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잠을 청한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달게 잠을 자고 있는 K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음성이 들려왔다.
K의 머릿속에 음성을 불어넣을 상대는 딱 한명 뿐이란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림자 영, 새벽 서, 칼 도'자를 사용하는 영서도(影曙刀).
영서도는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는 '요도'이다.
기이한 기운과 힘을 품은 검.
누가 만들었는지도,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도 모르지만 K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영서도를 보며 '검은 마법사의 산물'이라 칭할 때가 많다.
영서도는 자신의 주인의 정신력과 실력에 비례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각성'을 할 수 있는 검이자, 자신의 주인과 영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검이다.
K가 영서도를 지니게 된 것은 마을 사람들이 준 것도, 무언가를 탐험하며 얻은 것도 아니었다.
약 18년 정도 전, 마을 입구에 버려져있는 포대기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마을 사람들이 '원로'라고 부르고 K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남자, "롤 카메루카"는 그 포대기를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카메루카가 발견한 그 포대기엔 현재의 K와 영서도가 있었다.
카메루카는 당시엔 원로가 아니었고, 마을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마도사일 뿐이었다.
카메루카는 영서도는 K와 관련이 있는 존재라며 K에게 영서도를 주고 싶었으나, 당시의 원로들이 그것을 반대했고, 현재 카메루카가 유일한 원로가 되면서 영서도가 K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던 K가 영서도의 계속되는 부름에 부스럭대기 시작했다.
K는 몇분 동안을 "조금만.. 조금만.."하고 중얼거리며 더 자다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주인님이 잠좀 자겠다는데 왜 깨우고 난.."
'그 자가 왔습니다.'
"그 자가 누군데!"
'군성을 공략하려고 할 때, 숲에서부터 성으로 다가온다던 마법사 말입니다.'
"뭐? 그 사람은 왜 왔대?"
'그것 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저희가 목표로 삼던 다크 드래곤의 기운도 함께 느껴진 단 것입니다.'
"뭐야, 우리 마을 사람이었던거야? 에이, 너도 낡았나보구나? 우리 마을 사람 기운 하나도 감지 못하다니. 쿡쿡."
K가 칼을 보며 비웃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비웃을 상황이었다.
'아닙니다. 새로운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저희와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온 사람 같은데 말입니다. 텔레포트를 사용한 모양입니다.'
"음? 테라인의 졸개일 가능성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K가 영서도를 왼쪽 칼집에 찔러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영서도가 일러주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원로, 카메루카의 천막이었다.
K는 천막의 막을 들춰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그 곳에서 카메루카가 처음보는 키가 큰 남자의 상의를 벗기고 있었고, 뒤에서 다섯명의 의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마을에 의사가 여덟 뿐이긴 하나, 남성 의사들이 모두 잘 시간이어서 그런지 하필 의사들은 모두 여성 의사 뿐이었고, 의사들은 모두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져 뒤에서 수근덕대고 있었다.
카메루카는 K가 들쑥 쳐들어온 것 때문인지, 의사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서인지는 몰라도 '허허'웃으며 남자의 상의를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대답 해봐요, 할아버지."
카메루카가 K를 바라보며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대었다.
"쉬잇."
카메루카가 의사들에게 '별 이상이 없는 것 같다.'라며 천막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의사들은 아쉬운 듯한 기색을 하며 자리를 비워주었다.
카메루카는 K에게 이리 와 앉으라며 의자를 자신의 옆에 놓아주었다.
K는 카메루카의 말대로 의자에 앉았다.
"이 사람은 누구에요?"
"모른단다."
K가 카메루카를 쳐다보며 말했다.
"영서도가 이 사람하고.."
카메루카가 K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K, 인석아. 드래곤을 데려오라던 내 말은 지키지 않았더구나."
"음흠흠."
K는 그 말을 듣고는 놀라며 헛기침을 해대었다.
"허허, 괜찮다. 괜찮아. 이 젊은이가 데려왔거든. 그나저나 놀랍구나. 다크 드래곤의 독기를 온몸으로 받아놓고도 내상이 없다니. 실력이 좋은 마법사인 것 같구나."
"다크 드래곤이 그렇게 위험한 녀석인가요?"
"그럼 그럼. 아마 전설의 백색 마법사조차도 독에 몇초 이상 노출되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K가 카메루카의 양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언성을 높혀 말했다.
"그런 녀석을 왜 저한테 잡아오라고 한거에요!"
카메루카가 손을 슬쩍 치우며 말했다.
"네 녀석이 실력 하나는 있지 않느냐. 허허. 영서도도 있고 말이다."
"흐음, 제가 실력이 있긴 하지요."
카메루카가 옆에서 지팡이를 집어들더니 K의 머리를 한대 치고는 던져버렸다.
'허리가 굽은 것도 아니고, 지팡이 짚을 필요도 없는 노인네가! 이놈의 영감은 어디서 자꾸 지팡이가 나오는거야!'
하고 K가 생각했다.
"으음. 그나저나.. 이 젊은이가 곧 깨어날 것 같구나. 너는 마을 장정들을 다 깨워다가 마을 광장에 모이라 일러두거라."
