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새벽. 버섯구름 봉우리의 봉우리들 중 어딘가.
"야야, 어제 신문 봤냐?"
"아니."
"가로쉬가 드디어 오그리마 지하에서 체포당했다네?"
"어쩌라고."
"아니, 너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좀 귀 기울이고 살면 안될까?"
르메이는 봉우리 바닥에 드러누워서 신문을 펼쳐보며 너스레를 떨고 있었고 아론은 아무 관심 없다는 듯이 돈주머니의 금화를 세고 있었다.
"누가 왕좌에서 내려왔고 누가 그 자리를 차지했건 아무 상관 없고 관심도 없어. 어차피 우리가 살기 좋은 세상은 오지 않으니까."
"아하, 그럼 만약 다음 대족장이 실바나스라면 어떨까요? 언데드 씨?"
"좀 닥쳐."
"깔깔깔!"
아론은 순간 욱해서 들고 있던 금화 자루를 르메이에게 던지려 했고 그녀는 신문지로 입을 가리면서 아론을 비웃었다. 아론은 질렸다는 듯이 자루를 내려놓고 다시 꺼내서 새기 시작했다.
"뭐, 판다렌들 입장에서 보자면 고향 땅을 짓밟은 원수같은 놈이었을테니 네가 관심 가질 법도 하지."
"아닌데? 딱히 감정은 없는데?"
"......"
말싸움을 시작하면 자기가 되려 지칠 걸 알고있는 아론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고 르메이도 슬슬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우리 꽃돌이 칼리스는 가젯잔에 도착했을려나?"
"그건 모르지. 애초에 약속 지점은 여기가 아니었으니까."
"우린 얼마나 더 가야되나?
"지금 출발하면 내일 아침 쯤."
"근데 지금 못하잖아."
르메이는 신문지를 잠시 옆에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널브러진 시체들 곁으로 다가가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놔, 이것들 어느 세월에 치우냐고..."
"그냥 바다에 대충 버려. 버리기 전에 혹시 못 찾은 전리품 있는지 확인해보고."
"예이 예이. 잘 알겠수다."
르메이는 대충 정리하고 시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오크, 트롤, 고블린 등의 다양한 종족들이 서로 뒤엉켜 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듯 보이지만 치명적인 급소에 깊은 상처들이 나 있었고 그 밑으로 피가 고여 봉우리 밑 바다 쪽을 향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트롤 시체 하나를 들추다 피가 튀어 그녀의 흰색 털 부분을 벌겋게 물들였다. 이마 한 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고 그 틈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음, 얘는 내가 죽였구나."
피가 조금 튄 정도가 아니었지만 별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각자 다른 복장을 하고 있는 시체들에게서 노잣돈 조금과 단검, 독약병, 와이어 그리고 똑같은 문양의 뱃지를 찾아냈다. 다른 물건들의 개수는 각자 제각각이었지만 뱃지의 개수는 시체들의 숫자와 똑같았다.
르메이는 뱃지를 달빛에 들어서 확인했다. 붉은 눈의 회색 쥐의 전신이 꼬리와 함께 원형으로 새겨져 있었다.
"쓸만한 건 좀 찾았나?"
돈을 다 세고 맹독을 정비중인 아론이 물었다. 르메이는 대답 대신 뱃지 하나를 아론에게 던졌고 아론은 날아오는 뱃지를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한 손으로 척 하고 받았다.
"이거 우연인지 뭐시긴지 모르겠네."
르메이는 시체들을 하나하나 봉우리 밑의 바다 쪽을 향해 발로 밀면서 말했다. 아론은 뱃지를 보고 재빨리 자신이 갖고 있는 뱃지를 꺼내들었다. 완전히 똑같았다.
"이상하군. 여기는 이 놈들의 영역이 아닐텐데?"
"서로 얘네 피해가려고 칼리스만 따로 보낸 게 아니었어?"
그녀는 시체를 발로 밀려다 그대로 그 발을 시체 위에 올려밟았다.
"이봐, 정보가 잘못된거야 아님 새어나간거야?"
"모든 가능성을 열고 생각해야겠지. 일단 빨리 움직인다. 최소한 동이 트기 전에 운고로 분화구는 넘어야 해."
아론은 제조한 맹독을 그대로 단검에 뿌린 다음 칼집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시체는 냅둬. 우리 존재를 처음부터 인식하고 습격한거라면 증거 은폐는 크게 의미가 없다."
"어머나,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르메이는 씨익 웃으면서 아론이 내민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뿌리친 다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총. 시간 없다."
