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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몸빵 권하는 파티(현진건 - 술 권하는 사회 패러디)

아이콘 별모서리
댓글: 4 개
조회: 4166
2010-02-19 14:34:50

몸빵 권하는 파티(Party)

별모서리


『아이그, 아야.』

홀로 솔플을 하고 있던 리시타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거미 다리 끝이 왼발 엄지 발가락 발톱 밑을 찔렸음이다. 그 발가락은 가늘게 떨고 하얀 발톱 밑으로 앵두(櫻두)빛 같은 피가 비친다. 그것을 볼 사이도 없이 리시타는 얼른 회피를 하고 허공에 평타를 때리고 있다. 그러면서 치던 거대거미를 사우전드 니들로 고이고이 밀어놓았다. 이윽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보았다. 발톱 언저리는 인제 다시 피가 아니 나려는 것처럼 혈색(血色)이 없다. 하더니, 그 희던 꺼풀 밑에 다시금 꽃물이 차츰차츰 밀려온다. 보일 듯 말 듯한 그 상처로부터 좁쌀낟같은 핏방울이 송송 솟는다. 또 아니 볼 수 없다. 이만하면 그 구멍이 아물었으려니 하고 눈을 떼면 또 얼마 아니되어 피가 비치어 나온다.

인제 포션을 마시는 수 밖에 없다. 거미를 구석으로 민 채 그는 퀵슬롯에 눈을 주었다. 거기 쓸만한 포션은 방어구 수리키트 옆에 있다. 그 수리키트를 밀어내고 그 포션을 마셔보려고 한동안 애를 썼다. 그 포션은 마치 풀로 붙여둔 것 같이 수리키트 옆에 착 달라붙어 세상 잡혀지지 않는다. 그 두 손가락은 헛되이 그 포션 위를 긁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왜 집혀지지를 않아!』

그는 마침내 울 듯이 부르짖었다. 그리고 대신 힐을 해줄 사람이 없나 하는 듯이 던전을 둘러보았다. 던전은 텅 비어 있다. 어느 뉘 하나 없다. 호젓한 허영(虛影)만 그를 휩싸고 있다. 바깥도 죽은 듯이 고요하다. 시시로 우엉 하고 울부짖는 성역의 거미 소리가 쓸쓸하게 들릴 뿐, 문득 창이 광채(光彩)를 더하는 듯하였다. 벽상(壁上)에 놓인 에르그 항아리가 번들하며, 새로 한 점을 가리키려는 에르그가 먹으라는 듯이 그의 눈을 쏜다. 그의 피오나는 그때껏 돌아오지 않았었다.

리시타가 되고 피오나가 된 지는 벌써 오랜 일이다. 어느덧 7, 8일이 지냈으리라. 하건만 같이 던전을 돌아본 날을 헤아리면 단 하루가 될락말락 한다. 막 그의 피오나가 얼음계곡에서 하얀 폭군을 마쳤을 제 그와 친구추가하였고, 그러자마자 고만 토큰이 떨어진 까닭이다. 토큰버스로 만렙까지 졸업을 하였다. 이 길고 긴 세월에 리시타는 얼마나 괴로왔으며 외로왔으랴! 아율른이면 아율른, 폐허면 폐허, 웃는 뱀파이어를 글라이딩 퓨리로 맞았고 얼음같은 놀을 뜨거운 스매시로 데웠다. 회피가 안 될 때, 깃털이 필요할 제, 얼마나 그가 그리웠으랴! 하건만 리시타는 이 모든 고생을 이를 악물고 참았었다. 참을 뿐이 아니라 달게 받았었다. 그것은 피오나가 돌아오기만 하면! 하는 생각이 그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준 까닭이었다. 피오나가 토큰버스로 무엇을 하고 있나? AP를 벌고 있다. AP가 무엇인가? 자세히 모른다. 또 알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어찌하였든지 이 세상에 제일 좋고 제일 귀한 무엇이라 한다. 마치 옛날 이야기에 있는 도깨비의 부자(富者)방망이 같은 것이어니 한다. 옷 나오라면 옷 나오고, 밥 나오라면 밥 나오고, 돈 나오라면 돈 나오고……저 하고 싶은 무엇이든지 청해서 아니되는 것이 없는 무엇을, 토큰버스에서 얻어가지고 나오려니 하였었다. 가끔 놀러오는 친척들이 라고데사 세트 입은 것과 듀얼 나이트메어 낀 것을 볼 때에 그 당장엔 마음 그윽히 부러워도 하였지만 나중엔 「피오나만 돌아오면--」하고 그것에 경멸하는 시선을 던지었다.

