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네시스 궁수 교육원
아리, 론도, 그리고 올리비아 세 사람은 교육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 내내 올리비아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론도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교육원에 도착해 ‘올리비아를 데려왔다’는 소식을 전하자, 헬레나는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올리비아의 어깨를 잡고 캐물었다.
“올리비아 양! 봉인석은 어디에 있는거죠? 빨리 대답하세요!”
헬레나의 추궁에 금세 울상이 된 올리비아를 보다 못한 아리가 대신 변호를 시작했다.
아리가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는 동안, 헬레나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처음엔 범인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막상 보석의 행방은 여전히 미궁이고, 진짜 범인은 따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책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래서... 결국 범인과 보석 모두 행방을 알 수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아리가 올리비아 대신 사과했다.
“괜찮아요. 보석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으니, 너무 자책 말아요.”
헬레나는 두 사람을 위로했지만,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그 눈치를 살핀 론도와 아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리가 먼저 물었다.
“그런데... 그 보석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애타게 찾으시는 건가요?”
헬레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 보석은 ‘봉인석’이라 불리는, 여신의 힘이 담긴 특별한 보석입니다.”
“봉인석...이요?”
“네. 원래는 여러 개가 더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3개만 남았어요. 그리고 그걸 시그너스, 여신교, 그리고 우리 모험가 길드가 각각 한 개씩 관리 중이었죠.”
헬레나는 담담히 설명을 이었다.
“이 보석엔 강대한 에너지가 깃들어 있다고 전해져요. 전설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 복구할 수 있다고도 해요.”
그 이야기를 들은 론도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며 올리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 너 정말 아닌 거지? 그걸 팔아먹으려 훔친 거 아니야?”
“나 아니라니까! 내가 너같이 좀도둑이나 할 줄 아냐고!”
“뭐?! 난 적어도 의적이거든!”
“그거나 그거나, 결국 도둑질이잖아!”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던 헬레나가 급히 중재했다.
“ 크흠! 두 분 다 진정하세요.”
헬레나는 고개를 돌려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올리비아 양의 결백은 제가 입증하겠습니다. 아마 그녀와 여러분의 파티원으로 변장한 사람은 동일인일 가능성이 커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는거죠?”
아리의 물음에 헬레나가 대답했다.
“의심되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범인이 정말 그 자 라면 일이 더 커질 텐데... 이걸 어찌 해야 할지...”
헬레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듯 잠시 침묵했다.
그러자 아리가 조심스레 헬레나에게 다가갔다.
“저... 그거에 관해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해서 아리, 론도, 그리고 헬레나는 응접실 밖으로 나왔다.
올리비아는 그대로 안에 남겨진 채로 말이다.
“잠깐! 이건 풀어주고 가야지!”
올리비아는 손목에 묶인 밧줄을 흔들며 외쳤지만,
“조금만 기다려. 금방 돌아올게.”
아리는 가볍게 한마디 남기고 나가버렸다.
“야! 아리! 야!”
결국 올리비아는 응접실 안에 홀로 남겨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난 그저 평범하게 모험을 즐기고 싶었을 뿐인데...”
계속 억울한 일이 생기자, 그녀는 견디다 못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우으윽... 너희가 그러고도 파티원이냐고...”
그녀가 혼자서 정신없이 울고 있을 때, 창문 밖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정체 모를 인물이 품에서 단검을 꺼내 올리비아를 겨냥하였고, 그가 단검을 던지려는 순간, 옆에서 아리가 나타나 그를 덮쳤다.
“잡았다! 론도, 밧줄!”
아리가 재빨리 괴한을 제압했고, 뒤이어 나타난 헬레나와 론도가 밧줄을 가져와 그를 묶기 시작했다.
“크윽... 역시 그 소문은 함정이였나...”
괴한이 분해하는 듯 중얼거렸다.
“함정이라니... 무슨 소리야?”
론도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아리를 바라봤다.
아리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나인하트에게 부탁해서 올리비아가 ‘범인에 대해 단서를 갖고 있다’는 식으로 소문을 흘렸어.
범인이 진짜 올리비아가 빨리 잡히길 바랐다면, 사람이 많은 곳에 두었을 거야. 하지만 올리비아를 외진 곳에 남겨뒀다는 건, 그녀가 빠져나가 시간을 벌어주길 바랐다는 증거지.”
아리는 계속 설명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일찍 올리비아가 붙잡혔고, 게다가 ‘단서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으니, 증거를 없애려면 범인은 어떻게든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뒤늦게 소란을 듣고 나온 올리비아는, 방금 전 대화 내용을 들었는지 울컥한 표정으로 아리를 노려봤다.
“그럼... 날 미끼로 사용한 거야? 자칫 잘못했으면 내가 죽을 뻔했잖아! 아리,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울먹이는 올리비아에게 아리가 삐질거리며 대답했다.
“대, 대신 범인은 잡았잖아. 그리고... 이 방법 말고는 떠오르질 않았어.”
