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해가 떠오르면 모두의 표정은 언제나 그래왔듯 어둡다. 마치 좀비들마냥, 어기적거리며 서서히 죽음을 향하는 것이다. 그 어떤 억지도 없다. 그 어떤 운도 없다. 그저 죽음을 향한 발걸음이 누구에게나 그렇듯 무거울 뿐이다. 욕설을 처먹은 '그 자식'은 욕듣는만큼 잘만 생존해있다. 이러기 위해서 욕먹는 짓거리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 어떻게 되든 일단 살면 된다. 그 뿐이다.
"아악!"
누군가의 비명소리. 우리는 즉각 모두 모이게 된다. 마치 훈련받는 군사들과 같이 집합은 일상이 되었다. 집합하기 위한 외침처럼, '그 자식'은 우리를 부른다.
"놈의 짓이야. 괜히 모였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이젠 익숙해져버린 것들. 며칠 사이에 늙어버린 모두를 둘러보며 무기력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선장은 아무렇지 않게 해산을 외치고, 우리는 각자의 일을 위해 돌아간다.
"아악!"
다시금 발생하는 소리. 그렇다고 죽는 순간에 구호를 정해서 -예를 들면 "이얍!"과 같은 -죽음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는 것은 어떨까 싶을 정도이다.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지만 말이다. 답답함에 나오는 건의사항이라고 하기에도 어처구니 없지만, 정말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모두가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지금도 미쳐버렸지만. 지금도 미친 상황이지만.
"이번에도 놈인가?"
"아니."
침울한 목소리. 선장이다. 확실히 한 명이 부족하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절망의 해가 뜨면, 우리는 모두 오싹한 기분을 안고 산다. 좋을 리는 없다. 더러운 기분들.
"죽은 인간에 대한 처분."
선장이 읊조린다. 그 의미를 모두가 알고 있기에, 대화는 없다. 익숙한 행위를 행하면 된다. 죽은 자의 물건을 버린다. 그것은 이제 일종의 의무가 되어있다. 산 자들의 발악. 그것은 이렇게 가벼운 행위 하나만으로 표현하기에 벅차다. 그 어떤 이득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인간들도 물론 우리 중에서는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자는 그 희망이 우리를 붙잡는다. 할 수 있어. 살 수 있어.
망자의 짐은 버림받는다. 우리는 망자의 마지막 모든 유품을 버리고서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듯 하다. 그런 기분이다. 우리는 사람보다 삶을 중요시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들.
이제 남은 인원은 11명. 선장, 이미 죽은 부선장. 죽어나가는 선원들. 총 11명. 살아야만 한다.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망자를 버린다. 삶을 위해서 미쳐가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에 대해 부정하거나 반발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삶을 갈망한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다. 결코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고 행하면 된다. 모든 일을.
"제기랄! 이 미친 놈아!"
누군가의 포효. 우리는 그 괴성과도 같은 소리에 놀라 갑판을 향한다. 타오르는 횃불, 달려가는 사람. 모든 상황은 간단히 알 수 있었다. 무엇을 하려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말려야만 한다. 얼른...
"그만둬!"
선장이 뛰어간다. 우리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달려간다. 그리고 선장은 넘어진다. 보기좋게 넘어지고야 만다. 한차례 소란을 일으킨 선장이 고개를 드는 순간, 우리의 시선을 앗아간 선장을 제치고 번뜩 들어오는 그 긴장감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한다. 그리고 아까 달려가던 놈이 없다. 횃불은 갑판에 떨궈지고서 주인을 찾는다. 비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갑판은 불을 감싸안는다. 그리고 선원 한 놈이 없다.
"미친 놈."
아니. 미친 것은 '그 자식'이 아냐. 우리야. 우리는 미친거야. 완전히 돌아버리고 환각에 사람을 죽이고 있는거야. 범인은 인간이야. '그 자식'은 단순히 전염병이야. 마약이야. 미친 것은 우리라고!
"죽은 인간에 대한 처분."
선장이 다시금 읊조린다. 그렇게 조용한 한 마디에도 우리는 -너무나 길들여진 우리는 -망자의 짐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 것이 우리가 미쳤다는 증거이다. 신이시여, 제발! 구원하소서! 이 절망의 구름을 걷어 희망의 해를 띄워주시옵소서! 삶에 대한 모든 미련을 사랑으로 보듬어주시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길 수 있게 지혜를 주소서!
이 미친 인간들, 이 미친 세상에 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