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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Sea Demon -11화 - A slave of stable

퀘드류
조회: 1196
추천: 1
2013-07-30 01:07:50
 한동안 페드라사시 감옥에서 지내던 껍데기는 마드리드 인근의 노예경매장으로 운송되었다. 노예 사무소에서 깨끗히 씻겨지고 따뜻한 음식을 먹은 로자레일은 그나마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 물론 되찾은 것은 겉모습에 불과 했다. 페드라사시 지하감옥에 자신감과 용기, 사고하는 방법까지 두고온 이 노예는 전직 해군사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소심하고 고분고분 했지만, 본래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그리고 건장한 몸뚱아리가 어디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고 다른 노예들과 함께 경매 단상 위에 세워졌다. 깨끗한 피부와 군살없는 매끈한 몸매 그리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반듯한 외모는 분명하게 다른 노예들과 다른 점이었다. 로자레일의 바로 앞에서 낙찰된 채무자는 금화 세닢이었고, 그 전의 무어인 전쟁포로는 두닢 반, 더 전의 흑인노예는 반닢이었다. 

"자, 이번에 소개해 드릴 노예는 다른 노예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들으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여기 보이는 외모가 전부가 아닙니다. 어이쿠! 이거 튼실하군요!"

"어머어머! 호호!"

"하하하!"

 로자레일의 중요부위를 손가락으로 튕기는 경매진행인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좌중은 모두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이 노예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여러분 모두 잘 아시는 바로 그 도박기사의 아들입니다!"

"오오!"

 도박기사라는 단어가 경매진행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로자레일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산티아고 기사단 출신 기사의 아들이니만큼 예법과 검술은 기사 부럽지 않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해군사관으로 복무한만큼 항해에 관한 지식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알만한 분은 다 아실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구매하실 분은 조용히 손만 들어주십시오!"

경매진행인이 소개를 마치자마자, 구입을 원하는 고객들의 손이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한닢 반, 두닢, 세닢 반, 다섯닢! 그리고 여덟닢! 여기 저기서 그치지 않던 무언의 외침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단 한명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단상위 경매 진행인도 숨을 죽이고 고객들도 숨을 죽였다.
 득의양양한 유일한 한 명은 호화로운 차림새의 중년 귀부인이었다. 살짝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있는 그녀는 상상 속에서 이미 로자레일을 저택의 비밀 방으로 데려간 모양이었다. 고조된 흥분으로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는 순간, 그녀의 상상을 깨부수는 묠니르(Mjolnir)가 날아왔다.

"10 두캇(ducat, ducato)!"

 경매장의 모든 이들이 놀라,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모인 그곳에는 단정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말없이 로자레일을 응시하고 있었다. 

"베네치안 두캇입니까?"

 경매진행인의 물음에 중년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자, 10 두캇입니다! 환전 수수료를 제외하고 1.15:1의 비율로 계산하면 왕국 금화 열닢과 은화 세닢입니다. 금화 열닢과 은화 세닢이 현재 최고액입니다. 다른 분 안계십니까? 앞으로 열을 세겠습니다. 자, 하나, 둘, 셋..."

"금화 열닢 반!"

 당황한 중년 귀부인이 손짓을 보내는 것도 잊어버리고 경망스럽게 목소리를 높였지만 헛수고였다.

"10 두캇과 포르투갈 금화 세닢!"

꿀꺽, 마른 침을 삼킨 진행인이 입을 열었다.

"포르투갈 금화는 특별히 수수료 없이 1:1 비율로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자 금화 열세닢과 은화 세닢! 다시 열을 셉니다! 하나! 둘!"

 경매진행인은 일부러 천천히 숫자를 세면서 중년 귀부인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중년남성에게 잠시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가 고개를 숙이고 딴청을 부릴 뿐이었다.
 
"여덟! 아홉! 열! 축하드립니다! 이 노예는 금화 열세닢과 은화 세닢의 금액으로 검은 코트를 입으신 선생님께 낙찰되었습니다!"

****************************************************************

 플라누를 원망하고 하드독을 원망하고 프랑스 상선을 원망했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절망뿐이었다. 원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았다. 