피오나가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나가고 두 달이 지나간다. 피오나의 하는 행동이 자기의 기대하던 바와 조금 배치(背馳)되는 듯하였다. AP 아니번 사람보다 조금도 다른 것이 없었다. 아니다, 다르다면 다른 점도 있다. 남은 솔플을 하는데 그의 피오나는 도리어 다른 사람들과 파티플을 하며 몸빵을 한다. 그러면서도 어디인지 분주히 돌아다닌다. 마을에 오면 정신 없이 무슨 퀘를 하기도 하고 또는 밤새도록 무엇을 만들기도 하였다.

『저러는 것이 참말 부자 방망이를 맨드는 것인가 보다.』

리시타는 스스로 이렇게 해석한다.

또 두어 달 지나갔다. 피오나의 하는 일은 늘 한 모양이었다. 한 가지 더한 것은 때때로 깊은 한숨을 쉬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무슨 근심이 있는 듯이 얼굴을 펴지 않았다. 몸은 나날이 축이 나 간다.

『무슨 걱정이 있는고?』

리시타는 따라서 근심을 하게 되었다. 하고는 그 여윈 것을 보충하려고 갖가지로 애를 썼다. 곧 될 수 있는 대로 그의 퀵슬롯에 맛난 포션들을 붇게하며 또 상급포션 같은 것도 만들었다. 그런 보람도 없이 피오나는 입맛이 없다 하며 그것을 잘 먹지도 않았다.

또 몇 달이 지나갔다. 인제 출입을 뚝 끊고 늘 마을에 붙어 있다. 걸핏하면 성을 낸다. 입버릇 모양으로 화난다, 화난다 하였다.

어느 날 새벽, 리시타가 어렴풋이 잠을 깨어, 피오나의 누웠던 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쥐이는 것은 이불자락뿐이다. 잠결에도 조금 실망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잃은 것을 찾으려는 것처럼, 눈을 부시시 떴다. 책상 위에 머리를 쓰러뜨리고 두 손으로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피오나를 보았다. 흐릿한 의식이 돌아옴에 따라, 피오나의 어깨가 덜석덜석 움직임도 깨달았다. 흑 흑 느끼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리시타는 정신을 바짝 차리었다. 불현듯이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리시타의 손은 가볍게 피오나의 등을 흔들며 목에 걸리고 나오지 않은 소리로,

『왜 이러고 계셔요.』

라고 물어 보았다.

『……』

피오나는 아무 대답이 없다. 리시타는 손으로 피오나의 얼굴을 괴어 들려고 할 즈음에, 그것이 뜨뜻하게 눈물에 젖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한 두어 달 지나갔다. 처음처럼 다시 출입이 자주로왔다. 구역이 날 듯한 몸빵냄새가 밤늦게 돌아오는 피오나의 몸에서 나게 되었다. 그것은 요사이 일이다. 오늘 밤에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초저녁부터 리시타는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피오나를 고대고대하고 있었다. 지리한 시간을 속히 보내려고 치웠던 보조무기 제작을 또 꺼내었다. 그것조차 뜻같이 아니 되었다. 때때로 재료가 헛되이 소모되었다. 마침내 그것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어데를 가서 이때껏 오시지 않아!』

