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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겔 항 교외의 황금 빛 벌판을 가로지르는 관도. 석재로 잘 포장된 도로가
미르겔 항이 얼마나 발달된 곳인지를 알려준다. 자렐린 왕국이 강력한
무력과 넓은 영토로 일대를 장악한 패자인 반면,키젤왕국은 소국이었지만
지리적 이점을 살린 중개무역을 통해 끊임 없이 발전하고 있는 나라였다.
미르겔 관도를 달리는 마차 한 대가 있다. 고급목재로 만들어진 마차에는
백합을 감싸고 있는 밀이 새겨져있다. 요즘 미르겔에서 한창 주가를 달리고
있는 페스체일 상단의 문장이다. 마차를 몰고 있는 늙은 마부의 코가 살짝
붉다.
"퀘드리아, 자렐린은 어떤 곳이야? 미르겔보다 큰 도시도 있다던데, 정말이야?
정마로로 미르겔보다 큰 도시도 있어?"
비올라가 방긋방긋 미소를 지으며 물어본다.
"저도 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곳이 있습니다, 아가씨."
"그럼 예쁜 옷도 많이, 많이 있게네?"
"그렇습니다. 유명한 재단사들이 많이 있죠."
로자레일의 대답에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웃으며 말하던 비올라가
갑자가 굳은 결심을 한듯 눈을 반짝인다. 덩달아 로자레일의 표정이 굳어진다.
"이번에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아가씨?"
여전히 비올라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무슨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외동딸인 그녀는 어려서부터 많은 이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이제 곧 16세가
될 그녀는 아직 소녀였지만, 미르겔에서만큼은 아름다운 외모와 마음씨로 수많은
청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유명한 귀족가문의 자제들도 여럿
있었다.
"그럼 우리 자렐린에 가볼까? 너도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고 했잖아! 아예 자렐린의
추수제도 보고오자. 응?"
"마차를 돌릴까요?"
"쳇!"
비올라가 삐진 듯 고개를 훽 돌린다. 그러나 이내 로자레일을 바라보며 방긋 웃는다.
"괜찮아, 이번 추수제에는 로자레일이 있으니까... 헤헤!"
비올라가 말을 마치자 마자 혀를 쏙 빼문다. 비올라의 태도에 로자레일은 일순
말 문이 막혀버린다.
"무슨...."
마침 마차가 멈춰선다. 미르겔 성에 도착한 것이다.
"도착했어, 얼른 옷보러 가자. 예쁜 옷이 있으면 좋겠다!"
비올라가 마차에서 뛰듯디 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로자레일은 굳은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다, 곧 바로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 밖에서 다투는 듯한 소리고 들렸기 때문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로자레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젊은 귀족을 향해 조아리고 있는
데인 영감과 그들을 향해 뭐라 말하고 있는 비올라였다.
"발롯 경, 정말 데인 영감을 용서하실 수 없으신가요?"
"허, 어것참! 이건 귀족의 체면 문제요. 흙탕물을 뒤집어 써놓고 어찌 그 죄인을 용서할 수
있겠소!"
데인 영감이 바닥에 엎드려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런 영감을 보호하는 듯,
비올라가 그 앞에 서있다. 로자레일이 그 옆으로 가서 기립한다. 미르겔 총독의 장자이자
발롯 후작가의 후계자인 미스체라 프리오스 드 발롯의 시선이 잠시 로자레일에 머물다가
다시 비올라에게 향한다.
"이제 제 말씀을 이해하셨다면, 미르겔 총독부 심판관으로써 죄를 처벌하겠소."
"안돼요!"
비올라가 소리치며 앞을 막아선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것을 본 로자레일이 앞으로 한 발 나서며 말한다.
"만약 경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신다면, 미르겔의 시민들과 귀족 여러분들께서
경의 자비심을 칭송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스체일 가문과 더 돈독한 사이가
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자레일의 말에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시민들이 웅성거린다.
"노예주제에 건방지게 어딜 나서느냐!"
경호원들 중 연륜이 있어 보이는 자가 웅성거리는 시민들을 둘러보다가 안되겠다
싶은지 로자레일에게 호통을 친다. 그가 칼을 빼드려하자 미스체라가 손을들어
막는다.
