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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
짧지만 긴 항해를 마친 저지와 리지는 ‘접선지’ 였던 작은 모래 섬에 비로서 첫 발을 내ㅤㄷㅣㅊ었다. 그들
의 발은 촉촉한 백사장에 반쯤 파묻혔으나 지체없이 다음 걸음을 떼며 깊게 파인 발자국만을 남겼다.
그들이 도착하기 무섭게 먼저 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제복차림들은 저마다 총구를 겨누며 둘을 맡았
고, 그 반갑지만은 않은 환영을 똑바로 응시하던 저지와 리지는 어느덧 걸음을 멈추었다.
「… ….」
리지의 시선은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눈 군인들보다도 티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제복 차림
의 사내에게로 향했다. 하얀 위그에 삼각의 각진 모자를 쓰고, 걸치고 있는 코트또한 여느 군인들 것
들과는 비교되게 고풍스러웠다. 리지는 한눈에 직감했다. “이자가 바로 페르 D. 알레바로군.” 이라고
말이다.
「늦었군, 에단 테일러.」
「예상치 못한 일이 있어 지체ㅤㄷㅚㅆ다. 하지만 문제될만큼 늦지는 않은것 같은데.」
「…물론.」
그는 눈부신 하늘에서 시선을 내렸다. 곧장 마주친 저지와 알레바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주시할 뿐
쉽사리 입을 열진 않았다. 그런와중 힐끗 알레바의 시선이 자신의 옆으로 향한것을 느낀 저지는 아니
나 다를까, 그것을 의식하기 무섭게 알레바의 딴지를 들어야했다.
「계약위반이로군. 접선지에는 ‘혼자’ 오라고 했을텐데.」
「그녀는 우리의 새로운 동업자다.」
「누설까지 했군.」
알레바는 한줌의 인정도 느껴지지 않는 냉소한 눈빛으로 리지에게 시선을 옮겼다. 얼음장 처럼 차가
운 시선이 자신을 향함에도 불구하고 리지는 동요하는 기색 없이 본연의 강렬함으로 응수 했다. 소리
없는 기싸움은 아주 잠깐의 순간이였지만 치열했다. 먼저 입을 연건 알레바였다.
「이름이 뭐지.」
「숙녀의 이름을 묻는데 예의가 없군.」
조금의 흩트러짐 없는 그녀의 대답에 알레바는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리지의 눈에는 그마저
도 비릿하게 보일 뿐이였다.
「내가 실례했군. 하지만 우리는 통성명을 하지 않는다.」
「그렇담 내 이름도 안 밝히겠어.」
「상관없네, 리지 블랙.」
그순간 리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낯선 그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올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놀란 모양이군.」
자신이 놀란게 들킨걸까, 리지는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않고 알레바의 녹색 눈을 노려봤다.
「네 명성은 익히 들었지. 아… 네 부친의 명성이라고 해야할까.」
악명 높았던 대해적 ‘드레이크 블랙’ 의 이름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 악명이 자자했다. 세간에
는 흉악하고 잔인한 약탈자로서, 무자비하고 사악한 이미지였으나 최소한 리지가 알고 있는 드레이크
는 달랐다. 그에게 있어서 드레이크는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 였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의 이름이 왠지 저따위 기분나쁜 놈의 입에서 흘러나옴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리지
는 미간을 찌뿌리며 표정을 굳혔다. 그녀의 표정변화를 느낀 탓일까, 무언가 일이 터지기 전에 어서빨
리 볼일을 마치자는 취지로 저지가 입을 열었다.
「사설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지.」
저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레바는 코트 속에 손을 넣어 동그랗게 말린 양피지 하나를 꺼냈다. 대답
대신, 그것을 내민 알레바를 향하던 저지의 시선이 이윽고 양피지로 향했다. 알레바의 손에 있던 양피
지는 어느덧 저지의 손아귀로 넘어갔고 그것을 묶고있던 가죽끈을 풀며 폄과 동시에 알레바가 입을열
었다.
「지난번 일처리가 좋지 않더군.」
해군이 없는 사이를 노렸던 아조레스 약탈을 이야기 함인듯 싶었다.
