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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7화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2 개
조회: 2798
추천: 6
2016-07-18 02:34:45



#. 




 발로란 대륙이 한 번 발칵 뒤집어질만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왔다. 당연하겠지만 소환사의 협곡에도 아침 햇살이 드리워졌고, 그것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러나 화창한 아침과는 달리 잭스와 소나가 처한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여러가지 의미로.


 저벅저벅

 사박사박

 “당신의 악기…….”

 -에뜨왈이에요.

 “그래, 에뜨왈. 그걸 이 근처에서 떨어뜨렸다고 했소?”

 -네.

 “그렇군.”


 소나가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둘 사이엔 살짝 걷힐 기미를 보이던 침묵의 안개가 다시 내려앉았다. 어젯밤 잭스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소나의 표정은 잭스의 철가면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잭스 역시 소나의 옆에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갈 뿐이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경계를 절대 늦추지 않고, 언제든지 가로등을 휘두를 수 있도록 온 몸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었지만-소나에겐 그저 화가 난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어깨에 걸친 잭스의 망토 자락을 슬며시 만지작거렸다. 옷은 대강 말려서 입고 있었지만, 돌려줄 타이밍을 놓쳐서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전날 밤에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고, 불과 몇 시간 전의 밤-그 기억을 다시 한 번 떠올리는 소나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


 “……손이 맵군.”


 한바탕 시끄러운-잭스 한정-폭풍이 지나간 뒤 잭스가 낮게 읊조리자 소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몸을 웅크리고선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고있는 그녀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발갛게 달아올랐다. 알몸을 보였다는 부끄러움보다는 잭스를 향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소나는 그에게서 어떤 감정의 소리라도 들리면 그에 맞춰 사과를 할 생각이었지만 불행히도 그에게선 어떠한 감정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보다 더 예리한 감각을 지닌 귀가 별 쓸모없게 되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잭스를 바라봤다. 그는 손이 맵다는 한 마디만 툭 던지고선 가타부타 별 말이 없었지만 정말로 아프긴 했나본지 가면 밑으로 손을 넣어 얼굴을 슥슥 문지르고 있었다. 결국 소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주고 받은걸로 칩시다. 어쨌든 조금이라도 그대의 알몸을 본 죄가 있으니까.” 그리고선 잭스는 소나를 힐끗 보더니 한마디 더 덧붙였다. “노파심에서 말하는거지만 행여나 룬테라가 두 쪽이 나더라도 이성을 잃고 그대를 덮칠 일 따윈 없을테니 안심하고 있어도 좋소.”


 -아, 저기, 딱히 그런 걱정은 안했…는데요.

 “그럼 다행이고. 그냥 참고해두라는거요.”


 잭스는 딱 잘라 말하곤 모닥불을 살폈다. 희미한 모닥불이 살짝 일렁였고, 그는 작은 나뭇가지 몇 개를 잘게 부수더니 불 속으로 던져넣었다. 이내 불꽃은 나뭇가지를 잡아먹으며 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고 잭스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선 묵묵히 불만 쑤실 뿐이었다. 하지만 소나는 아니었다. 미안한 마음이 가시자 다시 누군가 자신의 목소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어느샌가 그녀의 눈은 흥분과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 신기해요. 어떻게 제 목소리가 잭스 님께 전해지는 걸까요? 아,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이게 어떤 이유 덕분에 되는건지 모르겠어요…말을 한다는건 이런 기분일까요? 아, 정말로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사실 그동안 평범하게 말할 수 있는 다른 분들이 정말로 부러웠어요. 그래서 말을 해보려고 연습고 하고, 또…….


 “미스 부벨르.” 묵묵히 있던 잭스가 소나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대의 생각을 내가 들을 수 있는건 소환 마법이 억지로 끊어지면서 우리들 사이에 무언가 연결이 생겼기 때문일거요. 그래,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로군. 적어도 그대가 손짓 발짓 하면서 나와 의사소통을 할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덧붙여 말하자면 마냥 기뻐할만한 상황은 아니라오. 설마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잊은건 아니겠지.”

-아…….


