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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Sea Demon -9화 - Unfair judgment

퀘드류
조회: 742
추천: 1
2013-07-18 23:25:29
 거기까지 말한 하드독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항아리에서 나온 것은 온 세상의 모든 질병과 고통, 해로운 것들이었지. 그러나 딱 한가지, 희망만은 항아리에 남아있었어. 저들이 죽은 일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야. 그러나 우리는 판도라가 항아리 속에 남겨둔 것을 잊지말아야 해. 작년에 말라가 항구가 함락된 이상, 그라나다 왕국의 성이라고 해봐야 수도 그라나다와 알메리아 항구 뿐일거야. 국왕 폐하의 영광스런 군대가 나스르 왕조를 멸하고 우리를 구원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말이야."

"عمل 중지! بحيث تولي اهتماما.!"

 갑작스러운 노역 감독관의 말 중에서 로자레일이 알아들은 것은 행동을 멈추라는 단어 뿐이었다. 로자레일도 하드독도 다른 노역자들처럼 감독관을 바라보았다.    

"توقف جميع العاملين وعلى استعداد للذهاب!"

 하드독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아무래도 오늘이 그날인 모양이야."

 그제야 로자레일이 하드독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우리보고 이동할 준비를 하라는 것 같아."

"그럼...?"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던 대 에스파냐 왕국 육군이 드디어 근방에 당도한 것이 분명할거야."

 채석장 노동자들이 시미터를 든 그라나다 기병들의 감시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이베리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그라나다왕국 최후의 항구도시 알메리아 항구였다.
 성곽보수용 대형 석재들을 싣고 오느라 지친 노동자들이 바닥에 털푸턱 주저앉았다. 

"الطالب الذي يذاكر كثيرا أن يصل أبناء حاران وقال هيا لن يحدث!"

 채찍을 맞은 흑인 한명이 "악!"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흑인의 등짝을 매섭게 훑고 지나간 채찍이 또다른 먹잇감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흑인의 비명을 축가삼아 채석장과는 비교하지 못할 중노동이 노역자들에게 부과되었다. 족히 30kg은 나갈 대형 석재를 들고 십여 미터 높이의 성곽을 오르내리는 한편 허리를 묶은 외줄에 의지해 외벽을 보수해야 했다. 외벽을 수리하는 도중 밧줄이 끊어지거나, 매듭이 풀려 추락하거나, 굴러떨어지는 돌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감독관들이 노역자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였기 때문에 사고가 잦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들이 이곳에서 노역을 한 것은 3일에 불과했지만 채석장에 있을 때에 비하면 그 꾀죄죄한 몰골은 거지나 다름없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하드독의 말에, 로자레일도 판도라의 항아리에 남은 그것을 가슴에 품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하드독이 그리스신화를 인용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로자레일에게 중요한 것은 조만간 이곳에서 풀려나 그리운 비첼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로자레일과 하드독이 알메리아 성에서 노역한지 나흘째 되던 날 정오 무렵, 알메리아 성 밖에서 뿔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성 내에서는 무어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부대를 지휘했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32파운드 공성대포가 포효하는 소리는 포티쿨루 호에서 사용하는 6파운드 캘버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요란스러웠다. 로자레일과 하드독을 비롯한 노역자들은 성벽 밑에서 전투가 끝나기까지 자신들이 무사하기를 바랐지만, 급하게 쌓아올린 성벽이 포격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다시 성벽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리고 전투는 밤낮으로 이어지다가 다음날 밤이 되서야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그라나다 왕국 군은 부상자를 치료하고 병사들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했지만, 무너진 성벽을 보수해야하는 노역자들은 여전히 중노동에 시달려야했다. 노역자들이 성벽을 보수하는 일에 매달려있을 때, 전투 재개를 알리는 에스파냐 왕국의 뿔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귓바퀴를 맴돌고 지나갔다. 

"الخروج من الطريق!"

  힙노스(Hypnos)의 방문으로 인해 물에 풀어진 미역처럼 흐느적거리면서 석재를 운반하던 로자레일은, 급히 성벽 계단을 오르는 그라나다 왕국군 부대에 밀려 발을 헛디디며 미끄러졌다. 

"헉!"

"이런 멍청한 자식! 정신 차려!"

"감, 감사합니다."