리시타는 이제 허무한 것도 잊어버리고 짜증을 내었다. 잠깐 그를 떠났던 공상과 환영이 다시금 그의 머리에 떠돌기 시작하였다. 이상한 지팡이를 쥔, 퀵슬롯 위에 맛난 힐룬을 담은 이비가 번쩍인다. 여러 친구와 몸빵을 권커니 잡거니 하는 광경이 보인다. 그의 피오나는 미친 듯이 껄껄 웃는다. 나중에는 검은 휘장이 스르르 하는 듯이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더니 낭자(狼藉)한 피닉스의 깃털만이 보이기도 하고, 파티 부활의 깃털만 희게 빛나기도 하고, 아까 그 이비가 한 팔로 땅을 짚고 진저리를 쳐가며 웃는 꼴이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피오나가 구석에 쓰러져 우는 것도 보이었다.

『문 열어라!』

문득 대문이 덜컥하고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부르는 듯하였다.

『네.』

저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급히 마을로 나왔다. 잘못 신은, 발에 아니 맞는 신을 질질 끌면서 대문으로 달렸다. 중문은 아직 잠그지도 않았고 모험가 상점에 사람이 없지 않지마는 으례히 커스티인줄 알고 자기가 뛰어 나감이었다. 가느름한 손이 어둠 속에서 희게 빗장을 잡고 한참 실랑이를 한다. 대문은 열렸다.

밤바람이 선득하게 얼굴에 안친다. 문 밖에는 아무도 없다! 온 골목에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검푸른 밤빛이 허연 길 위에 그믈그믈 깃들였을 뿐이었다.

리시타는 무엇에 놀란 사람 모양으로 한참 멀거니 서 있었다. 문득 급거히 대문을 닫친다. 마치 그 열린 사이로 악마나 들어올 것처럼.

『그러면 바람소리였구먼.』

하고 싸늘한 뺨을 쓰다듬으며 해쭉 웃고 발길을 돌리었다.

『아니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혹 내가 잘못 보지를 않았나?……길바닥에나 쓰러져 있었으면 보이지도 않을 터야…….』

중간문까지 다다르자 벼란간 이런 생각이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대문을 또 좀 열어볼까?……아니야, 내가 헛들었지. 그래도 혹……아니야, 내가 헛들었지.』

망설거리면서도 꿈꾸는 사람 모양으로 저도 모를 사이에 마루까지 올라왔다. 매우 기묘한 생각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에 번쩍인다.

『내가 대문을 열었을 제 나 몰래 들어오지나 않았나?……』

과연 방안에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사람의 기척이 있다. 어른에게 꾸중 모시러 가는 어린애처럼 조심조심 방문 앞에 왔다. 그리고 문간 아래로 손을 대며 하염없이 웃는다. 그것은 제 잘못을 용서해 줍시사 하는 어린애 같은 웃음이었다. 조심조심 방문을 열었다. 이불이 어째 움직움직 하는 듯하였다.

『나를 속이랴고 이불을 쓰고 누웠구먼.』

하고 마음속으로 소곤거렸다. 가만히 내려 앉는다. 그 모양이 이것을 건드려서는 큰일이 나지요 하는 듯하였다. 이불을 펄쩍 쳐들었다. 비인 요가 하얗게 드러난다. 그제야 확실히 아니 온 줄 안 것처럼,

『아니 왔구먼, 안 왔어!』

라고 울 듯이 부르짖었다.

피오나가 돌아오기는 새로 두 점이 훨씬 지난 뒤였다. 무엇이 털썩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잇달아,

『리시타, 리시타!』

라고 부르는 소리가 귀를 때릴 때에야 리시타는 비로소 아직도 앉았을 자기가 이불 위에 쓰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기실, 커스티가 대문을 열었을이만큼 리시타는 깜박 잠이 깊이 들었었다. 하건만 그는 몽경(夢境)에서 방황하는 정신을 당장에 수습하였다. 두어 번 얼굴을 쓰다듬자 마자 불현듯 밖으로 나왔다.

