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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개척지인 트루히요에 대해서

조선한길
댓글: 7 개
조회: 2283
2007-02-21 15:39:58


전 이리스서버 에스파냐유저인 조선의한길로입니다.

얼마전 이리스의 트루히요가 무장/상업2만을 달성했는데요..

트루히요개척을 위해 나름대로 애을 썼더니 트루히요에 남다른 애정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어제는 과연 트루히요가 실제로 어떤곳인지 알아봤더니 검색결과 다음과 같았습니다.



남아메리카 지배한 신비한 황금문명1 학습자료
2004/06/01 00:59


원문 http://blog.naver.com/mydals/140002920418



◆ 잉카보다 5백년 앞선 고대국가, MOCHE


최근 남아메리카의 대표적 고대문명 잉카보다 5백년 앞선 신비의 문명 ‘모체’(Moche)가 한꺼풀 더 베일을 벗었다. 놀랍게도 모체는 잉카보다 앞서 나타났지만 어떤 면에서는 잉카보다 뛰어난 문명이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집트 피라미드와 아즈텍 유적, 그리고 스톤헨지에 견주는 모체의 실체는 무엇일까. (2001년 자료임-지랄야마 주)


[모체문명의 수도 모체에 위치한‘후아카 드라 루나’(달의 제단)를 발굴하는 모습. 이번 발굴로 잉카보다 5백년이나 앞선 고대국가 모체의 베일이 벗겨졌다.]



◆ 국가 기틀 갖춘 최초의 페루문명

모체문명은 어디에서 기원했을까. 민족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체는 마야와 같은 중앙아메리카의 민족들과 관련이 있다기보다 오히려 안데스지역 자체에서 발달한 독자적인 문명이라고 봐야 한다. 이것은 건축이나 도기 분야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으로 알 수 있다.


[크림색 터번을 쓰고 이를 드러낸 사람 모양의 도기. 모체의 도기는 색채가 화려하고 표현이 다양하다. 특히 도기의 빨간색과 크림색은 살리나르문명을 전승∙발전시킨 것이다.]



모체는 실제로 이전 세 문명의 계승자다. 먼저 차빈문명(BC 1200년-BC 500년)에서 발달된 농경기술뿐만 아니라 엄니와 막대기를 가진 신의 개념을 물려받았다.

다음으로 살리나르 문명(BC500년-BC 200년)은 모체의 도기에 빨간색과 크림색을 불어넣었다.

끝으로 비루 또는 칼리나조 문명(BC 300년-200년)으로부터는 아도비 벽돌(굽지 않은 진흙 벽돌)로 만든 제단인 후카스와 같은 거대 건축물 체계를 전승했다.

모체는 이들 문명을 계승해 진정한 도시와 조직화된 국가를 창출했던 최초의 페루문명이었다. 권력이 종교적 믿음에 근거한 신정사회였던 모체는 서력 기원이 시작되면서 탄생해 서기 850년까지 이어졌다.

모체는 서기 300-600년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해(도시 모체가 수도가 됐다) 1천km나 되는 페루 북쪽해안을 지배했다. 국민이 적어도 1백 만명이었던 모체는 안데스산맥에서 사막계곡으로 농업용수를 대는 놀라운 관개수로기술을 터득했다.



◆ 도굴업자가 알린 ‘시판의 군주’

모체문명은 1899-1900년 독일의 고고학자 막스 울레에 의해 처음 전세계에 알려졌다. 잉카 문명이 16세기 초 황금이 번쩍이는 나라인 엘도라도를 찾아 신대륙을 찾아온 스페인 탐험가들에 의해 페루 안데스지역에서 발견되면서 유명해진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잉카 이전에 찬란했던 문명은 겨우 1백년 전부터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더욱이 진지하게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수십년 전에 불과하다.


[세로 블랑코(하얀 산) 기슭에서 발견된 후아카 드라 루나. 사막이 엄습하기 전 이곳은 모체의 수도였다.]


모체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87년 도굴업자들이 페루 북부 시판 근처의 유적을 파헤쳐 금∙은으로 도금된 대량의 유물을 꺼내 시장에 내다 팔면서부터다. 이때 시판의 매장 유적을 발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특히 고분들 중 하나에서 금으로 화려하게 세공된 장식 머리띠와 홀, 그리고 목걸이가 발견됐다. 금 장식머리띠는 모체사회에서 신의 권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고분의 주인공은 왕족으로 추정됐다.