 그제서야 소나는 자기가 너무 철없이 기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전할 수 있다는 흥분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연결이 끊어질 때 마지막으로 들렸던 소환사의 비명소리가 다시 그녀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에게 석궁을 겨누던 베인과 팽팽한 활시위의 소리, 바람을 가르는 은화살의 소리도 모두 떠올랐다. 차가운 물을 한바가지 뒤집어 쓴 것만 같은 기분이 소나를 강타했다. 흥분과 기쁨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그 자리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거칠고 시끄러운 불협화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귀를 막아서 안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소나 자신의 감정이었으니까.


 에뜨왈이 필요해.


 그렇다. 에뜨왈만 있으면 이 불협화음을 없앨 수 있었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두려움을 날려버릴만한 활기찬 음악을 연주하자-소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 손가락을 살짝 튕기면 팽팽하고도 매끄러운 에뜨왈의 현이 느껴질거야, 라고 생각하며 소나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잡히는건 한 줌의 허공뿐이었다.


 -에뜨왈…….

 “괜찮다면 서로 가진 정보를 좀 종합해봤으면 하는데. 그럼 현 상황을 타개하기 더 쉬워질거요……내 말 듣고 있소, 미스 부벨르?”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나에겐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 새까만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것만 같았다. 에뜨왈은 그녀의 손에 들려있지 않았다. 베인에게 쫒기면서 놓친 것이다. 아니, 놓친게 아니었다. 팔이 뜯겨졌으면 뜯겨졌지 그걸 떨어뜨릴 소나가 아니었다. 그동안 살짝 왜곡시켰던 그녀의 기억이, 애써 외면하려했던 진실이 그녀의 숨통을 조였다.

 난 에뜨왈을 짐짝처럼 던지고선 달아났어. 내 파트너를, 내 악기를, 내 목소리를…….


 내 전부를.


 그 순간 두려움을 압도하는 공포라는 감정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윽!”


 그녀의 비명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잭스마저도 반사적으로 두 귀를 막고 고개를 수그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오직 잭스에게만 들렸고, 불행히도 그것은 귀를 막는다고 들리지 않는 종류의 소리가 아니었다. 소나는 미친 듯이 기어오더니 다시 한 번 잭스에게 매달리듯 안겼다.


 -잭스 님, 잭스 님! 부탁이에요, 제 에뜨왈을 찾아주세요!

 “미스 부벨르, 제정신이오? 언제 어디서 습격이 올지 모르는데 고작 당신의 악기 따윌 찾으려고 이쪽의 위치를 드러낼 순 없소.”


 잭스가 딱 잘라 거절하자 소나는 마구 화를 내며 잭스의 가슴에 주먹질을 해댔다. 사실 잭스의 의견은 현 상황에서 지극히 타당한 판단이었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 소나가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지금 자신에겐 에뜨왈이 없었고 당장 그것을 찾아야 했다. 그게 그녀가 알고 있는 상황 전부였고,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없었다. 갑자기 소나는 뭔가 깨달은 듯 수차례 주먹질을 하던 손을 딱 멈추더니-사실 잭스는 한 대만 더 치면 정말로 힘을 써서라도 막으려고 했었다-잭스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은 깊은 동굴의 속처럼 공허했고, 텅 비어있었다. 뭔가를 포기한 사람같다-그 순간 잭스는 그렇게 느꼈다.


 -잭스 님, 당신은 용병이시죠?


 안 돼. 소나의 마음 한켠에서 그런 생각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안 돼-넌 지금 크게 잘못하고 있는거야. 하지만 그 생각은 어둠에 파묻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잭스의 시선은 소나의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소나는 가면 너머로 그의 시선을 느낄 순 있었지만 그 시선에 어떤 감정이 서려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 의뢰를 할게요, 잭스 님. 용병들은 보수만 맞으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해준다고 들었어요. 제 에뜨왈을 찾아주세요. 뭐든지 드릴게요. 뭐든지 할게요. 그러니까 제 에뜨왈을 찾아주세요.


 소나는 그 말을 마침내 내뱉고야 말았다. 지금껏 ‘챔피언’으로서 그와 대등해지기 위해 이날 이때껏 달려왔건만, 지금 이 순간 소나는 자신의 손으로 그 관계마저도 산산조각 내어버리고 말았다. 언뜻 그녀의 뇌리에 잭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소나라는 소녀는 챔피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확실히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 소나는 자조적으로 미소지었다.


 난 에뜨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불량품이니까.


