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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Sea Demon -8화 - Unfair judgment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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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3
2013-07-16 00:05:21
 본래 항로에서 벗어난 덕분에 발렌시아 항구에 귀항하기까지는 반나절정도의 시간이 더 소모되겠지만, 프랑스 상선에 대한 기대로 사관들과 선원들, 심지어 포로들의 마음도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백기가 게양된 선박의 적재는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포격 유효사거리에서부터 조금씩 깍여나가더니, 거리가 더 좁혀지자 산산조각이 났다가 아예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로자레일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하드독이 짧게 명령했다.

"본래 항로로 복귀한다."

 갑판 위에 널부러져있는 시체인지 병자인지 모를 사람들은 딱 보기에도 죽음의 기운을 이불삼아 덮고 있었다. 꼭 군법이 아니더라도 전염병 환자와의 접촉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로자레일이 가르젠 경에게 듣기로는 해군 병사 사망원인의 절반 정도가 질병때문이었다. 그것이 어떤 전염병이었는지, 아니면 황열병이었는지, 괴혈병이었는지, 열사병이었는지, 혹은 상사병이든지, 어쩌면 그 모든 병을 합한 것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질병이 공포의 대명사인 점은 분명했다.

"설마 이정도 거리까지 접근한 걸로 격리 수용되지는 않겠지."

로페가 불쾌하다는 식으로 팔의 먼지를 털어내는 시늉을 하며 투덜대자 아르보가 얼굴을 찡그렸다.

"한번 격리 섬에 수용되면 짧으면 서너달, 길면 일이년이라던데."

 그들의 대화를 들은 로자레일은 심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문득 하드독이 성호를 긋는 모습이 로자레일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프랑스 상선 선원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로자레일은 생각했다. 
 포로들이 쉬지 않고 노를 저어, 스크로파 호의 충각이 부드럽게 파도를 가르며 발렌시아 항구로 향하는 동안, 하늘에는 빗방울을 머금은 먹구름이 잔뜩 걸려 있었다. 우중춘한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밤이 깊어지자 먹구름이 하나둘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잦아졌다. 그것이 파도를 화나게 한 모양인지, 선측을 때리는 성난 파도의 힘이 무척 거세졌다.

 "밥도 못먹겠군."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던 로자레일은 출렁이는 스프를 쏟지 않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왼손으로 스프가 담긴 양철접시를 들고 입에는 소시지를 쑤셔넣었다. 그리고 요동치는 파도로 인해 기울어진 테이블 위의 숟가락이 떨어지는 순간 오른손으로 얼른 낚아챈 다음, 접시에 입을 대고 후루룩, 스프를 마셔버렸다. 입안에는 아직도 커다란 소시지 조각이 남아있었지만, 느긋하게 앉아서 식사할 시간은 없어보였다. 
 딸랑딸랑, 상당히 급한 모양인지 갑판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옙! 3등사관, 로자레일 데 퀘드롯!"

 크게 소리친 로자레일은 이번에는 낮게 투덜거렸다.

"저놈의 종소리. 어휴!" 

흔들리는 복도를 빠져나온 그는 파도의 템포에 맞춰 이리저리 춤을 추는 돛줄과 삭구들을 정리하기 위해 함께 춤을 추는 무리에 합류했다. 이미 이 분주한 무도회에 참석해 있던 로페가 하드독에게 외쳤다. 

"바람이 거세집니다! 삭구들은 포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또다른 참석자인 아르보도 소리쳤다.

"더이상 갑판 위에 있는 것은 위험합니다!"

빗줄기를 그대로 맞으며 선미에서 무도회를 지켜보던 하드독의 뒤로 벼락이 번쩍였다.
 폭풍은 사흘 간 계속 되었다. 스크로파 호는 돛을 접고 대형 노도 까딱하지 않고 전연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비바람은 스크로파 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표류하던 스크로파 호는 폭풍이 잦아들고 나서야 가만히 있으려는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스크르파 호는 다른 갤리선과 다름없이 갑판이 낮았으므로 폭풍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했다. 돛줄이 풀려서 돛대머리가 무너져 내렸고, 삭구들의 일부가 파도와 바람에 쓸려갔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대포가 굴러다니며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어 놓은 상태였다. 임시방편으로 수리해 놓은 곳이 다시 균열을 일이킨지도 오래였다.

