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국어판 엘라이의 학습에 A.X K1이 쓰였다는 점이다. 그는 "A.X K1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소버린 AI 모델 중 하나"라며, 이 모델이 PUBG를 통해 수천만 명에게 가닿게 된 데 대해 "매우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A.X K1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서 SKT 정예팀이 공개한 국내 최초 500B(5190억 매개변수)급 초거대 모델이다. 크래프톤은 이 정예팀에 SKT·포티투닷·리벨리온·라이너·셀렉트스타·서울대·KAIST와 함께 참여해 글로벌 멀티모달 R&D 역량을 맡았다. A.X K1 공개 당시에도 '크래프톤의 게임 AI를 통한 실시간 캐릭터 대화 및 자율 행동 구현'이 대표적 활용 사례로 제시된 바 있다.
정부가 키운 소버린 AI가, 이를 함께 개발한 기업의 손을 거쳐 글로벌 게임의 한국어 이용자 경험을 만드는 데 직접 쓰인 셈이다. 'K-AI' 생태계의 성과를 실제 제품으로 체감하는 초기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지난 17일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아케이드에 신규 모드 '엘라이 듀오(Ally Duo)'를 선보였다. 이용자가 AI 캐릭터 '엘라이'와 2인 팀을 이뤄 사녹 맵을 누비며, 마이크로 대화하면서 이동·파밍·전투·전술을 함께 풀어가는 방식이다.
엔비디아 에이스(ACE) 기반 온디바이스 소형 언어 모델(SLM)을 탑재해 음성 인식(STT)·합성(TTS)으로 소통하고, 전황과 음성 명령을 함께 이해해 행동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정해진 대사만 반복하던 기존 NPC와 달리 스스로 추론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이 CAIO는 이를 "추론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음성으로 소통하는 팀원으로서 플레이어와 함께하는 세계 최초의 인게임 AI 에이전트"라고 소개했다. 베타는 Steam을 통해 7월 1일까지 약 2주간 한국어·영어·중국어 음성으로 전 세계 이용자에게 제공된다.

이 '말 통하는 동료'는 PC방에서 길러졌다. 이 CAIO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PC방을 통째로 빌려 1000명이 넘는 배틀그라운드 이용자를 모집하고, 이들에게 개발 버전 엘라이와 약 4만 판을 함께 플레이하게 했다. 이용자가 동료 캐릭터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어떻게 협력하는지, 실제 플레이 흐름이 고스란히 담긴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다. 수집 기간 내내 더 나은 버전을 계속 투입해, 테스터는 점점 똑똑해진 동료와 플레이하고 회사는 그만큼 최신 버전에 맞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구조였다. 이 CAIO는 이를 "데이터가 필요한 우리와, 공개 전 새 AI 동료를 먼저 써보고 싶은 플레이어 모두에게 득이 된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대화'와 '행동'을 동시에, 그러면서도 어긋나지 않게 제어하는 일였다. 이 CAIO는 빠르게 변하는 전장에 즉각 반응해야 하는 행동 제어와 사람과 실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주고받아야 하는 음성 대화가 각각 어려운 문제인데, 엘라이는 둘을 한꺼번에 풀어야 했고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도 안 됐다고 설명했다. 크래프톤은 이를 위해 실시간 음성 대화 인터페이스와, 빠른 반응을 담당하는 '시스템 1'·맥락 판단을 담당하는 '시스템 2'를 결합한 구조를 새로 설계했다고 한다.

'좋은 동료'를 평가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초기에는 대화·행동 등 정량 지표를 가중 합산한 자체 척도를 만들었지만 테스터가 매긴 순위는 회사의 예측과 크게 달랐고, 결국 배포할 때마다 여러 버전을 함께 내보내 평가와 피드백을 받은 뒤 이용자가 실제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맞춰 평가 기준의 가중치를 반복 조정했다. 낮은 지연이 생명인 만큼 모델은 기기 안에서 돌도록 경량화했다. 파인튜닝·증류로 크기를 줄이고, KV 캐시를 작게 유지하는 자체 압축 기법을 고안했으며, 3D 렌더링과 AI 에이전트가 하나의 GPU에서 함께 작동하도록 스케줄링을 정교하게 짰다고 이 CAIO는 밝혔다.
크래프톤은 안전장치도 함께 안내했다. 회사는 엘라이가 게임을 돕는 도우미 역할일 뿐 실시간으로 자율 학습하거나 진화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하고, 이용 전 별도 안내에 동의하도록 했다. 또 학습부터 점검·개선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안전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강욱 CAIO는 "엘라이와 이용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플레이를 선보이게 됐다"며 "이용자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AI 기술을 활용한 게임 경험의 혁신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상용 콘텐츠로 안착하려면 검증할 과제도 남는다. 순간 판단과 팀워크가 핵심인 배틀로얄에서 AI 파트너가 교전 상황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반응하는지, 음성 인식 지연이나 오작동이 플레이 흐름을 깨지 않는지는 이번 베타가 풀어야 할 지점이다. 크래프톤은 베타 기간 모은 데이터와 피드백으로 기술을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