 주위에 펼쳐진 어둠만큼이나 깊디깊은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소나의 어깨에 걸쳐있던 망토는 반 이상 흘러내려 있었지만 소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잭스 역시 전혀 신경쓰지 않고서 한참동안이나 소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나는 그의 감정을 들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에게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보이는거라곤 가면과 그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아련한 푸른 연기뿐이었다. 결국 소나의 눈에 이슬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리더니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소리없는 오열이었다. 에뜨왈 없인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는 자신의 정신이 원망스러웠고 잭스에게 폐만 되는 자신이 창피했다. 그러나 에뜨왈을 되찾고 싶다는 감정은 그 두 감정을 파도가 모래성을 덮치듯 부스러뜨리고도 남을 정도로 강했다. 소나가 느끼기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지만 고작해야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잭스가 입을 열었다.


 "내 경고하는데, 미스 부벨르. 뭐든지 한다는 말은 그리 가볍게 하는게 아니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말이지. 그대보다 조금 더 오래 산 자로서 충고라고 생각해두시오."


 그리고선 잭스는 손을 뻗어 흘러내린 망토를 다시 소나의 어깨에 걸쳐줬다. 이윽고 소나가 울음을 멈추고선,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으로 잭스를 올려다봤다. 보통의 남자라면 껌뻑 죽어버릴 정도로 뇌쇄적인 행동이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잭스에겐 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그의 말은 지극히 사무적이고 건조한 어투였으니까.


 "계약을 받아들이겠소, 미스 부벨르. 나 잭스는 당신의 의뢰를 받아들이지. 의뢰 내용은 당신의 악기를 찾는 것. 추가적으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 협곡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신변을 지켜드리겠소. 생채기 하나 나지 않게 보호해드린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사지 멀쩡하게 해서 협곡을 나가게 해드린다고는 약속하지."

 -고, 고맙습니다. 잭…….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 이건 거래니까. 내가 요구할 대가와 꼭 맞는 수준의 일을 해드리는 것뿐이니 두 번 다시 고맙다는 말 따윈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소나는 몸을 움찔 떨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추웠다. 감정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잭스의 말투는 안정적이고 품위있는 생활 속에서 살아온 소나가 견디기에는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냉랭하고 거칠기 때문이었다. 의뢰를 요구한 시점부터 그의 태도가 더 사무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소나는 뒤늦게 눈치챘지만 그와의 관계를 개선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그럼 내가 받고 싶은 대가를 말하겠소."

 -네, 뭘 원하시나요? 황금도 있고, 보석도 있어요. 지위를 원하시면 높은 지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제 재량으로 시켜드릴 수도 있어요.

 "아니, 난 그런 것들 따윈 관심 없소. 내가 받고 싶은 대가는……."


 잭스는 소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게 말했고, 잭스의 말을 듣는 소나의 눈은 놀라움으로 커졌다가 이내 체념의 빛을 띠며 사르르 감겼다. 그렇게 길고도 짧았던 둘의 밤은 끝을 맺었다.


***


 "아무래도 저것인 것 같은데."


 잭스의 말이 잘 벼린 칼날처럼 소나의 생각의 고리를 단숨에 끊었다.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선 그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어쨌거나 예상보다 일찍 찾아서 한시름 덜었군. 어쩔 수 없이 중단 공격로의 개활지를 그대로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소. 이 상황에서 협곡을 점령한 놈들에게 안 들켰다는게 더 이상하겠지? 이제부턴 정말로 적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절대 뛰거나 큰 소리를 내지 마시……."


 정말로 그곳에 에뜨왈이 있었다. 강물에 반쯤 잠긴 채 풀숲에 걸려있는 꼴이긴 했지만. 에뜨왈을 보자마자 소나의 몸이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 잭스가 뭐라고 외친 것 같았지만 소나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과 귀는 온통 에뜨왈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뛰어가서 에뜨왈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쉿, 이봐 멍청한 아가씨. 움직이지 마. 손가락 하나라도 까닥 하면 그대로 목을 날려버리겠어. 잘린 목 붙일 재주가 없으면 내 말을 듣는게 좋을거야."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녀의 목에 와서 닿았다. 곱고 예쁜 미성의 목소리. 그 목소린 웃겨 죽겠다는 듯 잔뜩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거기에 묻어있는 감정은 정말로 말대로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살의라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소나는 몸이 얼음덩어리처럼 굳어버린 걸 느끼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카타리나 뒤 쿠토.


 소나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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