- 누군가의 회고록 중에서-

"이보게, 이만 일어나게나."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미처 가시지 않은 새벽의 한기를 머금은 아침 공기도 함께였다. 퀘퀘한 밀짚 냄새를 밀어내는 상쾌한 아침공기가 기도를 타고 폐부 깊숙히 도달하자, 선 채로 잠을 자고 있던 말들이 푸르릉, 하고 낮게 울었다. 그리고 다른 기척도 문틈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거친 모직으로 만든 작업복을 입은 노인은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땔감으로 쌓아놓은 목재 더미 위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술통을 꺼내 한모금마시고, 마구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덕아래로 보이는 붉은 기와와 회백색 벽돌로 지은 대저택에서는 깔끔한 옷을 차려입은 하인과 하녀들이 새롭게 시작한 아침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우물에서 물을 깃고, 아침식사를 위한 밀가루포대를 나르는 동안, 빵굽는 가마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구수한 빵냄새가 그의 불그스름한 코를 자극했다.

"킁킁."

 눈을 감고 빵냄새를 음미하던 노인은 손바닥만한 부드럽고 하얀 밀빵을 반으로 찢어 한조각을 입에 넣는 상상을 하다가,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꾀죄죄한 몰골의 사내가 서있었다. 여기저기 얼룩지고 주름진 낡은 셔츠와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힌 사내의 얼굴을 들여다본 노인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일어났군. 주인님께서 자네를 불러오라고 하셨네. 멀리 마데이라 제도까지 다녀오신 분이 돌아오시자마자 자네를 찾는 걸 보면, 어지간히 자네를 아끼시는 모양이야." 

 표정없는 얼굴로 노인을 빤히 쳐다보는 사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모양인지 노인은 사내의 태도에 상관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꼴이 말이 아니군. 하긴, 어제저녁에 그렇게 싸워댔으니 깔끔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아무튼 새 옷으로 갈아입고, 그 수염은..."

잠시 말을 멈춘 노인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어보았다. 덥수룩한 수염이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요동쳤다.

"수염은 자네 마음대로 하게나."

 노인은 사내를 이끌고 언덕 아래 우물가로 데려갔다.

"대충 씻게나. 세수도 좀하고. 머리도 감고. 나는 새 옷을 가지러 갔다오겠네."

 저택 뒷문으로 사라지는 노인을 뒤로하고 사내는 주섬주섬 옷을 벗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물을 깃고 식재료를 나르는 하녀들이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어머머! 어머!"

 알몸으로 서슴없이 물을 끼얹는 모습에 몇몇 젊은 하녀들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지만, 정작 당사자인 사내는 한 점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거 원, 쯧쯧."

 깔끔한 옷을 가지고 돌아온 노인은 온몸으로 물을 뚝뚝 흘리면서 알몸으로 서있는 사내를 보고 짧게 혀를 찼다.

"자, 어서 가세나. 주인님께서 기다리신다네." 

 저택의 식당 입구까지 사내를 데려간 노인은 사내만 안으로 들여보냈다.

"왔나? 자리에 앉게."

 점잖은 목소리가 사내의 귓가에 울렸다. 식당 안에는 2인용 식탁의 상석에 앉아 턱을 괴고 앉아있는 중년남성과 사내밖에 없었으므로, 목소리의 주인공은 필히 중년남성일터였다. 사내가 자신과 식탁을 번갈아보면서 고민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중년남성은 손으로 자리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편하게 앉게나."

 사내가 자리를 찾아 앉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중년 남성이 금박을 입힌 작은 청동종을 흔들었다. 딸랑딸랑, 맑은 소리가 울려퍼지자, 갖가지 음식이 식탁 위로 날라졌다. 
 양상추와 당근을 채썰고 달콤한 사탕무를 갈아넣은 샐러드 위에 얹은 은은한 올리브오일의 향기와 부드러운 크림스프가 뜨거운 김으로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 모습은 가히 매혹적이었다. 또한 마늘과 함께 볶은 토끼고기에 사프란을 넣고 우려낸 걸쭉한 소스로 균일하게 코팅된 밥알이 윤기를 반짝이는 빠에야와 그 위에 올려있는 큼지막한 토끼통구이는 요리를 나르는 하인들마저 군침을 돌게 했다. 
 그러나 사내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직 청동종뿐이었다.

"이 종이 마음에 드나?"

Lv33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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