"하하, 네 놈이 말솜씨 하나는 제법이구나. 아버님께서 탐내시는 노예가
베스체일 상단의 어린 노예라던데, 네 놈이 그 놈이구나! 어디 검솜씨는
어떤지 한번 볼까? 자, 검을 빼들어라!"
미스체라가 검을 빼들자 비올라가 놀라 물러서며 로자레일의 옷자락을 잡는다.
로자레일이 비올라가 떨고있음을 느낀다. 안색이 안쓰럽다.
"설마 검이 없는 것은 아니겟지?"
"저는 검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자입니다. 아가씨께서 놀라십니다. 부디 검을 넣어 주십시요."
로자레일이 팔을 들어보이며
"그럴 수는 없지. 기사가 검을 뽑았다가, 바로 집어 넣는다고 하면 이 또한
망신! 자, 선택하라! 네가 나서겠는냐, 아니면 그 늙은 마부의 처벌을
두고 보겠느냐?"
비올라가 로자레일의 팔을 꼭 붙잡는다. 로자레일이 돌아보니, 비올라의 안색이 파리하다.
잠시 고민하던 로자레일이 이내 결심한듯 대답한다.
"허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좋다, 얼른 준비를 마치거라."
"아가씨, 괜찮을겁니다. 안심하세요."
로자레일이 비올라를 간신히 안심시켜 그녀의 팔을 떼어낸다. 안심이 돼서 팔을 놓은 것인지
혼미한 정신에 놓아버린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로자레일은 쓰러질듯 서있는 비올라를 두고
구경꾼들을 향해 소리친다.
"이 자리의 미르겔 시민들께 부탁드립니다! 예의가 아니지만 저에게 칼을 빌려주십사
청하고자 합니다! 여기계신 분은 끊임없이 선행을 베풀어 오신 베스테일 가의 아가씨이십니다.
아가씨를 위해 칼을 빌려주십시요! 아가씨가 눈물 흘리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요!"
구경꾼들이 크게 술렁인다. 로자레일은 애가탔다. 검은 그 주인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검술가로써 본인의 검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무리 비올라를
위해서 라는 명분을 제시해도 검을 빌려줄지는 의문이었다.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검을 빌려주겠다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로자레일은 비올라의 호신용 단도를 들고 나서려 했다.
"이 칼을 쓰게!"
구경꾼들 어디선가 검이 검집채 날아왔다. 로자레일이 받아들어 살펴보니 대략 총길이 50Cm정도의
단검이었다. 검집에서 빼보니 예사로운 검은 아니었다. 로자레일은 검이 날아온 쪽을 향해
꾸벅 인사하고는 검을 빼들고 미스체라의 앞에 섰다.
"준비는 그 정도면 되겠지? 무기가 짧다 탓하지난 말도록 하거라! 그럼 간다!"
미스체라의 검술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빠르고 강하게 로자레일을 압박했다. 일단 검의 길이부터
불리했다. 게다가 미스체라는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검으로 위명을 떨치고 있는 자였다. 미르겔
주변에서 미르겔의 검은표범이라고 하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로자레일은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어떻게 막아서고 있기는 했지만
이대로 간다면 볼 것 없이 로자레일의 패배였다. 이에 비올라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구경꾼들도 혀를찼다. 너무 싱겁게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로자레일의 옷은 여기저기
베이고 찢어져서 성한 곳이 없었다.
"아악!"
비올라가 비명을 질렀다. 뒤로돌아 그어지는 검술을 제대로 피하지 못해 로자레일의 등짝이 크게 베어졌다.
뼈가 상하지는 않은것 같지만, 등쪽은 벌써부터 피와 땀으로 흥건했다. 그 모습에 비올라가 눈물을 흘린다.
"피하지말게! 살을 주더라도 뼈를 취하란 말이야!"
구경꾼들 사이에서 또렷히 들려오는 목소리. 처음들어보는 목소리가 날아와 박힌다. 로자레일은
이런 식으로는 본인이 필패라고 생각했다. 그 말이 맞았다. 월등한 실력차이에서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로자레일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디를 내줘야 할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저 춤추는 검을 멈춰야 했다.
로자레일은 이를 악물었다. 그가 움직임을 멈추자 미스체인은 베기보다는 찌르기를 위주로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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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트졸트님 댓글 감사합니다.
댓글 점 많이 달아주세여^^
감상이나 비판 다 좋습니다.
부디 댓글 점 많이 달아주세여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