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잘하고 있어! 앞으로 베기 10번!”
“하나, 둘, 셋!”
“꺄!”
로자레일은 마을 외곽의 공터에서 렉스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렉스는 검술을 베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는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다. 덕분에 몇 일간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서 검술을 배울 생각을 접게 할 생각이었던 로자레일은 생각을 고쳐서 아예 가문검술의 일부분까지 가르치고 있었다. 렉스의 옆에서는 애나벨이 제자리를 맴돌며 바늘을 휘두르고 있었다.
“선장님,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고마워, 바샨느.”
바쟌느라고 불린 20대 후반의 여성이 다가와 산양의 젖이 담겨있는 나무 컵 2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가족들을 이주시킬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포로 중에 한 명이었다.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순응을 한 것인지 외려 로자레일에게 잘 보이려는 모양새였다.
“자, 산양유야. 검을 잘 다루려면 기술뿐만 아니라 체력과 튼튼한 몸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지. 베이커에게 말해두었으니까 하루에 한잔씩 마시도록 해.”
“응. 아니, 네, 검사부!”
“나두~ 나두~”
애나벨이 로자레일의 잔에 매달리며 떼를 썼다. 렉스는 어렸지만, 귀족적인 언행이 입에 붙어있었던 탓인지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했다. 그러나 로자레일에게 검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로자레일을 검사부라 칭하며 로자레일에게만은 꼭 존대를 했다.
로자레일이 메데이로스 섬에 머물기 시작한지도 한 달이 다되어갔다. 마을 밖에서는 봄밀을 수확하기 위해 겨울농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마을 안에는 제대로 목재를 사용한 집들이 반듯이 들어서 있었다. 마을이라고 해보아야 열 댓 채 정도의 나무로 만든 집뿐이었지만, 로자레일은 조금씩이라도 마을을 확장해 나갈 생각이었다. 풍요로운 땅과 과실이 지천에 널려있는 숲은 마치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상향이었다. 혹시 모를 맹수나 몬스터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하여 섬을 탐사한 로자레일은 이미 섬에 대한 지도도 완성한 상태였다.
메데이로스 섬의 북쪽에는 로자레일이 처음 섬에 발을 디딘 모래사장이 동쪽 해안 일부에 까지 걸쳐서 있었고, 동남쪽에는 선착장과 마을이, 남쪽과 서쪽은 가까지른 절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섬의 가운데에는 메데이로스 산이라고 명명한 산이 있었고, 메데이로스 산의 남서쪽에서 발원한 계곡은 서쪽으로 산을 반 바퀴 휘감고 북동쪽으로 흘렀다. 숲에서 퓨마와 재규어, 늑대, 악어가 몇 마리 발견되기는 했지만 다행히 마을을 습격할 만한 몬스터 무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숲의 남쪽 정글에 뱀이 다소 많이 있었으나, 그곳에 갈일이 많지는 않아보였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헉헉, 다 했어요!”
“좋아, 오늘은 구원의 날이니까 이것으로 오늘 훈련은 마치도록 하자.”
“네!”
구원의 날은 매 해의 마지막 날로 모든 사람이 기념하는 날이었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제국이든 반(反)제국 국가이든 간에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며 축제를 벌이는 날이었다. 그 이름이 구원의 날이라는 것에 대해 추측이 무성했지만 그 기원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매 해의 마지막 날이 구원의 날이었으므로 새로운 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즐기는 것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했다.
로자레일이 마을의 광장으로 들어서보니 광장은 축제준비가 한창이었다. 축제라고 해도 작은 파티나 마찬가지였지만, 오랜만의 흥겨운 분위기에 모든 사람들이 들떠있었다. 렉스와 애나벨은 준비되고 있는 축제 음식을 보자마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맛을 보고 있었고, 바샨느는 축제준비를 도우러 주민들 사이로 사라졌다.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로자레일을 발견한 주민들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며 갖가지 축제 음식들을 내밀었다.
“아이고, 나리! 안녕하십니까! 이것 좀 드셔보세요.”
“맛있네요.”
“아이고, 다행입니다.”
“혹시 마르텡이나 마렐이 어디 있는 지 아십니까?”
마을의 유일한 노인이 내민 음식을 집어먹은 로자레일은 마르텡과 마렐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마르텡님은 저 쪽에서 축제를 준비 중이시고, 마렐님은 창고에 계십니다요.”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마르텡은 선원들과 마을 주민들을 지휘하는 베이커를 도와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렐은 아무래도 창고에 있는 물품의 종류와 양을 정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장님, 오셨습니까?”
베이커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마르텡이 로자레일을 반겼다.
“응, 준비는 잘 되가나?”
“예, 밤이 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하하하!”
“수고했어.”
“전 별로 한 것도 없습니다. 베이커 씨가 다했죠, 하하!”
마르텡의 말에 로자레일은 베이커를 바라보았다. 지난 한달간 겪어본 베이커에 대한 인상은 말수가 적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베이커씨도 수고했어요.”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위계질서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베이커에게도 편하게 말을 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로자레일이었으나 과묵하고 진중한 베이커의 태도에 로자레일은 다른 선원들과 달리 베이커에게만은 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음, 알겠네.”