아론의 태도에 르메이는 입을 삐쭉 내밀며 허리춤의 권총과 와이어를 꺼내 내밀자 아론은 그제야 받아든 다음 버섯구름 봉우리 너머 운고로 쪽의 절벽을 향해 섰다. 그리고 갈고리 탄환에 와이어를 단단히 엮은 다음 절벽을 향해 발사했다. 갈고리는 빠르게 날아가 절벽 끝에 단단히 걸렸고 그걸 확인한 아론은 르메이에게 신호를 주기 위해 한 손을 들었다.
"셋 셀테니까 마지막 숫자에..."
"시간 없다매."
"응?"
"가즈아!!!!"
"어?"
르메이는 가뿐히 무시하고 아론을 발길질로 걷어찼다. 아론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으며 바로 절벽 아래로 떨어졌고 그녀는 그대로 아론에게 뛰어들어 그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미친 곰탱이 자식아아아아!!!!"
"꺄하하하하하하!!!"
그날 밤, 둘은 버섯구름 봉우리 전체가 울리도록 비명과 환호성을 질러댔고 그 소리는 운고로 분화구 지역에 무사히 들어갈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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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시간 전
칼리스는 허리춤의 단검을 겉옷과 작은 배낭으로 감춘 채로 가젯잔에 들어갔다. 길거리에 불량배와 부량자들이 넘쳐났고 주민으로 보이는 고블린들은 그들을 딱히 막으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분쟁과 갈등을 부추기며 거기에 나오는 이득들을 취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대충 파악한 칼리스는 은신으로 자신의 기척을 지우며 가젯잔의 밤거리를 걸어갔고 어느 여관 앞에 다다랐다. 낡아빠진 간판에 '녹슨 톱니 여관'이라는 글귀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칼리스는 자연스럽게 은신을 풀며 들어가자 여관주인으로 보이는 여성 고블린은 그냥 대놓고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이봐, 주인장?"
칼리스는 여관주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칼리스는 배낭의 돈주머니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던져놓자 쨍그랑 거리는 소리에 여관주인이 벌떡 일어났다.
"어서오세...!! 아 이런... 졸았나보네."
여관주인이 일어난 걸 확인한 칼리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돈자루를 집어들어서 그 안에 금화 몇 푼을 꺼내 내밀었다.
"대충 간단한 요깃거리랑 방 좀 잡아주쇼."
"아이고, 알겠습니다. 좀만 기다려주세요."
여관주인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방 열쇠 하나를 건네준 다음 부엌으로 달려갔고 칼리스는 그녀가 일어났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픈형 주방이라 그런지 칼리스는 그녀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청소 안한지 꽤 됬나봅니다."
"아유, 블러드 엘프 손님은 근 몇 년간 얼굴도 안 비치다보니까 그냥 이대로 냅두게 됬습죠."
"꼭... 당장이라도 쥐새끼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네. 안 그렇소?"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는게 느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분주히 돌아가던 주방의 흐름이 뚝 하고 끊어져버렸다.
칼리스는 직감했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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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불모의 땅
'난 원래 그 누구도 믿지 않아. 그게 내 성공의 비결이지. 특히 내 돈을 관리하는 놈은 더더욱. 오히려 그래서 더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니까? 하나하나 세심히 감시하고 또 감시했는데도 내 돈을 들고 튀다니. 물론 그 놈에게 배신감을 느낀게 아니야. 이 내가. 천하의 무역왕 갤리윅스가! 나의 소중한 재산을 그 비열한 놈에게 맡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자책하게 만든단 말이지. 안 그런가?
서론이 길었군. 의뢰할 건 별 거 없다구. 키를 게릭워즈. 이 몸을 속인 천하의 사기꾼이지. 2년 전에, 돈 관리 잘한다는 말만 듣고 냅다 고용했더만 알고보니 쥐도 새도 모르게 장부 조작에 횡령에 절도까지 해놓고 갑자기 사직서도 안 내고 사라졌지. 그렇게 손해 본 골드만 몇 억이야. 수배를 걸어놔도 보수가 적은건지 찾기 힘든건지 아무런 진전이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그러던 도중 정보를 얻었지. 이 놈이 칼림도어 최남단에 내 돈을 자금 삼아 거대한 조직을 형성한 모양이야. '고약한 들쥐단'. 워낙 외진 곳이기도 하고 입단속을 위해 죽인 놈이 산을 이루고 강을 메울 지경이라더군. 틀림없어. 감히 내 자리를 넘보는게 분명해.
놈을 처리해. 어때, 간단하지? 살려서 데려올 필요 없어. 그냥 죽이고 그 놈 목이든 뭐든 잘라가지고 가져와. 돈이라면 두둑히 찔러줄테니.'
"뭐, 대략 이런 내용이다."
