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들을 봐오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몇몇 팀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우승문턱에서 항상 좌절을 했던 KTF매직엔스(현KT)라던가..
약소팀에서 굵직굵직한 스타급 선수를 발굴해 갑자기 우승해버린 plus(과거 화승)와
스타급 선수 없이도 오로지 팀으로 뭉쳐서 우승을 일궈낸 KOR(과거 스파키즈) 같은 팀.
그리고 유일하게 우승한 적이 없음에도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팀이 soul(현STX)이다.
이 soul이라는 팀은 내 기억으로 꽤나 아슬아슬하게 결승까지 올라갔던 거 같다. 여타의 강팀과는 달리 확실한 1승카드
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찌보면 그나마 유일하게 팀내 ace역할을 하던 초짜 조용호가 이적을 하면서 누가봐도
그저그런 약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다른 강팀들을 제치고 결승문턱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거둔
다.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나 결승 예측은 대부분 soul의 편에 서지 않았다.
결승들러리일 뿐이다, 아직 우승하기엔 모자른 팀이다, 확실한 ace가 없다,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분명 약팀이다.
라는 평가가 주가 됐고 사람들의 예측이 마치 맞았다는 듯이 아쉽게도 이들은 4:1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패배한다.
당시 떠오르던 최강 신인 이병민,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윤열등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팬택 앞에 이들은 질 수 밖에 없었
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이들의 경기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soul은 분명 최선을 다했었다. 약팀으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놓여있었으나 이들은 열정이 있었고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한 승부근성이 있었으며 그것이 충분히
경기에서 드러났다고 지금에 와서도 다시금 생각한다.
아쉬움이 들어차 눈물에 말을 잊지 못하는 박상익의 얼굴이나..
약팀으로 평가하던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우승하고 싶었다고 말한 한승엽의 이야기들을 경기 내용이나 결과보다 더더욱
오래 기억하고 있는 건 아마 이들이 내 머리속이나 심장안에 무언가 그들의 뜻을 조금이나마 전해놨기 때문이라 생각한
다.
soul의 경기가 끝나고나서는 경기 스코어와는 상관 없이..이상하게도 이들을 약팀이라 평가했던 사람들조차 soul을 약팀
이라 말할 수 없었다.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이들이 보여준 열정과 근성에 모두가 soul을 인정했던 결과라고 생각한
다.
거의 1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면서 솔직히 과거에 봤었던 프로리그 경기들의 내용이 세세하게 기억나지도 않지만..
유독 이런 팀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그만큼 개인이 아닌 팀만이 만드는 또 다른 힘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저마다의 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오로지 그들만이, 그들이니깐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아직까지도 이 팀들을 기억
하고 응원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굳이 매번 화려한 결과들을 만들어나가며 이스포츠 역사에 큰 발자욱을 쾅쾅쾅 남겨놓는다고 사람들이 뇌리에 오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그들이 최선을 다해 보여줄 수 있었다면, 약팀으로 평가받거나 혹은 만년 꼴찌
를 할 수 밖에 없었던 팀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기억하고 추억으로 삼을 수 있는거라 생각한다.
프로팀이란 이런 것이고 이런 팀들이 바로 e스포츠를 발전시킬 수 있는 팀이다.
이상하게 현재 lol판에선 당장드러나는 결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팬들이 많다. 마치 그들이 주류인 듯 특정 팀이나
특정 선수를 두고 온갖 비난과 비방, 조롱(설사 그게 장난이 섞였다 하더라도)하는 분위기를 형성해 두고 말도안되는
소위 그 '평가'라는 걸 하기 바쁘다. 웃기는 노릇이다...
어제의 '신'이 내일의 '쓰레기'가 되는 말도 안되는 평가, 재평가가 판을 친다. 이게 무슨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당장의
눈앞의 경기 결과 가지고 일희일비하는 냄비근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찌 팬이라는 가면을 쓰고 선수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그 사람의 미래까지 좌지우지하는지 참으로 모를일이다.
개인적으로 현 lol경기 전부를 챙겨볼만큼 관심있는 것도 아니고 제목에서 말한 '그 사람'이 속한 팀을 계속적으로 응원해
온 사람도 아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현재 소위 lol팬이라 말하는 이들의 행태가 매우 비정상적이며 비단 이게 한
두 선수의 일로 끝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거다.
솔로라인에서 엄청난 연승을 구가하며 '약한 선수'에서 '강한 선수'로 평가받던 모선수가 하루 아침에 거품으로 재평가 받
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이런 경우가 비단 이 선수에만 겹치는 게 아니라 현 lol을 하고 있는 모든 프로게이머 전체에 해당
되는 사항이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고 우승을 하던 선수라 할지라도 폼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거품으로 치부되고 패
배의 원흉이 되어 비난 받는다.
이런 팬들의 취향에 부합이라도 하듯이 프로팀은 발맞추어 마음대로 팀을 바꾸거나 선수를 갈아치우는 상황도 부지기수
로 나오고 있다.. 당장 드러나는 결과에 그러니깐 프로선수들에게 오로지 승리만이 중요하다는 그 시각하나 때문에 프로
팀들 역시 당장 눈앞의 승리만을 위한 팀을 구성하기 바쁘다. (이런 결과만을 위해 몇몇 팀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맞추기 위해 경기의 결과를 일부로 지는 식의 비상식적인 운영을 자행해 왔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혀진다는 듯
이...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뤄지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이런 환경(승리만을 요구하는 팬들과 팀) 속에서 과연 선수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승리에 대한 압박이 이토록 심한 가운데 과연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정상적인 멘탈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고 좋은 경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문제다. 왜 유독 lol판에 선수들 사이에 트러블이나 견해차이로 인한 이적과 탈퇴가 횡횅
하는지.. 단지 lol이 팀게임이며 멘탈게임이기에 그랬다고 치부하기에 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클 것이다.
그 사람이 은퇴를 안했으면 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결국 이런 lol판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완전히 뒤엎어 버릴 수 있는 계기
가 바로 그 사람을 통해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5명 혹은 다른 보조팀원들과 같이 한 몸이 돼서 할 수 밖에 없는 리그오브레전드 세계에서 팀이 가지는 중요성은 어마어
마하다고 생각한다. 그 선수들, 그 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런 팀을 좋아하는 팬들에겐
분명 팀원 하나하나가 소중할 것이다.
선수 하나가 바뀌는 건 어찌보면 큰 상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악순환, 즉 성적에 얽매여(것도 나쁜 성적
이 아니라는 것에..) 선수를 계속적으로 버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과연 내가 좋아한 그 팀에 누가 남아있을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를까? 내가 응원한 팀이 과연 내가 좋아했던 과거의 그 팀과 같은 팀인지 전혀 다른 팀인지 웃기는 일이 연출될지
모른다.
아직 lol판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역사를 가진 팀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의 상황으로는 앞으로 이런 팀이 생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다.
항상 우승권으로 가야만 하고 항상 좋은 결과만을 거두어야 그 팀이 아름답고 역사에 남는 팀이라 생각하는가? 천만에..
그런 완벽한 팀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다.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다. 어제의 우승팀이 내일의 광탈팀도 될 수 있는 게 현재 평준화된
이스포츠 시장의 세계이며 이런 가운데 당장 눈앞에 승리만이 장땡이라고 여기는 안일한 생각이 결국 이스포츠를 병들
게 할 것이다.
좋은 결과만을 거두는 팀이 아닌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는 팀을 원한다. 그리고 그런 팀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팀들을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팬들의 문화가 형성됐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