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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외전: 가로등과 달과 파도(2)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5 개
조회: 2941
추천: 13
2016-09-11 01:17:18

 ***



 [저 오늘 쉬는 날인거 몰라요, 잭스? 꼬박 이틀 밤을 샜다고요!]

 -…….

 [어머나, 당신이 왠일로 아부를 다? 아…후후, 물론 그렇죠. 하루가 멀다 하고 연구실에 처박혀있는 멘드레이크보다야 발로 뛰고 직접 재료와 정보를 모으는 제 쪽이 더 바람직한 소환자이자 마법 연구가의 표상이죠.]

 -…….

 [어머, 정말이에요? 인어? 자신을 파도소환사라고 했나요? 자, 잠깐. 설마 자기를 마라이의 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맞다고요? 그 인어가 월석을 찾으러 나왔다고요? 정말로요?]

 -…….

 [어떤 아이가? 어떤 아이가 월석을 만들었다고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음, 인어가 그걸 월석이라고 했다고요? 그것의 기운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고……? 그럼 정말 그 아이가 월석을 만들었단 말인가요? 말도 안돼요! 그 강력한 마법의 보석을 어떻게 아무런 장비도 없이……. 네? 달빛을? 달빛을 받아서…돌에 집어넣었다고요? 설마? 마력에서 빛을 뿜는게 아니라 빛에서 마력을 만들어냈다……? 잠깐, 잠깐만요 잭스. 그 아이를 지금 보고 싶은데…네? 찾으러 가야 한다고요? 어휴, 정말! 그럼 그 인어가 있다는 해변의 순간이동 좌표라도 좀 불러줘요.]

 -…….

 [궁시렁거리지 말고 빨리 계산해서 불러줘요. 거기 지도 있을거 아니에요? 솔직히 빌지워터쪽 소환사들보다야 당신 계산이 훨씬 믿음직스럽거든요. 그쪽 출신 소환사들에게 일을 맡겼다 데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서…….]

 -…….

 [좋아요, 전 필요한 물품 챙겨서 먼저 그 인어가 있는 곳으로 가 있을테니까 당신은 그 월석 만드는 아이를 찾아서 데려오세요. 아,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내 제자로 만들어야지! 절대 저번처럼 멘드레이크에게 뺏기지 않을거야, 후후후…….]

 -…….


 머리를 산발한 채 눈 밑 가득 음영을 드리우고 히죽거리며 웃는 베사리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마귀할멈 그 자체였다. 일단 베사리아의 협력은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자, 잭스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통신용 수정구를 내려놨다. 겨우 아침 7시 반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미안하오, 지부장.”


 잭스는 뒤를 돌아보며 전쟁학회 빌지워터 지부의 책임 소환사-통칭 지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쥐를 연상케하는 긴 수염을 가진 남자는 연신 손바닥을 비비며 실실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원로 챔피언이신 잭스 님이 쓰신다는데 얼마든지 내어 드려야죠, 그것도 베사리아 콜민예 상임의원님께 긴급한 용건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는데!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옷은 어떠십니까? 때마침 필트오버에서 공수해 온 그, 뭐더라…네, 마법 공학 세탁기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죠. 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빨래에 탈수에 건조까지 되는 놀라운 마법 공학 기계입니다. 사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이 기계를 구입하는 데에 들인 노력과 비용이…….”


 잭스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빌지워터 지부장에게 괜찮은 대접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나미의 닦달 아닌 닦달 후 밤새 걸어서 지부에 온 잭스를 냉큼 맞아주었고, 어느 정도 휴식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것뿐만 아니라 옷도 말려주고 군말 없이 베사리아와 통신 회선까지 열어주었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잭스도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잭스 역시 베사리아와 마찬가지로 이쪽 소환사들을 그리 좋은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다. ‘자르반 4세 리그의 심판 살인미수 사건’이란 대형 사고를 터뜨린게 다름 아닌 이쪽 출신의 견습 소환사였으니까. 그 외에도 학회의 금융 비리 쪽으로 열에 아홉은 빌지워터 소환사들이 관련되어 있으니, 그쪽에서 사건 하나 터질 때마다 베사리아의 짜증과 푸념(그리고 가끔씩 폭력)을 들어줘야 하는 잭스의 시선이 당연히 고울 리는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을 통해 베사리아와 연줄을 대어보려는 지부장의 시도를 둥그스름하게 넘긴 후에 잭스는 빌지워터 지부를 나왔다. 아침 햇살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휴, 저분은 정말 말이 많으시네요! 인간분들은 원래 저렇게 말이 많으신가요? 와아, 이게 육지에서 보는 햇살……!]

