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간 11년 전통의 원조 공포 맛집 '디렉티브 8020'

변치 않는, 늘 먹던 맛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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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먹던 맛 그대로' 얼핏 보면 칭찬처럼 들리는 표현이다. 익숙한 맛, 변함없는 완성도, 검증된 재미를 뜻하니까.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리즈의 정수를 유지했다는 의미라면 분명 긍정적인 평가다. 하지만 반대의 의미로도 쓰인다.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 결국 익숙함 이상의 무언가는 보여주지 못했다는 의미다.

슈퍼매시브의 호러 인터랙티브 무비가 딱 그렇다. 2015년 언틸 던을 시작으로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쿼리, 그리고 더 캐스팅 오브 프랭크 스톤에 이르기까지. 슈퍼매시브는 지난 11년 동안 꾸준히 호러 인터랙티브 무비를 선보이며, 장르를 대표하는 개발사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늘 따라붙는 평가도 있었다. 매번 비슷하다는 평이다.

지난 5월 12일 출시된 '디렉티브 8020'에 유독 큰 기대가 쏠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즌2의 포문을 여는 작품인 만큼, 지난 11년간 반복된 공식을 깨고 한 단계 진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좋게 말하면 익숙한 맛, 나쁘게 말하면 결국 또 늘 먹던 그 맛이다.




선택지와 QTE라는 레시피에 가미된 '조작'이라는 변주




게임의 기본적인 구조는 전작들과 대체로 비슷하다 ©INVEN

서두에 아는 맛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건 아니다.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즌 2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답게, '디렉티브 8020'에는 기존 슈퍼매시브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부분도 존재한다. 바로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확장됐다는 점이다.

원래부터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라는 게 그렇다.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부분의 비중이 크지 않다. 이는 언틸 던부터 지금까지 슈퍼매시브가 선보여온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좋게 말하면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정체성에 충실하고, 나쁘게 말하면 장르가 구축한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랬던 슈퍼매시브지만, 이번에 '디렉티브 8020'을 출시하면서 이러한 기존의 문법에 살짝 변화를 시도했다. 잠입과 탐색의 비중을 늘리면서 영화에 가까웠던 무게추를 이전보다 조금 더 게임 쪽으로 옮긴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부분의 비중이 늘었다는 것 정도 ©INVEN

물론 그렇다고 플레이어가 극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 건 아니다. 그 정도였다면 인터랙티브 무비가 아니라 아예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 가까웠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선택지를 고르는 게 전부라는 인터랙티브 무비의 태생적인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장르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아주 조금 더 늘린 것에 가깝다.

바뀐 부분이라고 해봐야 그리 많지도 않다. 대부분의 인터랙티브 무비가 선택지와 QTE를 중심으로 여기에 약간의 조작 요소를 덧붙이는 구조를 취하는데, '디렉티브 8020' 역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을 조사하는 구간에서 메인 동선을 따라가지 않고 옆길로 빠져 단서와 정보를 모아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든가, 쫓기는 상황에서 단순히 선택지를 고르거나 QTE를 입력하는 게 아니라 직접 몸을 숨기고 적의 시선을 피해 움직이도록 바뀐 정도에 불과하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숨겨진 정보 등을 찾을 수도 있다 ©INVEN

이러한 변화는 인터랙티브 무비의 한계, 즉 플레이어가 영화를 감상하듯 지켜보는 데 머문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그 결과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문제다.

결국 '디렉티브 8020'의 핵심은 여전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플레이 과정에서 직접 단서를 찾고 비밀을 파헤친다고 해서 분기가 크게 달라지거나, 선택지 자체가 유의미하게 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게임의 분기와 엔딩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 역시 대부분 선택지와 QTE 성공 여부에 치우쳐 있다.



결국 핵심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QTE에 성공했는지 여부다 ©INVEN

그렇다 보니 전작과의 차별점으로 내세운 탐색과 잠입, 은신 같은 조작 요소는 정작 극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부가 요소처럼 느껴진다. 변화를 시도한 것은 맞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 체감되는 깊이는 생각보다 제한적인 셈이다.

아쉬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작 비중을 확대한 새로운 시도가 그다지 체감되지 않는 수준에 그쳤다면, 어떤 캐릭터로 플레이하든 거의 동일한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은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 치명적인 단점으로 다가온다. '디렉티브 8020'에는 함장, 조종사, 엔지니어, 의사, 과학자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며,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바뀌어 서로 다른 시점에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각기 다른 시선에서 하나의 사건을 마주하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 것. 이는 슈퍼매시브가 언틸 던부터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추구해 온 핵심 재미다. 문제는 정작 이들이 겪는 플레이 구조 자체에 차별성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장르 특성상 캐릭터마다 완전히 상이한 플레이 방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디까지나 직접 조작하는 게임보다는 선택지를 지닌 영화에 가까운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캐릭터의 껍데기만 바뀔 뿐, 적을 피해 돌아다니고 퍼즐을 푸는 흐름이 매번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은 단순히 장르의 특성으로 치부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매력이 반복적인 플레이 구조에 빛바래는 느낌이다 ©INVEN

액션 게임이 아닌 만큼 괴물과 직접 맞서 싸우는 연출은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차별화를 시도할 방법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라면 주변 설비를 활용하는 방식, 의사라면 의학 지식을 이용해 난관을 극복하는 방식처럼 각자의 특성을 살릴 여지는 충분했다. 만약 그랬다면 캐릭터의 개성은 물론, 앞서 언급한 제한적인 조작 요소들 역시 지금보다 훨씬 인상적으로 살아났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게임 속 인물들은 누구를 조작하든 똑같이 웅크린 채 괴물을 피해 다니고, 정비 통로를 지나며, 문을 열고 단말기를 만지는 루틴만을 반복한다. 캐릭터는 매번 교체되지만 플레이어가 겪는 경험 자체는 복사 붙여넣기에 가깝다 보니 결국 지루함이 앞선다. 결과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시도한 그 얼마 안 되는 변화마저도, 이 무의미한 반복 구조 속에서 빛이 바래버린 셈이다.



