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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D-15 항해일지. {D-3.그 자식.}

아이콘 괴리감
조회: 481
2009-12-04 10:35:47
오늘도 사람이 죽어나간다. 언제까지 지속될 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풀이 죽은 상태. 우리는 살아야했다. 아니, 살고 싶었다. 해골 몇개. 그것으로 끝이었다. 죽어나간 시체들을 따로 묻어줄 수도 없었다. 뼈만 앙상히 남았겠지만, 그 뼈를 수거해서 잘 묻어주면 그만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우리의 앞에는 거절하지 못할 괴물이 장벽을 이루고 있으니까.

"살고싶다면."

누군가 중얼거린다. 표정에서는 전혀 삶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죽을 뿐이다. 우리는 마치 죽어야만 하는 존재들이 되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살고는 싶지만 살아남기가 힘든 것이다. 그 어떤 고독과 우울보다도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다. 아무도 감당하지 못할 죽음의 공포가.

"선장!"

누군가 외친다. 애타게 부르는 꼴이 살고 싶어서 발악하는 목소리에는 딱이었다. 정말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아무도 그런 모습에 토를 달지는 못했다. 모두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선장이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우리는 소리친 녀석을 바라보다 시선을 옮겨 선장의 얼굴에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죽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다 죽는다. 선장이고 뭐고 아무것도 남김없이. 이 큰 배에 남는 생명이라고는 고작 '그 자식' 뿐일 것이고, '그 자식'은 어디로 가도 올라오는 사람들을 죽이며 목숨을 연명할 것이다. 어쩌면 이 배를 본거지로 삼아, 도착하는 그 어떤 곳에서라도 정박해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이미 죽어버린 놈들을 버리고 새로운 먹이감을 찾아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 배가 그럼 '그 녀석' 에게 있어서 살육의 발판이 되는 것이다. 선장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웃는 듯이 입꼬리를 올린다.

"아니, 창고를 완전히 봉쇄해. 그러면 다 되."

"그렇지만 선장, 저 놈은 어느정도의 상식이 있다고!"

"착각하지마! 저 놈은 아무것도 아냐! 단지 식물이야, 식인식물!"

식인식물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은가. 선장은 정신을 팔아치웠다. 미친 것이다. 뭐가 그렇게 쉬워보인다는 것인가. 선장의 생각을 하나둘 읽으려고 애쓰는데, 누군가가 말한다.

"선장은 우리를 놈의 먹이감으로 주고 살아서 배에서 내리려는 것이다. 배에서 내리면 이 배는 완전히 태워버릴 것이다."

미친놈!
우리는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선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 선장은 우리를 죽이고 안전하게 돌아가서는 배를 태우던가 식물이 있는 곳만 분해시키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활할 것이다. 자신의 삶을 우리의 죽음으로 연장시키려는 것이다. 틀림없다! 선장은 미쳤다.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선장에게 놈의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이제껏 자신이 말했던 것이 개소리라는 것을 증명해야되.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면, 글쎄, 역시 선장을 먹이로 줘버리고 창고를 태워버리는 게 좋겠지?"

몇몇의 선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반란의 공범자를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이 작고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힘있는 몇몇의 사람이 연합을 하면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반란이 전부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뒤따르는 법이다.

"선장."

다시금 선장을 부른다. 선장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 모습이 정말 자신의 목숨만 지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비춰져서, 반란에 찬성하지 않았던 인원들도 조금씩 마음이 반란쪽으로 움직였다.

"정말이지 놈이 너무 위험해. 우리 모두가 죽을 수 있다고!"

선장이 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다. 우리를 설득시키기 위해 움직인 것이리라.

"그래. 알고 있어. 하지만 창고는 태울 수 없어."

전혀 우리를 설득시키기 위한 말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의 얼굴을 주시하면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선장이란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선장도 죽일 것이다. 죽여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상태를 확인한 것인지, 선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 창고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 없나? 그 창고가 어디 위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 자식' 이 들어간 창고가 어디 있냐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설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냥 조금 손상된 부분을 수리할 수 있기는 했지만 아무도 배에 대해 해박한 선원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놈이 들어가 있는 창고는, 화약고 위에 있는 창고야."

선장이 씁쓸한 듯 담배를 꼬나물었다. 화약고가 어떤 곳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위에 있는 창고에 놈이 있다는 이유로 불을 지른다면 이 배는 산산조각이 된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이 0%가 되는 것이다. 미친.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어째서 '그 자식' 은 운이 좋고, 만물의 영장인 우리의 운이 더 뒤떨어지는 것인가. 어째서 '그 자식' 이 인간을 죽이기에 적절한 상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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