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대항 항해일지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대항해일지] #3. 대해(大海)로의 한걸음 - 1

아이콘 앙리에트
조회: 599
2007-03-07 12:58:32




#1. 북해의 여행자들

흐린 오후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앙리에트와 퍼플 세이렌은 세비야에서 부탁받은 40상자의 무기들을 배에서 내려 모건이 부탁한 장소로 향했다. 바르셀로나 교외의 한적한 장소까지 이동하니 한 무리의 인원이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앙리에트는 길레스를 대동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한 무리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그녀의 뒤에 따라오는 교역품 상자를 확인하더니 반가운 미소를 떠올렸다.

"세비야로부터의 배달이군. 예상 일 보다 일주일이나 늦어져서 기다리던 참이었소."
"저희도 부탁을 받은지라. 40상자 확실한지 확인해보시지요."
"아아, 자네들이라면 확실하겠지. 이건 보수요. 거기다 놓고 가시오."

앙리에트에게 묵직한 돈주머니를 건네주고 남자는 부하들을 시켜 앙리에트들이 가져온 교역품들을 서둘러 받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길레스가 불편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전쟁 준비라도 하는걸까요."
"전쟁 준비라면 좀 더 대규모로 움직였을거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불편할만한 일이 있는건 분명한 것 같군."
"선장님."
"괜찮아. 더 참견할 생각은 없어. 보수를 받았으니 돌아간다. 주어진 임무가 있으니까."

최근의 각 나라의 정세는 안정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그렇지 않았다. 각 나라가 서로의 이권을 놓고 보이지 않는 이빨을 등 뒤에서 드러내는 상황이라해도 옳았다. 새 영토를 개척하고, 식민지를 만들 때의 불가피한 폭력은 물론이고 국가간의 이해충돌은 전쟁을 낳는다. 해적들은 무자비하게 난동을 부리고 국가는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한다.

"바다는 그렇게 무법천지가 되어가, 인간의 손에 의해."
"......"
"......라고 말한다면, 군인된 자로써 할 말은 아닌건가?"
"필요에 의하지 않은 과한 욕심이 부르는 일은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앙리에트가 길레스를 돌아보았다. 그는 먼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천천히 읊조리듯 말했다.

"수 많은 전쟁과 약탈로 나라가 부강해진다 한들 그것이 영원불변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폭력으로 취한 것은 반드시 어디선가 무리가 오기 마련이고, 시간을 거쳐가고 대를 흘려보내며 결국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요. 길고 긴 역사에서 고작 잠깐동안 타오르는겁니다."
"회의론자 같은 말을 하는군."
"실제로 그러니까요."

길레스의 무덤덤한 얼굴과 능청스러운 말에 앙리에트가 고소를 머금었다. 그들이 바르셀로나의 도시로 돌아오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주점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은 물방울은 곧 폭우가 되어 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렸다. 다행히 앙리에트들은 크게 젖지 않고 주점에 다다를 수 있었지만 그 보다 단 몇 분 늦은 이들은 온통 젖었다. 앙리에트들이 숨을 돌릴 겸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나타난 이들도 그러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일찍 오자고 했잖습니까. 이게 뭡니까, 다 젖었잖아요."
"거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말이 많구만. 그깟 비 몇 분 맞았다고 안죽어!"
"자자. 두분 다 진정하시길. 얼른 몸이나 녹입시다. 대신 술값은 팔코가 내는겁니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니까."

입구에서부터 큰 소리를 내며 티격태격함에 주점 내의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몰렸다. 누가 봐도 특색있어보이는 세 남자가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선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비가 내리는 날, 유난히 가라앉아있는 주점 내의 분위기를 일순간 깨트려버리며 존재를 어필하고 있었다.
키가 작고 두리뭉실한 몸과 두리뭉실한 수염을 기른 남자는 딱 보기에도 모험가처럼 보였다. 주머니고 가방이고 온갖 탐험 도구들이 삐져나온게 증거였다. 다른 두 남자에 비해 나이가 있어보였지만, 그 자체도 그리 나이가 들어 보이진 않았다. 그와 티격하는 남자는 한자 동맹의 마크가 그려진 재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상인인듯 했다. 짧은 금발 머리의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과는 반대로 하는 말들은 감정적인 느낌이 돋보였다. 그런 그들을 말리는 세 번째의 남자는 적당히 기른 검은 머리에 가죽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질레트를 입고 창을 등에 메고 있었다. 보아하니 군선을 모는 이 같았다. 두 사람에 비해 그리 특색있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성격은 온화해 보였다.
길레스는 곧 그들에게서 신경을 돌렸지만 앙리에트는 그런 그들의 투닥거림이 재미있었는지 줄곧 지켜보았다. 그들은 그녀의 건너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더니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팔코가 거기서 책 좀 더 뒤지겠답시고 지체만 안했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겁니다."
"거, 그게 왜 내 탓이라고만 자꾸 그러는가? 따지자면 말라가에서 마늘 사겠답시고 바자로 시간 끈 루치아노 자네 탓도 있어!"
"하하하......"
"필립도 웃지만 말고 항의를 하세요. 감기라도 걸리면 약값은 톡톡히 받아내야 할테니."
"쟨 또 왜 끌어들겠다는거야?"
"한사람이라도 제 편이 있어야 손해를 안볼거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감기같은거 안걸려요. 그만 하시고 술이나 드십시다."
"그럼 제가 감기로 쓰러지거든 팔코에게 항의좀 해주십시오."
"이 사람이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이런 장난스러운 대화가 오감에 앙리에트는 숨죽여서 몰래 큭큭대며 웃었다. 길레스가 언짢은 얼굴로 세 남자와 앙리에트를 번갈아 보며 말없이 술을 들이킨다.

