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럼 그 재미가 뭐냐 라고 말하면 막상 대답하기 어렵게 될겁니다.
저도 재미라고 믿고 지금도 믿으며 이게 단 하나의 절대적 기준이라 변함없이 생각하나 기준은 절대적이되 사람의 마음은 상대적입니다. 재미란 절대적 기준안에서 그 사람이 삼는 그 기준은 재미란 이름으로서 희노애락애오욕의 제일 첫번째인 희와 네번째인 락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재미란 감정은 만인에게 같으며 희락이 게임 하게 하는 요인임은 명명백백 하지만 모든 개 개인이 믿고 있는 희락은 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삼국지란 소재를 알고 그를 체험하는것을 희락으로 믿습니다. 누군가는 그래픽과 사운드를 희락으로 믿습니다.
재미란 절대 기준은 변하지 않으나 그 재미를 믿는 개 개인의 사념은 전부 다릅니다. 그럼으로 애 당초에 재미를 만족시킨다는건 유토피아보다 더 이룰 수 없고 천국보다 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흔히 우리가 먼치킨이라고 부르는 소설보다 더 말이 안되는게 개인이 믿는 재미를 준다는 겁니다. 먼치킨 소설에서 "강해서 모든것이 마음대로 이루어졌다"이 한줄보다 현실성 없는게 그 사람이 믿는 재미를 충족시키는겁니다.
그럼 무엇인가. 게임은 개발자가 믿는 재미(희락)를 유저에게 믿도록 납득시키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재미있다고 느끼는것은 우리가 재미있는게 아니라 우리의 주관을 양보하고 개발자가 말하는 주관을 받아들여 그들이말하는 재미에 우리가 동참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납득하여 재미있다고 믿는 겁니다.
유저가 게임에서 느끼는 재미란 유저가 믿고 있는 희락이 아니라 개발자가 믿고 있는 희락을 우리가 믿게 된겁니다.
쉽게 말하여 그래픽과 사운드 물리엔진. 게임성 이 모든 것이 현 판타지 소설과 같습니다. 먼치킨 소설을 접하면 우리는 판타지 소설을 읽다가 20페이지를 못 넘기고 덮어버립니다. 그 먼치킨 소설이 내가 믿는 희락에 부합하지 않기에 접어버리는겁니다. 게임도 같습니다.
그래픽이 너무 떨어지고 사운드가 너무 조잡하면 우리는 20분을 못 넘기고 접습니다. 그 그래픽과 사운드가 내가 믿고 있는 희락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픽과 사운드가 아예 없는 웹게임은 사람들이 왜 할까요. 그래픽과 사운드에 기준이 있다면 웹게임은 망해야 합니다. 유저가 웹게임을 하기 전에 스스로 이렇게 믿기 때문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없는 웹게임에 그래픽과 사운드는 말이 안되" 또는 "이 게임은 웹게임이니까. 그래픽과 사운드는 당연히 없는거지" 이렇게 시작부터 믿습니다.
그리 믿기 때문에 그래픽과 사운드에 개의치 않습니다.
머드게임을 하는 사람도 역시 그래픽과 사운드를 배제하고 그것이 머드게임에 당연하다 믿기 때문에 머드 게임을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게임을 하기전에 그 게임이 말하는것을 시작 전 부터 믿고 있는것과 같습니다.
절에 가면 조용히 해야 된다고 믿는것처럼 게임의 시작부터 그 환경이 우리가 그렇게 믿도록 하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해 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믿는 믿음은 어디서 왔는가? 맨 처음엔 어떻게 시작됬는가.
모든 개 개인이 재미(희락)이라 믿는 그 기준점은 어디서 왔고 어찌 시작됬나.
게임에서 왔습니다. 자신이 즐겨왔던 무수한 게임에서 비롯됩니다.
개발사가 유저에게 믿으라 말한 희락을 우리는 받아들이고 믿으면서 그 개발자가 말한 재미가 기준점이 됩니다.
그게 계속 반복 되고 여러 게임을 거치면 거칠수록 그 믿음은 점점 가다듬어져 갑니다.
그렇게 가다듬어질수록 자신의 기준. 즉 재미에 대한 믿음이 강고해지고 명확해 집니다.
