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칼의 집으로 복귀한 두 사람. 칼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누군가의 육탄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칼은 웃으면서 그 공격을 받아냈다.
“오빠. 아침에 왔다더니 왜 지금 와?”
“하하하, 미안. 대신 오빠가 베네치아에서 선물 사왔어.”
“선물?”
“후후. 우리 공주님 생일인데 이 오라버니가 준비를 해줘야지.”
“에헤헤. 뭐야? 뭐야?”
에리카가 그의 팔을 잡으며 보챘다. 칼은 조그만 상자 하나를 동생에게 내밀었다. 에리카는 그 자리에서 상자를 뜯었다.
“내일 공주님 생일 파티를 위해 준비한 드레스입니다.”
“와아! 오빠가 제일 좋아!”
에리카는 칼에게 안겼다. 그는 동생을 번쩍 안아들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선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칼에게 안겨있는 에리카가 칼의 뒤를 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오빠. 저 언니 누구야?”
“쟤? 내 부관. 이름은 에스텔.”
“안녕하세요. 에리카에요.”
“에스텔이야. 반가워.”
에스텔은 칼의 말은 절대로 거짓말이라고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칼과 윌리엄이 했던 말처럼 그런 못된(?)행동을 할 아이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책을 보고 있던 엘리스가 아들을 보며 물었다.
“이제 돌아왔구나. 식사는 했니?”
“아니오. 안했죠.”
“에스텔도 그렇죠?”
“…네.”
“후후. 잠깐 앉아서 기다리세요. 조금 있으면 식사 준비 끝나니까.”
에스텔은 역시나 불편했다. 남의 집안에 있는데다가 뭔가 자신이 방해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결심을 굳혔는지 칼을 불렀다.
“저기, 선장.”
“응? 왜?”
에리카의 장난을 받아주던 칼이 에스텔을 돌아보며 답했다. 에스텔은 불편한 심기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왜? 우리 집에 있기 부담스럽냐?”
“으, 응. 동생 생일이라며. 나 내일은 나가 있을게.”
“무슨 소리야?”
“어?”
칼은 동생을 무릎위에 앉혀 놓고 말을 이었다.
“너도 이제 우리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언니라는 사람이 동생 생일은 축하해 줘야지. 그치, 에리카?”
“응. 나도 에스텔 언니가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 언니 같아.”
에리카가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에스텔은 그들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에리카의 언니라는 말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에스텔을 보면서 칼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기쁜 일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거잖아. 안 그래?”
에스텔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자꾸 목이 메었다.
“너는 이제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어.”
“응! 나도 언니가 우리 가족이었으면 좋겠어. 오빠, 언니랑 결혼하면 안 돼?”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벌써 결혼이니? 그리고 내가 왜 쟤랑 결혼해야해?”
“왜 안 돼? 그럼 언니 우리 집에 매일 있을 수 있잖아.”
남매끼리 티격태격 하는 동안에도 에스텔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의 눈에서 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칼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야, 야. 그렇다고 왜 울어? 울지 마.”
“언니야, 울지 마. 응?”
어느새 에스텔 앞으로 자리를 옮긴 에리카가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에스텔은 자신의 앞에 와있는 에리카를 꼭 안았다,
“기뻐서 우는 거야. 에리카 같은 예쁜 동생이 생겨서.”
에스텔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칼은 당황해서 자신의 할 말까지도 잊어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리스는 에리카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에리카는 그것을 받아들어 에스텔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선장.”
“응?”
에스텔은 목이 메어서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마워.”
“아니 뭘.”
이런 경우에 익숙지 못한 칼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충 대답했다. 분위기가 이상하자 그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뭐, 오랜만에 날씨도 좋은데. 에리카, 우리 점심 먹고 나가서 놀까?”
“언니도 가는거야?”
에스텔의 눈물을 닦던 에리카가 물었다. 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쟤를 데리고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칼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칼은 그녀에게 눈으로 ‘넌 강제징집해서라도 데려갈 테니 그리 알아.’라는 신호를 보냈다. 에스텔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간다는데?”
“진짜? 언니, 나랑 같이 놀자? 응?”
“그래. 같이 놀자.”
“와아아! 신난다.”
칼은 자신의 동생을 보며 웃기만 하였다. 엘리스 역시 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기뻤다. 엘리스는 어느새 그녀의 옆에 온 크리스틴의 말을 듣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자, 남은 이야기는 식탁에서 하자꾸나.”
“네. 가자, 에리카.”
“응, 언니도 가자.”
에리카는 오른손은 오빠의 손을, 왼손은 언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식탁에서도 에리카는 에스텔의 옆에 앉았다.
“야, 에리카. 너 그 깡패여자가 뭐가 좋다고 옆에 앉아있는 거야? 오랜만에 돌아온 오빠는 찬밥취급하고 말이야.”
물론 빈말이었다. 에스텔은 눈치치고 있었으나 에리카의 표정은 짜증으로 물들었다.
“오빠. 오빠는 집에만 오면 항상 보잖아. 오늘 언니 생겨서 그런데 왜 그래?”