로자레일의 대답에 베이커는 꾸벅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하고 다시 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베이커는 처음부터 말론의 배에 탔던 선원이 아니라 나중에 합류한 경우였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겠냐마는 베이커에게는 아마도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자, 사람들은 모두 광장에 피워진 모닥불을 둘러싸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선원들은 모두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선원들은 아내와 단 둘이 혹은 아기까지 셋이서 옹기종기 앉아 있었고, 다른 여인들은 친분이 깊은 여인들끼리 앉아있는 것 같았다. 광장의 중앙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산양과 양념이 곁들여진 여러 종류의 물고기 요리와 갖가지 과일과 럼, 브랜디, 쉐리, 와인과 같은 술들이 차려져 있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인 구원의 날입니다! 이 기쁜 날에 저는 여기 이 베이커 씨를 마을의 책임자로 임명하고자 합니다!”
구원의 날 축제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메데이로스 섬의 주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축사를 하기위해 주민들 앞에 선 로자레일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몇 가지 상황에 대비하고자 베이커를 마을책임자로 임명하기로 했다.
“베이커는 앞으로 나오시오!”
로자레일의 옆에 서있던 한스가 엄중한 목소리로 베이커를 호명했다. 한스가 평소의 모습답지 않게 엄중하게 말하자 개중에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의연한 한스의 모습이 로자레일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대 베이커 도란을 메데이로스 마을의 총관으로 임명한다. 베이커 도란은 메데이로스 섬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네가 믿는 신 앞에 맹세 하라.”
베이커가 로자레일 앞으로 걸어와 무릎을 꿇자 로자일이 광장에 마련되어있는 단상에 올라 엄숙한 목소리로 베이커에게 말했다.
“나 베이커 도란은 메데이로스 섬의 주인이신 로자레일님을 도와 메데이로스 섬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바다의 신이신 네뮬라다께 맹세합니다.”
“와아아!”
베이커가 맹세를 하자 마을사람들은 크게 기뻐했다. 로자레일이 섬을 떠나있는 동안 베이커가 은연중에 마을을 이끌어 왔고, 그것이 매우 훌륭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미 내심 베이커를 마을의 대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베이커를 로자레일이 형식적으로나마 총관에 임명하면서 로자레일이 섬의 주인임을 재인식 시켜준 것이다. 사실 이 연출은 베이커의 의견이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되어있는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며 축제를 즐겨 봅시다!”
“와아!”
“로자레일님 만세!”
“베이커님 만세!”
로자레일이 소리치자 모든 사람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로자레일이 단상에서 내려와 베이커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자 로자레일에게 술을 따라주기 위해 선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선원들이 따라주는 술을 모두 마신 로자레일은 적당히 취기가 올랐는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렉스는 산양유와 코코넛으로 만든 음료를 마시며 산양구이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애나벨은 자신의 몸만 한 컵을 기울여 무언가를 홀짝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헤롱거리며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킥킥대던 마렐도 어느 순간 바닥에 엎어져서 코를 골고 있었다.
“제 술도 한잔 받으세요.”
“아아. 그래야지이.”
이번에는 바샨느가 로자레일에게 술을 따라주겠다며 다가왔다. 선원들의 술을 모두 한잔씩 받고 마르텡과 대작을 하며 여러 병을 비운 로자레일은 깨나 술에 취한 듯 혀가 꼬여 있었다. 그러나 꽤 많은 술을 마신 로자레일이었지만 살짝 취기가 올라 혀가 꼬인 정도였기에 로자레일은 바샨느가 따라주는 술을 연신 비워냈다.
“술이 세시네요.”
“이 저엉도는 기본이지이.”
“선장님~.”
로자레일에게 술을 따라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바샨느가 로자레일의 오른편으로 다가와 몸을 기대왔다. 오른팔에 느껴지는 감촉에 로자레일을 살짝 정신이 돌아왔다. 아직은 어린 나이였기에 여자경험이 없었기에 바샨느의 가슴이 팔에 닿자 화들짝 놀란 것이다. 로자레일이 주위를 둘러보니 절반 정도는 이미 자리를 비운 채였다.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하던 선원부부도 슬며시 일어서더니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신과 대작을 하던 마르텡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로자레일님~”
바샨느가 가슴을 더욱 밀착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로자레일의 귀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그 바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 로자레일은 애써 진정하려고 했지만 몸이 흥분하는 것을 진정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당황하던 로자레일은 마음을 굳게 먹고 바샨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샨느의 얼굴은 예쁜 편에 속했다. 키도 길쭉길쭉했고,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간 몸매에 항해하는 동안 숫한 유혹을 받았었다. 그런 바샨느의 얼굴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자 로자레일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
얼굴을 마주한 채로 로자레일은 바샨느를 살짝 안아보았다. 바샨느는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안겨왔다. 바로 앞에 있는 바샨느의 입술이 매우 탐스러워 보였다. 로자레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요~”
바샨느도 로자레일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로자레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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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번편 말미에는 조금 외설스러운 부분이 나오네요.
혹시 불편하셨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