[후아카 드라 루나 발굴 동안 사용된 진입로.]

‘시판의 군주’ 주위에는 9명의 부인이 사후에도 그를 수행하라는 의미에서 함께 매장됐다. 이런 매장풍습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을 떠오르게 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시판의 남쪽 트루히요 지역이 발굴 목표로 떠올랐다. 페루 고고학자 산티아고 우케다와 프랑스 고고학자 클로드 쇼샤가 트루히요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곳(모체의 수도였다)에 위치한 유적 ‘후아카 드라루나’(달의 제단, 이하 후아카)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 후아카
피라미드로 잘못 불리는 후아카는 여러개의 제단이 계단식으로 쌓아 올려진 안데스지역의 고대 건축물이다. 원래 후아카는 잉카나 모체에 나타나는 독특한 종교적 개념이다. 일반적인 것을 초월하는 존재를 뜻한다. 예를 들면 초인, 만년설에 뒤덮인 봉우리, 제단, 별똥별 등이다. 현재는 쌍둥이나 언청이의 출생, 또는 사산과 같은 특이한 일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특히 1999년 5월 이후 후아카 내부에서 엄청난 보물을 발견했다. 이번 발표는 이를 복원한 결과물이다.



◆ 잉카 vs 모체

잉카의 기원은 미스터리지만 13세기초 페루 남쪽 쿠스코에서 탄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잉카는 1470년 당시 최강의 치무를 정복하는 등 안데스 전역을 휩쓸면서 통일국가를 형성했다. 치무 덕분에 모체문명이 잉카에 전달될 수 있었다. 치무를 정복한 후에야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 복잡한 도시 계획이 모체 문명의 반영이고, 치무에 인구가 감소한 후 개발된 농업기술이 그렇다.


물론 모체와 잉카는 사회를 조직하는 시스템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모체가 신정사회였던 반면 잉카는 시민사회였다. 즉 모체에서 왕이 신을 대신해 통치한 반면, 잉카에서는 정치적 권력이 왕인 잉카에게 있고 종교적 권력은 제사장인 빌락 우모에 있었다.

종교적 체계에도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었다. 태양과 달을 동시에 섬겼다는 양면성은 공통점이었지만, 중요시했던 신은 달랐다. 해안문명인 모체는 달이나 은하수와 관련된 신을 중시여긴 반면, 산악문명인 잉카는 태양과 관련된 신을 받들며 자신들을 태양신의 후예라고 믿었다. 이런 종교관은 문화에도 반영됐다.



[이번 발굴에서는 각종 도기가 발견됐다. 사진에는 라마 머리를 닮은 도기(아래)뿐 아니라 포로를 나타내는 도기(위)가 여럿 보인다. 모체 도기는 잉카보다 화려하다.]



[아직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는 후아카 드라 루나.]

모체가 아도비 벽돌 건축물과 도기에 매우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표현을 부여한 반면, 잉카 건축
물의 거대한 돌과 도기에는 꾸밈이 없었다. 이것이 종교적 권력을 전달할 필요가 있는 문화와, 질서와 경제적 효율을 찬미하는 문화의 명백한 차이다.



*출처 :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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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윗글을 카페게시판에 올렸더니 회원중 한 분이 "그런데 트루히요의 위치가???"라고 덧글을 다셨더군요. 그래서 다시 봤더니 게임내 트루히요와는 위치가 다르더군요.. 게임내에서는 대서양쪽인데 옮긴글에서는 태평양쪽이잖아요.


그래서 어제 오후 인터넷을 뒤적거리면서 트루히요를 포함한 각국 개척지에 대해 찾아보았답니다. 그런데 !! 대항해시대 모든 도시들은 트루히요를 제외하고 실제도시를 반영하고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심지어 해적섬 나소까지. 대항해시대의 트루히요가 현재위치와 관련있는 사항은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라는 것도 알았구요.


현재 게임내의 트루히요의 위치는 도미니카공화국정도 되는데요, 도미니카공화국의 유명한 독재자가 트루히요더군요. 왜, 트루히요만 가상의 도시로 코에이는 만든걸까요?


* Heathcliff님의 답글에 따르면 게임상 지역은 온두라스 영역의 도시라고 합니다.

- 조선한길

Lv13 조선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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