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지난 1월 말, 애너하임으로 출장을 갔다 온 기자가 2월 내내 쉴 시간이 없다며 서러워할 때 '그 정돈가?'싶었지만, 그 정도가 맞았다. 숫자 떼고 신캐릭만 5종을 퍼넣은 오버워치부터, 새 확장팩을 공개한 하스스톤, 그리고 25년만에 신규 직업을 들고 나온 '디아블로2'까지. 이 정도면 2월은 내 꺼니 아니꼬우면 덤비라고 소리치는 듯한 패왕적 행보다.
그렇게, 3박 4일의 일정 동안 족히 게임쇼 두 개 분량의 기사를 처리한 출장팀이 깊이 잠든 지금, 모든 기자들의 머릿속에는 공통된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블리즈컨때는 뭐함?"

지난 2년 간, 블리즈컨은 열리지 않았다. 아마 그 2년 간 모았던 힘을 2월에 잠깐 휘둘러 본 거겠지. 하지만, 올해는 9월 중 확실한 블리즈컨이 예정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블리즈컨의 발표보다 2월 사전 발표의 내용이 더 강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2월에 이 정도로 짱짱한 소식을 꺼냈으니, 블리즈컨 때는 뭔진 몰라도 더 강력한 한 방이 있지 않겠나?
결론은 비교적 쉽게 나왔다.
"스타크래프트네"
이건 숙명이다.
스타크래프트여야 하고, 스타크래프트일 수 밖에 없다. 2월 발표의 파괴력을 넘어설 만한 블리자드의 주요 IP중 가장 오랫동안 새 소식이 없었으나, 오래 묵은 만큼 파괴력이 강력한 필살기. 일보에게 뎀프시 롤이 있고, 미국에게 리틀보이와 팻 맨이 있다면, 블리자드에게는 스타크래프트가 있다. 심지어, 블리즈컨의 대문에도 해병이 의기양양하게 서 있다.
물론, 단순히 심증만으로 말하는 건 아니다. 지금부터 '왜' 스타크래프트를 말했는지, 그리고 만약 나온다면 '어떤 모양'이 될 것인지를 하나씩 생각해보자.
장막을 넘어 미래를 보려면 '채용'을 보라
사실, 스타크래프트와 관련된 차기작 개발 이슈는 이전에도 몇 번 루머가 있었다. 넥슨과 협업한다는 루머도 있었고, 몇몇 정보유출자들이 관련된 내용을 비공식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었다. 파크라이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댄 헤이(Dan Hay)'가 지휘봉을 잡았다는 루머도 있었다. 물론,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다.
하지만, 모래 위에 발자국이 남고, 식사 자리에 밥풀이 남듯, 모든 사건의 진행에는 다 증거가 남는다. 그리고, 신작 게임에 대한 정황을 찾을 때 기자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부분은 바로 '채용'이다. 때문에, 지난 몇 년 간, 블리자드가 올린 채용 공고에서 '스타크래프트 슈터'와 연관되었다고 보이는 내용들을 찾아 분석해 봤다.
내용이 조금 길긴 하지만, 딱 보는 순간 감이 올 거다.
사실 이것 말고도 관련된 내용은 훨씬 많으나, 다 넣자니 너무 길어져 버려서 핵심만 남겼다.
이 정도면, 대충 어떤 느낌의 게임이 될 것인지도 감이 잡힌다. 물론, 게임이 개발 중에 뒤집어지는 건 숱하게 있는 일이며, 스타크래프트와 관련된 차기작 프로젝트 중 개발 취소된 건 '고스트'와 '아레스' 등 이미 알려진 것만 두 번이다. 너무 섣부른 확신은 금물이라는 것.
채용 공고의 정황을 담백하게 팩트만 정리하면 이렇다.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중인 기존 IP 기반의 우주 배경 오픈월드 택티컬 슈터로 라이브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있음"
이 정도 내용을 확인했을 때, 기자들은 생각했다.
"뭐야 스타크래프트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이 정도면 단순 설레발은 아니라 인정할 만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일단 두 가지 대전제가 만들어졌다.
1. 블리즈컨때는 2월 발표보다 더 강력한 녀석이 온다
2. 마침 기존 IP를 활용하는 택티컬 오픈월드 슈터 개발 채용 공고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3의 차례다.
3. 그러면 어떤 게임이 나올까?
헬다이버스냐, 데스티니냐, '배틀필드'냐, 아니면 '고스트 리콘'이냐
대략적인 게임 요소들이 특정되었으니, 이제 게임을 한 번 상상해볼 차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헬다이버스', 혹은 '다크 타이드'와 같이 4인이 팀이 되는 협동 슈터다. 스타크래프트에서도 다소 미시적인 부분들인 '테란 바이오닉 유닛'들이 주력이 되는 셈인데, '스타크래프트의 슈터화' 하면 가장 직관적으로 연상되는 장르다.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드넓은 필드, 혹은 구조물을 탐색하며 목표를 달성하고, 쏟아지는 적들을 격퇴하며 탈출하면 되는 비교적 직관적인 게임성에 스타크래프트의 배경적 컨셉과도 잘 맞는다. 해병 한 명이 저글링 한 마리와 진땀 대결을 펼치는 세계관인데 네 명이 수천마리를 박살내며 가는 게 맞나 싶겠지만, 놀랍게도 로어 상으로 딱 맞는 대상이 있다. 바로 스타크래프트의 주인공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레이너 특공대'다.
설정 상 레이너 특공대는 삼국지에서 유비를 따라다닌 노병들마냥 숫자는 적어도 하나같이 일당백의 전투력을 보여주는 인간 흉기들인데, 이 친구들이 해낸 대표적인 활약이 저그 수십 억이 모여 있는 차 행성에 단 300명으로 침투해 캐리건의 코앞까지 진격했다. 그 중 네 명이라 치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채용 공고에서 나온 '대규모 전투', 그리고 '오픈월드 전장'이라는 점이 다소 안 맞는 부분이기에 완전히 이 컨셉으로 나오는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데스티니'처럼 행성 별로 세미 오픈월드가 되는 오픈 월드 루트 슈터다. 채용 공고와도 잘 맞는 방향이고, 각 직군을 캐릭터화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며, 루트 슈터는 어지간히 망치지 않는 이상 기본 이상의 재미는 하기 때문에 흥행에도 유리하다.
코프룰루 섹터 곳곳을 원하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마 사라 행성 변방에서 저글링 뚝배기좀 깨 주다가 충분히 잡았다 싶으면 벌쳐 타고 술집으로 복귀하는 그림. 딱 봐도 낭만 죽이는 그림 아닌가?

