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내내 시글로아 해를 항해 하면서 상당한 금액을 벌어들인 로자레일 일행은 겨울 동안은 메데이로스 섬에서 보내기로 했다. 메데이로스 섬의 존재를 모르는 마렐에게는 일단은 비밀로 하기로 했기에, 마렐은 블레야 제도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장기간의 항해로 포로들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들었는지, 로자레일의 말에 충실히 따랐다. 이번에 블레야 제도에서는 하선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다. 원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그녀들을 메데이로스 섬에 내리게 하고 항해를 계속 하려고 했지만, 말을 잘 들을 테니 가족들을 메데이로스로 이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말에 그녀들을 몇 일간 지켜본 로자레일이 그녀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귀족꼬마 렉스는 애나벨과 어울리면서 로자레일을 잘 따랐기에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된지 오래였다.
블레야 제도에 도착한 로자레일은 카세루트에서 싣고 온 가축을 매각하고 간단한 농기구와 몇 가지 도구를 구입했다. 블레야 제도나 메데이로스 섬은 연중 온화한 기후였기에 겨울에는 항해하기 어려운 시글로아 해에서 무역을 하기보다 메데이로스 섬을 개발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메데이로스 섬에서 말론을 만나 선장이 되고 난 이후로는 처음으로 메데이로스 섬에 돌아가는 것이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2개월 보름 동안 시글로아 해를 3바퀴나 돌면서 무역을 했지만 남서쪽에 치우쳐져있고 가져다가 팔만한 물건도 없기 때문에 메데이로스에 가보기 보다는 무역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러나 메데이로스 섬에 남겨져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던 로자레일이었기에 메데이로스 섬을 개발하고자 마음을 먹은 것이다. 물론 로자레일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헤헤, 고향에 돌아온 기분입니다.”
이제 선장이라는 말에 익숙해졌는지 자연스럽게 로자레일을 선장이라고 호칭하는 한스의 말에 로자레일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다른 선원들도 한스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저 쪽의 나무를 베도록 하자!”
“예!”
메데이로스 섬에서는 벌목이 한창이었다. 숲을 적당히 베어내어 개간을 하고, 거기서 나온 통나무를 목재로 가공하여 번듯한 집을 짓기 위해서였다. 로자레일은 선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나무를 베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부상으로 인해 섬에 남아있던 선원, 베이커가 사람들을 부려 창고를 짓고 수확한 곡식을 저장해두었다는 것이다.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다음해까지 주민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는데, 이것이 가을에만 수확되는 양이니만큼 봄에도 곡식을 수확할 수 있도록 숲을 개간한 다면 봄밀이나 밭벼 같은 작물들을 다음 출항 때 가져다가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쉴까?”
아낙들이 물과 간식거리를 가져오자 로자레일은 선원들을 다독여주고, 마렐, 마르텡과 함께 선원들과 떨어져서 잠시 쉬기로 했다.
“다음에 올 때는 노예를 사오는 것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야.”
마르텡이 마른 천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로자레일에게 말했다. 로자레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마르텡의 말에 바로 긍정을 표했다. 이 섬에는 노예가 없을 것이라고 맹세한 로자레일이었으니 아마도 노예들을 해방시켜서 섬에서 일을 하도록 할 셈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섬을 빠져나갈 수단은 로자레일의 배 밖에 없었기에 해방시켜준 노예가 도망칠 우려는 없었다.
“이정도 땅이면 그 수확량이 대단할 것입니다.”
마렐의 말에 로자레일은 언덕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 보이는 땅이 그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섬 전체가 그의 것이었다.
“게다가 산양들을 잘 길들이면 젖과 고기를 얻을 수 있지.”
섬에 남아있던 베이커라는 선원이 제법 솜씨가 있었는지 산양을 사로잡아서 우리에 가두어 두기도 했다. 아직은 사람의 손이 익숙지 않은지 잘 길들여지지 않은 채지만, 로자레일이 페스체일 가문에서 배웠던 가축을 다루는 방법을 베이커에게 일러주었기에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로자레일은 베이커에게 가축을 길들이는 방법뿐만 아니라 식량을 보관하고 경작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고 앞으로 로자레일이 무역을 하는 동안에는 메데이로스 섬을 책임지게 할 생각이었다. 베이커의 나이가 젊지 않고 다리도 불편했지만, 사람을 다룰 줄 알고 앞을 내다 볼줄 아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로자레일 선장님은 상당히 부자셨군요.”
마렐이 눈을 빛내며 로자레일을 바라보았다. 마렐은 아직 메데이로스 섬이 블레야 제도에 있는 섬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험, 험, 험. 아직은 땅뿐이야.”
순전히 운으로 메데이로스 섬의 주인과 같은 자리에 올랐지만, 자랑스럽게 내 땅이라고 하기에는 낯부끄러웠기에 헛기침을 하는 로자레일이었다. 로자레일이 보기에 이 곳은 블레야 제도나 제국 식민지에서도 상당한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가 왕 행세를 하더라도 그를 욕할 사람은 없었지만, 비록 작은 섬이라고 할지라도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라고 여긴 로자레일은 아직은 이런 대접에 익숙지 못했다.
