임 하나가 나오면 그 게임의 엔딩을 한번 보고, 그 다음에는 게임 내에 숨겨진 요소들을 찾으면서 다시 깨보고 그랬습니다.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경우는 매우 짧은 대신 많이 반복 하긴 했지만 어쨌든 게임 하나 붙잡고 몇달씩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작품 수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에 나왔던 게임들 열거하면 어지간한 올드 게이머들은 거의 다 해보고 또 엔딩을 봤기에 서로 추억팔이가 가능한 것이죠. 새 게임이 나오면 그 게임 엔딩을 보고난 후, 재미 있었으면 여러번 반복하고 재미 없었으면 엔딩만 보고 끝낸 다음. 다음에 출시되는 게임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곤 했습니다. 신작 언제 나오나 발만 동동 구르며 게임 잡지만 열심히 구입해 읽었죠. (부록 시디가 주 목적일 때도 있었지만...)
또 그 당시에는 게임이 하나 나오면 버그가 튀어나오는 것은 뭐 거의 당연하다 싶을 만큼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많거나 버그로 인해서 아예 진행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는게 아니라면, "이거 버그네" 하면서 풉 하고 웃고 지나갈 정도로요. 그런 부분 관련 패치도 지금처럼 자동 패치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회사에서 파일을 올려주었는데다가, 정말 몇개 없었고 초기에만 몇개 나오다가 시간 흐르면 문제가 잔뜩 남아 있어도 걍 내버려두곤 했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유저들의 원성도 많았지만 원성으로 끝났고, 새 게임 나오면 또 구입해서 버그를 뚫고서라도 엔딩을 봤습니다. 말 그대로 "팔면 장땡" 이었죠. 반면 블리자드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자사 제품의 밸런싱과 버그를 패치를 제공했기 때문에 그 시기부터 개념 회사라는 이미지가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에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와 스타크래프트, 커맨드 앤 퀀커 등의 전략 시뮬레이션들은 대전이 가능했기에 패키지 게임들로서는 이례적으로 수명이 길었고, 그만큼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도 많아져서 전략 시뮬레이션의 전성기도 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도 인벤 순위에서 피파, 롤, 서든 등의 게임들이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사람과 사람이 싸운다는 흐름은 장르만 옮겨왔을 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류의 게임들이 전략 시뮬레이션보다 더 대전에 적합했기에 전략 시뮬레이션 전성기의 끝을 가져온거죠.
그리고 배틀넷 시스템을 들고 나온 디아블로는 어마어마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형태의 게임은 디아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 때까지 나온 어떠한 형태의 게임 보다도 디아가 흥미를 불러오는데에 압도적으로 적합했던 것이지요. 디아는 패키지 게임이었으나 그 강렬한 인기는 배틀넷 시스템에서 왔다고 봐도 괜찮다고 감히 넘겨짚어 봅니다. 그리고 아예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 나라(디아보다 먼저 등장), 디아 이후에 나온 리니지 등으로 온라인 게임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끌었으며 당시는 엄청난 속도로 인터넷과 피시방이 퍼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게임의 시대는 패키지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온라인 게임의 장점은 바로 수명이 매우 길다는 점이었죠.
수명이 긴 편인 온라인 게임들은 패키지 구매 방식 대신 정액제라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패키지 게임 하나에 4~5만원 정도 하던 때에 매월 2~3만원을 내야지 지속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시스템을 많은 유저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게임 회사가 돈독이 올랐다며 거세게 비난하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이미 스타나 디아 같은 게임들로도 충분히 오래 즐겨왔던 유저들에게는 (불법복제를 제외 하더라도) 게임 1개의 값 치고는 너무 바가지라고 생각한 것이죠. 여기에는 블리자드의 와우도 포함되어 있었죠. 하지만 온라인 게임들은 꾸준한 유지 보수와 지속적인 패치로 컨텐츠를 추가해주면서 일회성인 패키지 게임들을 상회하는 서비스를 선사하였고, 와우의 대성공은 이후 막대한 양의 MMORPG가 쏟아지는 원인이 되면서 이제는 아무도 월 정액을 바가지라고 부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수명이 긴 온라인 게임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다보니 출시하는건 거의 다 맛을 보던 패키지 시절과 달리 즐길 게임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유저들의 눈높이가 점점 높아졌기 때문에 인력, 시간, 필요한 기술 등 전체적으로 개발비는 엄청나게 상승하게 되었죠. 한번 성공한 게임은 유저들이 자신의 지인까지 자발적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막대한 돈을 거머쥐지만 경쟁에서 밀려난 게임은 개발비라도 건지면 다행인 상황으로 몰린 것입니다. 개발비가 커지다보니 모험을 걸기가 어려워졌고, 널리 인증된 방식으로 게임을 만들다보니 내내 거기서 거기인 게임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게임들 사이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했기에 안전빵이 전혀 안전하지 않게 되었죠. 그래서 나온 방책이 무료 플레이였습니다.