다만 이 또한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원전 스타크래프트의 배경이 세 종족이 서로의 존폐를 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닥대는 야차룰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특히 테란의 경우 병영에서 생산되는 병사들은 대부분 재사회화를 거쳐 자유의지가 없거나, 고도의 훈련과 세뇌를 받은 경우가 많은데, 자유의지를 가지고 장비를 바꿔가며 원하는 임무만 골라 수행하며 싸우는게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물론 미라의 약탈단이나, 역시 레이너 특공대를 꺼낸다면 말이 안 되지는 않지만, 어떤 설정을 넣어도 원작과의 괴리가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시점을 공허의 유산 이후, 그러니까 케리건이 불새가 되어 날아가고, 아몬과 친구들은 우주 먼지가 되어버린 시점이라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자가라와 저그들은 어디론가 숨어들었고, 스투코프도 잠적했으며, 야생 저그들은 아직 남아 있으며, 음험한 죽순인 알라라크 또한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 대전쟁기와 비교하면 비교적 말랑하면서도 느린 템포의 스토리 드리븐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세 번째 가정을 해 보면, 아예 '배틀필드'처럼 세 종족이 치고받는 비대칭적 대전장을 다루는 게임일 수도 있다. 밸런싱이 끝내주게 어렵고, 기획 자체가 무척 어렵긴 하겠지만, 비대칭 슈터는 이전에도 종종 등장했던 바가 있다.
가장 좋은 예시가 리벨리온과 모노리스가 만든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게임일 거다. 무려 스타크래프트 원작과 동시대의 작품인데, 마린은 총을 쏘고, 프레데터는 숄더 캐논과 리스트 블레이드를 썼으며, 에일리언은 그냥 몸뚱이로(...) 싸웠음에도 재밌었다. 이를 더 스케일을 키워 배틀필드 정도의 규모로 확장한다 치면, 영 못할 것도 아니다.

