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소설/카툰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소설]Sea Demon -12화 - A slave of stable

퀘드류
댓글: 1 개
조회: 880
추천: 3
2013-08-04 10:33:10
 사내는 표정없이 눈으로 종을 좇을 뿐이다.

"마음에 든다면 주겠네. 다만 그전에 식사를 하도록 하세나. 자, 마음 껏 들게."

 중년 남성은 전통적인 예법에 따라 포크와 나이프, 스푼을 사용해서 식사를 시작했다. 우선 큰 스푼으로 크림스프를 조금 맛 보고, 흑색후추를 직접 갈아 스프 위에 살짝 뿌려 다시 맛을 보았다.

"우리 페스체일 가문 주방장의 솜씨는 일품이지. 나 베체코 데 페스체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네."

 사내가 대답을 하건말건 혼잣말로 요리와 요리사의 장점들을 연신 칭찬하던 베체코는 식사를 하면서 사내가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사내는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기는 커녕 왼손으로 샐러드를 집어먹고, 오른손으로는 빠에야를 긁어먹었다. 그리고 빠에야 밥풀이 묻은 오른손으로 토끼구이를 들고 야만스럽게 고기를 뜯어먹었다.

"하하, 참으로 맛있게 먹는군. 어쩌면 자네가 선택한 그 방법이 진정 요리를 즐기는 방법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자네가 예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네. 자네의 움직임에는 절도가 있어. 은연중에 기품이 느껴진다는 말일세."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베체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 포르투 시의 포트와인은 세계 최고지. 자네도 한 모금 하겠나?"

 물론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포트와인을 한모금 마신 베체코가 말을 이었다.

"자네가 방앗간의 하인들과 싸움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네. 미겔 영감 말로는 갓 태어난 망아지 때문이었다던데. 그 망아지에게 특별한 관심이라도 있는건가? 이제 어느정도 회복이 된건가?"

 빈 잔에 쪼르르, 포트와인이 채워지는 소리만 들린다.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래도 자네에게 그 망아지를 아끼는 각별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서 다행일세. 미겔 영감에게 말해둘테니 자네는 한동안 그 망아지만 돌보도록 하게. 자네도 시간이 필요할걸세. 자네는 상처를 입었어. 육체적인 상처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네. 그저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집사는 돈이 아깝다고 하지만, 음, 이거 실례했네. 방금 이야기는 잊어주게나. 미안하네. 아무튼 나는 자네를 믿는다네. 나도 배를 타봐서 알아. 자네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걸세. 우리 페스체일 가문은 이곳 포르투를 거점으로 무역선단을 운용하는 중이라네. 앞으로 많은 인재가 필요하지. 자네같은 인재가 말이야. 이런 말이 너무 많았군."

 포트와인을 반병쯤 비운 베체코는 말을 하다가 무심코 사내에게 눈길을 줬다가, 그가 식사를 마치고 멀뚱하니 종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딸랑딸랑, 청동종을 흔들어본 베체코가 그것을 사내에게 내밀었다.

"자, 가져가게나. 이것이 자네의 회복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자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하겠네."

 그 뒤로 한달이 흘렀다. 포르투 시의 언덕 이곳저곳에는 이제 봄기운이 완연했다.
 봄날의 따스함을 한껏 머금은 감미로운 바람이 언덕 위의 풀꽃들과 악수하며 지나치다가 장난스레 수선화 꽃잎의 손을 이끌어, 소풍나온 귀여운 꼬마 아가씨의 콧잔등을 간지럽힐때,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너저분한 셔츠를 걸친 마부는 멍하니 포르투 항구에 정박한 대형 선박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열 서너살정도로 보이는 꼬마 아가씨는 콧잔등에 붙은 수선화 꽃잎을 떼어네며 귀엽게 툴툴거렸다.

"아이참, 간지럽게."

"수선화도 비올라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나봐요."

"헤헤, 근데 저 아저씨는 왜 저러는거야?"

"누구 말씀이세요?"

"저기, 저 아저씨 말이야."

 젊은 하녀가 마부를 제대로 찾지못하고 근방의 양치기들과 저 멀리 나무꾼들을 연신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답답했는지, 비올라는 실크 치마를 털고 일어나 하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저씨, 무슨 생각해요?"

 비올라의 부름에도 마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저씨! 아저씨!"

 마부가 대답도 않고, 그저 멍하게 바다를 바라보자 비올라의 옆을 지키고 있던 하녀가 짐짓 화난 어조로 마부를 다그쳤다.

"로자레일! 아가씨께서 부르시잖아요!"

