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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Sea Demon -2화 - The valencia fleet

퀘드류
조회: 750
추천: 1
2013-07-04 22:26:57
 밤하늘의 달도 구름에 유배당한 칠흑 같은 밤, 포티쿨루 호의 좌현에는 수습사관복을 입은 소년이 당직 교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젊고 생기있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저 악명 높은 기아나 감옥에 비견할만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음에도 그가 웃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젊은이의 특권인 낙천적인 사고방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봐, 퀘드롯! 머리에 포탄이라도 맞은건가? 아니면, 저녁 식사 때 먹은 치즈가 상하기라도 한건가?"

 장포장, 하드독 1등사관의 질책에 퀘드롯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자세를 바로잡고 경례를 붙였다. 

"도대체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냐는 말이야!"

 로자레일은 경례를 붙인 채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 하드독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곁눈질 했다. 
여기저기 구멍난 갑판과 찢어진 돛, 잘려나간 돛줄과 포티쿨루 호를 완전히 수리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삭구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웃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시정하겠습니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하드독이 "오크 뒷다리 같으니라고. 어린놈의 자식이 군기가 빠져서."라고 중얼거리며 로자레일과 당직 교대 인수인계를 할때도 로자레일의 입가에서 피식피식, 미소가 새어나왔다.
 하드독이 눈알을 부라리자, 로자레일은 얼른 목재를 집어 들고 목공장 프리디시오 1등사관에게 부랴부랴, 뛰어갔다.

"어서오게나! 승진 축하하네, 퀘드롯 3등사관!"

프리디시오가 로자레일의 오른손을 잡고 흔들며 축하인사를 건냈다.

"감사합니다, 목공장님!"

 로자레일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비록 삼십분 전까지만 해도 수습사관의 신분이었고,
 여전히 일반 선원과 다름없는 수습사관복을 입고 있고, 견장조차 달지 못하는 하급 직위인 3등사관에 임명된 것에 불과하지만, 수습사관과 정식사관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였다.
 게다가 대포24문 카락함 포티쿨루 호가 아니라, 32문 대형카락함이나 48문 갤리온함의 장교 부관으로 배치가 될수도 있고,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일말의 기대에 걸어보자면, 신형 74문 전열함 푸에테 호에 승선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 사랑스런 포티쿨루 호를 떠날수야 없지."

 수리작업에 동원된 로자레일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다. 
움직이는 요새로 불리는 74문 전열함 푸에테 호에 승선하는 일은 해군사관이라면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가 푸에테 호의 장교 부관이 된다면 적어도 그의 사관학교 동기들은 그를 부러워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발렌시아 함대 내에서 가장 빠르다고 알려진 포티쿨루 호의 날렵하고 매끄러운 선체뿐만 아니라 숙련된 선원과 장교, 그리고 로자레일에게 호의적인 함장까지, 오직 한가지, 하드독 장포장을 제외한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고, 완벽하게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포티쿨루 호에 남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로자레일의 생각이었다.

"이런걸 전화위복이라고 하겠지."

 중앙돛대 어귓줄에 매듭을 짓고 있던 로자레일의 눈에 중앙돛대에서 펄럭이고 있는 에스파냐 해군 깃발과 발렌시아 함대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에스파냐 해군 중에서 가장 전투가 치열하기로 악명 높은 발렌시아 함대로 배치된 것은 순전히 한 달 전의 사건 때문이었다. 
한 달 전의 그날 밤도, 오늘처럼 스코틀랜드 지방의 킬트(kilt) 같은 털쌘구름이 달과 별의 협주를 방해하고 있었다.

 1487년 10월 21일, 에스파냐 왕국,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 교외의 한 저택. 칠흑같이 어두컴컴한 밤하늘과 대조적으로, 카디스 항구에서 불어온 미풍을 따라, 부드럽게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투과한 형형색색의 빛조각들이 산산이 부숴졌다.
 살로니카 산 고급 대리석 바닥은 애딘버러산 프란넬, 제노바산 벨벳, 아시아산 실크로 만들고, 번쩍이는 귀금속으로 장식한 드레스 혹은 코트를 차려 입은 젊은 귀족들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그들이 갖가지 와인이 찰랑이는 잔을 들고 웃고 떠드는 가운데, 갑작스레 들린 요란한 소리가 주변의 이목을 잡아 끌었다.