 “…….”


 그리고 또다른 수다쟁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나미였다. 잭스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조그마한 소라 껍데기 하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눈곱만한 파란색 보석이 박혀 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바닷가에서 발에 채일 정도로 볼 수 있는 소라껍데기. 나미의 목소리는 바로 거기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잭스가 떠나기 전 나미가 선물(잭스에겐 전혀 달갑지 않은)로, 일종의 무전기 겸 카메라였다. 잭스가 시가지로 간다고 하자 육지 구경이 소원이라고 반 강제로 달아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잭스는 정말 된통 재수 옴 붙었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한시라도 빨리 아이를 찾기 위해 걸음을 빨리 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나미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자기 나이에 애들처럼 소라껍데기나 목에 매달고 다니는게 영 쪽팔렸기 때문이었다.


 [어머나, 저게 빵이라는 거군요! 신기한 갈색…게다가 모락모락 김이 나네요! 멋진 잭스님, 저거 한번만 사서 콕 찔러보시면 안돼요? 손가락이 폭 들어갈 정도로 부드럽다고 들었어요!]

 “미안하지만 저건 바게트 종류라 전혀 부드러운 종류의 빵이 아니라오. 오히려 이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지.”

 [그래요? 빵이란 것도 참 여러 종류가 있네요……. 그런데 왜 인간 분들은 그렇게 먹기 힘든 걸 드시는거죠? 전 먹기 힘든건 질색이에요! 그래서 전 게 종류는 싫어하는 편이에요. 장로님은 먹을 걸 가리면 안된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잭스는 죽을 맛이었다. 옆에서 얘기하는 거라면 무시하거나 귀를 막아버리면 그만인데, 이건 목소리가 머릿속에 직접 울리니 무시할 수도 없고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나미는 보석을 통해 보이는 것은 사람이건 동물이건, 길가에 굴러다니는 쓰레기건 뭐건 닥치는 대로 잭스에게 질문을 해댔다. 또 질문을 안 할 때는 육지의 이런게 신기한데 자기는 이렇게 느낀다는 둥 저렇게 느낀다는 둥, 자기 얘기를 쉴새없이 해대니……. 예견된 일이었겠지만, 결국 잭스의 인내심은 가문 날 저수지처럼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아, 멋진 잭스님! 저건 뭔…….]

 “그만하시오.”


 잭스가 이를 갈며 낮게 으르렁거리자 나미가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지금껏 월석인지 뭔지를 찾느라 애를 쓴 그대의 노력을 존중해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은 못 참겠소. 지금부터 아이를 찾는 일과 관련되지 않은 말을 단 한마디라도 하는 날엔 도움이고 뭐고 다 때려치울테니 그리 아시오. 알겠소?”

 […….]

 “알아들은 걸로 알겠소.”


 잭스는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약간은 ‘그래도 좀 심하지 않았나’하는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수다를 끊임없이 듣느니 차라리 죄책감 좀 느끼고 조용한 지금이 몇 십 배는 더 나았다.


 아이를 찾는 일이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잭스는 이런 빈민가 아이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나이 좀 있어보이는 부랑아들에게 슬쩍 이러이러한 아이를 찾고 있다고 정보를 흘리며 약간의 현상금을 걸면 그만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금화 한 닢의 현상금을 걸고 수소문을 하기 수차례,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챔피언 아저씨, 아저씨가 말하는 애 찾았는데요.”

 “안내해 보거라. 돈은 그 다음에 줄테니.”


 잭스가 확인차 금화 한 닢을 꺼내들자 얼굴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개중에는 그가 전쟁학회의 챔피언 잭스라는 걸 알고 열광하는 부랑아들도 있었다. 이 아이도 그 중 한 명이었다…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무료로 해준다고 하진 않았다.