“난 너희를 믿었는데... 너희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올리비아가 울음을 터뜨리자, 론도가 말다툼을 중단시켰다.
“자자, 일단 범인부터 해결하고 얘기해. 우선은 이쪽이 시급하잖아?”
"자, 순순히 잡히라구"
론도가 밧줄을 마저 묶으려던 그때, 어딘가에서 둥글게 생긴 물건이 굴러와 뿌연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켁! 이게 뭐야!”
“콜록! 이 비겁한 놈이!”
갑작스러운 연기 탓에 세 사람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고, 괴로워하며 호흡을 가다듬기에 급급했다.
잠시 후 연기가 걷히자, 그곳에 있던 괴한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그가 마을 오른편으로 달아나는 것을 어렴풋이 목격한 아리는, 그를 쫓기 위해 바로 달려나갔다.
“어? 아리, 어디 가는 거야!”
다급히 그녀를 막아서는 론도를 무시하고 달려나가는 아리를 막은 것은 헬레나였다.
“잠깐만요, 아리! 저자는 변신술사이자 환술사인 ‘바로크’입니다. 혼자서는 위험해요!”
“하지만 이대로 두면 놓칠지도 몰라요!”
아리의 말에 헬레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신 절대 혼자 상대하려 들지 말고 그의 뒤만 밟아주세요. 저도 지원을 요청한 뒤에 뒤따르겠습니다.”
아리는 헬레나의 지시를 듣고, 범인이 도망친 방향으로 재빨리 달렸다.
흔적은 골렘의 사원까지 이어져 있었고, 사원 안쪽에는 무너진 입구가 보였다.
무너진 입구 안쪽으로 들어서자 아리는 제단과 함께, 문제의 ‘봉인석’으로 보이는 보석이 놓여 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보석이 여기 있다면, 범인은 대체 어디 간 거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리는 단검을 쥐고 재빨리 돌아섰고, 그곳에는 도저히 있을 리 없는 사람이 서 있었다.
“메... 메르시...?”
메르시가 여기에 있을 리 없는데, 믿기지 않는 광경에 아리는 그만 얼어붙었다.
“오랜만이네요, 아리.”
목소리와 외모는 분명 메르시였다. 메르시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고,
이내 품에서 단검을 꺼내 아리를 향해 찔러 넣었다.
“크윽!”
아리는 간신히 피했지만, 옆구리를 베이고 말았다.
“하아... 하아... 네가 바로크구나.”
아리는 아픔을 억누르며, 자신을 공격해온 상대가 변신술사임을 간파했다.
“후후, 정답이에요. 아리, 똑똑하신걸요?”
그는 여전히 메르시의 모습으로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아리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네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고 내가 못 칠 것 같아? 내 친구 흉내는 그만 두지 그래?”
그녀의 말에도 바로크는 태연한 태도로 계속 메르시의 모습과 목소리를 유지했다.
“과연... 정말로 저를 죽이실 수 있을까요?”
“뭐...?”
“당신의 나약함 때문에 죽은 친구를, 이제는 당신의 강함으로 죽이는 건가요?”
바로크는 아리의 기억과 아픈 과거를 아는 듯, 잔혹하게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을 골라 던졌다.
“야... 말 조심해 죽고싶어?”
살기를 뿜는 아리를 보며, 바로크는 여전히 여유롭게 웃었다.
“하긴, 한 번 죽였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 건 없겠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리는 단검을 들고 바로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바로크는 가볍게 그녀의 공격을 피하고, 아리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이런... 너무 흥분하신 거 아닌가요? 공격이 직선적이네요, 후후.”
“허억, 허억... 이 자식이 진짜...!”
아리는 상처와 피로로 지친 듯 호흡만 가다듬을 뿐이었다.
“어머, 벌써 지치신 건가요?”
바로크가 비웃으며 다가오던 순간, 발밑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응? 이게 뭐—”
순간,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큭! 이건.. 플래시 뱅?!”
시야를 잃은 바로크를 아리가 순식간에 넘어뜨려 제압했다.
“이 자식... 쉽게 끝날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아리는 씩씩거리며 단검을 높이 들었다.
하지만—
“아리... 살려줘요... 제발...!”
메르시의 모습으로 애원하는 그의 얼굴에 아리는 순간 망설이고 말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바로크가 전격 마법을 시전, 아리의 옆구리에 타격을 주었다.
“크윽!”
아리는 신음을 토하며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바로크는 여유롭게 몸을 일으키며 다시 미소 지었다.
“역시 아리네요. 언제나 절 배려해주시다니.”
“헉... 헉... 이 자식이...”
“좀 더 즐기고 싶지만, 지원이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여기까지 하죠. 그럼 또 봐요, 아리.”
그는 쓰러진 아리를 뒤로하고, 봉인석을 챙겨 밖으로 사라졌다.
아리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가 도망치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