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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외전: 가로등과 태양(2)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4 개
조회: 2213
추천: 21
2016-09-13 11:46:44


***


 잭스는 귀찮은 일을 맡는 걸 정말 싫어하긴 했지만,


 털썩!

 “콜록.”

 “아직 여유가 있는 모양이구나, 쓰러져서 기침할 여유도 있고.”


 그렇다고 한 번 맡기로 한 일을 귀찮아서 내팽개칠 정도로 책임감 없는 위인은 아니었다.


 레오나의 지도를 맡게 된 뒤로 몇 주가 흘렀다. 그동안 가끔 리그에 챔피언으로 불려나간 일만 뺀다면 잭스의 일상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 레오나와 잠깐 대련 후 지도, 다시 점심, 오후는 너무 더우니까 쉬고 저녁 어스름 즈음해서 또 대련, 밤에는 자신의 경험담이나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무리(武理)에 대해 레오나와 토론하기. 기껏해야 15살 정도 먹은 어린애가 따라오기엔 좀 벅찬 코스가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잭스란 작자는 상대가 어린애나 여자애라고 해서 봐주는 일 따윈 결코 없는 용병이었고, 하필이면 임시라고는 하나 그런 스승을 만나게 된 레오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치유 사제들의 처소를 들락날락해야했기 때문에. 오죽 원성이 드높았으면 그 넉살 좋은 헬레나가 조심스럽게 ‘저기, 조금만 덜 열심히 해주면 안될까요?’라고 말할 정도였겠는가.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잭스는 지금까지의 교수법을 고수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죽어나는 건 레오나였다. 지금도 그랬다. 쇠몽둥이 같은 검과 자기 키만한 묵직한 방패를 든 채로, 레오나는 잭스와 대치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다시 덤벼라. 호흡 가다듬고, 박자 감각 잊지 말고. 한 호흡에 움직임 하나라고 생각해라.”

 “하아, 하아…합!”


 재차 잭스를 향해 덤벼드는 레오나의 모습은 상당히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대련장 바닥을 얼마나 굴렀는지 주홍빛 머리카락이 황토색으로 변할 정도였으며, 눈에 보이는 팔다리와 얼굴 모두 피멍과 생채기로 덮여있어서 흡사 피부병에라도 걸린 듯 얼룩덜룩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대련용 가죽 갑옷 속도 그럴 것이 뻔했다. 그 험한 꼴을 하고서도 레오나는 잭스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휘잉!

 “호흡이 어긋났다. 다시.”


 나름 혼신의 일격이었건만 잭스는 얄미울 정도로 손쉽게 몸을 조금 비트는 것만으로 레오나의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 틈을 노렸다는 듯이 방패가 철벽의 파도처럼 잭스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리고…….


 쾅!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투창처럼 쏘아진 잭스의 발차기에 레오나는 방패 뒷면에 얼굴 도장을 찍으며 저만치 날아가야 했다. 행동과 판단력은 옳았으나 힘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패인이었다. 다시 한 번 땅바닥을 뒹굴게 된 레오나는 완전히 뻗어버린 듯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코가 깨진 탓에 입과 코 주위가 온통 피범벅인 그녀의 얼굴은, 온몸의 상처와 더불어 거의 시체의 모습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이쯤되면 잭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나, 소아를 학대하는 행위에서 쾌감을 느낀다는 변태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레오나가 완전히 뻗어버리자 잭스는 느슨하게 붙잡고 있던 가로등을 턱 하고 어깨에 걸쳤다. 그걸 신호로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치유 전문 사제들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와 레오나를 데려갔다. 레오나가 상당히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척척 레오나의 상태를 진단했는데, 잭스의 수업이 시작되었던 몇 주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첫 수업 때 레오나가 다진 고기 꼴이 된 모습을 봤을 때 여사제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비명을 지르거나 기절하거나. 상처라고 해봤자 골절상이나 베인 상처밖에 봐오지 않았던 치유 담당 사제들이 레오나처럼 종합적으로(?) 박살난 모습을 봤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수많은 비명과 눈물, 몇 번이나 까무러치는 여사제들을 포함해 여기저기 굴곡 많은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그녀들은 비로소 잭스의 수업에 ‘적응’을 할 수가 있었다. 그녀들의 표정에 더 이상 공포는 없었고, 대신에 다급함만이 있었다.


