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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Sea Demon -14화 - Wake up from sleep

퀘드류
댓글: 1 개
조회: 1365
추천: 3
2013-08-19 18:50:18
"어서오게나. 오늘도 마음껏 들게."

 두팔을 뻗어, 환영하는 마음을 표현한 베체코는 로자레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무심한 눈빛과 표정없는 얼굴은 전과 다름없었다. 그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굳이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해산물 요리를 준비해봤네. 이탈리아식 가자미 요리라네. 가자미 좋아하나?"

 평소처럼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로자레일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리고 아쉽게도 큰접시에서 요리를 덜고 있는 베체코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늘의 주요리는 레몬즙으로 밑간을 하고, 녹인 버터에 다진 양파와 마늘, 타임을 볶은 재료에 우유와 생크림을 넣어 만든 소스를 뿌려 오븐에 구워낸 혀가자미와 후추와 소금, 그리고 마늘로 간을 한 시금치를 곁들인 요리였다. 
 커다란 혀가자미의 한 부분을 덜어내어 작은 접시에 담아, 로자레일 앞에 놓아준 베체코는 큰 스푼을 들어 스프를 한모금 맛보았다.

"아주 괜찮군. 자네도 들게나."

 로자레일은 크고 작은 스푼과 포크, 나이프와 매콤한 향이 나는 야채스프, 가자미 요리를 번갈아보면서 잠시 망설이다가 큰 스푼을 야채스프로 가져갔다. 그리고 맛을 보았다.

"허?"

 무심코 로자레일의 야만스러운 식사장면을 기대하던 베체코는 로자레일이 큰스푼을 이용해 스프를 떠먹고 주요리와 샐러드를 다른 크기의 포크를 사용해서 먹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한동안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베체코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이제 괜찮은건가?"

 로자레일이 스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예."

"허허, 잘된 일일세."

"오늘이 며칠 입니까?"

"1489년 8월 16일이라네. 어제가 바로 성모승천대축일이었지."

 생각에 잠긴 로자레일을 보며 베체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걸세. 하지만 걱정말게나. 자네는 곧 온전하게 괜찮아질 걸세. 허허, 잘된 일일세."

 그가 보기에 로자레일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자네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네."

 베체코는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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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노크소리가 오슬로 산 떡갈나무로 만든 응접실 문을 타고 응접실 안을 울렸다.

"들어오게."

 로자레일은 응접실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다가, 벽에걸린 베네치아 제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것처럼 깨끗한 셔츠와 재킷, 그리고 깔끔하게 면도한 턱이 눈에 들어왔다. 말끔한 모습에 만족한 그는 뜨거운 물과 말린 로즈마리(Rosemary) 꽃잎이 들어있는 손수레를 더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숙부님, 올해 농장의 작황이 매우 좋습니다. 이런 식이면 금세 재산이 두 배로 불어날 겁니다!"

"하하, 올해야 여름에 비도 많이 오고 햇볕도 적당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나저나 베네치아 공화국이 키프로스 섬의 파마구스타 항구를 손에 넣었다고 하더군."

"저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노바 공화국과 나폴리 왕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안에서는 베체코와 그의 성년한 조카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베체코 옆에 앉아 있는 열 너댓으로 보이는 소녀는 그들의 대화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창밖의 정원을 보다가 벽에 걸린 아프리카 무당 가면을 보고, 때로는 베체코 뒤에 위치한 전신거울을 통해 옷매무세를 확인했다. 마침내 그녀의 시선이 손수레를 끌고 들어오는 로자레일에게 향했다. 그리고 손짓으로 그를 불러 귓속말로 속삭였다.

"로자레일, 추수제가 언제까지라고 했지?"

로자레일도 그녀를 따라 속삭였다.

"사흘 뒤가 마지막 날입니다, 아가씨."

"뭘 그리, 속삭이느냐? 이 아비도 같이 알자."

"흥, 아빠는 추수제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구경도 못가게 하시면서!"

 비올라가 심통이 난 것마냥 툴툴거렸다. 그러고 혀까지 빼물었다. 쥬빌라가가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

"올해 작황이면 비올라가 방안을 새옷으로 가득채워도 흑자일 것입니다. 다시는 상단물건을 막 쓰지 않겠다고 약속도 했으니 허락해주시지요."

