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학회장 유병준 서울대 교수)는 19일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연수원에서 '2026년 워크숍'을 열고 '방위산업과 게임산업 협업의 조건'을 주제로 토론했다. 발표를 맡은 법무법인 화우의 김근호 변호사는 방위사업청 근무 경력을 지닌 방산 전문 변호사다. 그는 게임산업의 기술 및 콘텐츠 역량이 국방·안보 영역과 만날 때 고려해야 하는 규제 전반에 대해 폭넓게 설명했다.

현재 국내 게임사 중 크래프톤과 NC AI가 발 빠르게 방산업계로 진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래프톤은 지난 3월 13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피지컬 AI 기술 공동 개발 및 합작법인(JV)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크래프톤의 AI 연구 역량 및 가상환경 기반 시뮬레이션 기술을 한화의 방산·제조 인프라 및 무인 시스템 기술과 결합한다는 구상이다.
양사는 핵심 기술 공동 연구개발, 실증·적용 시나리오 검토, 기술·운영 체계 구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크래프톤은 한화자산운용이 조성하는 AI·로보틱스·방위산업 펀드(목표 결성 규모 10억 달러)에도 투자자로 참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NC AI와 현대로템 컨소시엄은 지난 5월 국방과학연구소가 발주한 '피지컬 AI 기반 통합 시뮬레이터 및 모듈형 로봇 시스템' 연구개발 과제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는 미래 전장에서 다종·다중 무인 로봇을 유기적으로 통제하고, 가상과 현실의 격차를 줄이는 디지털 트윈 기반 시뮬레이터와 모듈형 로봇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NC AI는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월드모델(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총괄한다.
게임사와 방위산업을 잇는 연결 고리는 '가상에서 현실로(Sim-to-Real)' 이어지는 기술이다. 무기 체계 개발에는 실험이 필수적이지만, 장비가 고가인 데다 위험성도 크다. 가상환경에서 먼저 학습하고 검증한 뒤 현실에 적용하면 비용과 위험을 줄이면서 개발 속도는 높일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을 기반으로 한 정비 및 운영 효율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무인화가 현대전의 핵심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AI 학습용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졌다. 그러나 전투 관련 데이터는 보안상 확보하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제약이 따른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가상공간에서 대량으로 생성하는 '합성 데이터'다. 결국 고품질 3D 가상세계 구축과 행동 패턴 데이터 운영에 강점을 지닌 게임사가 유력한 파트너로 지목된 셈이다.
게임 특유의 실시간 3D 렌더링, 직관적인 UI·UX, 훈련 비용 절감 효과도 방산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김 변호사는 무기체계 개발 검증, 드론 조종사 양성 훈련, 전장의 디지털 트윈 구현 등을 게임 기술이 기여할 수 있는 대표적 영역으로 꼽았다.
해외에는 이미 관련 선례가 축적되어 있다.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가 롤모델로 지목한 안두릴(Anduril)은 오큘러스 창업자인 팔머 럭키가 2017년 설립한 방산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무기와 센서를 통합 운용하는 일종의 운영체제(래티스, Lattice)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안두릴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하던 미 육군 증강현실(AR) 헬멧 사업을 넘겨받았으며, 지난해에는 메타와 손잡고 AI 전투 헬멧 '이글아이(EagleEye)'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날 발표의 무게중심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적인 '조건'에 있었다. 게임사가 방위산업에 진입하려면 일반 산업과는 전혀 다른 규제 체계를 이해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선 수익 구조 자체부터 다른 산업과 차이가 있다. 방산물자로 지정되면 수의계약 기회가 보장되지만, 시중 거래 가격이 없으므로 법령상 방산 원가 제도에 따라 가격과 이윤율이 정해진다. 김 변호사는 "내수용 방산물자의 이익률은 법령에 따라 정해지며, 10%를 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빠른 개발 주기에 익숙한 게임산업과 달리 방산 연구개발은 절차 진행이 느린 편이고, 원가 검증도 까다롭다는 점 역시 특수한 사정으로 지적됐다. 특히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단계에서는 통상 실제 발생 비용을 사후에 정산하는 '개산계약' 방식을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정부의 원가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엄격한 수출 통제도 기존 게임산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기술과 물자의 성격에 따라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산업기술보호법, 방위사업법, 대외무역법 등의 규정에 따라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존에 민수용으로 팔던 품목이라도 군사적 전용 우려가 있다면 수출 허가 대상이 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하나의 물품이 민수용과 군용으로 모두 사용되는 경우, 민수용으로 수출하더라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방산 진출이 기존 사업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없는지 사전에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식재산권(IP) 구조 역시 게임사에는 낯선 영역이다. 국방 R&D의 개발 성과물은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다. 업체가 연구개발비를 부담하거나 별도의 양도 계약을 맺은 경우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공동 소유가 인정될 수 있다. 더욱이 국가 안보상 필요하다면 공동 소유자의 동의 없이도 국가가 해당 IP를 행사할 수 있다. 자사 IP 활용을 사업의 근간으로 삼는 게임사로서는 신중하게 따져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 외에도 방산업체의 지분 매각 등으로 경영 지배권이 실질적으로 변경될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 자본 및 지배구조 측면의 제약으로 거론됐다.
이에 따라 게임사 입장에서도 본사가 직접 진입하기보다는 합작법인을 설립하거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워크숍 토론 과정에서 거듭 제기됐다. 아울러 미국 CIA 계열 벤처펀드 인큐텔(In-Q-Tel) 모델과 지난해부터 벤처 출자를 시작한 국내 군인공제회 사례 등 '방산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한 자금 흐름도 함께 논의됐다.
이번 워크숍의 의의는 'K-방산×게임'이라는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두 산업의 결합이 성립하기 위한 현실적 조건을 법·제도 차원에서 면밀히 점검했다는 데 있다. 낮은 이익률, 복잡한 절차, 엄격한 원가 검증, 광범위한 수출 통제, 그리고 국가 귀속을 원칙으로 하는 IP 구조는 빠른 개발과 IP 수익화에 익숙한 게임사의 기존 체질과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결국 게임사가 방위산업에 성공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방위산업의 특수한 규제를 직접 적용받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여 사업에 참여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게임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