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령님! 서쪽 교외의 숲속에서 루에르 양을 발견했습니다!」
이제껏 수색에 차도가 없고, 집결하기로한 시간또한 가까워지자 해적에게 납치당한 쪽으로 ‘루에
르 윈슬릿’양의 행방을 생각하자 노튼은 지끈지끈 골머리가 아파오던 찰나였다. 그런 와중에 한병
사가 숲속을 헤치고 튀어나와 그와 같은 보고를 하니 겉으로는 일말의 변화도 없으나 노튼은 내심
안도하였었다.
━
과연, 그 병사를 앞세워 숲속을 헤메다보니 몇몇의 병사가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 높은 어깨들
사이로 너머의 풍경을 살피니 한 앳된 여인이 헝클어진 머리와, 흠뻑젖은 꼴로 기진맥진하여 평평
한 바위에 누워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것이였다.
「…주무시는것 같습니다.」
노튼이 가까워지자 그 근처를 지키던 병사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꽉조인 코르셋이 일정한 간
격으로 부풀었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것만 보더라도 그녀의 심상에 이상이 생긴것같아 보이진 않
았다.
「루에르양.」
그 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던 노튼이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듯 걸음을 옮겨 그녀에게 말한
다. 그러나 아무 기별도 없자 다시 한번 “루에르양, 이만 일어나십시오.” 하고 말을 꺼내 보지만 여
전히 그녀는 미동조차 않했다.
「한번 흔들어보시죠.」
「… ….」
그러나 노튼은 그 병사를 차가운 눈동자로 째려볼뿐 그 말을 따를 수는 없었다. 잠자는 여인의 몸
에 손을 대는건 신사로서 해서는 안될 추행이라고 그는 굳게 여기고있던 것이였다. 그렇게 아무리
낮은 목소리로 수차례 그녀를 불러보지만, 그녀는 보란듯이 몸만 살짝씩 뒤척거릴 뿐 그들이 원하
는데로 움직여줄 생각따윈 없는 기세였다. 결국 노튼이 결단을 내린다.
「…함선을 오래 비워둘 수는 없다. 자네는 교외를 수색 중인 병사들을 소집하여 함선에 배치하도
록.」
「옛!」
그녀가 깨어날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였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고 세상은 온천지가 검붉게 물들어 있었
다. 어느덧 ‘루에르 윈슬릿’ 양이 잠들어 있는 그 평평한 바위 근처의 숲속은 마디 마디마다 병사들
이 등을 돌리채 배치되 보초를 서고 있었고 바위근처에는 언제 피웠는지 모를 모닥불이 온기를 뿜
고 있었다.
「… …」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누워있을것 같던 루에르 윈슬릿양이 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수차
례 그녀가 잘때 낸 콧소리와 흡사하므로 기척조차 않한채 노튼은 등돌리고 서있었다. 그러나 곧이
어 들리는 부석 거리는 기척소리에 노튼은 힐끗 고개를 돌렸다.
「루에르양.」
그녀가 몸을 일으킨 것이였다. 반쯤 감긴채, 시야는 여전히 뿌옇은듯 그녀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노튼을 정면으로 직시하지만 여전히 어안이 벙벙하다. 그러나 노튼은 그녀의 상
태까지 어찌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런던으로 모시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해적…」
말꼬리를 흐리던 루에르는 문득 눈을 감더니, 그와 맞춰 털썩 고개를 떨군다. 그 위험천만한 순간
에 노튼은 다급히 성큼 보폭을넓히며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고 제지한다. 여전히 그녀의 숨소리는
안정적으로 쌔근거린다. 허나 이번에는 잠든게 아닌 정신을 잃은 것이다.
「… ….」
━
「대령님이 돌아오신다!」
그가 해변으로 모습을 드러냄과 더불어 대기하고 있던 군함위에서는 그의 등장을 알리는 목소리
가 커진다. 결국 노튼의 등에는 루에르가 업혀 있었고 그는 이 모든 상황이 못마땅한 결코 좋지않
은듯 뒤따르던 병사에게 “먼저 가서 출항준비를 해라.” 라고 말했다.
그날 밤, 노튼이 이끄는 갤리온 군함 두척이 출항할 늦은 시간에 맞춰 포르투칼의 군함들이 아조
레스의 해안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카리브 소재의 ‘일급 현상 수배범’ 으로 추정되는 해적선
들이 연안에 자주 출몰하는 까닭에 포르투칼 군함들이 제법 멀리까지 연안 순찰을 나간때를 틈타
발생한 해적피해이므로 속수무책이였던 것이다.
아무튼, 노튼과 영군 군함들은 더이상 일에 연류되기 전에 황급히 이곳 아조레스를 떠났고, 아조
레스령 포르투칼 해군제독은 그 불찰을 책망받아 얼마 안있어 해임된다.
━
회항은 순조로웠다. 아조레스로 향하는 동안 그들의 등 뒤를 밀어주던 반가운 순풍들을 이젠 거
센 역풍으로서 크게 걱정했지만, 다행히 바람이 세게 불질 않아 예정보다 빠르게 런던 으로 향할
수 있었다.
