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인도원정길에서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갖고 나서, 나는 동지중해로 뱃머리를 돌렸다. 뜬금없이 동지중해로 향하는 이유는 그 유명한 해물피자요리법을 전수받기 위해서이다.
지독히도 진한 향신료냄새가 베인 인도음식에 질려버린 탓에 다음 항해를 위해선 뭔가 새로운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비야에서 잘나간다는 식당주인들에게 물어물어 파마구스타에 해물피자의 장인이 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실 일년전에 동지중해를 여행하면서 즐겨먹었던 그 해물피자맛을 잊을 수 없기도 했다. 이거 제법 다음 여행은 짭쪼롬하겠는 걸.... 후후후
"그 양반 만나거든 그 잘난 척하는 말투는 고치는 것이 좋을거야. 선장양반."
아테네 부두에서 보급물품을 점검하던중, 잠시 딴 생각에 빠져있던 나를 고반씨가 아주 기분 좋게 정신차리게 해주었다.
"고반씨야 말로 선장님께 불손하게 가르치려고 드는 말투부터 고치시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만."
"흥! 뭘 제대로 하는게 있어야지, 내가 아무말도 안하지!! 자네가 도대체 할 줄아는 게 뭔가!!! 칙칙한 선장실에 쳐박혀서 낙서나 할 줄이나 알았지!!"
빠직!!!
"나...낙서라구요?!! 낙서라니요!!! 저다지도 아름답게 그려진 측량지도를 보시고도 그런 무식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으신 겁니까?!!!"
"무... 무식?!!! 무식!!! 쿠어어어어!!!! 내 이놈의 새끼를!!!"
"으아아앗!!"
"으앗, 아저씨!!! 참으세요!!!"
후안군이 안 붙잡아줬으면 아테네 앞바다에서 수장당할 뻔 했다. 그런데 이 무식한 노친네가 보자보자 하니까, 선장을 아테네 앞바다 문어대가리처럼 생각하는거야, 뭐야!!! 이 노친네, 내가 가만 두나봐!!!
"루시오씨!!!"
나는 저쪽에서 보급물자를 싣고 있던 루시오씨를 불렀다.
"네, 선장님, 무슨 일이세요?"
"음... 다른 게 아니라, 짐 다 실으시면, 출항하기전에 선원들을 데리고 좀 맛있는 거라도 드시고 오세요. 제가 갑자기 서고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죠. 계산은 제 이름으로 걸어두시구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선원들이 모두 주점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서 아무도 없는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선원들의 숙소에서 고반씨의 베낭을 뒤졌다.
응? 없잖아? 그럼.... 베개인가?
흐흐흐. 찾았다!!
이것은 고반씨가 거의 부적처럼 아끼고 아낀다는 아내의 옷가지!!!
흥!! 노친네, 오늘은 초저녁잠도 안 올거다.
바다에는 어둠이 더 빨리 찾아온다. 기름등이 아니면 자신을 볼 수없고, 별빛이 아니면 바다를 볼 수 없다. 어둠이 찾아오면 불침번을 서는 선원들을 제외하곤 다들 선실로 돌아와 포카를 치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일찍 잠자리에 들곤한다. 그러나 여기 그러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서 난리를 피우는 양반이 있었으니, 선장갈구기 스킬랭 만렙의 고반씨라고 한다.
"야, 이 새끼야!!! 내 마누라 옷 어쨌냐고!!!!"
"이 새끼가 미쳤나? 어디다 쳐 잊어버리고선 나한테 시비야!!!"
후안군이 선원들간의 다툼이 벌어졌다고 선장실로 나를 부르러 왔길래, 즐거운 기분으로 선실로 향했더니 벌써 고반씨는 선원들 중에서 손버릇 안 좋기로 유명한 미겔씨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고반씨, 당장 그 손 놓지 못해요!!"
선장으로서의 위엄도 세우고, 내가 생각해도 너무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래, 맞아!! 너가 내 마누라옷 훔쳐갔지!!!"
"으앗!"
고반씨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면, 사방에 침을 튀기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옆에 서있던 후안군이 고반씨를 막아서며,
"아저씨, 선장님한테 이게 무슨 짓이에요!! 이러시지 마세요!!"
"이거 못놔!!! 이거놔!!!"
후안이 고반씨를 붙잡자 다른 선원들도 달려들어 고반씨를 붙잡았다.
흐유. 놀래라. 흥!! 고소하다. 이 양반아!! 그러길래 선장님 말씀을 잘 들으셔야지요.
