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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D-15 항해일지. {D-5.추락되는 의지.}

아이콘 괴리감
조회: 463
2009-12-11 22:36:39
언제나 그래왔듯이 주변은 조용하다. 길은 점점 멀어지는 듯만 하다. 배가 조금씩 생기를 잃어가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배가 이렇게 느린 것이다. '그 자식' 덕분에 죽어가는 것이다. 배도. 사람도.

"아악!"

누군가의 비명소리. 모두가 달려나온다. 아무도 죽은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소리는 다시금 들려온다. 날카롭게 찢어지는 비명을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익숙하다. 곧장 냉철하게 되는 것이다. 몇 번 더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우리는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저 놈이겠군."

염병할. '그 자식' 의 농간이다. 놈은 양치기 소년이었다. 살인범이었다. 괴물이었다. 그런 놈이 우리를 잡기 위해서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동을 멈추게 하여 배의 속도를 점점 늦추려는 개수작이었다. 그래야 자신이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할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물론 그저 달콤한 냄새로 유혹하는 파리지옥과도 같은 녀석일 것이다. 다만 먹는게 곤충이 아니라 덩치가 제법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바람이 강해지고 있어!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만 한다!"

"각자 위치로!"

모두들 뛰어간다. 조금씩 바람이 강해진다. 이제 속력은 더욱 빨라져 금방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옥을 벗어나는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하얀 물살이 우리를 따라온다. 점점 길어진다. 적절한 순풍이었다. 바람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배는 나아간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을 친다.

"아악!"

이번에도 들려온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는 최대한의 속력을 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자식' 의 농간에는 절대 의식하지 말아야한다. 그렇게 나아간다. 유유히.

"선장!"

누군가 소리친다.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놈의 말투는 설마하는 의구심이 들어가있다. 멍청이. 그만큼 속고도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냐! 생각도 없는 놈. 낄낄거린다. 재미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데 낄낄거린다. 그나저나 조금씩 먹구름이 끼고 있는 것을 걱정한다면 모를까. 멍청하게 있으면 안된다. 미친 듯이 달려라!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몇 명인가 밖에 있던 놈들은 어둑한 그림자가 되어간다. 그리고 선장이 모두를 부른다. 갑판 위였다. 투덜대며 갑판으로 모인 모두는 서로를 확인한다. 검게 그을리고 있는 그림자들.

"역시."

선장이 씁쓸하게 말한다. 한 명이 부족했다.

"뭐야."

누군가 물어보고 상황을 파악한다. 스산한 바람소리가 귓전에서 웅얼거린다. 바다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을 속삭이는 듯. 그 속삭임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죽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생과 사의 제비뽑기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죽는다.

"이번엔 그것뿐만이 아냐."

선장이 말한다. 침묵이 도래한다. 잠깐 바다도 입을 다문다.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적막이 찾아온다. 선장은 우리를 빙 둘러보더니 침울하게 한마디를 던진다.

"죽은 녀석은 키를 조종하던 놈이었어. 무슨 말인지 알겠나?"

다시금 빙 둘러보는 선장. 아무도 선장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입도 떼지 못한다. 그저 흐르는 것은 침묵 뿐.

"키를 조종하지 못하게 생겼어."

순간 나의 눈이 꿈틀거렸다. 모두가 같은 행동을 취했으리라.

"탄약고와 조종실이 점령당했단 소리야. 놈에게."

갑자기 바람이 고조된다. 바다가 술렁인다.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절망이 돛을 펼친다. 그렇게 우리네 마음 속으로는 절망이 항해하며 우리의 침묵을 자아내는 것이다. 끝없는 저주마냥, 미련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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