아론은 의뢰서를 펼치며 갤리윅스가 자기에게 했던 말을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그래서 보수가 얼만데?"
"2억 골드. 인당."
"와우! 목숨 던질만 한데? 2억이면 고기만두가 대체 몇 개냐? 이봐, 칼리스. 넌 2억 받으면 어디다 쓸거야?"
"글쎄, 기부나 할까?"
"기이이이부우우우? 아이고오, 여태 살아오면서 제일 쓰레기 같은 단어를 들어버렸다. 귀가 썩어들어가는 것 같네!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그딴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냐!"
르메이는 얼굴을 자기 손으로 막 문대며 칼리스에게 윽박질렀지만 정작 그는 큰 감정 변화없이 팔짱을 끼고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뭐, 애초에 손 털 생각도 없고, 실버문으로 돌아가봤자 만날 사람도 없고."
"손을 털고 자시고가 아니라 2억 골드라고! 뭐 사고 싶은것도 없는거야?"
"그만 싸워. 날 샌다."
아론은 의뢰서 위에 추가적으로 수집한 정보들을 펼쳐보였다.
"타겟은 2년 전부터 타나리스의 소규모의 조직으로 시작해 스스로를 '고약한 들쥐단'이라 칭하며 현재 시장 노겐포저가 자리를 비운 가젯잔을 본거지로 삼고 타나리스 전체를 차지하는 중이라고 하더군. 붉은해적단과는 초반에는 대립 관계였다가 뇌물을 엄청 받아먹었는지 우호적으로 바뀌었고, 곧바로 해적선들을 이용해서 해상 암거래까지 진행하는 모양이야."
"뭘 거래하는데?"
"뻔하지. 무기, 마약, 노예 등등."
"배 한 척만 탈취하기만 해도 괜찮은 게 많이 들어있겠는데... 안 그래?"
"......"
르메이는 반 쯤 장난으로 건넨 말이었지만 둘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론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을 마저 이어갔다.
"꼴에 조직은 조직이라고, 이런 증표를 가지고 있다더군."
아론이 꺼낸 것은 뱃지였다. 붉은 눈의 회색 쥐가 원 형태로 새겨진 앞면이 보이도록 바닥에 내려놓았다.
"녀석들은 아직까진 타나리스를 점령중이라, 근처 지역까진 아직 접근을 안 한 모양이야. 그러니..."
"잠깐, 질문."
칼리스가 갑자기 아론의 말을 끊었다.
"뭐지?"
"아까 분명히 이 쥐새끼들이 정보가 새나가는걸 막으려고 숱하게 죽이고 다녔다며. 그럼 이것들은 어디서 나온 것들이지? 신빙성 있는 출처인가?"
칼리스가 바닥에 있는 뱃지를 주워서 한 손으로 돌리다 아론에게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던졌다. 아론은 잠시 말 없이 뱃지를 받으며 칼리스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건..."
"안 새나가는 정보가 어딨냐? 낮에 쥐새끼가 뱉으면 밤에 도둑들이 주워 듣는 법이지. 안 그래?"
르메이가 불쑥 끼어들어서 아론의 대답을 가로막았다. 칼리스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갤리윅스가 붉은해적단의 선원 하나를 포섭해서 고문과 회유 끝에 얻어낸 정보다. 이정도면 됬나?"
아론의 대답에 칼리스는 두 눈을 슬며시 감으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는 소매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뭐,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칼리스는 담배에 성냥불을 붙이고 허공을 향해 한숨을 내뱉었다. 뿌연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져갔다.
"뭐야, 꽃돌이. 감히 내 앞에서 담배를 펴? 너 언제부터 폈냐?"
"꽤 됐는데?"
"왜 지금까지 말 안했냐. 한 대 줘봐."
르메이는 흥겹게 맞장구를 치며 칼리스의 담배를 받아들고 마찬가지로 연기를 내뿜었다.
"아 좋다. 이거 어디 담배냐?
"알아서 뭐하게."
"사려고 그런다. 왜?"
"자꾸 딴 길로 샌다, 머저리들아. 집중해."
아론은 정보글 사이의 칼림도어 지도를 꺼내 타나리스 쪽을 가리켰다.
"나와 르메이는 운고로 분화구를 거쳐서, 그리고 칼리스는 페랄라스를 경유해 실리더스 방향으로 타나리스로 간다."
"응? 왜 하필 칼리스야?"
"우리에게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얼마나 큰 피해 없이 진입하냐는 것의 문제다. 그러려면 잠행 기술이 중요한 법이지. 생각해봐. 만약 우리 셋이 흩어져서 사지에 던져지면 누가 가장 마지막에 살아남을지. 게다가 셋이 함께 움직이는 것보다 갈라져서 진입하는게 정보 수집과 시간 절약 면에서도 매우 유리해진다."
