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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끝은 '공허 군주의 패퇴'로 맺어질 수가 없습니다.

리리엣
댓글: 27 개
조회: 2747
추천: 4
2017-01-22 17:56:01
아제로스 역사 이래 최악의 침공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부서진 섬을 기점으로 신나게 악마, 혹은 불타는 군단교 광신도 외계인들을 때려잡고 계시는 아제로스의 용사 여러분들 중에는 분명

"이 기세를 몰아서 X발 공허군주까지 때려잡으러 갑시다!"

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물론 다음 확팩에 나올 보스를 예측하면서, 그 두근거림을 즐기는 것은 와우저들의 오랜 즐거움 중 하나죠.


하지만 대단히 안타깝게도 제 예상은 다릅니다. 우리는 절대로 공허군주를 때려 눕힐 수가 없습니다.

아니, 사실은 '때려눕혀서는 안된다'가 맞겠죠.

물론 공허의 존재들에 대한 정보가 대단히 부족한 상태에서 제 의견은 극단적인 비약으로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만 제 나름대로 현재까지 공개된 것들을 이리저리 그러모아 도출해본 가설입니다. 들어주시고, 비약이 매우매우 심한 것 같다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지도와 편달 바랍니다.

먼저 공허의 군주들을 때려 눕힐 수 없으며, 떄려 눕혀서도 안된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임의적인 가정이 필요합니다.

첫째,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물질 세계의 존재가 공허 그 자체와 상호작용할 수 없다. 
둘째, 공허의 군주들은 공허의 힘 그자체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 공허 자체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공허의 군주들도 소멸시킬 수 없다.

첫번째 가정은 공허의 군주를 때려눕힐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가능성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우리는 공허의 군주들이 물질 세계에서 마음대로 노닐 수 있는 티탄들을 질투했다는 사실, 본인들이 물질세계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며 그 영향력 역시 지극히 미약하다는 것-어디까지나 본인들의 본래의 세력에 비해- 정도를 알고 있습니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 역시 공허의 존재들과 직접적인 상호작용-그게 뭐 서로 악수를 하는 것이든 크로스카운터를 날리는 것이든 말이죠-을 시도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두번째 가정은 공허의 군주를 떄려눕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당위성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만약에 공허의 군주들을 떄려눕히는 것이 공허의 힘 그 자체를 붕괴시키는 거라면, 이건 문제가 좀 심각해집니다. 연대기에 의하면 세계를 이루는 근본적인 힘에는 서로 대조를 이루는 힘들끼리 쌍을 이뤄 각각 생명과 죽음, 질서와 혼돈, 그리고 빛과 어둠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다른 네 가지 힘은 결국 세계를 이루는 근본적인 힘, 빛과 어둠에서 비롯된 힘들이죠. 근데 공허 그 자체를 박살내버리면 우주 그 자체가 시밤쾅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에 대해 제가 증거로 생각하는 것들을 몇 개 살펴볼게요. 첫번째 가정에 대한 증거로는 두 악의 축인 살게라스와 공허의 군주들이 서로를 향해 취하고 있는 태도를 들 수 있습니다. 만약 공허의 군주들과 물리적 간섭이 가능하다면, 애초에 이런 사태까지 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겼다, 와우 (시작도 전에) 끝!'인 거죠. 공허의 군주들이나 살게라스나 어느 한쪽이 아작날 때까지 끝장을 보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했기에 양쪽 다 아제로스를 노리는 겁니다. 너무나도 강대한 존재들인 티탄은 공허의 세뇌에 면역이었고 살게라스는 공허 본진을 털 수 없으니까 공허의 멀티가 될 만한 곳들을 전부 작살내고 돌아다니는 거잖아요. 우주에서 가장 강대한 존재들끼리도 서로를 못 건드리는데, 고작 우리가...?

두번째 가정에 대한 증거는 나루와 공허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뭐, 불타는 성전 시절부터 의도적으로 복선을 깔아놓은 것은 아니겠지만, 나루가 타락하면 공허의 존재가 되었고 공허의 존재가 정화되면 나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단'에 이르러서는 빛이 있기에 공허가 있는 것이라고, 서로가 서로를 존재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풀어놓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공허의 군주들을 때려 잡는 행위는 다시 말해 나루, 혹은 나루보다 더 상위의 빛의 세력을 떄려잡는 것과 진배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막막해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아제로스를 호시탐탐 노리는 악의 무리들을 때려잡지 못하고,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요?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한 가장 바람직한 결말은 이겁니다.

티탄 아제로스를 각성시키는 결말.

불타는 군단과 공허의 존재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아제로스의 피조물들이 본인들의 어머니라고도 할 수 있는 아제로스를 티탄으로 각성시키는 겁니다. 차원문, 혹은 드레나이들이 타고온 차원 이동 함선-엑소다르-을 이용해서 행성 규모의 엑소더스가 이루어지고 아제로스는 우주의 역사 이래 가장 강대한 티탄으로 각성하는 거죠.

물론 그 이후에도 공허의 존재들은 또다른 세계혼을 찾아 온 우주를 헤맬지도 모릅니다. 살게라스 역시 또다른 타락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세계혼을 찾아 떠날지도 모르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르나, 와우가 최근 들어 세계관의 핵심 개념으로 차용하고 있는 동양 철학에 의하면 시작은 끝을 암시하고 끝은 또다른 시작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동양적 세계관의 대표격인 불교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연기의 법칙에 따라 아주 잠시만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제행무상, 영원히 불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영원히 빛인 것도 없고 영원히 공허인 것도 없이, 영원히 이것과 저것을 반복하는 우주에서 모든 것은 '공'인거죠.

이러한 논리에서, 우리가 영원히 공허의 존재와 불타는 군단에 대항하여 투쟁해야 하는 것은-물론 와우 접으면 안해도 됩니다-, 어쩌면 비극일수도, 어쩌면 그러한 존재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우리의 생명력에 바치는 세계의 찬사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환상문학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한 번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바꿔 말하면, 너희 사람들은 600조의 개체가 죽을 때까지도 존재할 수 있다."

정우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놓쳤던 새장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인조새는 기이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것에 닿아 있었고, 인조새는 그 햇빛에 의지하여 말했다. 정우가 말했다. 

"새님?"

용과 사람이 침묵한 가운데 사람이 만든 새가 끽끽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사람의 힘이다. 너희들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멸망을, 후손에게 저지르는 죄를,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낭비하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라. 무엇이 그리 급하고, 무엇이 그리 두렵고, 무엇이 그리 슬픈가? 너희들은 강하다. 600조의 개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찬사로 받아들여야한다. 너희들의 힘에 바치는."

인조새가 부리를 닫았다. 그 겉모습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리고 정우는 그것이 완전히 부서졌음을 깨달았다. 정우는 어느새 흐른 눈물을 닦으며 이라세오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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