 잭스가 아까 입 딱 다물라고 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용해서 좋긴 했지만, 어째 좀 아까의 죄책감이 조금씩 크기를 키워나가며 잭스의 양심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결국 잭스는 미간을 매만지려다 애꿎은 가면만 문지르고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미 양, 듣고 있소?”

 […말해도 되나요? 저, 원래 운반자님과 관련 없는 건 얘기하지 말라고 하셔서…….]


 뽀골뽀골 거품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나미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리자 잭스는 피식 웃었다. 이 얼마나 순진무구한 아가씨인가.


 “아깐 그대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하니 골치가 아파서 잠깐 역정을 냈소. 내 사과하지. 이제 말해도 좋소. 단, 아까처럼 정신 쏙 빼놓을 정도로 빠르게 말하진 말아줬음 좋겠소.”

[아…네! 감사합니다, 멋진 잭스님!]

 “…가능하면 그 멋지다는 말과 님이라는 말도 빼줬으면 좋겠소만.”

 [네? 하지만 잭스 님은 멋지신걸요! 전 자매들 중에서도 말이 많아서 언니들에게 항상 혼나기 일쑤였어요…그런데 잭스 님은 싫으신데도 꾹 참아주셨잖아요.]

 “결국 화냈잖소.”

 [그래도…제 노력을 존중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언니들은 일족을 대표할 파도 소환사가 그러면 안된다고 막 혼내기만 했었는데……. 잭스 님은 너무 상냥하세요. 뭐랄까, 음, 네! 꼭 조개같아요. 겉은 단단한데, 속은 부드러운 조개…아, 죄송해요. 말 많이 하면 안된다고 하셨지…….]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잭스는 나미의 목소리가 묘하게 수줍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나미는 수줍어하면서, 수면 가까이 따뜻한 곳에서 나른하게 헤엄치며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지느러미는 기분 좋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잭스에게 상당한 호의가 있는게 분명했지만, 멀리 떨어져있는 잭스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요.”


 꼬불꼬불하고 더러운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얼마나 걸었을까, 아이가 다 쓰러져가는 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흠.”

 “잠깐만요, 돈은 주셔야죠!”

 “내가 확인할 때까지 현상금은 무효다.” 잭스가 문 앞을 막아서는 아이를 밀쳐내며 말했다. “거 냄새 한번 지독하군. 안 걸릴 병도 걸리겠어.”

 [세상에, 바닥의 물 좀 보세요. 인간 분들은 이런 물에서 사는거에요?]


 잭스가 가로등으로 툭 치자 문은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다음 순간 잭스는 자신의 행동을 곧바로 후회했다. 안면에 확 풍겨오는 역겨운 냄새 때문이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고인 물에서 나는 썩은내 사이로 익숙하면서도 기분 나쁜 냄새가 그의 코를 찔러왔다. 환자의 냄새였다. 그것도 죽어가는 사람의.


 “누, 누구세요?”

 “……!”


 예의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잭스는 등 뒤로 금화 한 닢을 튕겼다. 되도록 멀리. 뒤에서 금화를 주으며 욕지거리를 하는 부랑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고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코를 마비시킬듯한 환자 특유의 상처 곪는 냄새와 더불어 조그맣게 흐느끼는 소리가 그의 귀를 간질였다. 어둠 속에서 어제 만났던 아이가 흐느끼고 있었다.


 “아, 아저씨? 용병 아저씨에요?”

 “그래.” 잭스는 짤막하게 말하며 낮게 속삭였다. “저 아이가 당신이 말하는 그 ‘운반자’요, 나미 양.”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희미한 빛이 작은 집 안에 퍼져나갔다. 아이가 배개 밑에서 꺼낸, 예의 그 월석이었다.


 “…이런, 아픈 어머니가 있다는게 진짜였군.”

 [세상에, 어쩜……!]


