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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Sea Demon -10화 - Unfair judgment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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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2 23:20:43
"군법회의가 아니라 정식군사재판입니까?"

"그대가 직접 확인해 보게."

 코르도바 경의 놀라운 호의에 목례로 감사의 뜻을 전한 로자레일은 직접 명령서를 읽어보았다. 그곳에는 '스크르파 호의 난파에 대한 해군본부의 군법회의 결과, 수습사관 로자레일 데 퀘드롯을 정식군사재판에 회부할 것을 결정함. 공정하고 엄정한 본 결정은 번복될 수 없음.' 이라고 적혀있었다. 스크르파 호의 난파 문제로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임시일지언정 스크르파 호의 함장은 하드독이었고, 로자레일의 위로 선임사관이 둘이나 더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법정에 서게되는 점은 분명 의문스러웠다. 

"자네가 난파에 대한 책임을 지지는 않을 걸세. 그리고 필요하다면 본 경이 직접 증언을 해주겠네."

"코르도바 경께서 도와주신다면 재판정에 정의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코르도바 경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자네도 말을 참 잘하는군."

 로자레일은 그의 말에 숨은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굳이 먼저 언급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에 그동안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아길라르 백작이 입을 열었다.

"그대의 부친은 코르도바 가문의 봉신이었네. 몰랐나?"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산티아고 기사단의 일원이기도 했지. 그가 그대의 후견인인 가르젠 경을 만난 것도 산티아고 기사단이라네. 그는 훌륭한 기사였다네. 당시를 회상해보면, 그는 코르도바 검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뛰어난 검객이었어."

 가르젠 경은 로자레일의 부친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로자레일로써는 그의 과거를 듣는 것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만있자, 그게 언제였지?" 

"제가 18살 때의 일이니, 1471년 이군요."

"그래, 맞아.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오크부족을 토벌한 해의 일이었네. 토벌의 공로로 적지 않은 상금과 훈장을 하사받은 그는 세비야로 휴양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단으로 복귀했다네. 그리고 휴직신청을 냈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로자레일이 그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인어를 찾으러 떠난다더군. 하하, 사람들은 그가 농담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 그대를 데리고 세비야에 정착했지. 그 이후는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는 언변이 뛰어났지만,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라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은 가르젠 경 뿐이었지. 인어를 찾으러 떠난 사람이 왜 그대를 데리고 돌아왔는지. 인어를 찾은 것인지는 가르젠 경만이 알거야. 아니지, 어쩌면 그도 모르겠군. 혹은 배우자를 인어로 비유한 것일 수도 있고."  

 잠시 로자레일의 흑갈색 눈동자를 들여다 본 아길라르 백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쨋든, 그가 숙적, 카브라 백작 가문의 마수로부터 우리 형제를 보호한 공은 잊지 않고 있다네. 고귀한 이사벨 1세 폐하께서 말라가의 히브랄파로 요새에 거처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말라가로 가야하네. 그대가 수도의 군사법원까지 가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겠네. 그리고 가르젠 경에게도 편지 한 통을 써주겠네. 내 약속하지. 걱정하지 말게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길라르 백작은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인물이었으므로, 로자레일은 생각보다 안락하게, 호의호식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보다 안락하게 수도 톨레도(Toledo)의 성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딱 성문까지였다. 수도 근위대가 로자레일을 끌고 간 곳은 군사법원이 아니라, 악명높은 페드라사시 감옥(Carcel Municipal de Pedraza)이었다. 

"왜! 도대체 왜!"

 정식재판이라면 가르젠 남작 가문 전임 변호사의 변호를 받아 쉽게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테지만, 페드라사시 감옥에서 약식으로 재판이 진행된다면 로자레일은 혐의를 벗을 길이 없었다. 약식 재판이 결정된 순간부터 로자레일의 죄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르젠 경이 내가 구출 되었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어. 그런데 왜 약식재판이 되도록 내버려두었을까?"

 로자레일이 발목의 쇠사슬보다 더 차가운 어둠에 얽매인지 나흘. 창문도 없는 지하에 수감된 이상 탈옥은 불가능했다. 썩은 나뭇잎에서 나는 냄새와 음습한 공기가 로자레일의 폐로 들어갔다가 머리로 퍼져, 그의 생각을 어지럽혔다. 

"가르젠 경도 어쩔 수 없는 거대 권력이 개입한 것일까? 아니야, 겨우 일개 수습사관 때문에? 혹시 플라누 때문에 알라스투에이 가문이? 개자식! 오크 뒷다리 같은 자식! 그깟 비웃음 당한 걸로 이런 짓을 벌이다니! 아니야, 명망 높은 백작가문이 이런 일을 벌일리가 없어. 그럼 도대체 누가? 왜?"