피오나는 한 다리를 마루 끝에 걸치고 한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워있다. 숨소리가 씨근씨근 한다. 막 부츠를 벗기고 일어나 커스티는 검붉은 상을 찡그려 붙이며,

『어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세요.』

라고 한다.

『응, 일어나지.』

피오나는 혀를 억지로 돌리어 코와 입으로 대답을 하였다. 그래도 몸은 꿈적도 않는다. 도리어 그 개개 풀린 눈을 자려는 것처럼 스르르 감는다. 리시타는 눈만 비비고 서 있다.

『어서 일어나셔요. 방으로 들어가시라니까.』

이번에는 대답조차 아니한다. 그 대신 무엇을 잡으려는 것처럼 손을 내어젓더니,

『포션, 포션, 상급포션을 좀 주어.』

라고 중얼거렸다.

커스티는 얼른 포션을 따라 코밑에 놓았건만, 그 사이에 벌써 아까 청(請)을 잊은 것같이 포션을 먹으려고도 않는다.

『왜 포션을 아니 잡수셔요.』

곁에서 커스티가 깨우쳤다.

『응 먹지 먹어.』

하고, 그제야 피오나는 한 팔을 짚고 고개를 든다. 한꺼번에 포션 한 대접을 다 들이켜 버렸다. 그리고는 또 쓰러진다.

『에그, 또 눕네.』

하고, 커스티는 우물로 기어드는 어린애를 안으려는 모양으로 두 손을 내어민다.

『커스티는 고만 가 팔게.』

피오나는 귀치않다는 듯이 말을 한다.

이를 어찌해, 하는 듯이 멀거니 서 있는 리시타도, 커스티가 고만갔으면 하였다. 피오나를 붙들어 일으킬 생각이야 간절하였지마는, 커스티가 보는데 어찌 그럴 수 없는 것 같았다. 친구추가 한 지가 七, 八일이 되었으니 그런 파수(破羞)야 되었으련만 같이 있어 본 날을 꼽아보면, 그는 아직 갓 파티한 뉴비였다.

『커스티는 가 팔게.』

란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입술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음 그윽히 커스티가 돌아가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좀 일으켜 드려야지.』

가기는커녕, 이런 말을 하고, 커스티는 선웃음을 치면서 마루로 부득부득 올라온다. 그 모양은 마치, 주인 나리가 포션이 취하시거든, 방에까지 모셔다 드려야 제 도리에 옳지요, 하는 듯하였다.

『자아, 자아.』

커스티는 리시타를 보고 히히 웃어가며, 피오나의 등 밑으로 손을 넣는다.

『왜 이래, 왜 이래. 내가 일어날 테야.』

하고, 몸을 움직이더니, 정말 피오나가 부시시 일어난다. 마루를 쾅쾅 눌러 디디며, 비틀비틀, 곧 쓰러질 듯한 보조(步調)로 방문을 향하여 걸어간다. 와지끈 하며 문을 열어 젖히고는 방안으로 들어간다. 리시타도 뒤따라 들어왔다. 커스티는 중간턱을 넘어설 제, 몇 번 혀를 차고는, 저 갈데로 가 버렸다.

벽에 엇비슷하게 기대어 있는 피오나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의 말라붙은 관자놀이에 펄떡거리는 푸른 맥(脈)을 리시타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피오나 곁으로 다가온다. 리시타의 한 손은 방패 끝을, 또 한 손은 그 갑옷를 잡으며 화(和)한 목성으로,

『자아, 벗으셔요.』

하였다.

피오나는 문득 미끄러지는 듯이 벽을 타고 내려 앉는다. 그의 쭉 뻗친 발끝에 이불자락이 저리로 밀려간다.