“자네는 나를 모욕할 셈인가!”

 한 청년이 퀘드롯에게 삿대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 쉐리 주(酒)가 닮긴 잔을 들고 얼굴을 붉히고 있는 꼬락서니가 영략없이 취객의 주정이었지만, 그의 신분이 신분인지라, 나서서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급기야 오른손에 들고있던 유리잔을 퀘드롯의 발치를 향해 집어던졌다.

“꺄악!”

 챙그랑, 하고 글라스가 깨지는 소리에, 보지못한 척 힐끗힐끗, 곁눈질로 조심스럽게 관망하던 귀족 영애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너 걸음씩 물러났다. 그 바람에 퀘드롯과 청년을 둘러싼 콜로세움이 생겨버렸다. 
연주를 멈춘 악단의 연주자들도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는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마치 결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청년도 그것을 느꼈는지,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비웃는 표정으로 로자레일을 바라보았다. 바람 결에 들린, 어느 이름모를 귀부인이 옆사람과 속삭이는 소리가 로자레일의 귓가를 맴돌았다.

“유리 조각이 튀었는데, 화도 안 나는 모양이지요?”

"가르젠 남작 각하께 신세를 지고 있다던데, 대범하기로 유명한 남작 각하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비굴한 소년이군요."

"듣기로는 가르젠 영애의 약혼자라는 소문도 있던데요?"

"설마요. 가르젠 남작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가 저런 신분도 모르는 소년이랑 약혼이라니요?"

"그래도 얼굴은 반반하군요, 호호."

"그러게요. 호호."

 화가 나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마음 내키는 대로 화를 낼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화를 참고 있는 것이다. 길가다 만난 시정잡배라면 로자레일이 진즉에 결투를 신청하고 칼을 뽑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앤트워프 총독 노토 브락사 데 알라스투에이 경의 적자이자, 해군본부위원장 브락사 투람 데 알라스투에이 백작의 적손이며, 연합왕국 에스파냐의 공동통치자 이사벨1세의 6촌 조카인 플라누 노토 데 알라스투에이였다.
 화를 꾹꾹, 눌러 담은 로자레일이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까 그 말은 단지 방금까지 연주되던 뒤파이의 곡이 앤트워프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말이 그말 아닌가! 카스티야와 레온의 군주이신 이사벨1세 폐하와 아라곤의 왕이시자 바르셀로나의 공작이신 페르난도 5세 폐하께서 친히 부르고뉴 공작 각하께 양도받은 앤트워프 영지를 촌구석이라 폄하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고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제가 어찌 부르고뉴 공작각하께서 트라스타마라 왕가에 대한 우정의 증표로 양도한 앤트워프를 촌구석이라 생각하겠습니까? 다만 이곳 세비야에서 앤트워프로 가려면 뱃길로 비스케이만을 건너 브리타뉴 반도와 노르망디 반도를 넘어 영국해협을 지나야 하고, 육로로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랑그도르끄와 부르봉, 부르고뉴 영지를 지나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단지 앤트워프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 이….”

 취기로 인해 참을성이 떨어진 플라누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인해 금방이라도 활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후우….”

 그런데 의외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자마자, 금세 화를 가라앉히고 침착한 어조를 되찾은 플라누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도박기사의 아들인 것은 잘 알고 있네." 

도박기사라는 말에 로자레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로자레일의 표정변화를 알아챈 플라누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퀘드롯 경도 생전에 버터를 바른 것처럼 혀가 매끄러웠다고 하던데, 자네의 혀도 보통은 아닐세."

"취소하십시오!"