이렇게 계속 쭈그리게 할 거면 그냥 조작 요소를 안 넣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INVEN


한편의 '영화' 같은 준수한 스토리, 아쉬운 반전




©INVEN

한 편의 영화 같은 게임을 표방하는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에서 연출과 스토리는 게임의 핵심이자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디렉티브 8020'의 연출과 스토리는 호러 장르로서 소위 돈값은 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취향 차이일 수는 있겠지만, 복기해보면 아쉬운 점이 더러 존재한다.

일단 초반 챕터의 구성이 그렇다. '디렉티브 8020'의 스토리는 영화 더 씽 등으로 유명한 인간으로 의태하는 괴물 소재를 거의 정석대로 따라간다. 남극 기지에 대응하는 우주선이라는 폐쇄된 공간, 사람의 기억과 행동까지 완벽하게 복제하는 괴물, 누가 동료이고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의심하며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심리적 공포를 선사한다.



초반 챕터는 우리 속에 괴물이 있다는 바디 스내처의 정석대로 흘러가지만... ©INVEN



금세 그 정체가 드러나서 바디 스내처의 명제가 힘을 잃는다 ©INVEN

문제는 이러한 심리 스릴러 특유의 압박감이 실제 게임에서는 그다지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토리가 중요한 장르인 만큼 자세한 내막을 밝힐 수는 없지만, 누군가 괴물이라는 단서를 다소 노골적으로 알려주는 면이 있다. 이 때문에 동료들 사이에 괴물이 숨어있다는 매력적인 명제 자체가 초반부터 힘을 잃고 만다.

결국 서로를 옭아매는 심리전 대신, 점프 스케어와 같은 일차원적인 요소로 유저를 놀래키는 구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묵직한 심리적 긴장감을 기대했던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완성도 높은 호러 스릴러를 기대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점프 스케어에 과하게 의존하는 뻔한 B급 호러 영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디 스내처의 명제가 힘을 잃은 자리에 남는 건 결국 점프 스케어 뿐이다 ©INVEN

그렇다고 스토리나 연출이 별로라는 오해는 말길 바란다. 누가 괴물인지 모르는 데에서 오는 긴장감 넘치는 호러 스릴러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데에서 오는 아쉬움일 뿐, '디렉티브 8020'의 스토리와 연출 자체는 호러 장르로서 기본은 하는 수준이다.

핵심 반전 요소를 다루는 방식도 아쉽다.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상 스토리 뒤에 늘 숨겨진 진실이 존재해 왔는데, 이번 작품은 그 핵심 반전이 너무 빨리 드러난다. 마지막 엔딩에 이르러 "와, 이게 사실은 이런 거였어?" 하고 터져야 할 대형 반전이 중반부에 이미 밝혀져 버린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다소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이며, 후반부 생존을 향한 사투의 원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선택을 되돌리는 시스템 역시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누누이 말한 것처럼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에서 유저의 선택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잘못된 선택으로 특정 캐릭터가 사망하거나 스토리가 배드엔딩으로 향할 때 몰려오는 좌절감조차도 게임을 다시 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실패의 아쉬움을 딛고 다음 회차에서 올바른 선택을 내려 마침내 굿엔딩이나 진엔딩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인터랙티브 무비가 추구하는 핵심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분명 편리한 기능이지만, 인터랙티브 무비의 핵심은 선택의 중요성을 옅게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INVEN

하지만 이번 작에 도입된 분기 되돌리기 기능은 이러한 장르적 원동력을 무너뜨린다. 소위 세이브 로드 신공처럼, 실수로 캐릭터가 죽더라도 곧바로 이전 분기점으로 타임루프 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게임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은 편의성 측면에서 장점일지 모르나, 매 순간 신중하게 선택지를 골라야 했던 장르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


변치 않는 그 맛 그대로 돌아왔다




11년간 변치않다는 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INVEN

분명 '디렉티브 8020'은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즌2의 시작을 여는 작품답게 많은 공을 들인 게임이다. 언리얼 엔진5로 개발되어 그래픽과 비주얼이 눈에 띄게 발전했고, 캐릭터의 모델링과 표정 묘사 역시 한층 개선됐다. 여기에 스토리 역시 반전 요소가 다소 일찍 드러난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호러 장르로서의 기본기는 충분히 증명해 낸다.

진짜 문제는 이 모든 게 결국 '아는 맛'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혔다고는 하나 결국 가장 중요한 분기는 기존처럼 선택지와 QTE에 기댄다. 스토리와 연출 역시 기본은 하지만 딱 흥미롭다 수준에 머물 뿐, 예상을 뛰어넘는 신선한 충격을 주지는 못한다. 여기에 장르 특성상 짧은 플레이 타임에 비해 풀 프라이스로 책정된 가격대 역시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요약하자면 '디렉티브 8020'은 고착화된 공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의 변화를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 장르의 틀을 깨부술 만큼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간 슈퍼매시브가 쌓아온 호러 인터랙티브 무비로서의 노하우와 기본 체급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동안 개발사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즐겨왔던 팬들이라면 이번 작 역시 충분히 몰입해서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늘 먹던 그 맛'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누가 괴물이고 누가 인간일까 ©INVEN
  • 물오른 점프 스케어
  • UE5에 힘입어 발전한 비주얼과 연출
  • 다소 애매한 최적화
  • '영화' 치곤 비싼 가격대
  • 지루하게 느껴지는 잠입 시퀸스

리뷰 플랫폼: PC (출시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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