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블리자드의 정신은 '어디서' 나오나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4개 |
무엇이 블리자드를, 블리자드답게 만드는 걸까?

만약 그것이 게임을 만든 개발자에 있다면 이미 블리자드는 블리자드다움을 잃은 회사일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투자금 1만 5천 달러를 더해 블리자드의 전신 실리콘&시냅스를 설립한 마이크 모하임과 공동 설립자 프랭크 피어스, 앨런 애드햄은 모두 회사를 떠났다.

다시 복귀한 주요 프랜차이즈 핵심 인물인 크리스 멧젠도 회사를 떠난 적이 있었고, 빌 로퍼, 에리히 샤퍼, 맥스 샤퍼, 데이비드 브레빅, 조시 모스케이라, 제프 카플란, 롭 팔도, 벤 브로드, 해밀턴 추, 웨이 왕, 더스틴 브라우더, 앨런 다비리, 벤 톰슨, 팀 모턴, 팀 캠벨, 데이비드 킴, 에릭 돗즈, 브라이언 수사, 닉 카펜터 등 수많은 인물이 블리자드를 떠났다. 이들은 블리자드 핵심 프랜차이즈의 역사를 세운 인물이며, 이들의 이탈은 곧 블리자드가 전환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블리자드가 인기를 쌓고, 또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둥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기에 블리자드의 정신은 어쩌면 영원히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블리자드다움이 개발자들에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직접 만난 4대 리더이자 현 사장 조해나 패리스의 생각은 달랐다. 블리자드의 미래, 자산은 35년 동안 쌓아온 프랜차이즈와 그 라이브러리,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초대 대표였던 마이크 모하임은 '내면에 있는 괴짜를 수용하라(Embrace Your Inner Geek)'라는 개발자 중심의 개발 가치를 중요시했다. 단순히 CEO로서 숫자로 드러난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개발자이기에 가졌던 품질 최우선의 '블리자드 폴리시'를 확립한 가치였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액티비전과의 갈등 속에서 수익성을 우선하며 충돌하는 블리자드의 오랜 철학. 여기에 내부적으로 곪아있던 사내 성차별/인종차별 문제가 커지고 있었다. 블리자드 베테랑으로서 블리자드의 정체성을 가장 잘 살릴 인물로 평가받던 2대 리더 알렌 브랙은 짧은 기간 동안 터진 사내 문제와 위기 대응 실패로 폭탄만 떠안은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뒤를 이어 최초의 비블리자드 출신 임원이 된 공동대표 젠 오닐과 마이크 이바라의 임무는 마이크로소프트 인수 전후로 불안정한 조직과 배틀넷 등의 서비스 기술 안정화가 목표였다. 그렇기에 현재 조해나 패리스의 임기는 마이크 모하임 이후 불안정한 시기를 거쳐, 블리자드가 어떤 회사로 나아갈지 제대로 시험대에 오른 첫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패리스 사장은 프랜차이즈 중심을 외쳤다. 공개하지 않은 프로젝트, 장기적인 성장,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향후 수년 간은 지금의 프랜차이즈에 집중한다는 계획이 가장 먼저 나왔다. 그리고 스스로 확실히 느낄 수만 있으면, 개발자들이 원하는 방향을 지지하고 그걸 모두에게 공유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쩌면 블리자드와 가장 멀리 있었던 그였기에 가능한 리더십인지도 모르겠다. 패리스 사장은 NFL, 콜 오브 듀티 e스포츠 출신이다. 그렇기에 개발자들과 모든 팀이 함께 미래를 고민하며, 개별 프로젝트 대신 IP 전체의 방향성을 함께 내다보는 방식으로 프랜차이즈의 깊이와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블리자드를 블리자드답게 만드는 건 바로 이 IP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온 블리자드다움과 정신이 다시 그 프랜차이즈를 만들어가는 개발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스포트라이트 주간 만난 여러 개발자들은 블리자드 1세대 개발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디아블로2를 즐기고, PC방(PC 카페)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던 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또 오버워치 출시 이후, 게임의 캐릭터와 세계관에 빠져 블리자드로 당장 회사를 옮긴 이들도 있었다. 블리자드 프랜차이즈의 설립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로서의 애정과 관심으로 블리자드에 들어와, 그 다음을 이어가는 개발자들이다. 그리고 블리자드다움을 만드는 블리자드의 정신은 어쩌면 그들에게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제 막 3년차를 맞은 패리스 사장 체제의 블리자드가 밝힌 비전이 과거의 블리자드의 명성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혁신과 과거 IP에 머문다는 비판 역시 직면한 과제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영혼이 오랜 올드 개발자들이 아니라 팬들과 함께 만든 프랜차이즈에 있다면. 안정된 시기를 맞고 있는 지금이 블리자드다움을 되살릴 수 있는 새로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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