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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Sea Demon -5화 - Battle on Valeares

퀘드류
조회: 887
추천: 1
2013-07-08 18:41:03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명문 귀족가문의 영애에게 변고가 생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을 뽑아보면, 중한 병이 들었거나, 가택연금을 당한 경우였다.

"만약 아픈 거라면 대필을 시켰을거야. 사랑스러운 비첼이 가택연금을 당할리도 없고."

 전령 장교의 말로는 그에게 부쳐진 편지가 아예 없다고 했으니, 불온한 내용을 이유로 색출된 것도 아니었다. 그럴싸한 이유라도 생각난다면, 그대로 생각해서 정신적인 위안으로 삼으련만, 그 이유를 전혀 생각해낼 수 없었으므로 생각을 거듭할 수록 로자레일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로자레일이 고개를 저으며 답답한 마음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할 때, 저 멀리 어디선가 발사된 포탄이 바람을 때리는 소리가 갑자기 울려퍼지며, 담당사관의 다급한 마음이 전해지는 불규칙적인 종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미확인 선박 출현! 각자 위치로!”

"옙! 사관, 로자레일 데 퀘드롯!"

  프레티시모(Pretissimo)로 연주되는 군악대의 연주처럼, 빠른 박자로 갑판을 두드리는 발소리에 합류한 로자레일은 대포를 덮고 있는 방수용 모포를 서둘러 벗겨 놓기로 했다.
 포티쿨루 호가 순항 업무를 맡은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 근해는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겨울철에 비가 잦았으므로, 대포에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방수용 모포를 덮어두는 것이 기본이다.
 로자레일이 막 6파운드 캘버린 포의 방수모포를 다 벗겼을 때, 반듯한 차림새의 중년 사관이 로자레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봐, 자네.”

 익숙한 목소리에 재빨리 부동자세를 취한 로자레일이 깍듯하게 경례를 붙였다. 

“사관, 로자레일 데 퀘드롯!”

 그는 포티쿨루 호의 갑판장 아틴 베르날 1등 사관이었다.

"그런 건 병사들에게 시키고 자네는 병사들을 지휘해야 할 것 아닌가!”

“예, 알겠습니다!”

 아직 정식사관으로써의 자각이 부족한 로자레일은 그제야 선원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장포병들은 2인 1조로 포격을 준비한다! 모포 벗기고, 포탄상자 개봉!"

 해병대를 제외한 정규 해군선원의 절반 이상은 처벌 대신 승선을 택한 범죄자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을 좇은 얼간이였으므로 엄정한 군율을 통해 그들을 통제해야 했으나, 포티쿨로 호의 선원들은 얼마간의 적응과정을 거친 숙련 선원들이었기 때문에 갓 정식사관으로 임명된 어린 소년의 지휘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사실 그들은 숙달될 만큼 숙달되어있었고, 그것은 별달리 지휘를 필요치 않을 정도였다. 
 모포가 벗겨지고 대포의 매끈한 나신이 차차 모습을 드러나자, 선원들은 적으로 짐작되는 선박이 출현한 남남동 방향을 응시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일말의 기대감이 담겨있었다. 나포상금의 분배는 매각에 대한 해군본부의 승인과 선박매각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했고, 불과 이틀 전에 나포한 다우는 포티쿨루 호의 함장부관의 지휘 아래, 발레아레스 해 어딘가에서 발렌시아 항을 향해 회항하는 중이었으므로, 그들의 몫으로 정확히 얼마를 분배받을 수 있는지도 알수 없었을 뿐만아니라, 그 다우는 사략선이었으므로 매각승인이 날 것인지조차 불확실 했다.
 그러나 지금 남남동 방향에 출현한 선박은 나스르 왕조나 지야니드 왕조, 하프스 왕조와 같은 서지중해 이슬람 왕국의 군함일 확률이 매우 높아보였다. 군함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나포상금 분배가 확실했으므로 선원들은 적함이 군함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로자레일도 적 선박의 정체가 궁금했는지, 손으로 눈부신 햇살을 가리며 남남동 방향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선미에 올라 망원경으로 적 선박을 살피고 있던 스톤해머 함장은 일반선원들과는 다르게 양동작전의 가능성을 고려하는 중이었다.

"돛대머리, 이런 오크같으니라고! 적이 접근하는 동안 뭘 한거야! 졸고있었다고! 지금부터라도 다른 방향은 놓치지 말고 경계! "

 나포한 다우에 회항원으로 승선한 함장부관을 대신해 베르날 갑판장이 전황을 보고했다.

"확인된 적은 남남동 방향의 아라비안 갤리 뿐입니다. 일단 저들은 그라나다 왕국 깃발을 게양하고 있습니다."