"허허, 상단의 밀과 술을 거지들에게 마구 나눠준 일이 얼마나 되었다고. 불과 몇 달 전 일이지 않느냐!"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상단 평판이 아주 좋습니다. 총독부에서 감세 혜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베체코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꽤나 고심하는 모양새였다.
 작년의 흉작으로, 올해 여름에 거지들이 급증했었다. 거지들이 포르투 항까지 오는 일은 별로 없는데, 워낙 많은 거지가 먹을 것을 찾아 도시로 이동하다 보니 상업도시인 포르투까지 넘어온 것이다.
 몹시 더럽고 피폐한 그들에게 비올라는 창고를 열어 주었다. 발주 받지 못한 밀과 잡곡만 수백포대였다. 평소 곡물 가격은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가뭄으로 인해 그 가격이 상한가를 칠 때였다. 덩달아 훈제육과 소시지까지. 덕분에 금전적인 손해가 막심했다. 
 그래도 작년 일로인해서 근교 농부들이 페스체일가문에 다른 상단보다 싸게 곡물을 공급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포르투 총독부에서 감세혜택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풍문에 따르면 포르투 총독 발롯 후작의 자식이 비올라를 좋게 보고 있어서 그렇다고도 했다.
 생각을 마친 베체코가 미소를 지었다. 

"좋아, 다녀와도 좋다. 단, 하인들과 같이 갔다와야 한다!"

 방금 전까지도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던 비올라는 그제야 얼굴에 함박 꽃을 활짝 피웠다.
"네! 너무 많이 가면 거추장스러우니 로시오랑 로자레일만 데려갈게요!"

 그 말에 베체코의 시선이 그의 딸 뒤에 기립해 있는 하인에게 향했다. 그 하인은 마드리드의 경매장에서 거금을 들여 사온 노예였다. 10두캇과 금화 세닢, 그것이 그의 가격이었다. 남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말렸지만 베체코는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릴 뿐만아니라 교양과 예법에도 밝고, 배를 다루고 말을 탈 줄도 알았다. 게다가 훌륭한 검술 실력까지 겸비했다. 경호원과 하인과 항해사를 동시에 고용한다면, 10두캇과 금화 세닢은 길어야 1년치 봉급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돈이 아까울리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학습능력도 뛰어나서, 가축을 돌보고 식료품을 보관하는 일도 금방 배웠다. 그리고 집사의 말에 따르면 회계학에도 재능이 있어보였다.
 따라서 베체코는 그를 좀 더 두고 보다가 제 2집사로 임명할 계획이었다. 단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비올라가 이 하인을 지나치게 아낀다는 것이다. 쓸모있는 하인으로 아끼는 것이라면 걱정이 없겠지만.

"다녀올게요!"

"조심히 다녀오거라."

 비올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벌써 오후 늦은 시각이었으므로 조금이라도 더 돌아보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녀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치마 자락을 양손으로 붙들고 자신의 방으로 날듯이 뛰어갔다. 

"로자레일, 너무 늦지 않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주인님."

 로자레일은 베체코와 쥬빌라가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미겔 영감이 술을 마시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마굿간으로 향했다.

"자자, 가세나. 우리 귀여운 아가씨께서 기다리시겠네."

"영감님, 제가 마차를 몰까요?"

"어허! 포르투까지는 눈감고도 몰 수 있어! 걱정하지 말게!" 

 물론 미겔 영감이 술을 마시지 않았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바람이었지만, 그가 술에 취해있는 것은 일상이었고, 마차를 끄는 페서스를 믿었으므로 로자레일은 굳이 트집을 잡지는 않기로 했다. 
 백합을 감싸고 있는 밀 문장이 새겨진 고급마차가 페스체일 가문 저택 정문을 빠져나갔다.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어있는 황금 빛 벌판을 가로지르는 관도에 오른 마차는 천천히 포르투 시를 향해 나아갔다.

"로시오, 오랜만에 외출하니까 좋지?"

"네, 올해 추수제는 정말 대단하다고 하더라구요! 디아스 제독님이 아프리카의 최남단을 발견한 것을 기념해서 폭죽축제도 한다더라구요! 리스본은 더 대단할 거래요! 아, 리스본은 얼마나 멋진 도시일까요?"

"정말? 리스본에 가보고 싶다!"

 몽롱한 표정을 짓는 로시오를 따라 덩달아 리스본을 그리던 비올라가 로자레일에게 물었다.

"로자레일, 에스파냐 왕국은 어떤 곳이야? 포르투보다 큰 도시도 있다던데, 정말이야? 정말로 포르투보다 큰 도시도 있어?"

 비올라가 방긋방긋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Lv33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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