"그나저나 이 주점에 여급은 없나?"
"팔코. 그놈의 여급좀 그만 꼬시세요. 뭡니까, 카사노바도 아니고."
"어허! 주점의 여급을 얻는 이가 대해(大海)를 얻는다는 것도 몰라?!"
"아니, 좀 틀린 것 같은데요......"
"자네들은 아직 젊어서 모험과 여행의 낭만을 기쁨으로 활용하지 못하는게야. 고것들이 말이지, 사근사근하게 '어머 오랜만에 오셨네요, 팔코씨~' 하면서 내게 함락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대목에서 결국 앙리에트가 참지못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느닷없는 앙리에트의 웃음소리에 길레스는 놀라서 술을 마시다 도로 뱉을뻔했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하던 팔코라 불리운 남자도 깜짝 놀라 이야기 하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머지 두 남자도 눈이 휘둥그레 해져 앙리에트를 응시했다. 그녀는 헛기침을 하면서 뒤집어질듯 웃다가 눈에 눈물까지 그렁해졌다. 간신히 진정하고서는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세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 이거 미안하네요. 당신들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군요."
"크흠. 이거 추태를 보였군요. 죄송합니다. 미스."

루치아노라 불린 금발의 남자가 팔코를 곁눈질 하며 앙리에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앙리에트는 고개를 젓고서 그들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길레스는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매만지며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웃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일행이 너무 수선이었지요."
"수선이라니!"

버럭 하고 항의하려는 팔코의 말을 가로막고 루치아노가 곧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앙리에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래 이런 분이시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스......"
"앙리에트. 포르투갈의 군인이에요."
"네, 미스 앙리에트. 저는 루치아노라고 합니다. 부끄럽지만 상인입니다."

그의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했다. 루치아노가 궁얼거리는 팔코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마지못해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 소개를 했다. 뜸을 들인 것과 다르게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팔코. 세상의 진귀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모험가지."
"세상의 여급들을 노리는 모험가입니다."
"루치아노 자네 나한테 무슨 원한있나?"
"그런거 없습니다. 지나친 피해망상 아니십니까?"
"뭣이!?"
"필립입니다. 미력하지만 조국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반가워요, 미스 앙리에트."

실없이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무시하고 필립이 해사하게 웃으며 소개를 마쳤다. 참으로 마이 페이스는 이 남자가 아닐까 하고 앙리에트는 생각했다.

"그래서 세 분은 영국의 분들인듯 한데 이 먼 지중해까지는 어쩐일로 오셨죠?"

그냥 내버려 뒀다간 다툼 같지도 않은 다툼이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앙리에트가 화제를 전환했다. 루치아노는 전형적인 영국 신사처럼 다시 화사하게 미소짓고서 다감한 목소리로 앙리에트의 말에 즉각 대답했다. 다툼에서 바로 신사 모드로의 돌변은 빠른 선회로 유명한 프리깃이라는 범선이 울고갈 정도로 빨랐다. 다시금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목구멍으로 간신히 밀어넣었다.

"필립이 조국을 위해 일한다곤 했지만 사실 저희 셋 다 조국의 큰 일과는 거리가 있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맞아서 셋이서 함께 다니고 있지요. 팔코가 세계 각지의 보물과 유적들을 탐사하기위해 움직이면 저는 중간중간 기항지 등에서 교역을 하면서 이익을 챙기고, 필립은 그런 저희 둘을 호위하며 위험이 되는 해적들에게서 보호해줍니다. 이번에는 팔코가 마르세이유의 성당에 전시된 그림을 보러 가신다고하여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멋진 포메이션이군요."
"과찬입니다. 미스 앙리에트는 포르투갈의 군인이시면서 여기까지 어쩐일로?"
"저도 마르세이유에 볼일이 있거든요. 또 다시 만날 인연일 지도 모르겠군요."
"미스 같은 분이라면 그런 인연도 반가울 것 같습니다."