로자레일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도박기사라는 단어 말인가? 취소못하겠네. 앤트워프가 멀리 북해에 있는 점이 사실인 것처럼, 괴한의 습격으로 돌아가신 퀘드롯 경이 생전에 도박기사라고 불린 것도 사실 아닌가?"

 플라누의 말이 로자레일의 가슴을 후벼팠다. 방금 전까지 로자레일의 얼굴을 품평하던 귀부인들 중 한명이 놀란 표정으로 옆의 귀부인에게 속삭였다.

"어머어머, 들으셨어요? 퀘드롯 경의 아들이라네요!"

"어쩜, 기사의 명예에 먹칠한 그런 사람에게는 경이라고 불러줄 필요도 없어요."

"그건 그래요, 국왕 폐하의 기사가 강도에게 당해 얼어죽다니, 왕국의 수치에요!"

"어머, 우리 이야기를 들었나봐요!"

 서둘러 자리를 옮기는 귀부인들을 노려보는 로자레일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점잖게 말해 괴한의 습격이라고 표현한 것이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도박으로 전재산을 탕진한 로자레일의 부친이 강도로 돌변한 걸인들에게 속옷까지 털리고 세비야의 뒷골목에서 얼어죽은 사건이었다.

"취소하십시오! 고인을 모욕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입니다!"

"그대에게 직접 모욕을 당한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고인을 욕보이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려는 건가? 더이상 자네의 희롱에 놀아날 생각은 없네. 자네도 기사의 아들이라면 입씨름보다 신성하고 공정한 방법을 잘 알고 있겠지?"

 플라누가 왼손에 착용하고 있던 고급 실크 장갑을 벗어 로자레일에게 던지며 외쳤다.

“나 플라누 노토 데 알라스투에이는 그대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그리고 그 자신의 시종을 불러 검 2자루를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검을 기다리고 있는 플라누와는 달리 로자레일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로자레일로써는 이겨도 손해, 져도 손해인, 전혀 득이 될게 없는 결투였기 때문이다.

“무얼 망설이는가! 설마 겁을 먹고 도망치지는 않겠지! 지금 이자리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리자!”

 명백한 도발이었다. 주변의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를 도발하려는 플라누의 의도가 뻔히 보였지만, 선친을 욕되게 하는 자가 신청하는 결투를 피하기는 것은 혈기넘치는 소년에게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좋습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플라누의 시종에게 레이피어(Rapier)를 받아든 로자레일은 가르젠 검술 특유의 운지법으로 단단하게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칼자루에서 금속 특유의 차가운 기운을 느낀 로자레일은 자신이 너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심호흡을 하며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려고 노력했다.
 결투의 공증인을 자처한 젊은 기사가 공정하게 결투의 증인에 임할 것을 신께 맹세하는 동안, 금방이라도 끊어질 실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주변을 둘러본 로자레일은 그에게 호의적인 시선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야속한 사실이었지만, 
그는 사관학교를 갓 졸업하여 배치를 기다리고 있는 수습사관에 불과한데다가 도박기사의 아들이었으므로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렇다 보니, 로자레일은 그의 친구이자 연인인 비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스툼 데 퀘드롯 경의 친우로써 로자레일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오르메로 비스토 데 가르젠 경은 그의 부친 가르젠 남작의 일로 출타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르젠 남작의 손녀 비첼 오르메로 데 가르젠은 그녀의 조부를 모시러 간 상황이었다. 둘 중의 한 명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지금 당장은 결투에 집중 하는 것이 옳았다.
 공증인의 맹세가 끝나고, 당사자의 선서가 이어졌다.

"나 플라누 노토 데 알라스투에이는 이 결투의 결과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오."

"나 로자레일 데 퀘드롯은 이 결투의 결과에 승복할 것을 맹세합니다." 

 짧은 선서가 끝나고, 서로의 검극을 마주쳐 경쾌한 소리를 낸 로자레일과 플라누는 검극으로 서로를 가리키며 마주섰다.

Lv33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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