우리가 무슨 게임을 30분만에 접는것은 무슨 이유 입니까? 그 전의 학습의 효과입니다. 이전에 즐겼던 게임에서 느꼇던 재미. 즉 그 이전 게임의 개발자가 느끼라는 재미의 기준에 못미치기 때문에 30분만에 그만 둡니다.
다르게 말해서 먼치킨 소설을 소설을 한번도 안본 학생에게 갔다주면 그는 그 소설을 잘 읽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소설의 세례를 받았기에 그럽니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게임을 처음 접한 사람은 그 게임을 잘 합니다.
그 이전에 그 자신이 희락에 대한 믿음이 없음으로 그 게임 개발자가 말하는 재미에 대한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무 비판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어찌하여 무 비판인고 하면 아예 깨끗한 백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배우듯이 스펀지 처럼 그대로 흡수하는 겁니다.
우리가 말하는 재미란 유저가 만들어낸게 아닙니다.
개발사가 우리에게 주장하는 재미이며 그들이 말하는 재미를 우리가 믿는겁니다.
그렇게 몇번을 개발사의 희락을 믿다 보면 스스로 비교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어 자신만의 기준이 생깁니다.
자신만이 믿는 희락이 생깁니다.
모든 게이머는 이런 단계를 거치고 성숙해집니다.
사실 개발사 입장에서 세례를 전혀 받지 않거나 덜 받은 유저가 굉장히 좋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 사람은 개발자 그들의 입장에선 납득시키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죠.
유저의 입장에선 개발자가 말하는 재미에 금방 실망하는 겁니다. 판타지 소설에서 먼치킨이 심각해지면 질수록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이 충돌질 치듯이 개발사가 말하는 재미가 조잡하면 조잡할수록 실망하고 게임을 접습니다.
테일즈 런너가 성공하고 던전앤파이터가 성공한 이유가 이것에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재미가 많은 이들에게 납득이 가기도 했지만 흥행을 한 것은 그 재미를 게임의 세례를 전혀 받지 않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심을 수 있었단 겁니다. 친구가 하니 나도 하고 그렇게 백지에 "이게 재미다"하고 써지는겁니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장르의 포문을 연 게임은 그 이후 같은 장르의 모든 게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위에 말하듯이 개발자의 믿음을 백지에 써서 선점하게 됨으로서 그 이후의 같은 장르에 있어서 그 게임을 떠올리고 비교하게 되니 그 게임을 한 유저는 그 개발자가 말한 재미에 타 게임을 맞추려 합니다.
그 같은것은 리니지나 던전앤파이터를 보면 알 수 있고 특히나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이자 그 장르를 선점한 게임은 그 이후에 모든 게임에 아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유저는 스스로 모든걸 그 게임의 개발자가 말한 재미에 맞추려 합니다.거기에 아이템등 온라인의 항상성으로 인하여 그 유저는 굳이 타 게임을 선택할 필요를 못 느끼며 이미 크게 경도되어 그 개발자가 말하는 재미를 믿게 됩니다.
아이러니 하게 재미를 강조하는것은 유저들이나 그 재미의 시작점은 유저가 아닌 겁니다.
개발사가. 개발자가 자신들이 믿고 즐기는 재미를 유저에게 믿도록 납득 시킨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 속에서 유저는 주관이 생기고 자신이 믿는 재미(희락)이 탄생되고 그런 결과 자신만의 믿음이 생깁니다.
결론적으로 재미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관적 믿음이고 그 믿음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 알고 배우게 되며 시간이 가면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 가치관을 더욱 가열차게 비교하고 비판하여 새롭게 만들어지면 종래엔 재미에 대한 자신만의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개 개인이 믿는 재미가 되어 믿음이 곧 재미가 되고 재미가 곧 믿음이 됩니다.
믿음이 있은 후엔 그 게임 개발자가 말하는 부분과 내 믿음이 많이 융합 될수록 그 게임에 재미를 느낍니다. 자신만의 믿음이 확고해진 자는 그 믿음에 융합되는 부분이 많은 게임을 찾습니다. 흔히 게임 불감증이라 함도 이러한 자신만의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에 게임이 부합하지 않기에 생깁니다.
특히나 온라인 게임에서의 불감증은 이러한 최종적 도착점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혁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새가 날개짓을 연습하다 날라 가듯이 나비가 고치를 깨고 나오듯이 개발자가 말하는 재미에 모든걸 의지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