 하드독의 도움으로 성벽 아래로 떨어지는 최악의 사태를 모면한 로자레일은 미끌어지면서 벗겨진 왼쪽 손바닥 살가죽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지축을 흔드는 쾅, 소리와 함께 하드독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비켜! 으아악!"

 하드독에게 밀쳐진 로자레일은 힘에 못이겨 몇바퀴를 구르다가 성벽 난간에 부딪히고 나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성벽에 부딪힌 팔꿈치를 부여잡고 일어난 로자레일은 하드독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곳을 노려보았지만 성벽 위 어느곳에서도 하드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서있던 곳이 포탄의 충격이 찢어발긴 균열로, 마침내 모래처럼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불과 십여초 전만 하더라도 단단한 성벽이던 그곳은 이제 완만한 절벽으로 변모했고, 하드독은 짓밟힌 지렁이처럼 그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장포장님!"

 로자레일의 부름에도 하드독은 입으로 피를 쏟아내며 꿈틀거릴 뿐이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피가 흐르고 허리 아래로는 무너진 석재에 깔려 있었으므로, 세살배기 어린아이라도 그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을만한 심각한 상황이었다. 황급히 성벽 밑으로 내려간 로자레일은 하드독의 하체를 뒤덮고 있는 석재를 치우면서 하드독을 불렀다,

"장포장님! 정신차리십시오! 하드독 장포장님!"

 몇몇 사람들이 로자레일을 도왔지만 그들만으로 하드독을 성벽 밑에서 꺼내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그, 그만."

"예? 장포장님! 괜찮으십니까?"

"쿨럭, 그걸 지, 금 질문, 이라고 하는 건, 가? 멍청한 자, 식."

"지금 구해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됐, 어, 한심한 짓은 집어, 치우고, 내 말이나, 듣, 게."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로인해 말하기가 쉽지 않은듯 한동안 숨을 몰아쉰 하드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잊지, 말게. 항, 아리를, 열면, 모든 고통, 질병은 스쳐지나 가지. 그러나, 어떤, 불행한, 일을 겪어도, 희망만은 우리를, 떠나, 지, 않아."

"예예!"

"그리고..."

 로자레일은 점점 작아지는 하드독의 말소리를 듣기 위해 그의 입가로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하드독의 입은 더이상 열리지 않았고 한 줌 바람조차 드나들지 못했다.

"장포장님..."

 털푸덕 주저앉은 로자레일은 하드독이 흘린 붉은 피로 반죽된 흙을 움켜쥐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데다가, 그가 너무 싫었으므로 눈물 한방울 흐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외로 심장 위를 짖누르는 묵직한 어떤 것 또한 느껴졌다. 로자레일은 그를 위해 성호를 그어주었다. 그가 끝맺지 못한 말이 그것일지도 몰랐으므로. 왜인지 로자레일의 머리속에 "멍청한 자식."이라는 하드독의 말이 울려퍼졌다.
 알메리아 성의 성문이 파괴된 것은 그로부터 한달 후였다.
 붉은 다마스크 천에 백마가 그려진 깃발을 앞세우고 알메리아 성에 첫발을 디딘 것은 로자레일도 잘 알고 있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돈 곤살로 데 코르도바(Don Gonzalo Fernandez de Cordoba)였다. 곤살로의 형이자 산티아고 기사단의 단장인 아길라르 백작, 돈 알론소 데 코르도바(Don Alonso Fernandez de Cordoba, count of Aguila) 앞에 불려간 로자레일은 그간의 경과를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포르투갈과의 토로 전투에서 위명을 떨치신 코르도바 경과 위대한 산티아고 기사단의 단장이신 아길라르 백작께서 무어인들의 핍박으로부터 구출해주신데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영광스러운 에스파냐 왕국군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막사 안의 어둠과 추위를 덜어내는 화톳불이 로자레일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코르도바 경은 입을 열어 잠시 막사 안을 방황하던 적막을 내쫒았다.

"로자레일 데 퀘드롯이라고 했나? 우선 하드독 사관의 숭고한 희생에 조의를 표하네. 그리고 그대의 진술에서 진정성을 느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군. 하지만 그대는 해군으로 복귀하기에 앞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야 한다네. 이것은 본 경이 정한 사실이 아니라 해군 본부위원회에서 보내온 공문에 기록된 명령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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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곤살로 데 코르도바가 누굴까요?

Lv33 퀘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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