 온갖 생각이 로자레일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강력한 어둠의 힘 앞에 하드독이 심어준 그것도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줄기 미약한 동앗줄은 가르젠 경이 그를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가르젠 경께서 소식을 들으셨다면 곧 도착하실거야. 가르젠 가문의 힘이라면 약식 재판이 아니라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어."

 설득력있는 긍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희망을 불러왔다. 가르젠 경이 찾아올것 이라는 확신이 섰을때, 마침내 그가 실제로 찾아왔으나 그가 가져온 것은 구원의 동앗줄이 아니라 절망의 도화선이었다.
 로자레일로써는 밤인지 낮인지 알수 없었던 그날 밤, 지하 감옥의 입구 쪽에서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있다가 발소리를 듣고 흠칫, 놀란 로자레일은 손을 더듬어 독방을 가로막고 있는 쇠창살까지 엉금엉금, 기어갔다.
 누군가가 들고있는 기름등을 떠난 빛줄기가 지하감옥의 곳곳을 더듬어, 이윽고 로자레일의 가슴팍까지 도달하자 로자레일은 비첼이 그의 가슴을 애무하는 것과 같은 환희와 흥분으로 세차게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오셨군요! 아저씨께서 오실 것을 알았습니다!"

 기쁨에 겨운 로자레일의 몸부림을 따라 쇠사슬이 광대마냥 춤을 추었다. 로자레일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투명한 구슬이 로자레일의 광대 위를 굴렀다. 어느새 로자레일 앞에 도착한 가르젠 남작이 그런 로자레일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저씨! 아저씨! 뵙고 싶었습니다!"

 고양된 목소리가 지하감옥에 울려퍼졌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침착된 메아리 뿐이었다. 묘한 분위기를 느낀 로자레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 왜...?"

 가르젠 경은 굳게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아예 눈마저 감아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로자레일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너지듯 주저앉아 쇠창살에 기대 흐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왜, 왜? 왜!"

 로자레일의 울부짖음에도 한동안 말이 없던 가르젠 경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유는 자네가 더 잘알고 있을걸세."

"제가 알고."

"그만, 자네의 말은 듣지 않겠네. 이것은 일방적인 통보야. 그럴 의무는 없지만,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찾아온 걸세. 자네는 배은망덕한 짓을 했어.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네도 알고 있을거야. 그만, 말하지 말게. 만약에 모르겠다고 한다면 자네에게 더욱 실망할걸세. 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네는 노예가 되어 타국으로 팔려갈걸야. 포르투갈이든, 프랑스이든, 바다 건너 영국이나 신성로마제국, 더멀리 오스만투르크일수도 있겠지. 멀면 멀수록 좋아. 하지만 이것은 자네를 위한 결정이기도 하다네. 아버님의 뜻에 따랐다면 자네는 사형을 면하지 못했을거야."

 사형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로자레일은 더이상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친우의 아들인 자네에게 미안한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비첼을 생각하면 정당한 처벌이라는 생각도 든다네. 자네의 건강을 기원하겠네. 비록 노예일지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나을 테니까."

 일방적으로 말을 마친 가르젠 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감옥을 빠져나갔다. 로자레일은 제자리에 무너져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기름등의 불빛을 넉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로자레일이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심판관이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판결을 내려주는 것 뿐이었다. 로자레일은 머리속으로 최대한 정확하고 긍정적으로, 너무 강하지 않게 주장할 내용을 정리했다. 이틀을 지새우며 그의 모든 능력을 동원했지만, 이미 정해진 판결 내용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본 판관은 국왕폐하께서 부여하신 정당한 판결의 권한으로 로자레일 데 퀘드롯을 노예형에 처한다."

 로자레일은 좌절했다. 그동안 그쳤던 눈물이 다시 샘솟았다. 극심한 좌절감은 하드독이 심어준 항아리마저 깨뜨려 버렸다. 튼튼한 석재로 쌓은 줄 알았던, 16년 동안 쌓아온 성은, 냉정한 비바람에 흩날릴 모래장난에 불과했다. 엉망으로 난도질당한 가치관이 흘린 피가 로자레일의 가슴을 가득 채워버렸다.
 그 피의 또 다른 이름은 절망이었다. 겨우 손바닥만한 항아리 조각은 절망의 바다를 탈출할 구명정이 될 수 없었다. 이윽고 엄습하는 무기력감에 그의 세계가 무너져버렸다. 이제 이곳에 남은 것은 한 때 로자레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껍데기이다. 

Lv33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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