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끝없는 누런 복도, 영화 '백룸'이 보여준 가능성과 한계

게임뉴스 | 김규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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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할 정도로 불편한 공간 '백룸' ©A24

영화 '백룸(The Backrooms)'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하나의 괴담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인물이 바로 '백룸' 신화를 대중화한 창작자라는 사실이다. '백룸'은 현실의 틈새에서 미끄러지듯 이탈한 사람들이 도달한다는 정체불명의 공간을 의미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누런 벽지, 윙윙거리는 형광등 소리, 출구도 목적지도 없는 미궁 같은 구조. 지금은 인터넷을 대표하는 도시전설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대중적 인기를 폭발시킨 주인공은 케인 파슨스, 온라인에서 '케인 픽셀즈'로 알려진 젊은 창작자였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무료 3D 제작 툴인 블렌더를 이용해 제작한 단편 영상으로 수천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후 수년에 걸쳐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백룸'은 유튜브를 넘어 게임과 각종 2차 창작으로 확산됐고, 이제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관 풍경도 이를 증명한다. 친구들과 함께 극장을 찾은 학생들부터 부모와 동행한 어린 관객들까지, 예상보다 젊은 관객층이 눈에 띈다. 온라인 밈과 인터넷 괴담을 소비하며 성장한 세대에게 '백룸'은 이미 익숙한 이름인 셈이다.

영화는 의외로 정석적인 공포영화 문법으로 출발한다. 백룸에 고립된 연구원의 시선을 따라가며 공간의 위협성을 각인시키고, 이후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심에는 가구점 점장 클락(치웨텔 에지오포 분)과 그의 상담 치료사 메리(레나테 레인스베 분)가 있다.

클락은 실패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인물이다. 건축가의 꿈은 사라졌고, 현실에는 손님 없는 가구점과 알코올 의존만 남았다. 어느 날 매장 지하에서 이상한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하면서 그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백룸 자체에 대한 묘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누런 복도와 방들, 불쾌할 정도로 지속되는 형광등 소음,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 배치는 관객에게 은근하면서도 지속적인 불안을 안겨준다. 단순히 어둡거나 잔인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공간이 어딘가 잘못 구현된 듯한 위화감이 공포의 근원이 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기존 밀실 공포물과는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쏘우'나 '큐브' 같은 작품의 공포가 탈출 불가능한 폐쇄성에서 비롯됐다면, 백룸은 오히려 지나치게 넓다는 점에서 공포를 만들어낸다. 클락은 현실과 백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며, 입구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안이 너무 광대해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갇힘이 아니라 무한함 자체가 공포가 된다.

하지만 장편 영화라는 형식은 인터넷 괴담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어느 정도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중반 이후 정체불명의 괴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보다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문법을 따른다. 클락을 돕기 위해 백룸 탐사에 나선 인물들이 하나둘 위험에 처하고, 미지의 존재로부터 도망치는 전개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백룸'만의 독특함은 다소 희석된다. 인터넷 괴담으로서의 백룸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설명할 수 없는 공간 자체에 있었지만,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익숙한 생존 공포물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물론 원작에서도 괴물(엔티티)은 중요한 소재다. 그러나, 영화 속 괴물과의 추격전은 우리가 여러 다른 영화에서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발목을 잡히며 갑자기 끌려가거나, 미지의 위협을 상대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장면들. 모두 정석적인 장편영화의 문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메리와 관련된 서사에서는 작품이 가진 철학적 면모를 드러낸다. 영화는 백룸을 단순한 괴물의 서식지가 아니라 기억이 물리적으로 구현되는 장소로 묘사한다. 사람의 기억을 바탕으로 공간이 생성되고 확장되지만, 기억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공간 또한 왜곡된다.

특히 메리의 트라우마와 연결된 집이 백룸 속에서 반복적으로 구현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만 점차 축소되고 뒤틀리며 결국 원형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한다.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 장면들은 영화가 가장 '백룸답게' 빛나는 순간들이다.

결국, '백룸'은 잘 만들어진 영화다. A24의 배급, 제임스 완의 제작사 아토믹 몬스터의 지원, 그리고 자신이 만든 세계를 직접 영화화한 젊은 감독의 역량까지 기술적 완성도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다만 모든 관객에게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수년 동안 유튜브와 인터넷을 통해 축적된 세계관을 전제로 하는 만큼, 원작 괴담과 케인 픽셀즈의 영상들을 접하지 않은 관객은 이야기의 의도와 결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명확한 설명과 깔끔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애초에 백룸이라는 존재 자체는 논리와 인과관계를 거부하는 괴담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영화 역시 모든 수수께끼를 해명하기보다는 불안과 미지의 감각을 남기는 데 집중한다. 누군가에게는 매혹적인 경험이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미완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괴담을 거대한 극장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백룸'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영화는 관객을 놀라게 하기보다, 오래도록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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