"네."
K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의자를 조용히 치워두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카메루카가 남자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이미 깨어났지 않은가."
카메루카의 말에 남자가 부스스 일어났다.
그 남자는 등 아래에 깔려있던 자신의 망토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내들며 하품을 해댔다.
그는 지팡이를 카메루카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음. 할아버지. 내공이 장난이 아니신 것 같은데요."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보시게. 지팡이는 치워두시게. 일단 마을 광장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자고."
카메루카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 천막 바깥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카메루카는 밖에서 말했다.
"따라오시게!"
그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망투를 집어다가 상체에 걸치며 카메루카를 따라갔다.
남자는 카메루카가 인도한 장소에서 기겁을 하고 말았다.
몸 좋은 수십명의 남자들이 그곳에서 무기를 하나씩 집어들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지금 저를 함정에..."
남자가 노인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곳에 있던 남자들이 모두 제임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카메루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그럴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죽이지 않았겠나. 허허. 무엇보다 그 망토부터 찢어버렸겠지."
제임스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카메루카에게 다가갔다.
카메루카는 장작불을 피워놓고 통나무 두개를 준비해놓고는 남자에게 한쪽에 앉기를 권했다.
남자가 한 개를 골라 앉자, 카메루카는 반대쪽에 앉았다.
"자네 이름이 뭔가?"
남자가 아니꼽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절 심문하려는 겁니까?"
"내 이름은 카메루카라네.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어차피 본명이 아니니 알려드리겠습니다. 제임스. 제임스가 제 이름입니다."
카메루카가 제임스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다크 드래곤과 있었는가? 그것도 혼자의 몸으로."
"개인적인 일입니다. 나랏님들 일은 간섭하기 싫지만, 테라인놈들의 행동은 넘어가줄 수 없다는게 저희쪽 생각이거든요."
"저희쪽이라."
제임스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메루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 때, 옆에서 한 여성이 컵 두개를 들고 걸어왔다.
그녀는 두 잔 모두를 카메루카에게 건내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카메루카는 한 잔을 제임스에게 건내었다.
카메루카는 잔을 두어번 흔들고는 한잔을 마신 뒤, 제임스에게 다시 건내었다.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보이는 것이었다.
제임스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이, 노인의 잔을 밀어내었다.
제임스가 잔에 든 것을 한모금 마셨다.
밀크티였다.
'맛있네..'
밀크티의 맛에 심취(?)해있는 제임스를 보며 카메루카가 말했다.
"그래, 내 자내를 믿고 몇 마디 해주겠네."
"감사하군요."
"일단.. 이곳이 어디인지 궁금해할 듯 하니 말해주겠네. 이곳은 중립지대라네. 제임스라고 했던가? 자네는 어떻게 이리로 왔는가?"
"텔레포트를 위해 비서를 사용했더니 이곳으로 와지더군요. 제가 이리로 왔다는건 제가 첫번째 이동자이거나.."
"허허, 머리가 좋은 친구로구만. 그렇네, 진장은 이곳에 잡혀버렸다네. 생각치도 못한 수확이야. 오늘 일만 잘 치뤄지면 텔레포트 결계를 해제하려고 했는데 말일세."
"그나저나.. 이곳이 중립지대라면 테라인 진영을 습격하려 한 것은..?"
"그들이 '정령의 군대'. 즉, 정령의 군사들의 힘을 함부로 손대지 않았나. 그도 모자라 금지된 마법과 주술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네. 그 나라가 그러한 만행을 저지르자, 근처 국들까지 금서에 손을 대고 있는 데다가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있거든."
"흉흉한 소문?"
"허허, 자네도 같은 의의를 지니고 있으니 말해주겠네. 현 테라인의 지도자 중에 검은 마법사. 혹은 그의 분신이 있다는 소문이네."
"푸붑."
제임스가 입에 담고있던 밀크티를 옆에 뿜으며 웃었다.
웃음보단 비웃음에 가까웠다.
"그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정령의 군대의 발동 조건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죠. 검은 마법사 3명과 백색 마법사 7명이 만든 군사들이니 만큼, 그들의..."
제임스가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생각을 가다듬은 듯, 밀크티를 삼키고 말을 이었다.
"사실 그들이 정령의 군사를 이끌었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증거가 있지."
제임스가 잔을 입에서 완전히 떼어내며 말했다.
"그것이 무엇인지요?"
"나. 나 자신이 증거지. 증인이 더 옳은 표현이려나 모르겠구먼."
"무슨 소리십니까?"
"내가.. 한때 최강국이었던 기윈제국의 근위기사였기 때문이랄까?"
제임스는 짧고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제임스는 잔을 주었다.
"옛 이야기를 해주겠네."
-
"할아버지는 뭔 대화를 그리 오래 하시는거지?"
마을 전사들의 무리에 가려, 대화하는 모습도 대화 소리도 듣지 못하는 K가 투덜대듯 말했다.
그 모습을 본 한 마법사가 K를 툭 치며 말했다.
"여어, K. 이번에도 한탕 했다대?"
K가 남자에게 대답했다.