신사답게 이야기 했다곤 하지만, 팔코와 티격대던 그 시점으로부터 이미 루치아노의 이미지는 뇌리에 박혀버린듯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식피식 하며 자꾸 웃음이 나오려하자 필사적으로 참고 럼 한잔을 주문해 들이켜 가라앉혔다. 팔코는 계속 루치아노에게 시비를 걸었고, 루치아노는 팔코의 말에 딴지를 걸어댔다. 두 사람은 시덥잖은 시비를 이야기 하는 내내 주고 받았다. 앙리에트는 웃음도 삭힐겸 난감한 미소를 띄우며 루치아노와 팔코를 달래는 필립에게로 관심을 옮겼다.

"군인이신가요?"
"아...... 뭐, 비슷합니다. 하하."
"전문 경호원으로 보이진 않는군요. 혹시, 그 유명한 사략 해적?"
"에, 아뇨. 부끄럽습니다만. 지망생입니다."
"온화하신 분인 것 같은데,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요."
"하하하...... 자주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언젠가는 프랜시스 드레이크같은 분이 되고 싶습니다."

순진하게 웃는 남자의 표면에서 해적들이 갖는 특유의 찌들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과할 정도로 담백한 느낌이었다. 북해의 남자들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감정이 도드라지는 지중해의 남자들에 비하면 담담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눈 앞에서 티격대고 있는 두 남자는 예외로 치더라도.
세 사람은 앙리에트보다 먼저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이미 그들은 하루 전에 바르셀로나에 기항했었고, 마침 오늘이 출항 날이다고 이야기 했다. 저녁 무렵 비의 기운이 어느정도 줄어들자 마르세이유에서 볼 수 있으면 또 보자는 인사와 함께 각기 특색있는 그들의 배를 이끌고 항구에서 멀어져갔다. 그들을 전송하고 앙리에트는 길레스를 돌아보았다.

"재미있는 사람들이야. 다시 만날 때가 기다려 지는군."
"그런 것 같군요."
"뭔가 할 말 있나? 아까부터 말을 참고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주점에서 세 남자와 수다를 떨면서도 기필코 한마디도 하지 않은 길레스였다. 길레스는 앙리에트의 올려다 보는 시선을 말끄러미 내려다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다지. 아닙니다."
"그런가. 그럼 됐어. 돌아가세."

앙리에트가 가볍게 길레스의 어깨를 두들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관쪽으로 걸어간다. 그는 여전히 말없이 따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말을 일부러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암운이 끼어가는 길레스의 머릿속과는 달리, 비구름이 갠 후의 하늘에는 북쪽으로부터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간만에 올리는듯 합니다.^^; 어느새 또 메인에 올라왔군요;
그동안 격조한것은 (결코 와우 확장팩이 코앞이라 전장뛴다고 그런게 아니라) 컴퓨터가 맛탱이가 가서 대항이 돌아가지 않는 사태가 발발해서 그러합니다. orz; 어쨌든 있던 분량은 올려야 할 것 같고, 그냥 올리기엔 심심해서 이번에 새로 그린 그림 한장 첨부해서 올립니다.^^; 암 생각없이 그리다보니 옷이 틀렸네엽! ... orz

근육언니의 명칭을 글래머로 바꿔줘야한다고 소심하게 주장하는 글래머 언니 스타일 팬 앙리에트였습니다 (...)

작중의 잉글랜드인 세명은 저와 함께 친하게 놀았던 길드원들로, 지금은 대항은 하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세트로 잘 놀았기 때문에.^^ 팔코는 모험가였고 루치아노는 상인이었고 필립은 군인이었다죠. 국가가 혼자 틀려서 외로웠던적도 많았지만 지금 돌이키면 저 무렵만큼 즐거웠던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노점에서 코르세아 코트를 찾아보기 참 힘드네요; 물론 스팩상 해적코트가 더 좋기 때문인건 알지만 보라색 염색이 되는게 코르세아 코트인지라 역시 재봉하는 분께 따로 부탁을 드려야하나 하고 있습니다. 아직 내구 많이 남긴 했지만...

즐겁게 감상하시길.^^


- 앙리에트

Lv4 앙리에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게시판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