이제 은근슬쩍 자리를 벗어날 생각으로 놀라서 휘청거리는 척하자,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있던 루시오씨가 나를 선장실까지 부축했다.
"선장님, 장난이라도 그런 짓을 하시면 안됩니다. 그 옷 돌려주세요."
나를 침상에 눕히던, 루시오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만 당황해서 루시오씨의 눈길을 피해버리자, 루시오씨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 듯이 내 책상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책상 서랍에 넣어둔 로프를 꺼내 들었다.
"어어. 뭐... 뭐하시려구요?!"
루시오씨는 말없이 로프를 들고선 내 침상으로 다가왔다.
"선장님, 일단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뭐? 엇! 어어!!!"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능숙한 솜씨로 나를 결박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전 선장이에요!!! 내가 한 짓이 아니라면 어쩌려고 이런 짓을 합니까!!!"
"선장님.... 제 눈을 보십시오."
그 느끼한 눈을 어떻게 제대로 본단 말입니까.....
"선장님. 바다위에서는 선장님이나 저희 선원들이나 모두다 동료입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폭풍우속에서, 죽음보다 고요하고 적막한 이 바다에서 저희는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 하는 동료입니다. 이 로프는 선장님이 선원들을 통제하라고 있는 로프가 아닙니다. 대대로 저희 에스파냐의 뱃사람들에게 이 로프는 동료와 동료를 끈끈히 묶어주는 뜨거운 남자들의 우정이란 말입니다."
"남자들의 우정..... (아주, 소설을 쓰십시오.) 무...물론, 루시오씨의 말씀은 참 좋은 말씀이시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만, 제가 그랬다는 증거가 없잖습니까?"
루시오씨는 실망했다는 표정이 얼굴에 역력한채로 돌어서더니, 내 개인 보관함에 걸린 자물쇠를 발로 부셔버렸다.
헉!!
"......선장님, 옷은 제가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오."
"저...저기요... 로...로프는...;;;"
"......내일 아침에 고반씨에게 풀어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ㅂ;"
쾅!!!!
"하하하핫!!! 선장나리, 잠은 잘 주무셨는가!!!"
뜬 눈으로 밤을 지세다가 새벽녁에야 겨우 눈을 붙었는데, 고반씨의 활기찬 인사덕택에 확 깨고 말았다. 고반씨의 활기차고 밝은 웃음이 오히려 나를 두렵게 했다.
"예? 예... 덕분에;;;"
"응? 왠 로프를 몸에 감고 있어? 선장, 그런 취향이었나?? 푸하하하핫!! 농담이야, 농담. 루시오가 선장한테 가보라더군. 배멀미가 심해서 묶어놨다고 말이지."
"네? 아... 아, 저 그게... 예... 배멀미가 좀 심해서..."
"명색이 배의 선장이란 사람이 아직도 배멀미가 있단 말인가?!! 에긍. 도대체가 내가 더 낯부끄러워서 못산다, 못 살아!! 하긴, 나도 가끔 루시오녀석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고 있으면 속이 울렁거리긴하지. 크하하핫!!! 자자, 몸 좀 틀어봐. 매듭 좀 풀게. 아니, 이거 단단히도 묶어놨네. 이거이거 진짜로 둘이 그렇고 그런거아냐? 푸하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게 농담입니까? 농담하시는 것 치곤, 눈초리가.....
"저....저기... 오....옷은?"
"응? 어제 밤에 루시오가 가져다 주더군. 어떤 녀석이냐고 물었더니, 알려하지 말라더라구. 뭐, 그녀석이 그렇게 진지하게 나오면 뭐라 말 못하게되니깐 말이야. 아무튼 내 손에 걸렸으면 아주 아작을 내버릴려고 했는데 말이지. 자자, 이거 쭈욱 들이켜봐. 요건 나만의 오랜 노하우로 만들어낸 배멀미 제거용 녹즙이라구!!! 아주 효과가 좋아!!! 어서 들어키라구!! 이거 선장나리, "
"아...네네..."
나는 침상아래 놓여진 로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정의 로프라....
--------------------------------------------------------------------------------------------------
너무 길었나요;;; 스크롤 압박이면 패스하심이;;
음... 루시오씨는 41세시구요. 진한 속눈썹과 부리부리한 눈매때문에, 자주 다른 선원들로 하여금 배멀미를 일으킬 정도로 느끼하답니다. 하지만 참 근면하시고 정직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