 로자레일은 그제야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앳되보이는 분홍빛 볼과 생기로 가득찬 맑은 눈망울, 정성들여 땋은 갈색머리카락, 그리고 실크로 장식된 블라우스는 로자레일의 지저분한 차림새와 대조적이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로자레일을 올려다보던 비올라는 그가 여전히 말이 없자 조용히 하녀에게 속삭였다. 

"로시오, 이 아저씨는 그거야? 그 말못하는 그거."

"벙어리 말씀이세요?"

"응! 벙어리! 벙어리야?" 

"벙어리는 아니래요. 미겔 영감님 말로는 벙어리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말하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미겔 영감님이라면 마구간지기 할아버지?"

"네, 마구간지기 영감님요. 영감님 말로는 머리를 다친 것 같다나봐요."

"힝, 불쌍하네. 불쌍한 아저씨였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래보여도 몸 하나는 튼튼하더라구요. 저번에 방앗간 하인들과 싸우는 모습을 본적 있는데, 혼자서 세 명을 때려눕히더라구요! 방앗간지기의 멱살을 잡고 끝까지 놓치 않아서 미겔 영감이 떼어놓느라 엄청 애를 먹었어요!"

 폭우로 봇물이 터진것처럼 이어지는 로시오의 수다를 가만히 듣고있던 비올라가 로자레일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방앗간 아저씨들이랑 왜 싸웠어요? 네?"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지만, 비올라는 그가 벙어리라고 확신했으므로, 그가 대답을 하건 안하건 비올라는 질문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케이크가 먹고 싶었나? 아저씨, 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방앗간 아저씨들이랑 싸운거에요? 바보! 케이크가 먹고 싶었으면 주방을 찾아갔어야죠! 방앗간에는 밀가루 밖에 없다구요! 없는 걸 달라고 하니 방앗간 아저씨 들이 화를 내죠! 나라도 화가 났을 거에요!"

 로자레일의 대답여부와 상관없이 소녀의 머릿속에서는 상상의 나래가 마음껏 펼쳐졌다. 

"마부는 마구간에서 살아요? 말들이랑 같이 먹고 자나요? 밤에는 춥겠죠? 말들이랑 같이 자니까 따뜻하려나?"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은 질문 세례는 포르투 대성당에서 출발한 종소리가 비올라의 귓볼을 간지럽히고서야 간신히 멈추었다. 뎅뎅, 맑은 종소리는 언덕 아래를 길게 감고도는 도루 강(Rio Duoro)을 따라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휘익! 표정도 없이, 말도 없이 성당 종소리를 듣고 있던 로자레일은 종소리가 끝나자마자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에구머니!"

 도루 강가를 거닐며 풀을 뜯던 망아지 한 마리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자, 그만 깜짝 놀라버린 로시오가 비올라의 뒤로 숨어버렸다.
 로시오의 체구 반만한 비올라의 뒤에 숨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덜덜떠는 로시오를 뒤로한채, 로자레일이 망아지의 갈기를 쓰다듬는 모습을 살피던 비올라는 긴장과 흥분으로 붉게 얼룩진 얼굴로 용기를 내어 망아지에게 다가갔다.

"이게 아저씨가 돌보는 말이에요?"

"아가씨! 위험해요!"

"괜찮아. 이 말은 착한 말이야."

 비올라는 천천히 망아지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워."

 비올라의 가녀린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망아지는 머리를 높이 쳐들면서 크게 원을 그렸다. 그리고 입술을 말아올려 이빨을 드러내며 이리저리 꼬리를 흔들었다.

"아가씨, 이제 가봐야겠어요. 주인어르신께서 찾으실거에요!"

 비올라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안쓰럽게 외치는 로시오의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비올라는 로자레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나, 이 말타고 집에 갈래요!"

 비올라와 망아지를 번갈아 보던 로자레일은 망아지가 빙글빙글 꼬리를 돌리면서 푸히힝, 하고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안전하게 올라탈 수 있도록 손을 붙잡아 주었다. 

"아이고, 아가씨!"

 망아지의 허리즈음에 걸터 앉아, 양다리를 로자레일의 반대쪽으로 가지런히 모은 비올라는 로자레일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도루 강변을 거슬러, 포루투 시 교외에 자리잡은 붉은기와저택으로 향했다.  
 포르투 항구 앞바다가 태양을 거의 삼킬때쯤, 저택 입구에 도달한 망아지는 부드럽게 허리를 숙여 비올라를 내려주었다.

"똑똑해."

 망아지의 갈기를 한번 쓰다듬어준 비올라는 로자레일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안녕! 말도 안녕!"

Lv33 퀘드류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게시판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