『에그, 왜 이리 하셔요. 벗자는 갑옷은 아니 벗으시고.』

그 서슬에 넘어질 뻔한 리시타는 애타게 부르짖었다. 그러면서도 같이 따라 앉는다. 그의 손은 또 갑옷을 잡았다.

『갑옷이 망가집니다. 제발 좀 벗으셔요.』 라고 리시타는 애원을 하며, 갑옷을 벗기려고 애를 쓴다. 하나, 취한 이의 등이 천근(千斤)같이 벽에 척 들러붙었으니 벗겨질 리(理)가 없다. 애를 쓰다쓰다 갑옷을 놓고 물러앉으며,

『원 참, 누가 몸빵을 이처럼 권하였노.』

라고 짜증을 낸다.

『누가 권하였노? 누가 권하였노? 흥 흥.』

피오나는 그 말이 몹시 귀에 거슬리는 것처럼 곱삶는다.

『그래, 누가 권했는지 리시타가 좀 알아내겠소?』

하고 낄낄 웃는다. 그것은 절망의 가락을 띤, 쓸쓸한 웃음이었다. 리시타도 따라 방긋 웃고는 또 갑옷을 잡으며,

『자아, 갑옷이나 먼지 벗으셔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요. 오늘 밤에 잘 주무시면 내일 아침에 이르켜 드리지요.』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야. 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어. 할 말이 있거든 지금 해!』

『지금은 포션이 취하셨으니, 내일 포션이 깨시거든 하지요.』

『무엇? 포션이 취해서?』

하고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며,

『천만에, 누가 포션이 취했단 말이요. 내가 공연히 이러지, 정신은 말뚱말뚱하오 꼭 이야기하기 좋을 만해. 무슨 말이든지……자아.』

『글쎄, 왜 못 하시는 몸빵을 하셔요. 그러면 몸에 축이 나지 않아요.』

하고 리시타는 피오나의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씻는다.

피오나는 머리를 흔들며,

『아니야, 아니야, 그런 말을 듣자는 것이 아니야.』

하고 아까 일을 추상하는 것처럼, 말을 끊었다가 다시금 말을 이어,

『옳지, 누가 나에게 몸빵을 권했단 말이요? 내가 몸빵이 하고 싶어서 했단 말이요?』

『하시고 싶어 하신 건 아니지요. 누가 당신께 몸빵을 권하는지 내가 알아낼까요? 저…… 첫째는 홧증이 몸빵을 권하고 둘째는 이비가 몸빵을 권하지요.』

리시타는 살짝 웃는다. 내가 어지간히 알아맞췄지요 하는 모양이었다.

피오나는 고소(苦笑)한다.

『틀렸소, 잘못 알았소. 홧증이 몸빵을 권하는 것도 아니고, 이비가 몸빵을 권하는 것도 아니요. 나에게 몸빵을 권하는 것은 따로 있어. 내가 어떤 이비한테나 흘려다니거나, 그 이비가 늘 내게 몸빵을 권하거니 하고 근심을 했으면 그것은 헛 걱정이지. 나에게 이비는 아무 소용도 없소. 나의 소용은 포션 뿐이요. 포션이 창자를 휘돌아, 이것 저것을 잊게 맨드는 것을 나는 취(取)할 뿐이요.』

하더니, 홀연 어조(語調)를 고쳐 감개무량하게,

『아아, 유위유망(有爲有望)한 머리를 포션으로 마비 아니시킬 수 없게 하는 그것이 무엇이란 말이요.』

하고, 긴 한숨을 내어 쉰다. 물큰물큰한 포션 냄새가 방안에 흩어진다.

리시타에게는 그 말이 너무 어려웠다. 고만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슨 벽이 자기와 피오나 사이게 깔리는 듯하였다. 피오나의 말이 길어질 때마다 리시타는 이런 쓰디쓴 경헙을 맛보았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윽고 피오나는 기막힌 듯이 웃는다.

