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왕은 전쟁을 일으킬 인물이 아니오."
사울팽은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꼈다.
"그대도 오랫동안 그를 봐 온 걸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 것이오?"
실로 그러했다. 스톰윈드의 국왕 안두인 린을 꾸준히 봐 온 사람이라면, 그리고 전장에서 그와 등을 맞대고 적에 맞선 이라면,
도저히 그가 선제공격으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전쟁 준비가 필요하다는 대족장 실바나스
윈드러너의 말이 사울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수없이 사지를 오간 그런트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대족장입네 하고 앉아 있는 엘프 시체 머리뼈의 뇌가 썩어 문드러졌나 보다.'
실바나스는 그렇게 말하는 사울팽에게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시오, 대군주. 그래, 그대 말대로 소년왕은 먼저 전쟁을 걸 인물이 아니오. 하지만 새겨둬야 하는 게 있소. 내 질문을
되새겨보시오. 소년왕은 전쟁을 걸 인물이 아닌 것 같소?"
"물론이오."
그리고 실바나스는 생각하기만 해도 증오스러운 이름을 꺼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소? 아서스 메네실. 백성을 아꼈던 성기사인 그가, 제 아버지를 살해하고 아제로스를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소?"
사울팽은 경악해 외쳤다.
"지금 안두인 린을 아서스와 비교한 거요?"
"내 질문에 대답하시오, 대군주. 아서스 메네실이 그럴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겠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실바나스의 붉은 눈동자가 또렷하게 빛났다.
"그대는 산 자니까 그리 생각할 수 있소. 소년왕은 먼저 전쟁을 걸어올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떻겠소?
우리가 함께 군단과 맞서 싸웠다 해도, 5년, 10년은 그래, 그렇다고 치지. 50년, 100년은 어떻겠소? 그 뒤엔?"
무언가가 사울팽의 머릿속을 스쳤다. 실바나스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사울팽이 도달한 결론이 일치한 것 같았다.
"대족장, 당신은 안두인 린 다음을 생각하고 있는 거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오. 분명 소년왕은 지금 전쟁을 걸어올 인물은 아니오. 하지만 우리도 테레나스가 죽고 가리토스가
그 자리를 꿰차면서 얼라이언스에 어떤 변화가 생겼었는지 기억하오."
실바나스는 천천히 일어나 사울팽을 마주보았다.
"이 상태로는 안 되오. 얼라이언스가 마음만 먹으면 호드를 무너뜨릴 수 있는 목숨줄을 쥐고 있는 상태로는. 안두인 역시 인간이니
언젠간 죽을 거요. 그의 후손이, 그리고 그 후손의 후손이 대를 이어 내려갈 때까지, 호드가 이 상태라면, 절대 얼라이언스가
호드를 완전히 멸족시키려 나서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소?"
사울팽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도 드레나이를 기억한다. 굴단이, 넬쥴이, 블랙핸드가 일으킨 전쟁을.
선의는 마치 깨끗한 도화지요, 맑은 물과 같아서...... 물감 한 방울만으로 더럽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이 있소. 아제라이트는 분명 많은 걸 바꿀 거요. 하지만 노스렌드에서의, 그리고 군단과의 전쟁을 겪으면서
호드는 약해졌소. 목숨 하나 하나가 소중한 처지란 말이오. 이미 고블린 엔지니어들에게 부탁해 아제라이트를 응용한.....
물건들을 준비하게 했소."
실바나스는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꺼내 사울팽에게 내밀었다. 사울팽은 그걸 받아들어 살펴보았다. 포션처럼 보이는 물건으로,
수정 약병 안에서 푸르스름한 물질이 요동쳤다.
"승리의 목적은 가족을 지키는 것이오. 그러기 위해서는 적을 죽일 물건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킬 물건 또한 만들어야 하지.
지금 들고 있는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오. 어떤 독이든 이겨낼 해독제, 어떤 무기도 막아낼 갑옷, 어떤 공성추도 버텨낼 성벽.
그 모든 게 아제라이트로 가능해질 거요. 그리고 난 단 하나의 가족도 내가 겪은 고통을 겪게 할 생각이 없소."
사울팽은 약병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오."
그러자 실바나스가 곧바로 사울팽을 옆의 전술지도로 이끌었다. 실바나스의 손가락이 실리더스, 다르나서스, 언더시티를 향했다.
"지금 실리더스에서는 고블린들이 아제라이트를 채굴하는 중이오. 채굴된 아제라이트는 언더시티의 연금술사들에게 보내져,
우리를 보호할 최선의 수단들을 만들고 있지. 분명 얼라이언스는 모든 걸 파악하고 있을 거요. 그레이메인이 내게 쌓인 게 많을 테니, 분명 언더시티는 좋은 표적이 되겠지. 나는 이제 언더시티로 떠나 놈들의 시선을 그쪽에 집중시킬 거요. 그대도 따라와야 하오, 대군주."
실바나스의 말이 이어졌다.
"호드의 군대를 대표하는 그대와 호드의 대족장인 내가 동시에 언더시티에 있어야만 놈들이 모든 걸 감수하고 언더시티에 집중할 거요. 만일 내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언더시티는 미끼로 놔둬야 하오. 얼라이언스가 전력을 집중한 시점에서 언더시티를 구할 방도는 없으니, 우린 최대한 빨리 퇴각한 뒤 나타노스와 합류해 다르나서스를 점거해야 하오. 놈들이 병력을 돌릴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상륙전은 수성 측에 유리했다. 가장 훌륭한 상륙거점이자 보루가 될 다르나서스를 차지한다면 얼라이언스가 칼림도어에 대규모 병력을 보낼 여유를 줄이는 셈이었다. 사울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승리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 버텨내기 위한 전쟁이요, 적어도 자신의 목숨은 자신의 몫으로 하고자 하는 전쟁이었다. 사울팽은 그렇게 생각하며, 호드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를 얼라이언스가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