"지금 여기가 어느 해안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스크로파 호가 좌초한 해안이 그라나다 왕국의 영토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 로자레일은 골치가 아파졌다. 좌초는 군법회의 회부 대상이었는데, 더군다나 그 위치가 그라나다 왕국 땅이라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측량을 해봐야 알겠지만, 태양의 위치를 봤을때 그라나다 왕국 알메리아 동쪽의 산호세 반도 인근으로 보입니다."

 로페의 보고를 받은 하드독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것은 로페의 보고 때문이 아니었다. "전원 전투 준비!" 라고 소리친 하드독은 로페의 어깨너머 해안쪽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으므로, 로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아..."

 그가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족히 오백명은 되어 보이는 그라나다 왕국군이었다. 로페는 침음성을 흘리면서도 허리춤에서 사브르를 뽑아들었다. 그것을 계기로 선원들도 각자 무기를 뽑아들었고 아르보는 갑판종을 다급하게 울렸다. 포로를 포함해 60명도 안되는 인원으로 500명과 맞서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에 불과할테지만,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행위였다.
 그라나다 왕국군은 여유롭게 다가왔다. 스크르파 호가 본래 그라나다 왕국 군함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고, 좌초가 되어 항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일 수도 있었다. 

"الذين هم يا رفاق. فريسة الاستسلام?"

 중간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을 걸었지만 로자레일은 아랍어를 몰랐으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로페는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대충이나마 그가 한 말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순순히 포로가 되겠냐고 하는 것 같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하드독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다고 전하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로자레일과 하드독, 로페, 아르보를 비롯한 포티쿨루 호 선원 19명은 밧줄에 포박되어 어딘가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뿔뿔이 흩어져 로자레일이 도착한 곳은 어느 이름모를 채석장이었다. 총 3명이 로자레일과 함께였는데 그중에는 무슨 질긴 악연인지 하드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도 다급한 모양이군. 말라가 시의 히브랄파로 성(Castillo de Gibralfaro)이 함락되면서 그라나다 왕국의 땅도 얼마남지 않은 모양인데, 그것들이나마 지키려면 성곽을 보수하기 위한 석재는 필수겠지."

 석재를 채굴하기 위한 곡괭이질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에는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로자레일은 하드독이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럼에도 로자레일은 묵묵부답으로 곡괭이질을 할 뿐이었다.

"한심하긴, 자네와 내가 이곳으로 끌려온지 겨우 세달을 넘겼을 뿐이네. 선상 생활에 비하면 딱히 이 일이 더 힘들다고 할 수도 없어. 그런데 벌써 자포자기할 셈인가? 이런 머저리 같은 자식!"

 하드독이 격앙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지만, 로자레일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곡괭이질을 멈추고 로자레일을 노려보던 하드독은 물소가죽으로 만든 길다란 채찍을 들고있는 무어인 감독관의 시선이 그에게 머무는 것을 느끼고 다시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자네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야. 그간 우리의 노력이.. 흠.."

 하드독은 말을 중간에 멈추고 채석장의 한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탈출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진 시체 4구가 장대에 매달린 채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까마귀가 어깨에 앉아 눈알을 쪼아 파먹는 시체와 유독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체는 생전에 하드독과 로자레일도 잘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벌을 받은 가련한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알고 있나?"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까마귀를 힐끗거린 하드독은 로자레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에게는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있었는데, 제우스의 분노는 프로메테우스를 가혹하게 징벌한 것으로 부족했는지, 한 항아리와 함께 외모는 아름답지만 성질이 나쁜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어. 제우스가 보내는 선물은 아무 것도 받지 말라는 형의 당부가 있었지만,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지. 그리고 판도라는 절대로 항아리를 열지말라는 제우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항아리를 열어버렸어."

Lv33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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