『흥 또 못 알아 듣는군. 묻는 내가 그르지, 리시타야 그런 말을 알 수 있겠소. 내가 설명해 드리지. 자세히 들어요. 내게 몸빵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이비도 아니요, 이 파티란 것이 내게 몸빵을 권한다오. 이 라고데사 파티란 것이 내게 몸빵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마영전에 태어났지, 딴 게임에 났더면 몸빵이나 할 수 있나…….』

파티란 무엇인가? 리시타는 또 알 수가 없었다. 어찌하였든 딴 게임에는 없고 마영전에만 있는 것이어니 한다.

『마영전에 있어도 아니 하면 그만이지요.』

피오나는 또 아까 웃음을 재우친다. 포션이 정말 아니 취한 것같이 또렷또렷한 어조로,

『허허, 기막혀. 그 한 분자(分子)된 이상에야 다니고 아니 다니는 게 무슨 상관이야. 집에 있으면 아니 권하고, 밖에 나가야 권하는 줄 아는가 보아. 그런게 아니야. 무슨 파티란 사람이 있어서 밖에만 나가면 나를 꼭 붙들고 몸빵을 권하는 게 아니야……무어라 할까……저 우리 마영전 사람으로 성립된 이 파티란 것이, 내게 몸빵을 아니 못 하게 한단 말이요. ……어째 그렇소?……또 내가 설명을 해 드리지. 여기 같이 던전을 돈다 합시다. 거기 모이는 사람놈 치고 처음은 파티원을 위하느니, 파티를 위하느니 그러는데, 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으니 아니하는 놈이 하나도 없어. 하다가 단 이틀이 못 되어 단 이틀이 못되어…….』

한층 소리를 높이며 손가락을 하나씩 둘씩 꼽으며,

『되지 못한 자리싸움, 쓸데 없는 어그로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내 뎀딜이 좋으니 네 뎀딜이 적으니……밤낮으로 서로 찢고 뜯고 하지,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소. 파티뿐이 아니라, 길드고 팬사이트고……우리 마영전놈들이 조직한 파티는 다 그 조각이지. 이런 파티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요.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적이 정신이 바루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 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몸빵밖에 할 게 도무지 없지. 나도 전자에는 무엇을 좀 해 보겠다고 애도 써 보았어. 그것이 모다 수포야. 내가 어리석은 놈이었지. 내가 몸빵을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야. 요사이는 좀 낫지마는 처음 배울 때에는 리시타도 아다시피 죽을 애를 썼지. 그 하고 난 뒤에 죽는 것이야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타이밍 맞춰 가드 해야하고 거대거미 잡으면 일부러 죽어야 하고……그래도 아니 한 것 보담 나았어. 몸은 괴로와도 마음은 괴롭지 않았으니까. 그저 이 파티에서 할 것은 몸빵 노릇밖에 없어…….』

『공연히 그런 말 말아요. 무슨 노릇을 못해서 몸빵 노릇을 해요! 남이라서…….』

리시타는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흥분이 되어 열기(熱氣) 있는 눈으로 피오나를 바라보고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그는 제 피오나가 이 세상에 가장 거룩한 사람이어니 한다. 따라서 어느 뉘보다 제일 잘 될 줄 믿는다. 몽롱하나마 그의 목적이 원대하고 고상한 것도 알았다. 얌전하던 그가 몸빵을 하게 된 것은 무슨 일이 맘대로 아니 되어 화풀이로 그러는 줄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러나 몸빵은 노상 할 것이 아니다. 그러면 패가망신하고 만다. 그러므로 하루 바삐 그 화가 풀리었으면, 또다시 얌전하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떠날 때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이 꼭 올 줄 믿었다. 오늘부터는, 내일부터는……하건만, 피오나는 어제도 포션이 취하였다. 오늘도 한 모양이다. 자기의 기대는 나날이 틀려간다. 좇아서 기대에 대한 자신도 엷어간다. 애닯고 원(寃)한 생각이 가끔 그의 가슴을 누른다. 더구나 수척해 가는 피오나의 얼굴을 볼 때에 그런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지금 저도 모르게 흥분한 것이 또한 무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못 알아 듣네 그려. 참, 사람 기막혀. 본 정신 가지고는 피를 토하고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하지, 하루라도 살 수가 없단 말이야. 흉장(胸腸)이 막혀서 못 산단 말이야. 에엣, 가슴 답답해.』

