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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여느곳보다 더욱 검고푸른 광대한 대양은 이곳이
이제는 낯선 이국의 바다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일평생을 그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이들이기에
누구하나 귀뜸해주지 않아도 이곳이 그들의 바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노튼 윌터스’ 대령의 지휘하에 있는 두척의 갤리온은 빠르게 런던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배의 길은 언제까지고 같지 않았다. 노튼이 옮겨탄 뒤쪽의 갤리온이 갑작스레 항로를 바꾼 것이였
다.
━촤아!
여지없이 파도를 부서뜨리며 선회하는 노튼의 갤리온이 향하는 방향은 ‘더블린’. 그곳에는 노튼의
함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선두의 선박은 부관에게 맡긴채 런던까지 안전히 ‘루에르 윈슬릿’양을 귀
항시킨다.
그는 늘 계획대로 움직였고, 계획이 틀어지면 또 다른 계획으로 모든 변수를 넘어섰다. 그런 철두
철미한 노튼이 이처럼 계획을 급수정하고 다급히 움직이는것만 보더라도 그가 어떤이유에서 이번
일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두극, 두극.
갑판을 ㅤㄷㅣㅊ고 걸음을 옮기는 발굽소리는 파도소리보다 또렷하다. 별무리없이 안정적으로 더블린을
향해 배가 선회하자 노튼의 머릿속은 한결 더 침착해진다. 그는 선수루를 오르며 뱃머리의 난간에
양손을 얹은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수평선을 응시하며 조용히 읊조린다.
「…에단 테일러… 이번에야 말로 네놈을 교수대로 올려주지….」
차가운 난간을 쥔 노튼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오래토록 소식이 끊기고 잠적하여 그 실마리조
차 잡을 수 없었던 해적이 바로 코앞까지 왔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노튼은 다시금 타오르는 눈빛
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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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향한 항해는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측량상으로는 오늘 오전중으로 런던에 입항할 수 있었
다. 문제는 입항한 뒤의 일이였다. 노튼으로부터 하명받아 ‘루에르 윈슬릿’ 을 런던으로 데리고 향
하는 부관의 안색은 몹시어둡다. 그녀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때의 충격속
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지 실언증은 없어졌으나 대신 그보다 한층 더 심각해진듯 ‘에단 테일러’란
이름을 반복하는 것이였다.
「부, 부함장님. 이대로 가면 미런 제독님께…」
「시끄럽다! 루, 루에르 양이 저리된건 노튼 대령이 멋대로 영해를 이탈했기 때문이다!」
부관은 노튼이 자신을 대신 책망하려는 술수임을 깨닫고 일찌감치 그를 향한 충절을 저버린지 오
래였다. 그저 자신이 지위와 안위에 해가 끼쳐지지 않도록 책임을 기피할 핑계뿐이 머릿속에 가득
이였다. 그는 “해적들의 소식을 접하고 우리에게 출항을 명해 본분을잊고 멋대로 영해를 이탈한건
분명히 노튼이다. 우린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라며 갑판 위의 병사 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비굴한 낯을 띄었다.
「부함장님! 런던입니다!」
「버, 벌써 말인가…?!」
돛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부관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깊은 근심과 걱정 속에서 선박은
어느덧 웅장한 건축물이 즐비한 잉글랜드의 수도 런던의 항구로 향하고 있었고, 멀리서 부터는 발
빠르게 소형 경선이 출발해 함선의 소재파악을 위해 오고 있었다.
━
닻을 내린뒤 경선의 도착을 기다린지도 십여분. 어느덧 경선은 갤리온의 근처까지 와있었고 부관
은 난간으로 목을 내밀며 그들을 맡는다.
「우린 ‘노튼 윌터스’ 대령의 휘하이다. 미런 제독님의 따님이신 ‘루에르 윈슬릿’양을 모시고 임무
마친뒤 회항하는 길이다.」
「아, 실례가 많았습니다! 어서 입항하십시오!」
경선 위의 장교가 경례를 하자 부관또한 살짝 응수한뒤 병사들을 시켜 다시 갤리온의 닻을 올린다.
기동성 우수한 경선이 먼저 항구로 앞서가 입항 수속절차를 밟을 동안 이 묵직한 갤리온은 항구에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늘 뒤따르는 끔찍한 현실이 부관의 가장 큰 걱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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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
돛을 내린뒤 로프로 묶고, 닻을 내려 배를 자리에 고정시킨다. 입항한 웅장한 갤리온 앞으로 제법
많은수의 군인들이 대열을 갖춰 대기하고 있다. 조교가 내려가고 드디어 런던에 앞서 첫발을 ㅤㄷㅣㅊ는
부관에게로 군인들이 일시에 경례를 한다.
그 대열의 필두에 서있던 장교가 한걸음 나아가며 부관에게 절도있게 말한다.
「미런 제독님께서 루에르 양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함께 가시지요.」
「아… 그래. 허, 헌데… 그, 루에르 양의 항해 중에 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아니네. 그러니깐… 루에르 양의 상태가….」
━쾅!
온갖 장식품과 미술품이 전시된 호화로운 영접실. 방의 끝에는 창가를 등진 책상이 하나 있고, 그
곳에는 고급스런 의상에 하얀 위그를 쓴 연륜 있어보이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척봐도 상당한 지위
와 위엄을 갖추고 있는 그 남자는 힘껏 자신의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유감없이 분노를 표출
한다.