“제가 보기에 이 곳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 합니다. 어쩌면 저 산에서 금이 나올지도 모르죠.”
마렐이 메데이로스 섬에 우뚝 솟아 있는 섬을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하하!”
마르텡은 마렐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로자레일은 마렐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드렸다. 몇 번의 상행을 하면서 블레야 제도 남쪽에 위치한 제국 령의 몇몇 섬에서 다량의 금이 산출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제국은 다른 나라와 교류를 하지 않고 있기에 그 금들은 모두 제국에서 소비 되었으나 이 메데이로스 섬이 제국 식민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중에 마렐이 로자레일의 생각과 같은 말을 하니 다시 진지하게 고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설마?”
로자레일이 마렐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드리자 마르텡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마렐에게 되물었다.
“아직은 몰라. 그리고... 금광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네?”
설사 금맥이 있을지라도 금맥을 찾으려면 기술자가 필요했고, 금맥을 찾아 금광을 만들더라도 금을 채광 하려면 상당히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러한 노동력을 부린다면 소문이 안 나려야 안날 수가 없었다. 금광에 대한 소문이 난다면 블레야 제도의 귀족이나 제국의 군인들이 이 섬을 가만둘 리 만무했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찾아내어 약탈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로자레일은 애써 가꾸고 있는 근거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군요. 생각이 짧았습니다.”
로자레일의 설명을 들은 마르텡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로자레일~ 이거 봐봐~!이거, 이거~!”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애나벨이 소리를 지르며 날아왔다. 렉스는 헐떡이며 뒤늦게 애나벨을 쫒아 뛰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 봐봐~ 예쁘지? 그치? 그치?”
“헉!”
애나벨이 내민 애나벨 머리통만한 노란색 물체에 로자레일과 마렐, 마르텡 세 사람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확실히는 알 수 없었지만 잘 모르는 로자레일의 눈에도 그것은 금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사금인 것 같군요.”
“사금?”
마렐의 설명에 마르텡이 되물었다.
“네, 보통 사금이 있으면 금맥이 있을 확률이 절반은 넘는다던데....”
말끝을 흐리는 마렐의 말에 로자레일은 고민에 빠졌다. 사금이 있을지라도 금맥이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없었고, 금맥이 있더라도 채굴하는 비용을 건질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금을 캘 수 있어야 광산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마렐이 설명한 이유도 있는 만큼 세 사람은 일단 사금이 발견된 것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사실 아직까지 마렐을 믿을 수 없는 로자레일이었으나 마렐의 말만 듣고 블레야 제도 인근의 섬이라고만 알고 있는 메데이로스 섬을 찾아올 사람은 없었기에 그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이거랑 비슷한게 더 있었어?”
“우응~ 아니~ 그거 밖에 없었는데~”
“다행이군. 렉스, 숲은 위험하니까 마을에 가서 놀렴.”
로자레일이 안주머니에 집어넣은 사금 외에는 더 보이지 않았다는 애나벨의 대답을 들은 로자레일은 안심하며 렉스에게 마을로 돌아가로 말했다. 렉스가 아쉬운 표정으로 잠시 로자레일을 바라보았지만, 단호한 로자레일의 표정에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인 렉스가 사금이 무엇인지 알 리 없지만, 혹시라도 사금을 또 발견하고 선원들이 그것을 본다면 전직 해적들인 선원들이 딴마음을 품을 지도 모르기에 마을로 보내려는 것이다.
“선장님 렉스가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 이런! 렉스, 애나벨! 다시 돌아와!”
저만치 언덕을 내려가던 렉스의 얼굴이 밝아지며 재빨리 뛰어왔다. 아직은 어린 나이이니 만큼 뛰어노는 것이 좋은 모양이었다. 렉스가 기분이 좋아지자 애나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는지 로자레일의 주위를 맴돌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로자레일~ 아이 귀여워~ 후루라리야호~ 아야리~”
“도대체 무슨 노래야?”
마르텡이 귀를 막으며 말했다. 로자레일이 듣기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노래였기에 자신의 주위를 맴돌며 노래하는 애나벨을 잡아채어 렉스의 가슴팍에 안겨주었다.
“아야야~ 아프다구~”
애나벨이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투덜거렸다. 렉스가 그런 애나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애나벨은 금방 기분이 좋아졌는지 또 노래를 하려고 했다. 애나벨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린 로자레일은 렉스를 바라보았다.
“렉스, 너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 그러면 앞으로 내말 잘 들어야 해!”
“응!”
로자레일은 렉스가 사금에 대해 잊어버리도록 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로자레일이 가끔씩 갑판에서 수련하는 것을 지켜본 렉스가 로자레일에게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지만 아직 어린 아이일지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렉스에게 검을 들려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 로자레일은 렉스의 부탁을 거절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혹시라도 사금에 대한 말이 나올 수도 있기에 렉스가 사금에 대한 일을 잊어버릴 몇 일의 시간동안 검술을 핑계로 자신의 눈앞에 둘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