 희미한 빛에 밝혀지는 집(이라고 해봤자 단칸의 움막 수준이었다) 안의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눅눅하고 더러운 침대 위에 누워 겨우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한쪽에선 상한 우유와 빵에 파리가 들끓고 있었고 마루나 기둥은 죄 썩어있어서 사실상 붕괴 직전이었다. 벽돌 난로에는 언제 불이 켜진 적이 있었냐는 것처럼 담쟁이덩굴 같은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이……! 엄마가, 엄마가 죽어요! 아저씨가 준 돈으로 약 샀는데, 사서 엄마 드렸는데, 엄마 죽어요……! 아저씨, 제발! 엄마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아저씨…….”


 아이가 거의 넋이 나간 것처럼 몸을 일으켜 잭스에게 매달렸다. 아이의 발치와 침대 주변에 허연 약봉지와 이름 모를 알약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아이 딴에는 엄마를 위해서 약을 사왔다 하나, 언뜻 보기에도 침대에 누운 여자의 상태는 약으로 호전되긴 힘들어보였다.


아이와 여자는 버림 받은 것이 분명했다. 빌지워터에서도, 그리고 이 뒷골목에서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아이가 겨우 어제 만났던 잭스에게 이토록 절박하게 매달리겠는가. 이곳에 사람이 다녀간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에도……. 아이가 약이라고 받아온 것도 뒷골목 야매 의사의 엉터리 처방일 확률이 높았다. 설령 제대로 된 약이라 해도 이곳의 위생 상태를 보자면 전혀 효과가 없을게 분명했다. 잭스는 손을 뻗어 침상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여자의 맥을 짚어보았다.


 “젠장…….”


 그는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의술을 배운 그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여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맥이 너무 가늘었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듯한 팔은 앙상하기 그지없었다. 이 여자를 살리기 위해선 약이 아니라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법적 치료가 필요했다, 그것도 강력한 것으로…….


 [잭스 님, 그분을 제게 데려와 주세요! 어쩌면, 어쩌면…그분을 살릴 수 있을거에요!]

 “…알겠소!”

 잭스는 급박한 상황에서 시시콜콜하게 이유를 따질 정도로 추진력이 없는 자가 아니었다. 그가 듣기에 나미의 목소리엔 확신이 차 있었다. 여기 있는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뻔했고, 그는 그걸 즉시 실행하기 위해 침대 쪽으로 등을 내밀었다.


 “시간 없으니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어머니와 같이 업혀라, 어서!”

 “네, 네? 갑자기 왜…….”

 “어머닐 죽일 셈이냐? 뭐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니더냐!”


 잭스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듯 아이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곧 잭스의 넓은 등엔 어머니와 아이가 업혔고, 잠시 뒤에 잭스는 가로등으로 그들을 등에 단단히 고정시키면서 지붕과 지붕을 날듯이 뛰어가고 있었다.



***



 해변에선 이미 나미가 물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가 인어를 보고 놀랄 새도 없이 모래사장에 사뿐히 착지한 잭스는 지체 없이 아이의 어머니를 나미의 앞에 내려놨다.


 “운반자님, 그 빛나는 돌을 주세요!”


 여태껏 월석을 손에 꽉 쥐고 있던 아이는 너무 놀란 나머지 반쯤 얼이 빠진 얼굴로 월석을 내밀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본 나미는 말할 줄 아는 커다란 물고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낚아채듯 월석을 받은 나미는 즉시 돌을 여자의 가슴팍에 놓더니 지팡이를 들어올리며 뭔가를 웅얼웅얼거렸다. 그러자 나미 주위에 떠 있던 물에서 마치 실처럼 가느다란 물줄기가 튀어나와 여자의 몸을 고치처럼 휘감기 시작했다. 극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듯 나미의 얼굴은 어느샌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침내 가느다란 물줄기가 여자의 온 몸을 감싸자, 나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지팡이로 월석을 살짝 건드렸다.


 화악-!


 돌이 순간적으로 확 빛났다고 느껴지는 순간, 돌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가느다란 물줄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마치 은으로 만든 고치 같다-잭스가 그렇게 생각하는 여자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빛나는 물줄기는 여자의 몸으로 스며들듯 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엄마!”

 “잭스 님, 이 분의 상태를 좀…….”