처음 시작하더라도 정액을 꼬박꼬박 내야하는 와우나 리니지 같은 게임들과 달리, 시작 게임들은 오픈 베타라는 형식을 빌려 게임을 무료로 즐기게 함으로써 유저들을 끌어들였고 적당히 뿌리 박은 유저들이 생길 즈음 하여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정식 서비스와 동시에 가을날 비바람에 낙엽 지듯이 유저들은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바로 "오베족" 이었죠. 주로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마비노기에서는 2시간 동안은 무료라는 방법도 써보고, 일정 레벨까지만 무료로 하는 등 갖은 방법이 다 시도되었지만 별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캐시 아이템이라는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거죠.
기본적인 컨텐츠는 무료로 해도 좋지만 제대로 즐기고 싶으면 돈을 내라! 라는 것이 캐시 아이템의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캐시를 지르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가 없다." 라는 불만은 이 부분까지는 게임 사는 그럼 땅 파서 돈버냐는 구박을 먹기 딱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이 캐시아이템에 무작위라는 요소가 도입되면서부터 상황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강화와 랜덤박스로 대표되는 무작위 요소는 많은 사람들에게 단기간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게 만들었습니다. 이 시스템의 문제점은 이젠 더이상 게임 자체 보다는 복권이나 도박에 가까운 재미 요소로 변질되어갔다는 것이며, 심지어 막대한 돈을 지르지 않으면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게임 화폐 내지는 아이템의 현금화는 이 현상을 더욱 크게 만들어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무료의 탈을 쓴 고과금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무료를 전면에 내세운 게임들을 즐기는 것은 이전 오베족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제 자제심을 잃고 게임에 돈을 다 부어 버리고 후회하는 일들도 생겨났죠.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많은 버려질 운명의 게임들을 살렸습니다. 경쟁에서 밀려난 게임들은 이미 정든 유저들이 참다참다 질려서 떠날 때까지 돈을 빨아들였고, 그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직원 월급을 주고, 새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배신감과 실망감만 가득 남은 유저들도 생겨났죠. 하지면 여전히 이러한 종류의 캐시아이템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수익이 생기는 동안에는 별도의 규제나 불매 운동이 있지 않는 이상 없어지긴 힘들어 보입니다.
(저처럼 블리자드를 따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블리자드는 소소한 문제는 생기더라도 이런 종류의 빅엿을 먹인 적이 없고, 실망을 안기더라도 추후에 그것을 메꾸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령 블리자드 게임에 질렸음에도 그 주위를 멤돌게 되죠. 블리자드가 워낙 말이 많이 나와서 그런 것이지 유저들을 잘 배신하지 않는 개발사들은 다 비슷한 팬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이야기에서 하고 싶은 말은 게임이 발달하고 또 변화하면서, 그 게임이 유행했던 배경과 현재의 상황이 많이 다름에도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대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스타2가 스타1만큼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스타2가 형편없어서가 아닌 전략 시뮬레이션의 전성기가 지났기 때문이고, 게임으로 수익을 얻어내는 방법도 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라서 과거의 단점이 현재는 메꿔졌지만 그 때는 없던 문제가 새로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인지를 먼저 한 다음에 게임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실현 가능성 있는 해법을 찾아내는데에 도움을 줄거라고 여겨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