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앞서 개발사의 맥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케언'의 개발사 더 게임 베이커스는 전작 '퓨리'와 '헤븐'을 통해 독창적인 게임성을 선보여왔다. '퓨리'가 강렬한 보스 러시 액션을 통해 투쟁으로서의 자유를 그렸고 '헤븐'이 연인 간의 도피를 통해 관계 속의 자유를 그렸다면, 이번 '케언'은 극한의 자연환경 속에서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자유를 탐구한다.

개발팀은 이 세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자유에 관한 3부작으로 정의하며 '케언'을 그 대미를 장식할 작품으로 소개한다. 개발은 2020년부터 시작되어 약 25명의 소수 정예 인원이 투입되었으며, 당초 2025년 11월 출시를 목표로 했으나 최적화와 폴리싱 작업을 위해 2026년 1월 29일로 발매가 연기되었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철학은 게임의 마감새에서 증명된다.
비록 완등을 하고 남기는 리뷰이나, 부족한 실력 탓에 몇 가지 편의 기능을 사용했다. 아울러 개발사 측이 리뷰 조건으로 정한 후반부 이야기에 대한 언급은 제외했으나 그 경험은 평점에 반영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케언'은 등반이라는 행위로 시작해, 산의 본질과 목표를 향한 희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끝맺는 이야기다.
단순히 산만 오르는 게임이라면 밋밋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케언'은 여러 요소를 통해 서사를 불어넣었다. 주인공 아바는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완벽주의자로, 등반을 통해 자유를 느끼지만 그 과정에서 고립을 자처한다.
반면 마르코는 성취보다는 유희를 좇는 낙천적인 인물로 아바와 대조를 이룬다. 여기에 지상에 남겨진 가족 나오미와 매니저 크리스가 보내오는 무전은 아바가 짊어진 책임감과 단절감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치다.



플레이 도중에는 산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마주한다. 그저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는 이유, 그리고 손가락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고생해서 오른 정상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올라온 이들을 마주할 때의 복잡한 심경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산과 하나가 되어 백골로 남은 선등자들의 모습은 '셀카 명소'가 되어버린 풍경과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바는 그들이 실패했던 길을 오르며 추모한다.
플레이어는 아바의 시선을 빌려 그들의 마지막 사투를 상상하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삶과 죽음, 그리고 등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오락이 아닌 고행의 기록

개발사가 내건 슬로건은 명확하다. "등반은 싸움이다(Climbing is a Fight)." 거대한 암벽은 그 자체로 공략해야 할 보스 몬스터다. 마치 클라이밍에서 세터가 낸 문제를 풀듯, 플레이어는 대자연이라는 캔버스 위에 출제된 거대한 문제를 온몸으로 풀어내야 한다.
즉각적인 보상보다는 벽을 정복했을 때 오는 성취감이 이 게임의 핵심이다. 플레이 감각은 퍼즐과 액션의 조화다. 아래에서 암벽을 올려다보며 루트를 짜는 과정은 전략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하지만 막상 벽에 붙으면 온몸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액션 게임이 된다. 점차 스태미나는 바닥나고 손과 발은 계속 미끄러진다. 여러 돌발 상황에서 찰나의 판단으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흥미로운 건 이 고통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뻔한 UI 게이지 대신 거친 숨소리와 화면의 흔들림, 그리고 컨트롤러를 타고 넘어오는 진동이 내 상태를 말해준다. 수치가 아니라 감각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하기에 몰입감이 상당하다.


추락은 공포다. '항아리게임'에서 맛봤던 그것과 비슷하지만, '케언'은 예능이 아닌 다큐로 느껴진다. 수십, 수백 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칠 때, 플레이어가 한땀 한땀 올라간 모든 수고가 무너진다.
죽음의 가능성이 짙을수록 생존의 쾌감은 비례한다. 난관 끝에 안전한 레지(두발을 디딜 수 있을 공간)에 닿았을 때, 비로소 이 게임이 서바이벌임을 깨닫는다.
게임 설계: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동기화
아바는 노련하지만, 패드를 쥔 내 손은 비루하다. 실제 클라이밍 경험이 없다면 초반에는 꽤 헤맬 수밖에 없다. 다행히 레벨 디자인이 훌륭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요령이 생긴다. 막 움직이는 것만 같던 아바의 손과 발이 플레이어의 조작과 하나가 된다.
자세 제어 시스템은 '케언'을 개발 단계로 뜯어볼 때에도 우수한 게임이란 인상을 준다. 역운동학과 절차적 애니메이션 덕분에 아바의 동작은 실시간으로 계산된다. 정해진 길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손발이 닿는 모든 곳이 길이다.
막막해 보이는 벽도 아바를 믿고 내지르면 길이 열린다. 정신없이 오르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까마득한 높이가 주는 아찔함과 내가 이만큼 해냈다는 쾌감은 인상적인 보상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워낙 벽과 캐릭터에 시선이 고정되는 게임이다 보니 로프가 벽을 뚫거나 아바의 몸이 암벽에 파묻히는 그래픽 오류가 유독 눈에 밟힌다. 몰입이 중요한 게임인 만큼 향후 업데이트를 통해 벽과 캐릭터, 로프의 구분이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케언'의 시뮬레이션은 생존과 자세 제어, 두 축으로 돌아간다. 배고픔, 목마름, 피로도는 물론이고 손가락 컨디션까지 챙겨야 한다. 가방 용량은 한정적이니 무엇을 챙길지 매번 고민해야 한다. 재밌는 건 산악인 특유의 공유 문화가 구현돼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그렇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단순하지만 정상까지 오르기까지 적절한 컨디션을 관리하는 건 꽤 난도가 높았다. 성취감 면에서 보면 아슬아슬하게 다음 목표까지 가는 디자인이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개발사도 이 난도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걸 알았는지 생존 요소를 끌 수 있는 옵션을 넣어뒀다. 실제로 꺼보니 플레이 타임이 확 줄어드는 게 체감됐다. 되감기 기능이나 난이도 조절 같은 접근성 옵션도 충실해서, 누구나 도전해 볼 법하다.
질문: 고통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할까

처음엔 그저 등반 게임으로만 시작했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재미, 그뿐인 줄 알았다. 어려운 루트를 파훼했을 때의 희열, 딱 그 정도를 기대했다. 하지만 로프에 매달려 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포기하면 편한데, 나는 왜 오르려 할까?"
이 게임은 등반가들이 평생을 바쳐 찾는 질문, "도대체 왜 산에 오르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게임화했다. 그리고 목표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왜 고통을 자처하며 오르는가.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얻는가. '케언'은 단순히 물리적인 등반을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행위가 내포한 철학적 의미까지 게임 디자인으로 승화시켰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오르는 행위만 구현했다면 높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케언'은 장르의 천장을 깨부수고, 산이라는 공간과 삶의 목표에 관한 철학적 완성품이 되었다. 개발사 더 게임 베이커스는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가 단순히 캐릭터의 움직임을 넘어, 게임 디자인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이 작품으로 증명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