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불모의 땅을 뛰어다니는 '꼬리가귀여워'는 타우렌 드루이드다.
달의 숲에서 스킬 '정화'를 배우기 위해 퀘스트를 받고 중부 불모의 땅까지 날아온 이 드루이드는 벌써 세 시간째 '병든 가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세 시간이나 뛰어다녀 지쳤을 법도 한데, 이 드루이드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퀘스트를 받기 위해 4시간 동안 시체를 끌며 이동했다가, 돌아오는 길엔 와이번을 타고 편하게 날아왔다는 사실에 아직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킬 '정화'를 배우면 ‘던전에 데려가 준다.’는 같은 길드의 타우렌 전사 'Mack'의 말은 그에게 피로는 자신과 거리가 먼 여자친구처럼 느껴지게 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기어코 한 퀘스트에 5시간을 투자했을 때, 그 인내심도 동이 나버렸다.
공개-1 꼬리가귀여워 : 님들ㅜㅜ 병든 가젤 다 뒤짐?ㅜ 왜 안보여여?ㅜㅜ
공개-1 세크메트 : 븅신ㅎㅎ내가 다쥬기는중ㅎㅎㅎ
참으로 악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짓이었다. 가뜩이나 그 수가 적은 듯한데, 방해하는 이가 있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꼬리가귀여워는 황급한 손길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놀렸다.
쉬프트+클릭
세크메트 트롤 마법사 60레벨 [와갤은 하지만 막장은 아닙니다.]
꼬리가귀여워는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이미 늘어나 목 젓 근처에도 머물지 않는 셔츠의 목 언저릴 괜히 늘렸다.
상대는 만렙이었다. 어쩌면 이동속도가 100%나 증가하는 천골마를 타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60% 증가하는 백골마라도 그게 어딘가?
탈 것은커녕 이동속도 증가라곤 네발 달린 짐승으로 변하는 게 전부인 꼬리가귀여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입꼬리를 사납게 구겼다.
"더러운 자식..."
그런다고 퀘스트가 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는 오랫동안 욕지기를 흘려댔다.
그런 끝에 한가지 꾀를 내었다.
'그래, 화면에 리젠 될 때까지 기다리자...'
한량없이 뛰어다니는 것보단,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방금 누군가 죽였는지 모를 '병든 가젤'의 시체가 그의 화면 안에 있었다.
'그래.. 기다리면 리젠 될 거야.. 까짓거 세 마리 남았으니 30분 안에 깰 수 있겠지...'
그때였다.
그의 화면 저 멀리 녹색 기운을 뿜는 한눈에 보아도 가녀리고 병약한 가젤 한 마리가 나타났다. 꼬리가귀여워는 확인할 새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와중에 그는, 누군가는 뒤뚱거린다며 놀리는 그 걸음마저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에 비친 그 타우렌 드루이드는 대지를 박차며 달려가는 자연을 사랑하는 동물의 친구, 넓은 도량을 가진 자연의 수호자로 보였다.
게다가 역관절의 다리가 나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치렁거리는 꼬리가 자신의 닉네임과 참으로 잘 어울린단 생각에 뿌듯한 마저 느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퀘스트 완료까지 20분이다.
썬더 블러프로 가, 보상을 받는데 10분.
Mack이 자신을 던전으로 안내하는데 5분.
40여 분 뒤면 그도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단 생각에 그의 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해벌쭉 벌어졌다.
그때였다.
화면 오른편에서 랩터가 하나 뛰어오더라니, 병든 가젤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트롤이었다.
꼬리가귀여워는 눈이 뒤집혀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외쳐댔다.
"안돼! 안돼!! 안돼!!!!"
하지만 그의 신경을 곤두세웠던 상상 속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랩터에서 내린 트롤은 마치, 그를 안내하기라도 하듯 가젤 주변을 폴짝거리기만 했다.
꼬리가귀여워는 생각했다.
'아, 세상은 의외로 착한 이들이 많구나. 여깄다고 알려주는 거구나'
입가엔 남모를 미소가 번졌다.
병든 가젤 앞에 도착한 꼬리가귀여워는 누가 볼까 민망한 자신의 남루한 '작은 가방(8칸)'에서 연고를 찾기 전, 채팅창을 열었다.
ㅡ감사하
무엇이 감사한지는 본인도 모를 노릇이지만, 괜히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ㅡ감사합ㄴ
트롤이 점프를 멈추고 몇발짝 물러 섰다.
꼬리가귀여워는 생각했다.
'가려는 건가? 안돼! 인사는 받아줘!'
키보드를 놀리는 손이 다급해졌다.
ㅡ감사합나ㄷ
오타가 나버렸다.
오타라니, 안 될 말이다. 정중하고 감시한 이 마음을 더럽히는 용납 못 할 짓이다.
꼬리가귀여워는 용납하지 못했다.
ㅡ감사합
그때였다.
트롤이 허공에 휙 하고 손짓을 했다.
‘뭐지? 저게 뭘 한 거지?’
다른 직업의 장비가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이해 못 할 손짓이었다.
그리고 병든 가젤이 죽었다.
병든 가젤은 무참히 쓰러져 개나리 같이 영롱한 금빛을 잃고 탁한 회색의 이름을 가진 싸늘한 시체로 돌변했다.
트롤 마법사는 이내 허리를 숙이고 마치, 싹싹 빌기라도 하듯 손을 놀려댔다.
세크메트 : 븅신ㅎㅎ
동시에 펑하며 붉은 랩터가 나타났고, 세크메트는 자신이 죽인 병든 가젤을 몇 번인가 뛰어넘다, 유유히 사라졌다.
병든 가젤의 시체 앞에 선 꼬리가귀여워는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ㅡ감사합
이라고 쓰인 채팅창의 점멸을 오랫동안 지켜만 봤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화면에는 알림창이 나타나 있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 23초 뒤 접속종료가 됩니다.’
꼬리가귀여워는 그 알림창의 카운트가 다 되도록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클래식 기다리는 분들 많은 것 같던데, 과연..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