이런 게임의 매력은 흔히 생각하는 '테란 시점'의 플레이 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 현 시점에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광전사도 플레이할 수 있을까?' 인데, 이런 컨셉의 게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 뿐일까? 히드라리스크로도 플레이할 수 있을 거다. 좀 이질적이긴 하겠지만.
걸리는 부분이라면, 다들 짐작했다시피 게임 자체의 기획이 더럽게 어려울 테고, 리스크가 발생할 여지가 너무나 많다는 것. 다각적인 전장을 그리는 게임일 수록 플레이어 간 경험의 비대칭도 심해지고, 조금만 수틀리면 밸런스가 망가지며, 이는 공정한 대결을 원하는 플레이어들의 이탈로 이어진다. 당장 배틀필드만 해도 장비 밸런스가 조금만 어긋나도 온갖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는데, 비대칭 슈터라면 더할 거다.

마지막으로, 그냥 '보더랜드'나 '파크라이', 혹은 '고스트 리콘'처럼 싱글 플레이, 혹은 분대 위주의 슈터 게임, 그런데 멀티 플레이를 곁들인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시골에서 밭일하던 주인공이 어쩌다 레이너 특공대, 혹은 멩스크 친위대에 합류하게 되고, 스타크래프트 원작에 나오는 굵직한 전투에서 활약하는 과정을 그리는 스토리 드리븐 슈터 게임 말이다.

이 부분은 유출된 정보에서 총괄 PD를 맡았다고 알려진 '댄 헤이'가 파 크라이 시리즈를 개발해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고, 사실 만들기도 가장 편하다. 행성에 미리 파견되는 요원으로서 저그 군락과 프로토스 전진기지를 때려부수고, 잠입과 폭파 작전으로 UED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어주는 그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컨셉이다.
여기에 멀티 플레이로 동료들과 파티 플레이를 할 수 있고, 평소에는 AI동료와 함께 돌아다니는 컨셉을 잡으면 구현 자체도 어렵지 않다. 고스트 리콘에서도, 리퍼블릭 코만도에서도 동료 AI들과의 분대 플레이는 충분히 이뤄졌으니 말이다.

설레발은 금물이지만 상상 정도는 괜찮잖아?
솔직히 말하면, 나와 봐야 안다. 게임 기자를 하다 보면, 다른 이들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게임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미 게임을 전부 플레이하고 평가까지 마친 이후 게임에 대한 여론을 조사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돌다 보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부분을 상상하면서 이미 결론까지 내려놓은 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 틀린 경우가 많지만, 어쨌거나 그 또한 애정이다. '스타크래프트 슈터'를 상상해 보지 않은 게이머가 얼마나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겠지만, 복제 디스크를 사려고 어둠의 뒷골목을 거닐고 립버전을 다운받던 그 시절을 지나온 게이머들에게 '스타크래프트 슈터'란 일종의 환상종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미네랄 한 조각은 품고 사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조금 신빙성이 높은 상상이다. 이미 수많은 정황 증거와 유출 정보들이 '스타크래프트 슈터'로 모이고 있으니 말이다. 샤워 중 뜨거운 물을 맞으며 멍을 때리다 보면 드는 바보같은 상상들, "저글링이 리트리버보다 클까?", "드라군은 관절부를 공략하는게 방법일까?"같은 상상이 그냥 상상 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해병이냐, 유령이냐, 그도 아니면 광전사냐. 타소니스냐, 아이어냐, 혹은 차 행성이냐. 모든 것은 9월에 드러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