라고 피오나는 소리를 지르고 괴로와서 못 견디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미친 듯이 제 가슴을 쥐어 뜯는다.

『몸빵 아니 한다고 흉장이 막혀요?』

피오나의 하는 짓은 본체만체하고 리시타는 얼굴을 더욱 붉히며 부르짖었다.

그 말에 몹시 놀랜 것처럼 피오나는 어이없이 리시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 다음 순간에는 말할 수 없는 고뇌(苦惱)의 그림자가 그의 눈을 거쳐 간다.

『그르지, 내가 그르지. 너같은 숙맥(菽麥)더러 그런 말을 하는 내가 그르지. 너한테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으려는 내가 그르지. 후후.』

스스로 탄식한다.

『아아 답답해!』

문득 기막힌 듯이 외마디 소리를 치고는 벌떡 몸을 일으킨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한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하였던고? 리시타는 불시에 후회하였다. 피오나의 갑옷 뒷자락을 잡으며 안타까운 소리로,

『왜 어디로 가셔요. 이 밤중에 어디를 나가셔요. 내가 잘못하였읍니다. 인제는 다시 그런 말을 아니하겠읍니다. ……그러게 내일 아침에 말을 하자니까…….』

『듣기 싫어, 놓아, 놓아요.』

하고 피오나는 리시타를 떠다밀치고 밖으로 나간다. 비틀비틀 마루 끝까지 가서는 털썩 주저앉아 부츠를 신기 시작한다.

『에그, 왜 이리 하셔요. 인제 다시 그런 말을 아니한대도…….』

리시타는 뒤에서 부츠 신으려는 피오나의 팔을 잡으며 말을 하였다. 그의 손을 떨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담박에 눈물이 쏟아질 듯하였다.

『이건 왜 이래, 저리로 가!』

배앝는 듯이 말을 하고 휙 뿌리친다. 피오나의 발길이 뚜벅뚜벅 중문에 다다랐다. 어느덧 그 밖으로 사라졌다. 대문 빗장소리가 덜컥 하고 난다. 마루 끝에 떨어진 리시타는 헛되어 몇 번,

『커스티! 커스티!』

하고 불렀다. 고요한 밤공기를 울리는 부츠소리는 점점 멀어간다. 발자취는 어느덧 골목 끝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시금 밤은 적적히 깊어간다.

『가버렸구먼, 가버렸어!』

그 부츠소리를 영구히 아니 잃으려는 것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는 리시타는 모든 것을 잃었다 하는 듯이 부르짖었다. 그 소리가 사라짐과 함께 자기의 마음도 사라지고, 정신도 사라진 듯하였다. 심신(心身)이 텅 비어진 듯하였다. 그의 눈은 하염없이 검은 밤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 파티란 독(毒)한 꼴을 그려보는 것같이.

쏠쏠한 새벽바람이 싸늘하게 가슴에 부딪친다. 그 부딪치는 서슬에 잠 못자고 피곤한 몸이 부서질 듯이 지긋하였다.

죽은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해쓱한 얼굴이 경련적으로 떨며 절망한 어조로 소근거렸다.

『그 몹쓸 파티가, 왜 몸빵을 권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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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타와 피오나는 모험가상점에서 살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왜 파일 첨부가 반드시 필요한 걸까...

말머리가 소설과 팬픽이 나뉜 것도 이상하고... 애초에 팬픽에 소설이 포함되는 건데

Lv44 별모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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