「‘아조레스’ 말인가.」
「산후안에서 회항하던 포르투칼 상선대를 말하는 것이다.」
기억난다. 캐러벨 세척으로 이루어져있던 상선대였는데 아주 순조롭게 해치웠던 건이였다. 그런 기분
좋은 일 처리는 늘 기억에 오래토록 남곤 하는것이였다. 하지만 문득, 알레바가 그것을 걸고 넘어지는
것을 떠올리자 의아해하는 저지였다.
「내 기억상으로는 아주 깔끔한 일처리였는데… 뭐가 불만이지?」
「네 말대로 아주 깔끔한 일처리였다. 불만? 굳이 불만이라고 말하자면 바로 그 깔끔한 일처리가 문제
겠군.」
「이해하기 어렵군.」
그 건은 아조레스 건을 맡기 전에 전달받은 정보였다. 당시 그것은 큰 규모가 아니였지만 부여된 의미
는 컷다. 포르투칼이 카리브로 손을 뻗은건 비교적 최근의 일 이였다. 그곳의 값진 보석과 산호는 포르
투칼의 부호들에게 있어 아주 이상적인 사치품이였다.
문제는 그 포르투칼 소재의 상선대가 교역품을 싣고 포르투칼 영내에서 순환되는 것이 아닌 에스파니
아로 향할 계획 이였다는 것이였다. 그 상선대가 출항 하기까지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던 수많은 에스파
니아의 귀족들이 손실을 입었고, 왕실에서 그 피해와 경위를 조사하던중 약탈당한 해당 포르투칼 상선
대가 바로 사설함대였고 그들이 잡은 항로 또한 기존의 것과는 다른 극비 우회항로라는 점이 밝혀졌다.
해당 사건은 포르투칼 뿐만 아니라 에스파니아에서도 적극적으로 조사되었는데 눈치 빠른 에스파니아
의 사건 담당 해군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했다.
「눈치 빠른 해군들이 ‘정보 유출’ 을 가능성으로 국왕한테 제기했다. 그것이 왕의 귀에 들지 않도록 알
레바 공께서는 중간에서 몇 차례 그 상소문을 처리했으나 결국 국왕의 손에 보고서가 올라갔고, 너희를
전재로 에스파니아 영내에서는 최근 포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듣자하니 결국 네 주인만 초조해한다는 것이로군. 너희 해군 놈들이 아무리 도시 구석 구석을 뒤져
도 결국 우리는 여기에 있으니 아무 문제도 없지 않나?」
「무식한 해적들 축에서는 그나마 영리하다고 생각해 거래를 제안했더니 둘은 생각 못하는군, 에단. 해
군이 에스파니아 영내를 수색하는건 귀족을 상대로 조사를 펼치기 위한 밑 받침에 불과하다. 사설 상선
대의 극비 우회항로를 어떤수로 영내에 잔류하는 해적들이 파악하겠나.」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손톱으로 눈썹을 긁었다. 이쯤되면 저지 또한 그 다음 일을 예상 했을 것이다.
저지의 사뭇 달라진 눈을 의식한 알레바는 기다렸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해군은 포르투칼 사설함대와 관련된 귀족들과 고위 계급층을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렬에는 ‘알
레바’ 공께서도 포함된다.」
그자의 말대로라면 이는 분명 문제다. 그가 알고있는 ‘페르 D. 알레바’ 는 에스파니아의 상당한 고위 계
급층이다. 미심쩍은 덜미가 잡힌다 하더라도 그의 권위로 당장 문제될건 없겠지만 일이 잘못 된다면 공
공의 적으로 낙인될 수도 있는 일이였다. 사뭇 심각해지는 저지의 표정을 보던 남자가 몸을 돌렸다.
「완벽은 의도된 실수보다 흠집이 남기 쉬운 법이지. 언제까지 알레바 공에 네 뒤를 봐줄거라 생각하지
마라. 에단 테일러.」
말을 마친듯 남자는 이끌고온 군인들을 인솔하여 범선으로 돌아갔다.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
던 리지가 물었다.
「저자가 ‘페르 D. 알레바’ 가 아니란 소리야?」
「…놈은 그의 개일 뿐이야. 우리가 상대하는 알레바는 상상도 못할 거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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