“아니 뭐, 누가 뭐라나? 에리카한테 좋은 소식이 있는데 말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빠를 찬밥으로 여기는 동생에게 해주고 싶지 않은데?”
칼은 주점에서 했던 것처럼 말을 빙빙 돌리면서 빈정거렸다. 에리카의 표정은 짜증에서 애교로 변했다.
“에헤헤, 오빠. 내가 얼마나 오빠를 좋아하는데? 응? 말해줘. 응응?”
아무리 내 동생이라지만 가증스러운 것. 에리카에 대한 칼의 객관적 평가였다. 에스텔도 왜 칼과 윌리엄이 그런 말을 했는지 대충이나마 짐작했다.
“네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라이자 누나가 내일 오신단다. 추가로 윌리엄 형도 오신다고 했다. 그럼 됐지?”
“진짜? 그 말 진짜지 오빠?”
“아아, 동생에게 의심을 받는구나. 이 오라버니는 네게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거늘.”
칼은 다시 능청을 떨었다. 그 효과는 안젤라에게 했던 것 보다 몇 배는 강했다. 에리카는 여전히 칼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헤헤헤, 알았어. 내일 오빠가 준 드레스 입을래. 그래도 돼?”
“아까 말했잖아. 내일 입으라고.”
곧 그들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점심식사의 시작이었다. 식사를 끝낸 뒤 티타임에 엘리스는 에스텔을 보며 그녀를 불렀다.
“에스텔양?”
“네, 네.”
“너무 불편해 하지 말아요. 날 어머니라 생각하고 대하세요. 나도 에스텔을 딸처럼 대할테니까.”
“네…어머님.”
이 모습을 본 칼은 훗 하고 웃어버렸다. 그러자 에리카가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웃어?”
“재미있잖아. 오늘 새벽에 날 죽이려고 했던 여자가 어머니 앞에 오니까 조용하잖아. 그래서 그래.”
“아항. 오빠 오늘 언니한테 죽을 뻔했구나. 그런데 오빠가 이겼지?”
“그래서 쟤 데리고 다니잖아. 자, 우린 그만 나갈까?”
“응. 거기 가자.”
“거기?”
에스텔이 물었다. 칼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지금은 말 못해. 우리 가족들만 알거든. 어차피 너도 갈 거잖아? 그때 봐.”
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리카는 에스텔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세 사람이 나가려던 찰나 엘리스가 칼을 불렀다.
“칼, 집에 오면서 아버지 묘소에 다녀오너라.”
“아버지한테요? 네, 오랜만에 갔다 올게요.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저녁때까진 돌아와야 한다.”
“걱정 마세요.”
집을 나서서 그들은 런던 교외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는 자그마한 언덕이었다. 에스텔은 이런 언덕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평범한 언덕 같은데?”
“그래도 이곳은 우리 밖에 몰라. 이상하지?”
“그 생각하고 있었어.”
칼과 에스텔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칼의 자세는 자리를 잡았다기보다는 자리 깔고 누웠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였다. 에리카는 놀고 싶었으나 일단은 오빠언니를 따르기로 하였고 역시 나무 그늘에, 정확히 칼과 에스텔 사이에 앉았다.
“오랜만에 와보는구나. 그동안 바다에 나가느라 신경도 못썼는데.”
“오빠, 그런 말 그만하고 나랑 놀아줘 응?”
“이 녀석! 오빠가 잠깐 쉬겠다는데 불만이야? 앙?”
“꺄하하, 간지러워!”
칼은 에리카의 몸을 간질였다. 물론 악의는 없었다. 그러길 몇 분, 에리카가 겨우 빠져나와 칼을 향해 오른쪽 눈 밑을 손가락으로 잡아 내리고 혀를 내밀었다. 칼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이 녀석! 나를 놀렸겠다! 어디 잡히면 가만 안 둬!”
“아하하, 오빠가 날 가만 안 둔대. 언니, 나 좀 구해줘!”
에리카가 풀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소리쳤다. 칼도 어느새 나무그늘을 뛰쳐나가 에리카를 잡기위해 뛰었다. 에스텔도 어정쩡하게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칼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에리카가 아무리 뛴들 칼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금방 잡히고 말았다.
“감히 이 오라버니를 놀렸겠다.”
“에헤헤, 오빠~.”
“에고, 모르겠다. 에스텔이랑 놀아.”
“응!”
그리고 칼은 나무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멍하니 서있는 에스텔을 툭 쳤다.
“잘 놀아줘. 나 힘들어.”
“알았어. 그런데 아까는 잘 뛰어다니더니 왜 지금 힘들다고 하는 거야?”
“오랜 항해 끝에 돌아온 새벽부터 누구 때문에 힘 다 빠져서 힘들어.”
칼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나무를 향해 걸었다. 에스텔은 할 말을 잃었다. 그 누구는 자신이기에.
미스테리...미스테리...
학교 자습시간에 9시 반쯤 잔것 같은데
일어나보니까 11시 즉 끝나는 시간...
어찌 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