「뭐라고? 해적? 다시 한번 똑바로 말해봐!」
「그, 그것이… 노튼 대령님께서 근해에 해적이 출몰 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포르투칼 해군들
과 연계하여 출항을…」
━쾅!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치는 남자의 손. 그 엄청난 소리에 부관은 다시금 말을 잃고 움츠려든다.
「내 딸이… 내 딸이 어쩌다가 저렇게 ㅤㄷㅚㅆ다고?」
「…해, 해적들에게 납치를 당하…」
「입닥쳐! 내 딸을 지키라고 보낸 놈들이 내 딸을 내팽게치고 출항을 해? 내 지위를 걸고 네놈들을
기필코 교수대로 보내버리겠다!」
「제, 제독님!」
갑작스러운 엄포에 부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미런 윈슬릿’ 제독에게 호소한다. 그 모습을 곁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남성또한 더이상 방치할 수는 없었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제독님. 감히 한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크으… 뭔가!」
「…물론 이자들의 죄는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을정도로 크나, 이들은 우리 해군의 정예 들입니다.
이 우수한 군인들은 훈련받은데로 상관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을뿐, 그 이상의 죄는 없다고 봅니다.」
마치 살길을 열어주는 것과 같은 이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그토록 인자하게 보일수 없었다. 그러나
미런 제독은 중용하는 그 사내의 말 마저도 탐탁치 않은듯 인상을 험악하게 찌뿌린다. 그를 오래토
록 보좌한 자로서 다음의 전개또한 잘 알고 있기에 한발 앞서 재차 말문을 여는 남자였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이는 이들의 상관이며, 무책임하게 부하들에게 책임을 넘긴 ‘노튼 윌터스’
대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안그런가?」
「예…? 아, 예! 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크으… 노튼 이놈…! 이놈은 어디로 갔나!」
여기서 실수하면 끝장이다. 부관은 마른 침을 삼킨뒤 고개를 위로 살짝 들고 재빨리 대답한다.
「처, 처벌을 두려워하여 제게 임무를 저, 전가하고 더블린으로 갔습니다!」
「뭐, 뭐라고!」
이 험악한 노인의 반응은 불보듯 뻔할 것이다. 직후, 대노한 미런 제독은 책상 위의 모든걸 팔로 쓸
어버리며 나이가 무색하게 주위를 압도하는 분노를 표출하였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옆에 진열해둔 칼자루로 손을 뻗는다. 그것만큼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기에 그의 보좌관
은 재빨리 나서 미런의 팔을 붙잡는다.
「제독님, 참으십시오!」
「이거 놔라! 노튼, 이 빌어먹을 놈! 재주가 뛰어나 아껴주었더니 개만도 못한 놈이였구나! 당장 가
서 내 딸을 대신해 그놈의 심장에 이 칼을 꽂아 넣겠다!」
「…제독님, 노튼의 행위는 엄연한 반역입니다. 그의 단죄는 순리대로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니 분
을 가라 앉히시고 아가씨 곁에 계시도록 하시지요. 지금 루에르 아가씨의 곁에는 제독님이 함께 해
주셔야 합니다. 노튼을 법의 심판 앞에 세우는건 맡겨만 주신다면 제가 다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
니다.」
「크으…!」
부르르 떠는 제독의 손은 이윽고 칼을 놓는다. 제독은 욕설과 함께 돌아서 문을열어 가택으로 향하
였고, 아수라장이된 영접실 안에는 진땀을 흘리다 온 몸에 힘이 빠진 부관과 보좌관만이 남아 있었
다. 보좌관은 미런의 이런 모습을 자주 겪은듯 얼굴색 하나 안변한채 부관에게 시선을 준다.
「나에게 빚을 졌군?」
「아, 가… 감사합니다!」
「…자네같은 하위장교의 목숨 하나 거두는건 아무 일도 아니지.」
「… ….」
「자네는 부하들을 데리고 더블린으로 가게. 가서 법정에서 노튼 대령을 소환한다고 전하게. 내 소
환서를 써주지.」
「아, 알겠습니다!」
보좌관은 한껏 어질러진 미런제독의 책상 위에 양피지 한장을 꺼내더니 능숙히 깃펜으로 글을쓴다.
그의 이름은 ‘크로헨 칼슨’. 사관학교 출신이였으나 칼 대신 펜을 잡은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의 생
도 시절에서 주의깊게 봐야할것은 바로 노튼의 바로 뒤로 우수하게 학교를 졸업한 유망주라는 것이
다. 비록 지금은 ‘미런 윈슬릿’ 제독이란 거물의 그늘 아래 가려져 있지만, 그의 뜻과 의도는 도리어
미런이란 힘을 통해 행사되었고, 그 야심은 북대서양의 검푸른 바다보다 더욱 깊고 어두웠다.
생도때부터 노튼과는 앙숙이였으며 그의 수많은 계획과 목표중에 하나는 언젠가 노튼을 허물어뜨
리는 것이였다. 그러기엔 노튼이 공을 지나치게 세우며 미런 제독에게까지 ‘총애’를 받으니 도리가
없었으나 이와 같은 상황에서라면 모든게 달랐다.
「자, 받게.」
칼슨은 다 쓴 소환장을 부관에게 내밀었다. 부관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고 경례를 한뒤 자리를 빠
져나갔다. 아수라장의 영접실에 홀로 남은 칼슨. 그의 입가에는 알수 없는 회심의 미소가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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