 잭스는 서둘러 여자의 맥을 짚었다. 다행스럽게도 최악의 상황은 면한 듯 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혈색도 상당히 좋아져 있었다.


 “음, 아까보단 훨씬 나아졌소.”

 “후우, 다행이에요오…….”

 “나미 양!”


 잭스에게서 희망적인 말을 듣자마자 나미는 어젯밤의 그것처럼 모래 위로 볼썽사납게 떨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잭스가 서둘러 허리를 받쳐줬기에 모래밭에 얼굴도장을 찍는다는 사태만은 면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허리를 받치고 있는 자세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나미는 잭스의 셔츠를 꼭 붙잡고 힘없는 미소를 띄었다. 그녀의 눈은 자기 힘으로 꺼져가는 생명 하날 구해냈다는 만족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떻게 한 거요?”

 “이게 월석이 우리 마라이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에요. 저도 잘 모르지만 월석의 마력을 이런 식으로 다루면 다친 자매들을 치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육지에서 사용해 본 건 처음인데…다행히 잘 통해서 너무 기뻐요.”

 “아저씨, 인어님! 우리 엄마 그럼 산거에요?”

 “아직…너무 쇠약하셔서 그리 많은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상태는 호전되셨을 거에요.”

 “그 정도면 되었소. 곧 전쟁학회에서 누군가 올 터이니……. 그녀라면 이 여자를 어떻게든 치료해줄 거요.” 잭스는 다시 아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큰 도시의 종합병원 정도는 데려다 줄 수 있을게다.”


 아이는 엄마가 살 가능성이 있다는 기쁨이 바르르 몸을 떨며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이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나고 고요가 찾아왔다. 여자는 규칙적으로 숨을 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아이는 엄마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잭스는 말없이 그 가족을 바라봤다. 그리고…나미는 잭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홍옥같은 그녀의 눈망울은 잭스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멋진 분이야.


 나미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외모가, 겉모습이 멋있다는게 아니었다. 나미는 그의 목에 걸린 소라를 통해 이 도시를 봤다. 이 도시의 사람들을 봤다. 그녀의 눈에 비친 육지는, 바다 속에 있는 그녀의 고향에 비교하면 끔찍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서로를 속이고 배신했다. 일부가 잘 살고 일부가 가난하다는 건 그녀 입장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동족이 죽어가는데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동족을 죽음 속에 내동댕이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잭스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는 처음 보는 아이와 그 부모를 망설임 없이 구해줬다.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게다가 자신 역시 이 분에게 도움을 받고 있지 않는가……. 겉은 거친 말로 자신을 감싸고 있지만, 속은 곤란에 처한 자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냥한 인격의 소유자. 그리고 그 상냥함을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분. 나미가 바라보는 잭스는 그러했다. 


 그래, 어쩌면 이분이라면…….


 “잭스 님.”

 “왜 그러시오?”

 

 나미는 잭스를 올려다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를 올려다보는 나미의 눈빛이 묘하게 몽롱했다.


 “실은 저 지금, 잭스 님에게 할 말이…….”


 휘이이이이이


 나미가 촉촉하게 젖은 시선으로 잭스를 바라보며 뭐라고 말을 이으려 했지만, 그 말은 갑작스런 누군가의 등장으로 다 이어지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언뜻 보라색 기둥이 확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아이는 하도 놀라 내성이 생겨서 그런지 그냥 ‘그런가보다’하는 표정이었고 나미는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산통을 깨뜨린 범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범인이 여성에,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미의 얼굴에 부끄러움 대신 경계심이 서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타난 여성은 베사리아였다. 그리고 잭스의 품에 안겨 있는 나미를 보는 그녀의 표정도 그리 밝지는 않았다.


 “어서오시오 베사리아, 그리 늦진 않았군.”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준비하는데 좀 더 시간이 걸려서 말이죠.” 베사리아가 슬쩍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런데 좀 더 늦게 올 걸 그랬나요? 제가 방해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무슨 소릴 하는…….”

 “잭스 님, 저 인간 여자분은 누구죠? 누군데 잭스 님께 저렇게 건방지게 말하는거에요?”