 애를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는 원망도 뒷담화도 없이 그녀들은 아예 이송과 동시에 진단을 병행했다. 최대한 빨리 레오나를 치료해서 다음날 그녀가 멀쩡히 저 대련장에 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레오나를 위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다음날 시간이 되면 잭스는 레오나의 몸 상태가 어떻건 간에 대련장으로 불러낼 터이고, 레오나 역시 다른 사제들이 아무리 어르고 말려도 부득부득 기어서라도 나갈테니까. 잭스도 독했지만 레오나도 그에 못지않게 고지식하고 독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치유 사제들의 의견은 점차 그런 쪽으로 굳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나마 호의적인 시선이었다. 그녀들은 적어도 직접 레오나와 잭스의 대련을 지켜보고, 또 옆에서 보조해 왔으니까. 그러나 잭스와 레오나의 대련을 직접 볼 기회가 없거나 이쪽과 연관이 없는, 즉 이 비밀스러운 대련의 배경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다른 사제들 사이에서의 여론은 최악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솔라리는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오직 태양만을 숭배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고지식한 몇몇 원로들의 주장이 덧붙여져서 잭스의 평가는 바닥을 기는 정도가 아니라 바닥을 뚫고 내려갈 정도였고, 그 잭스를 천거한 대신관 헬레나 역시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는 실정이었다. 결국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헬레나가 세 번째로 잭스를 찾아왔다.


 레오나와의 수업이 시작된지 꼭 두 달하고 열흘 만의 일이었다.



***



 그날 밤.


 헬레나는 방에서 솔라리의 고급 전술 관련 서적을 잔뜩 쌓아놓고 읽고 있는 잭스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 내려갔소?”


 그것이 잭스가 헬레나에게 밑도 끝도 없이 툭 던진 첫마디였다. 잭스 역시 주변 분위기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기에 레오나에게 행하는 수업을 빙자한 고문(…)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평판을 깎아내릴지 정도는 알았기 때문이었다. 헬레나는 말을 꺼내려다 김이 빠진건지 할 말을 잃은건지 미묘한 표정으로 잭스를 바라봤다. 가차 없이 핵심을 찔러오는 잭스의 대화 습관은 그와 오랫동안 알고지낸 사이인 헬레나도 가끔 머뭇거리게 할 정도였다. 물론 머뭇거리기만 할뿐이었다. 그녀 역시 잭스 못지않게 가차 없이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대신관과의 친분을 이용해서 어리고 유망한 솔라리 사제를 마음대로 학대하면서 자신의 변태적인 성욕을 맘껏 누리고 있는, 태양빛을 받을 자격도 없는 망나니 용병. 당신 조금만 있으면 자다가 칼 맞을지도 몰라요.”

 “세 가지는 맞았군. 대신관과 친분이 있고, 어린 소녀를 학대하고, 망나니 용병이고.” 잭스는 책장을 팔락팔락 넘기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있다가 변사체로 발견되거든 적당히 묻어주고, 무덤에 술이나 잔뜩 부어주시오. 귀한 걸로.”

 “저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농담하는 거 아니오. 잡담하러 온거면 그대로 돌아가서 발이나 닦고 주무시구려. 밤이 깊었소.”

 “잭스!”


 반쯤 뚜껑이 열린 헬레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으르렁거리자 잭스는 정말 마지못해 한다는 듯이 책장을 탁 덮었다. 그가 읽고 있던 책은 <솔 루나 히(Sol`lunar-Hi) 공격 진형과 방어 진형의 유연한 변형에 관한 고찰>이라는 고급 전술 서적이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죄다 솔라리 고어로 쓰여 있어서 내로라하는 사제들도 끙끙거리면서 읽는 책이었다. 그걸 훌훌 읽어 넘긴다는 것은 잭스가 이미 솔라리 고어 정도는 수준급이라는 것과 동시에, 그의 전술 전략에 대한 조예가 얼마나 깊은지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가 빈정거리듯이 말한 ‘망나니 용병’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모습이었다.


 “좋소.” 잭스가 딱딱거리면서 말했다. “어디 진지하게 얘길 나눠보지. 헬레나, 당신은 레오나에게서 대체 뭘 보고 내게 맡긴거요?”

 “그야 재능과 자질이죠!” 헬레나가 기가 막힌다는 듯 톡 쏘아붙이며 잭스 맞은 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 아이는 솔라리에 들어오기도 전에 자기 힘으로 태양의 힘을 각성했어요. 태양의 힘은 재능있는 솔라리 사제들도 오랜 시간동안 수련을 거쳐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결실 그 자체. 그걸 그 어린 나이에, 심지어 어떤 교육도 없이 본능적으로 태양의 힘을 각성한 거예요. 이건 유구한 사 솔 쉬르의 역사를 뒤져봐도 정말 희귀한 경우에요. 이런 재능을 지닌 아이가 챔피언이 될 수 없다면 누가 될 수 있겠나요? 설마 그 아이마저도 당신 눈에 차지 않다는 건 아니겠죠, 잭스?”

