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실버 팰리스는 6일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만 모습을 드러낸 만큼, 앞으로 보여줄 모든 요소들을 다 보여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단면만으로도, 앞으로 과연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들었죠. 그 인상을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 두 가지 포인트로 짚어볼까 합니다.
좋은 점 ①- 유려하고 섬세한 그래픽으로 밀도 있게 빚은 도시
'실버 팰리스' CBT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마 그 특유의 섬세한 그래픽이 진짜 구현된 것인가 하는 부분일 겁니다. 그리고 그건 거의 95% 비슷했습니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바로 PV의 신데렐라 보스전이 등장, 그 유려한 그래픽으로 빚은 화려한 전투를 바로 체험할 수 있었죠.
왜 95%라고 했냐면, PV를 보면 눈동자의 빛 반사나 그런 것을 볼 때 레이트레이싱을 적용했는데 아직 그 옵션은 CBT 빌드에선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동자의 디테일을 비교해보면 PV에서 보았던 그 보석 같이 빛나는 눈이 살짝 광채가 떨어지는 느낌이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레이트레이싱을 제외한 나머지 디테일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도시 건물들의 소소한 장식은 물론이고 빗물에 젖은 옷 표현까지,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들까지 세밀하게 다 구현해놨기 때문이죠. 전체적인 미장센은 더 말할 것도 없죠.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보는 실버니아의 원경은 그야말로 빅토리아풍 서브컬처 게임을 기다리던 서브컬쳐 유저들에겐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특유의 무드와 양식으로 구현된 거리를 실사풍과는 다른 스타일의 고퀄리티로 구현한 작품, 여태까지 찾아보기 정말 힘들었으니까요.
물론 아쉬운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식물들은 다소 디테일이 떨어지기는 하는데, 대체로 그 비중이 굉장히 적기도 하고 낙엽이 떨어지거나 바람에 날리는 그런 효과들이 사실적이라 그 분야에 눈이 쏠려서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죠.
외형뿐만 아니라 도시의 '밀도'도 아직 첫 CBT 단계임을 감안했을 때 꽤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벽타기나 점프는 없는 대신 탈것과 갈고리를 활용해 이곳저곳 날아다니거나 올라갈 수 있었고, 그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각종 숨은 요소들을 찾아보도록 유도했죠. 특히나 전투에서 장착 시 특수 효과를 발동하는 '실버크래프트'는 도시 각 구역 어딘가에 숨겨져 있으니, 그 효과를 로그라이크 콘텐츠인 '재연'에서 써보고 나서 자연스럽게 이를 찾아보게끔 연결한 것도 킥이었습니다. 아직 극히 일부 구역만 공개된 상태에서도 이런 만큼, 이후엔 대체 어떤 경험을 도시에 담아낼지고 기대됐죠.




좋은 점 ② - 고유명사 트랩 없이 술술 읽히는 추리극

빅토리아풍이나 벨에포크하면 스팀펑크가 자연히 떠오르지만, '탐정'도 빠질 수 없죠. 셜록 홈즈부터 시작해 현대 추리 소설까지 이어지는 그 맥이 빅토리아 시기부터 시작됐으니, 그 분위기에서 나오지 않으면 섭한 소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실버 팰리스'에서 주인공 탐정이 과연 어떻게 추리를 하고 이야기를 풀어갈지도 기대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간 중국 서브컬쳐 게임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를 과연 술술 잘 써갈지도 의문이었죠. 흔히 '고유명사 트랩'이라고 말하는, 갑자기 여러 개념들과 세계관과 연관된 이야기를 훅훅 던져버리면서 가독성을 낮춘 케이스가 상당히 많았으니까요. 더군다나 아직 1차 CBT라 현지화도 다듬는 중일 테니, 더더욱 그 이야기를 쉽게 즐길 수 있을까 의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실버 팰리스'는, 1차 CBT임에도 상당히 완성도 있게 잘 갈무리했습니다. 일단 세계관의 고유 명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그걸 크게 부각시키지 않아서 읽는 것에 무리는 없습니다. 스토리 전개도 탐정물의 클리셰인 명탐정과 그 뒤를 봐주고 협조해주는 경감이란 톤에 맞춰서 전개되고 있고, 어려운 용어들은 최대한 배제해서 흐름이 막히지 않았죠. 갑작스럽게 발생한 대량의 소사체 발견 사건에서 3년 전 탐정의 가족까지 휘말려서 사망한 사건과 연결고리가 발견되고,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조수 애슐리의 의미심장한 말과 주인공에게 신경전을 걸면서 특종을 잡으려던 기자의 갑작스런 죽음까지 여러 사건이 쭉 터지는데도 일련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됩니다.
특히 스토리 중간중간 가상 공간에서 탐정이 단서를 추론하는 과정과 증거물을 재배치하면서 복기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부분들이 중요한 구간에 짧게 배치된 것도 꽤 주목할 포인트입니다. 늘어지지 않으면서도 갈피는 계속 붙잡게하는 효과가 있었으니까요.