 나미가 잭스의 품에 더 파고들며(품에 안겼다기보단 거의 포옹 수준이었다) 경쟁자를 보는 눈빛으로 베사리아를 노려봤다. 건방지다는 소리에 발끈했는지 어쨌는지 그녀의 표정도 나미와 똑같이 사납게 변했다.


 “당신이 말했던 마라이의 인어로군요. 일족의 대표인 파도 소환사가 초면에 저리도 건방지다니, 마라이의 이름에 먹물을 뿌리는 건 아닌지…….”

 “뭐라고요, 지금 당신이 뭔데 마라이의 이름을 모욕하는거에요? 잭스 님, 저 여자 도대체 누구에요?!”

 “잭스, 그 인어의 미끈거리는 몸이 그리도 좋나요? 당신이 제게 오라고 했잖아요. 여기 상황을 설명해 주셔야죠.”

 “잭스 님, 제 질문이 먼저에요!”

 “잭스, 설마 제 질문을 무시하는건 아니겠죠?”

 “………………….”


 도대체 이들이 초면에 왜 싸우는지 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는 잭스는 골치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낄 틈이 있어야 중재를 하던지 말던지 할텐데, 그로서는 차라리 전쟁터에서 상대방 갑옷 틈새에 칼 찔러 넣는게 백만 배는 더 쉬울거라는 생각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어느샌가 잭스의 품에서 빠져나온 나미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분노와 질투가 범벅이 된 표정으로 지느러미를 마구 휘둘렸다. 물론 나미 주위엔 예의 그 물덩이가 작은 풀장을 형성하고 있었고, 당연한 결과라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잭스는 또다시 바닷물을 한 바가지나 뒤집어써야 했다. 그것도 연속으로. 베사리아와 나미의 말싸움은, 나미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분에 못이겨 마구 휘두른 지느러미에 잭스가 뒤통수 제대로 맞고 쓰러지고 나서야 겨우 일단락이 났다.


 어쨌든 이 날 부로 아이는 전쟁학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것도 표면상으론 견습 소환사지만 파고들면 무려 베사리아의 직전 제자 신분으로 말이다. 베사리아 왈, 빛에서 마력을 이끌어내는 이 아이의 능력은 그 옛날 대가 끊겼다고 알려진 마법사 가문의 특징이라고. 나미 입장에선 이 가문의 사람들이 바로 운반자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사 가문 특유의 폐쇄적인 성향에 겹쳐 룬 전쟁이라는 시대적 변수를 겪으며 이 마법사 가문은 현재 와서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폭삭’ 망해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어찌어찌 뿔뿔이 흩어진 방계 혈족의 후손들 중에서 기적적으로 가문의 힘이 나타난게 바로 이 아이였고. 참고로 베사리아는 단명된 혈계 마법을 쓸 수 있는 아이를 만났다고 문자 그대로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나미 쪽의 문제는 전쟁학회가 개입하는 걸로 해결됬다. 월석을 만들 수 있는 핵심적인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외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아이가 당장 마라이 인어들이 100년 간 사용할 수 있는 월석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이가 그런 월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때까지 전쟁학회에서 지속적으로 월석 대체품을 마라이 인어들에게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전쟁학회는 그 대가로 나미가 1년 후부터 리그의 챔피언으로서 봉사하도록 요구했다. 1년이란 유예기간을 준 것은 전쟁학회가 준 월석 대체품이 인어들의 마을에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잭스는 학회의 이 결정을 매우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그는 왜 잘 살고 있는 인어들을 학회 정치판에 끌어들이냐고 베사리아를 구박했다), 아무리 잭스의 부탁이라면 왠만한건 다 들어주는 베사리아라 할지라도 학회 전체의 결정을 뒤집을 순 없었다.


 그렇게 마라이의 파도 소환사는 리그에 합류했다. 시간이 지나며 잭스는 나미를 그저 예전에 만났던 인어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나미는 리그에 정식으로 합류할 때까지 그를 향한 연정을 고이고이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미의 그 연정은 훗날 ‘잭스 쟁탈전’이라는, 무시무시한 여자들의 피말리는 혈전의 방아쇠가 되지만……아직은 너무 먼 이야기였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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