「루에르양. 식사입니다.」
한가지 걱정이라면 그 수다스럽던 루에르가 변했다는 것이다. 아조레스에서 그녀가 “해적…” 이
라고 말꼬리를 흐린이후 정신을 잃은이래, 회항길에 한번도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경호를 맡아야할 자신이 포르투칼 군함과 연계하여 근해의 순찰에 나서느라 자리를비워
비롯된 일이기에 크게 토라져 이러는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세는 심각해졌고,
최근에는 음식마저 거부하고 있다.
실언증에 거식증까지…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져가고 있었다. 상태의
심각성을 느낀 노튼또한 이제는 그녀의 병수발을 들기 위해 굳게 닫혀있는 그녀의 문 앞에 스프
가 담긴 접시를 들고 서있는게 현 시점이였다.
「…말씀이 없으시면, 들어가도 괜찮다는 소리로 알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몇분째 안에서 대답이 없자 노튼은 단호히 말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후욱!
문을 열기 무섭게 차가운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그들의 얼굴을 때린다. 안을 살피니 창은 활짝
열려있고, 커튼은 여지없이 펄럭이고 있으며 가장 신경써야 할 루에르는 코르셋을 벗은 하얀 실
크 잠옷 차림으로 창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 ….」
노튼은 가볍게 손짓하여 방 안에 보이는 식탁에 가져온 음식들을 놓도록 명하고, 자신또한 손위
에 얹어놓았던 스프접시를 놓은뒤 모두를 나가게 하였다. 최대한 소리없이 문을 닫은 노튼은 조
심스레 루에르가 앉아있는 침대로 향했다. 그의 그림자가 시선 밖으로 충분히 아른 거림이 분명
했지만, 루에르는 기척조차 안하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튼이 최대한 나긋나긋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 초췌한 모습은 루에르 윈슬릿 양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는 지긋히 루에르를 내려보며 말을 이었다.
「대답이 있건없건 제 말이 들린다고 생각하고 여쭈도록 하겠습니다. ‘아조레스’에서 무엇을 보
신겁니까.」
「… ….」
여전히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건 아니였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런던에 도착할 무렵, 그녀는 온갖 질병으로 허약해져 있을 것이였다. 그리되면 그녀로부터 느껴
야할 온갖 죄책감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부친인 ‘미런 윈슬릿’ 제독에게 당할 온갖 박해
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착잡한 심정이였다.
그러나 지금 루에르의 ‘상태’에는 그 어떠한 기대도,희망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모든것은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런던에 돌아가느냐에 따라 변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식사를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였기에 노튼은 어느정도 체념한듯 말했다.
「접시는 저녁식사와 함께 가져가겠습니다. 부디 런던에 계신 부친께 그분이 알고 계신 ‘루에르
윈슬릿’ 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건강을 생각해주십시오. 그럼….」
진심어린 당부를 마친 노튼은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끼익.
그때였다. 커텐이 펄럭이는 소리에 자세히 듣지는 못했으나, 가는 실선같은 무언가가 문소리 보
다 앞서 그의 귓속에 파고들었다. 황급히 그가 몸을 돌린다.
「…해적… 회색머리… 회색눈…」
다시 문을 닫은 노튼은 보폭을 넓게하여 몇걸음만에 그녀의 침대 맡에 멈춰선다. 그리고는 다급
히 그녀의 양어깨를 잡으며 시선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킨다. 그의 곧은시선과 그녀의 혼란스러운
시선이 교차하는때에 노튼은 이 기회를 잃기 싫은듯 재차 묻는다.
「루에르양, 다시한번 말씀해주십시오!」
「…해적… 회색머리… 회색…」
「오른쪽 눈옆과 턱부터 입술까지의 긴 흉터.」
초점없던 그녀의 눈이 그 순간 노튼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한다.
「… ….」
말은 없었지만 그녀의 흐렸던 시선이 분명히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노튼
은 그 정적을 통해서 확신에 차있었다.
「부관!」
노튼이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은 손을 떼며 문 밖으로 다급히 나간다. “부관!”을 연거푸 큰 목소리
로 부르는 모습에서 그가 제법 다급함을 느끼고 있음을 갑판의 모두가 알 수있었다. 그녀가 다시
말문을 닫기전에 쐐기를 박아야했다.
「부르셨습니까, 대령님!」
「선장실에서 해적 ‘에단 테일러’ 의 수배지를 가져오도록.」
「옛!」
부관이 경례하고 객실을 빠져나가 선장실로 향하는 뒷모습이 사라지자 한동안 그의 눈에서 사라
졌던 열의가 돌아온것 같았다. 그는 지긋히 루에르 윈슬릿 양의 객실문에 몸을 기대며 낮은 목소
리로 중얼거린다.
「…에단 테일러…. ‘저지(judge)’.」
━━━━━━━━━━━━━━━━━━━━━━━━━━━━━━━━━━━━━━━━━━━━━
ps. 처음에는 한번 재미로 ‘빵야빵야’ 하는 소설을 써봤는데, 하루도 생존하지 못하고 삭제당해버
리더군요. 그대로 버로우타면 왠지 밉상으로 찍힐것 같아 조금더 신경써 몇개 써봤는데… 어쩐지
조회수는 11, 12 부터 30 까지 다양한데 댓글은 하나도 없더군요! (뭐꼭댓글을달아달라는게아니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