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스키장에서(4)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이 되었다...
나와 영권이는.. 보드를.. 수정이와 수연이는.. 스키를 탔다...
"꺄하하하..."
"나 잡아봐라.. 메롱.."
그리 잘 타는 실력이 아니라.. 몇 분 가지도 못하고...
자빠진다...(땀)
그 반면.. 영권이와.. 수정이 수연이는.. 프로 급이다..
"어..어이 이봐~~ 같이 가야지..."
"흐흐.. 그렇게 뒹굴면서 배우는 거야.. 천천히 내려와..."
"어..어라.. 야!! 치사한 자식들.."
나만 혼자 남겨두고.. 사라져 간다...
"나쁜 자식들..."
혼자.. 엎어지면서.. 기어갔다가.. 다시 넘어지고...
뒹굴고... 쓰러지고..
중급코스 내려오는데.. 무려 50분이 걸렸다...
그래도.. 나도 한 가닥 하는 놈인지라..
도착지점 20M앞에서.. 중심을 곧 잘 잡고.
온갖 잡스런 폼 을 내며... 슈우우웅 내려왔다...
특히 마지막 지점에서...
빙글 돌면서.. 안전하게 착지한 척(!)하는.. 가증스런 나의 모습에..
몇몇 여인네들이 눈길을 준다..
훗..v
자신만만하게.. 그 여인네들을 스쳐지나가자.. 한 마디씩 한다...
"저 사람 아까 자빠지던 사람 아냐??"
"응.. 꽤나 아프게 자빠졌는데.. 멀쩡히 살았네..."
"그러게.. 내일 못 일어나겠다.. 불쌍해라...쯧쯧"
"니가 가서 말해 줘.. 초급 가서 타라고..."
"그래도 불쌍하잖아... 저렇게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어떻게 그런 말 하냐??"
(땀)
젠장.. 다 봤나보다....
내가 두 번쯤 타고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영권이는 벌써.. 5번째.. 내려오는 중이다...;
"야야.. 헥헥.. 나 도저히 못타.. 안 해!!못 해!!"
"그래?? 그럼 조금 쉬었다 타자..."
"수연이는??"
"수정이랑... 지금 내려오고 있어..."
"너네 되게 잘 탄다....쒸..."
"너가 못 타는 거야...뭔 애가 운동신경이 그렇게 없냐??"
"그...그래??"
"와우!!"
"왜??"
"지금 지나가던 여자 봤냐???"
"왜??"
"고글로 얼굴 가려서 잘 모르겠지만.. 꽤 예쁘던데? 냥냥.."
"그래??"
지나가던..여자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뒷모습은 일단 예술인데? 저 생머리 하며..."
"그치?"
난 얼떨결에.. 고글을 벗고... 뒷모습에 주시했다...
그런 내가 쳐다보는걸 알았는지...
힐끔 뒤돌아본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와아....예쁘다아..."
그 여자는 우리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만.. 이내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우아아악.. 미치겠다..."
"그치그치... 진짜 예쁘다..."
퍽!!!!
"뭐야? 누가 예쁘다는 거야..."
어느새 나타난 수정이가....
영권이의 뺨을 날려버린다..(긁적)
"잘못했어.."
"흐음.. 혼자 두니까 안되겠어.... 한번 더 타고 쉬자~~~"
"뭐?? 또 타자고??"
"응!! 이번 한번만 더 타고 밥 먹으러 가자~"
"젠장..."
할 수 없이.. 리프트에 올랐고... 종점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공포가 밀려왔다...
"아.. 또 언제 굴러서 내려가냐..."
(땀)
내 말을 무참히 씹어버리는 듯.. 영권이와 패거리 일당은..
유유히.. 타구 내려갔고...
"에이..빌어먹을..."
또다시 굴렀다.. 구르고 굴렀다...
아예 탈 생각을 포기하구.. 굴렀다....
어느 정도 정신이 없다고.. 생각될 즈음...
"어?? 비.. 비켜요...!!"
"헤에.. 뭐지?"
"엄마야!!! 꺄악~~!!!"
스키를 타고 내려오던 여자와 부딛쳤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데.. 한번 부딛치고 나니... 정신이 없었다...
"괘..괜찮으세요??.. 제가 초보라...."
"하하!! 아뇨.. 여기서 구르던 제 잘못이죠..."
"다치신 곳은 없으시구요??"
"예.. 괜찮은 것 같네요.. 그 쪽은요??"
"아..저도..."
긴..생머리.. 화려하진 않지만.. 멋을 낸.. 그 여자는..
아까 밑에서..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여자였다...
'살다보니.. 이런 우연도 있구나....와우....'
잠시 침묵이 맴돌다가.. 그 여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잘.. 못 타시나봐요??"
"보시다시피.. 굴러가는 중인데요..."
"저도.. 굴러 내려가는 중인데..."
"그래요?? 그럼 같이 구르죠..."
"(긁적)"
내 말투가 조금 웃겼는지.. 쿡쿡 웃는다....
괜시레.. 쪽 팔리다는 느낌이 들어.. 불쑥 나도 모를 말을 꺼냈다...
"목소리가.. 제가 아는 사람이랑 많이 닮았네요..."
"네?? 아.. 저도 아까부터 그 생각했는데..."
"그래요?? 하핫.."
더운지.. 그 여자는.. 고글을 이마 쪽으로 올렸다....
저 눈.. 꽤나 낯익은 눈이다...
"어.....어라???????"
"왜요??"
나도 황급히.. 고글을 벗었다....
"허......억..."
"여..여긴 어쩐 일이야??"
"그러는 오빠는요??"
"나?? 난 친구들이랑 스키장 왔는데...."
"아.. 그게 오늘이었어요??"
"어...(땀)"
"..........."
"넌??"
"아.. 저는 부모님이랑 왔어요..."
"그래??"
어색한 인사를 주고 받은 나는.. 상황수습이 되질 않아.. 어쩔 줄을 몰랐다....
때마침..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 서연아.. 빨리 와라... 뭐하니 거기서..."
"네.. 아빠.. 곧 가요..."
"아.. 아버지셔??"
"네.. 미안해요 오빠.. 가 봐야 겠네요..."
"어.. 그래.. 반가웠어..."
"네..."
"그래..그럼 조심히 가..."
"예..... 오빠도요.."
서연이는 빙긋 웃고.. 다시 고글을 쓰며.. 내려가려다가.. 잠시 멈칫거리고는...
고글을 위로 젖히고.. 나즈막히 말했다...
"오빠.."
"응?"
"저.. 내일 모래 26일날 가요..."
"어? 그래..."
"........."
다시 고글을 쓰고.. 내려간다.. 굴러간다는 건.. 거짓말인지...
잘 타고 내려간다..쳇..
[저 내일 모래 26일날 가요..]
'무슨 의미지??? 다시 볼 수 있다는 건가??'
그리고 불현듯 내 머리속을 스치는 대사 한마디...
[아.. 그게 오늘이었어요??]
'내가 서연이에게 스키장을 간다는 말은 했던 적이 있었나?....'
알 수 없는.. 서연이의 말과 행동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