좋은 점 ③ - 패링의 맛을 적극 살린 전투

'실버 팰리스' 전투의 핵심은 '패링'입니다. 타 오픈월드 게임의 액션은 대체로 저스트 회피로 이득을 버는 시스템이지만, '실버 팰리스'는 적에게 노란 원이 뜨는 타이밍에 맞춰서 회피를 누르면 패링이 발동하죠. 그렇게 패링을 하고 난 뒤 추격해서 추가타를 넣으면서 일종의 교체기인 기습기를 발동할 리액터 게이지를 모은 뒤, 교체해서 또 콤보를 이어가다가 그로기 게이지가 차면 처형기를 먹이는 것이 '실버 팰리스'의 전투 템포입니다.
사실 '실버 팰리스'의 전투는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은 아쉽긴 한데, 적어도 '패링'의 손맛은 현 단계에서도 상당히 잘 살린 것이 주목할 부분입니다. 사운드나 이펙트도 현 서브컬처 액션 RPG에서 손꼽히는 작품과 비교했을 때 크게 밀리지 않는 수준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들의 공격 빈도가 상당히 높아서, 패링으로 받아내며 러시를 이어가는 맛을 살린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은 일반몹들이 원거리 공격을 해도 마치 스톰트루퍼 같이 헛쏘는 느낌인데, 실버 팰리스에서는 대부분 잘 맞추게 쏴서 패링 판정이 뜨다 보니까 사방을 주시하면서 팅팅 튕겨내고 공격으로 전환하는 그 특유의 템포가 이어집니다.
그외에도 보스들의 공격도 빨간색으로 뜨는 것 외에는 어지간하면 패링으로 대처가 되고, 알프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일반 공격하다가 패링으로 전환도 그렇게 딜레이가 없는 것도 눈에 띕니다. 그래서 공격과 패링 그리고 공격재개라는 빠른 흐름의 액션을 중단 없이 즐길 수 있었죠.

아쉬운 점 ① - 다소 어색한 전투와 이동 조작감, 전투 UI

그 전투의 핵심 메커니즘은 좋지만, 수집형 RPG에서 거의 기본 포맷처럼 자리잡은 태그 전투와 기본 전투의 조작감은 아직 개발 단계인 게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일단 일부 정예 늑대인간들이 굉장히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을 락온 카메라가 미처 못 따라갑니다. 그런데 캐릭터의 공격은 그걸 바로 추격하고 있어서 종종 뷰가 가려지면서 액션이 펼쳐지기 때문에 서로 따로 노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또한 기존 게임들과 다르게 공격해서 쌓인 게이지를 우클릭 혹은 차지로 특수 스킬을 발동하는 시스템인데, 일부 캐릭터들의 조작감이 좀 애매합니다. 보통 원거리 캐릭터는 우클릭으로 조준 후 좌클릭으로 쏘는 방식인데, 주인공은 바로 패닝으로 넘어가버려서 처음부터 조준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게이지를 낭비하기 십상이죠. 알프는 차지하면 화염탄을 발사하는데, 그게 조준선에 보이는 것하고 좀 궤도가 다르게 나가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맞추기 어려웠고요.
더군다나 전투 UI, 특히 적의 체력바나 상태가 매번 화면 밖으로 나가버려서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횡으로 혹은 종으로 폭넓게 움직이는 늑대인간이나 하피류는 특히 더더욱 그런 경향이 짙었죠. 게다가 그로기 상태인 적에게 처형 키를 눌러도 활성화가 종종 안 되거나, 갑자기 엉뚱한 적에게 타겟팅이 되어서 입력이 씹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투 경험이 조금 이상하게 꼬이는 느낌도 있었죠.
전투 조작감뿐만 아니라 이동, 특히 탈것의 조작감도 조금 이질감이 들었습니다. 주행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비행 이후에 강하나 착지, 그리고 내리기가 반응이 조금 느려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탈것 외에도 갈고리를 타고 이동하거나, 난간을 넘어다니는 그런 동작들이 반응이 조금씩은 느려서 자칫하면 끼는 일도 잦았습니다. 이런 현상들 중 끼임 현상은 몇 번의 패치 이후 상당히 나아진 만큼, 아마 이번 1차 CBT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면 꽤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쉬운 점 ② - 아직 명확하지 않은 역할군과 효과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긴 하지만, 이번 CBT에서 가장 정립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역할군과 속성 효과였습니다. 히어로나 가디언, 윗니스 등 역할군은 언급은 되어있는데 마치 추리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 소개하는 식으로 써져있었죠. 그나마 각 스킬을 보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짐작은 가능하고, 연소나 감전 등 속성 효과는 기재되어 있으니 짜맞출 수는 있었습니다.
뽑기 같은 BM은 없었지만 일단 현 단계에서 '실버 팰리스'의 콘텐츠 구조는 예상 가능한 범주에 있긴 합니다. 필드에서 실버 크래프트를 얻고 하지만 육성은 대부분 행동력을 돌려서 '어젠다'에서 각 재료를 파밍하는 구조죠. 타 게임의 주간 보스에 해당할 신데렐라 도전은 하루 1회로 되어있긴 한데, 아마 이 부분은 제한된 시간 동안 빠르게 육성하기 위한 임시 조치고 나중에는 변경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현재 통상 유물이라 부르는 세트템들은 실버 팰리스엔 없습니다. 대신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가서 승급 시련까지 마치면 수령하는 '촉매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죠. 촉매제는 각 캐릭터의 기습기 시에 발동하는 효과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 캐릭터가 아닌 파티 단위로 코스트 한도가 정해져 있어서 코스트에 맞춰 신중하게 배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촉매제도 '기습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이라, 나머지 다른 요소들에서 크게 강화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패링이 꽤나 화끈해서 어느 정도 상쇄하고는 있지만, 패링 후 공격 콤보를 이어갈 때 일반 공격 비중이 상당히 높고 기습기 외 스킬은 원거리 위주라 화끈함이 적다 보니 아쉬운 부분은 있었습니다. 그나마 각 캐릭터마다 특색을 살린 공격 모션들과 적을 띄우고 날리는 그런 요소들이 좀 있어서 눈요기는 있긴 한데, 아직은 개발 중인 단계란 인상이 짙은 상황입니다.