"확실히 페랄라스는 산만 넘으면 바로 실리더스니... 나 혼자 가는게 좋을지도."
아론은 타나리스 지도를 펼치고 줄파락의 입구 쪽에 손가락를 짚었다.
"약속 지점은 이곳이다."
"연락은 어떻게 할거야?"
"하지 않는다."
"왜?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알려고?"
"시간 내 도착하지 않는다면 사망으로 처리하고 차후 작전을 다시 세우는 걸로 한다. 아는게 없는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어."
"아, 가기 전에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네."
"칼리스, 넌 도착하면 먼저 가젯잔으로 가서 동태를 살피고 나서
약속 지점으로 온다. 할 수 있겠나?"
칼리스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좋아."
아론은 대답을 듣자마자 펼친 정보문과 지도를 정리해서 자신의 배낭에 집어넣었다.
"출발은 내일 새벽이다. 일찍 자두라고. 먼 길을 가야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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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스는 일주일 전 불모의 땅에서의 작전 회의를 떠올리며 여관주인의 동태를 살폈다. 여관주인은 잠깐 멈칫하더니 아무 말 없이 하던 요리를 진행했다. 여관은 여전히 차가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칼리스의 눈이 여관 곳곳을 향해 굴러갔다. 어디를 보아도 은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 도발로는 움직이지 않는건가, 아니면 애초에 여긴 관심 밖인건가?"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편히 쉬다 가세요."
여관주인이 쟁반에 음식과 술을 담아서 칼리스의 앞에 내려놓았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경직되고 어색한게 느껴졌다.
칼리스는 대답 없이 수저를 집어 올렸지만 그 이상의 행동 없이 음식과 술을 바라보았다. 육안으로 보나 냄새로 보나 독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음식을 뒤척이다가 접시 밑의 냅킨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접시를 잠시 옆으로 치우고 냅킨을 집어들었다. 안쪽에 희미한 글씨가 눈에 들어와 조심스럽게 냅킨을 펼쳐보았다.
'살려주세요.'
칼리스는 재빨리 냅킨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타이밍에 누가 여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봐, 주인장! 밀린 돈 받으러 왔다!"
덩치 큰 오크가 부하로 보이는 몇몇 부하들을 데리고 있었다. 거대한 초록색 덩치에 어깨에 들쥐 문신이 눈에 딱 들어왔다.
"히익!"
여관주인은 급히 자리를 피하려다 금세 붙잡히고 말았다.
"어딜 도망갈라 그러시나? 그러게 돈을 못 내면 장사 접고 떠나라고 했잖아!"
오크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대로 여관주인을 발로 찼고 그녀는 그대로 굴러가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칼리스는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형님, 적당히 몸 하시죠. 죽이면 돈을 못 받잖습니까?"
"아, 그렇지. 순간 너무 욱해버렸네."
오크는 굴러떨어진 여관주인의 목덜미를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자, 어떡할래? 밀린 돈 값을래, 아니면 노예선에 올라갈래?"
"제,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하하하, 그딴 건 선택지에 없..."
"주인장!"
오크는 여관주인의 배에 주먹을 박아넣으려다 칼리스의 외침에 멈칫했다. 여관 안의 모든 시선이 칼리스 쪽으로 향했다.
"잘 먹었소. 갑자기 갈 곳이 생겨서 방에서는 못 머물겠네."
칼리스는 탁자에 돈주머니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대로 여관 밖을 나섰다. 오크는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여관주인을 내팽겨쳤다. 부하가 돈주머니를 들고 오자 바로 열어서 금액을 확인했다. 족히 500골드는 넘어보이는 금액이었다.
"흠, 운이 좋구만? 그래, 오늘은 이걸로 넘어가주지. 그럼 내일까지 잘 생각하라구. 노예의 삶은 어떨지 말이야. 하하하하하! 가자!"
오크는 부하들을 이끌고 여관을 나갔다. 여관주인은 잠시 멍하니 여관 바닥에 엎어져 있다가 일어나서 어질러진 여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봐."
"히익!"
나간 줄 알았던 칼리스가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나자 여관주인은 다시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무... 무슨 일...?"
"이거."
칼리스는 주머니에 있던 냅킨을 내밀었다. '살려주세요'라는 문구가 떨리는 손으로 적은 듯 글씨가 많이 삐뚤삐뚤했다.
"살려달라며."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정말..."
여관주인은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끼면서 감사를 전했다. 칼리스는 별 개의치 않은 듯 담뱃줄을 붙이면서 물었다.
"저 쥐새끼들 본거지가 어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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