 “그건 아니오. 확실히 당신 말대로 재능은 있소. 나이에 비해 병장술도 상당히 뛰어나고. 그 태양의 힘인지 뭔지에 대한 응용력도 높아서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쓰임새를 보여준다오. 방패를 순간적으로 빛나게 해서 상대방의 시야를 차단한다던지, 원리는 모르겠지만 그 힘을 몸에 꽉꽉 채워 넣어서 순간적으로 방어력을 높인 뒤 사방으로 터뜨린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지.”

 “그럼 왜……!”

 “하지만 헬레나.” 잭스가 조용히 말했다. “레오나는 절대로 챔피언이 되어서는 안되오. 아니, 아니지. 챔피언이 되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아예 무기를 들지 않는 편이 좋소. 거 내가 하도 박살을 내놔서 치유 사제들이랑 안면 좀 텄을텐데, 차라리 그쪽으로 진로를 바꿔보길 권하는 바이오.”

 “……….”


 팔걸이 위에 올려진 헬레나의 두 주먹이 스스로를 박살낼 양 꽉 움켜져 부들거렸다. 여기가 신전 내부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는 흉기가 되었을 것이요 입에선 욕이 한 바가지는 쏟아졌을 터였지만, 그녀의 마지막 이성 한 조각이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오만 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실상 헬레나 입장에선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재능이 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잔뜩 레오나를 추켜세워 주다가 그런 아이는 챔피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니 이 무슨 거지같은 논리 전개인가. 게다가 마지막에 빈정거리는 태도도 상당히 거슬리긴 마찬가지였다. 주위에서 아무리 많은 비난이 쏟아져도, 심지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장로들 몇몇에게서 쓴소리를 들을 때에도 ‘아무렴 그 잭스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레오나를 굴리는 거겠지’ 하며 그를 옹호해줬던 헬레나였다. 그런데 저 빈정거리는 태도는 뭔가. 자신의 믿음을 조롱하는 듯한 잭스의 태도에 헬레나는 그의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짧고 무거운 침묵. 먼저 침묵을 깬 쪽은 잭스였다.


 “화났나보군.”

 “그럼 화 안난 걸로 보이나요? 그것도 모르면 당신은 정말 미련한 거예요.”


 분해서 눈물까지 흘리는 헬레나의 모습을 보자 잭스가 머쓱한지 큼큼 헛기침을 하고선 다시 말을 이었다.


 “미안하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했던 말을 철회하진 않겠소. 챔피언으로는 다른 사제 중에서 생각해보시오. 그래…내 생각에는 다이애나가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그 아이도 레오나의 재능에 꿀리지 않는 재능을 가진 아이요.”

 “무슨 챔피언 후보 바꾸는게 손바닥 뒤집는 건 줄 아나요?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당신 말만 듣고 바꿀 순 없어요! 대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예요? 그렇게 레오나를 칭찬하면서도 그 아이는 챔피언에 어울리지 않는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요!”

 “노파심에서 말하는 건데,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요?”

 “네?”

 “정말 모르냐는 말이오.”

 “……?”

 “…정말 모르나보군.” 잭스는 가면의 미간 부근을 짚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일이 꼬일 때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알겠소. 왜 내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려주지. 내일 대련에 참관하시오. 단,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아무래도 내일 결판을 내야 할 듯 싶소. 당신과도, 그리고 레오나 그 아이와도 말이지.”


 헬레나는 대체 무슨 소리냐며 다시 성을 내려 했지만 잭스가 손바닥을 휙 내밀며 그녀의 말을 막고선 방문을 가리켰다. 쉬어야겠으니 나가라는 뜻이었다. 그냥 여기서 알려주면 좋겠건만. 잭스의 고약한 성질 중 하나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대화를 끊어버린다는 것과, 이렇게 궁금해 미칠 지경인 의문을 던져 주고서는 말을 아낀다는 것이었다.


 잭스가 가면을 툭툭 치며 헬레나를 빤히 바라보자, 결국 그녀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잭스가 타인 앞에서 절대로 가면을 벗는 일이 없다는 사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일을 별 무리 없이 지내려면 지금 가서 자 둬야 한다는 사실도 헬레나가 물러서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녀는 대신관이었고, 당연히 바빴다. 가뜩이나 내일은 더 바빴다. 그런데 또 시간을 쪼개서 잭스의 싸움박질이나 보러 가야 한다니. 헬레나는 방문을 나서기 전에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잭스에게 주먹감자를 날리는 걸 잊지 않았다.


 물론, 잭스는 픽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도발을 간단히 무시할 뿐이었다.

























최신화 써야하는데 쓰기가 너무 귀찮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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