아쉬운 점 ③ - 불안정한 최적화에 단순한 패턴, 루틴

최초 공개 당시부터 '최적화'는 실 버팰리스의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PV에서 몇몇 적들이 대량으로 등장하는 씬에서는 프레임드랍이 보였을 정도니까요. 이번 CBT도 권장 사양은 지포스 RTX 3060으로 내세울 만큼, 사양 자체가 꽤 높은 편이기도 했죠.
일단 라데온 RX 9070XT 기준으로는 풀옵 70프레임까지 무난히 방어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40프레임대로 확 떨어지는 구간들이 좀 있었죠. 전투가 인카운터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적이 있으면 딱히 프레임이 떨어지지는 않는데, 재연의 일부 선택지처럼 갑자기 적이 많이 등장하거나 혹은 여러 NPC가 동시에 돌아다니는 걸 구현하는 미션, 두 개체 이상이 격하게 움직이는 전투에서 종종 프레임이 떨어졌습니다. 이외에도 이펙트가 화려한 신데렐라 보스전에서도 간혹 프레임이 떨어지기도 했고요.
그런 최적화 때문에 중간중간 흐름이 끊길 것 같았지만, 적 패턴이 상당히 단순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리듬 게임마냥 감으로 바로바로 잡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실버 팰리스'에서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였죠. 일반 적 패턴이 단순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몹 종류 자체가 너무 적어서 패턴이 뻔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엘리트 몹도 패턴이 두 개 정도라, '패링'을 내세운 게임치고는 뭔가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콘텐츠 루틴도 단조롭고, 몹과 레벨 차가 크게 나면 '패링'으로도 미처 다 막아내지 못하고 피해를 절반 정도 받아서 고난도 도전도 현 단계에선 하기 어렵다 보니 할 것이 부족하다는 인상도 있었죠.

총평 - 상편 초고만 나온 1차 CBT, 그 다음 이야기가 빨리 나와주길

사실 '실버 팰리스' CBT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지금 한참 이야기가 잘 진행되고 있다가 중간에 팍 끊어버린 점입니다. 마치 추리소설로 치자면 상하권 나뉜 책 중 상권 내용까지만 딱 보여주고 To be continued 이렇게 띄워버린 셈이죠. 그 의문의 문양을 남긴 소사체 사건은 대체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기자 살인 사건과 그 범인에 대한 전말이 점점 더 보이려는 참에 끊겨버리니까 감질맛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이외에도 실버 팰리스에서 감질맛이 날 구간은 여럿 있긴 합니다. 우선 부동산 투자도 단순히 얼개만 보여준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부동산을 사서 가게를 내거나 투자금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걸 기대했는데, 투자금을 벌어들이는 장면까지만 보여준 터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죠. 퍼즐도 추리물에 어울리지 않게 좀 단조로운 것들이고, 메인스토리와 몇몇 사이드 퀘스트를 빼면 아직 '탐정'으로서의 활약이 눈에 띄지는 않기도 합니다. 콘텐츠에서 아직 '실버 팰리스'만의 차별화된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죠.



그렇지만 몇 차례 CBT를 거쳐서 다듬어진 오픈월드 게임의 전례를 볼 때, 1차 CBT에서 이 정도를 보여준 '실버 팰리스'는 충분히 차세대 서브컬쳐 주자로서 입증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콘텐츠에선 아직 미완성이지만, 패링의 손맛과 유려한 캐릭터, 막힘 없이 술술 읽히는 추리극 스타일의 이야기, 그리고 각 캐릭터의 속성도 쉽게 이해시키는 디자인과 서사까지 그 단초를 제시했으니까요.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엘리멘타는 빨리 2차 CBT 일정 그리고 정식 출시까지의 플랜을 제시해줬으면 합니다. 심증적으로는 범인이 누군지는 알고 있는데, 빨리 그 답을 확인하고 싶은 게 추리물 보는 팬들의 심리니까요. 어쨌거나 그렇게 빠져들게 할 매력은 확실히 보여준 만큼, '실버 팰리스'가 이번 1차 CBT를 토대로 더욱 발전해서 또다른 오픈월드 세계를 유저들에게 성공적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