"형도 이번에 한건 하셨다며? 드래곤 봉인이라니."
"그래, 크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더라고."
"그나저나 형."
"왜."
"지금 할아버지랑 대화중인 남자 있잖아. 다크 드래곤의 독기를 다 먹고도 내상이 없다고 놀라워하던데 얼마나 다크 드래곤이란 놈이 그렇게 센 놈이야? 백색 마법사도 공격을 맞았다면 금방 죽었을거라고 하시던데."
"에이, 그건 오바고. 백색 마법사님들은 마나 스스로가 오오라를 만들고 있었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어쨌든 저 남자. 확실히 엄청나긴 해."
"왜?"
"브레스를 직빵으로 맞은 건 아니지만, 하급 마법으로 드래곤의 브레스를 튕겨낸 것도 그렇고, 독기를 다 먹었는데도 기절만 했으니까."
"근데 백색 마법사가 뭐야?"
"켁, 아직도 몰랐던거야?"
"그래, 어차피 여기 계속 서있어야 할 것 같고.. 심심한데 얘기나 해줄게."
-
사람들이 수를 세기도 힘든 옛날.
그 당시엔 나라가 단 두개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대 부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라라고 해봐야 왕과 신하가 있고, 10개도 안되는 조항의 법이 있다는 것 외에는 대 부족과 다른 점이 없었지만.
그 시절부터가 마법이란 학문이자 힘의 전성기라고 알려져있다.
'고대의 마법.'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이 때 사람들은 마법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법은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자연의 힘, 마나 본연의 힘, 선악이라는 흑백의 힘, 신들이 개방해 놓은 힘들 등, 여러가지 구체적으로 형용하기 힘든 힘들을 자신의 '마나'를 계약의 매개체 삼아서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마법의 가장 시초가 된다고 하는 '자연 구현'마법을 사용하던 사람들.
지금은 사라진 용어이지만 '엘레멘탈 매지션'이 생겨난 때도 이때였다고 전해진다.
그 시절에는 두차례, 신들에게 도전을 한 존재들이 생겨났었다.
가장 먼저 시도한 자는 구체적인 이름은 알려져있지 않지만 '바빌 바티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현재도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구현할 수 없는 신비한 마법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자였다고 전해진다.
그가 한 행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차원 찢기'인데, 그는 차원이라는 고차원적인 공간을 찢어버려, 인간계와 신계를 포함하고 있는 차원인 '대 차원'.
또 다른 말로는 태초의 혼돈이라고 불리우는 '카오스'로 이동해 신들이 살고있다는 신계로 가려고 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허나 무(無)의 신, 소시안과 불꽃의 신, 아르간드를 포함한 몇몇의 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두번째로 신들에게 도전을 한 존재가 바로 '검은 마법사들과 백색 마법사'였다.
그들은 첫째로 인간들을 위해, 인간들에게 적이 되는 무리를 없앤다며 자연의 힘을 동원하여 '정령의 군사'를 만들었다.
정령의 군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찾기 힘들었으나, 최근에 공개된 정보 중에는 셰아 제국의 왕이 되기 위해 읽어야 한다는 필독서 5권 중 하나인 '신성악서'에는 정령의 군사들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다고 전해졌다.
적혀있다고 해봐야 전해지는 것은 그들의 이름 뿐이지만.
빛의 정령장, U.세인트와 빛의 정령들인 라트
불의 정령장, 플레이샤와 불의 정령들인 화카
어둠의 정령장, U.다크니스와 어둠의 정령들인 데라나
냉기의 정령장, 나이아와 냉기의 정령들인 케이샤르
이 이외에도 바람이나 대지의 정령 부대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정령의 군사를 만든 것 이외에 흑과 백의 마법사들이 한 일은 여러가지라고 알려져있다.
불사의 주문이라는 신비하고도 위험한 마법을 습득한 뒤에 그들 중에는 자신들이 통치하는 안정적이고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국가를 설립해, '아랄 대륙'을 통합하자는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백색 마법사 두명과 검은 마법사 한명의 주장이었는데, 이 의견 때문에 그들이 충돌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충돌은 현재 존재하는 5대 신성 숲 중 한곳인 '명민의 숲'에 마력을 불어넣었다고 전해지는 바이다.
뭐 이런 저런 일도 많긴 했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많이 평가되는 점은 '신에게 도전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차원을 찢거나 하지 않고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신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점"을 말하기 위해 신계에 텔레포트를 하기를 시도했었으나 파괴의 신, 파우과 마력의 신, 마나니아의 저지.
그리고 자신들간의 충돌로 인해 실패되었다고 전해졌다.
그들은 죽음의 마지막까지 인간들에 대한 걱정이 서려있어, 정령의 군사들을 봉인하고 자신들의 증거물을 물건으로 만들어 지상에 숨겨두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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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그냥 시시한 신화같기는 한데, 증거물들이 많잖아. 너의 영서도도 그렇.."
K가 남자에게 말했다.
"응? 영서도가 뭐?"
"아, 아니다. 미..미안! 내가 배가 아파서!"
남자는 급하게 배를 움켜쥐고는 근처 변소를 향해 달려갔다.
K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