 타국의 깃발을 게양해서 적을 기만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므로 보고를 하는 베르날이나 보고를 받는 스톤해머나 그 깃발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유효 포격사거리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거리임에도 포탄을 발사한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보입니다."

"맞네, 저 빌어먹을 놈들이 바바리아(Barbary)해적이든 무슬림이든 간에 먼저 포탄을 발사한데다가, 그게 터무니 없이 먼거리라는건 변함없는 사실이지. 분명 둘 중에 하나일걸세."

"맞습니다." 

선미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를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던 로자레일은 두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저 갤리선으로 시선을 끌어서 다른 함선이 접근하는 것을 놓치게 하려는 것으로 보였지만, 다른 하나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로자레일이 다른 한가지 가능성을 추측하는 동안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둘 중에 어떤 상황이든 간에 오늘 우리는 저 갤리선을 나포하는 걸세. 우선 우현으로 천천히 선회시키도록!"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베르날은 조범수와 조타수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앞돛대 어귓줄 당겨! 정렬! 정렬! 조타수, 우현으로 크게 선회!"

 갤리선과 포티쿨루호의 거리를 계산한 스톤해머는 유효사거리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를 가늠해보았다. 

"그리고 밥을 먹여야 하겠는데..."

전투가 일단 개시되면 밥먹을 시간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으므로, 정식 식사 시간이 아닐지라도 전투 전에 배불리 먹여두는 것이 필요했다. 망루원이 경계를 게을리 하는 바람에 식사시간이 상당히 빠듯한 편이었다. 

"밥먹을 시간도 부족하구만, 저 오크 대가리같은 자식! 급한데로 4개조로 식사시키도록 하세. 자네도 알고있겠지만, 햄과 소시지는 든든이 먹이도록 하되, 너무 많이 먹게는 하지 말게나! 물똥을 질질 흘리면서 대포를 쏠 수는 없지 않은가! 으하하!"

 선원들이 조를 나누어 식사를 하는 동안, 따로 햄과 치즈를 끼운 비스킷과 와인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스톤해머 함장은 망원경을 통해 갤리선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다행히 모든 인원이 시간에 내에 식사를 마치고 갑판으로 나오자, 그는 망원경을 접어 허리춤에 대충 쑤셔넣고 그에게 집중된 이목을 둘러보았다. 다가올 전투에 대한 긴장과 흥분으로 갑판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거칠게 풀어헤친 셔츠 위에 함장코트를 걸쳐입고 지휘를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코르세어(Corsair)였지만, 외모나 말투와는 다르게 앵글로색슨(Anglo-Saxon) 계통 귀족 집안 출신으로 각종 전략 전술에 능할 뿐만 아니라, 선원들을 다루는데 특히 일가견이 있었다. 

“으하하! 쫄 것 없다! 겨우 그라나다 왕국의 조무래기들이다! 저 좀벌레같은 개자식들이 부리는 얕은 수작은 이미 다 파악했다! 뒤통수를 치려는 비겁한 수작이거나, 으름장을 놓아서 우리를 물러나게 하려는 허세일 것이다. 둘 중의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 오늘 우리는 저 배를 나포한다! 두둑한 나포상금과 승진이 보장된 것이다! 가자! 가서, 저 조악한 갤리의 옆구리에 포탄구멍을 내고 돛을 갈갈이 찢어버리자! 가서 아주 박살을 내주자! 으하하!”
 뜨거운 피가 급격하게 흐르는 것을 느낀 로자레일은 다른 선원들과 함께 양팔을 머리 위로 흔들면서 “우오오!”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로자레일은 포병들이 포탄을 나르는 것을 도우는 한편, 선미에서 전황을 살피는 스톤해머 함장이 새로운 명령을 내리는지, 화약통을 점검하고 있는 하드독 장포장이 다음으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주의하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갤리선을 훑어보았다. 캘버린 포의 포탄이 적함의 돛줄을 자르고 돛에 구멍을 내고 삭구를 부숴서 돛대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들기에는 아직은 먼 거리였다.
 로자레일의 귓가에 프리디시오와 하드독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마흔 명이야. 갑판 아래 그만큼 더 있다고 해도 여든 명 남짓이겠어. 이백명은 승선할 수 있는 갤리선에 그 절반도 안되는 인원이라면, 분명 무슨 일이라도 당했다는 걸세. 파도에 선원이 휩쓸렸다거나, 반란이 있었을 수도 있지. 어찌되었든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은 분명할걸세. 자, 이걸로 확인해보게."

프리디시오에게 넘겨받은 망원경으로 갤리선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하드독이 신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Lv33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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