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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장사치 - 1.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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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개
조회: 336
2005-10-07 14:52:55
장사란 무엇인가?

세상엔 많은 사람들과, 그만큼 많은 삶의 방식들이 있다.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 또한 각기 다른 법.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가진 것에만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 그들을 우리는 바보라고 부른다.

인간의 욕구. 그 쟁취욕은 분쟁을 낳고, 분쟁은 승패를 요한다.

장사는 전쟁이다. 철저하게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리스본의 세르비체. 그는 갓 상인 조합에 등록한 상인이다. 아직은 변변한 배도, 돈도 없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장사꾼에게 중요한 것은 자금 자체보다는 자금 운용력인 것이다. 돈을 굴리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겐, 몇억을 준다 해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자금을 운용할 줄 아는 베테랑의 상인에겐 단돈 만 두캇만 쥐어주어도 금세 큰 돈을 만들어 내며, 돈이 많으면 많을 수록 수입이 증가하는, 말 그대로 돈이 돈을 버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장사란 그런 것이다. 온갖 시세 정보를 캐치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세와 각종 변수들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 자신만의 무역 루트를 개척하는 것은 물론, 적은 루트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세계에 여러 신상품들을 소개하지만, 그에 따른 이익은 확실히 챙겨야 한다. 그러면서도, 결코 신용을 잃어서는 안된다. 신용은 장사의 가능성이다. 신용이 없는 장사꾼은 결코 버틸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겐 이런 사실을 가르쳐줄 사람도, 주어진 밑천도 아무것도 없었다. 미혼모의 버려진 사생아, 떠돌이 고아로 자랐던 그는, 주머니 속에 단지 오늘을 버티게 해줄 빵을 사먹을 돈이 전부였었다 - 그조차 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자금보단 자금 운용력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는 자금을 다뤄 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 자금 운용력을 만들어 줄만한 밑천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닥치는대로 허드렛일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나날을 보내왔을 뿐이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을 강인한 생명력 뿐.

거리의 부랑아.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리스본의 사람이 아니었다. 포르투칼의 조그마한 항구마을 파루에서, 그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모두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갔다. 그런 그가 하루를 보내기 위해 했던 일 중에는, 버려진 배를 뜯어 파는 일도 있었다. 물론 버려진 배의 목재가 새 배의 재료가 될 만큼 상태가 보전된 경우는 극히 드물고, 설령 새 배의 자재로 쓸만큼 상태가 괜찮은 목재라고 해도, 그런 것들은 조선소의 직원들의 몫이다. 세르비체의 몫은 그런 좋은 목재가 아니다. 완벽히 너덜너덜해져서, 더이상은 사용할 수 없는 그런 나무 파편이, 그의 몫이었다.

세르비체는 그렇게 버려지는 나무를 모아서, 어느정도 크기가 되는 것들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후 말려서 일반 가정집에 판다. 물론 그리 좋은 물건은 아니지만, 귀족이 아닌 평민들은 물건의 질보다 가격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말린 나무를 난로의 장작으로 사용한다.

종종 장작으로도 쓰기 힘든 파편들이 있다. 이런 파편들은 말려서 갈면 톱밥이 생긴다. 이 작업은 제법 오래 걸리고 힘들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다. 종종 장작보다 톱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귀족들이 톱밥을 사기도 한다. 물론 세르비체가 직접 귀족에게 납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곳이든, 중간상인들은 존재하는 법.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가 그는 조선소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조선소의 청소나 도구정리 등의 허드렛일을 해주는 대신 버려진 목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고, 적게나마 고정적인 수입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변화는, 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그에게 잠자리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조선소의 구석에서 노곤한 몸을 뉘이고 잠을 청하던 그에게 조그마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의 부랑자의 잠귀란 야생동물의 그것과 같은 것이다. 사나운 맹수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 초식동물들은 잠을 청할 때 조차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조선소에 몰래 잠입한 남자를 숨죽이며 지켜보던 세르비체는, 단도를 그러쥐며 남자의 등 뒤로 조심스레 접근하였다. 세르비체가 조선소 안에서 숙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소의 경비업무를 겸했기 때문이다. 요새 심심찮게 밤에 도구들이 손상된다던지, 금고의 잔액이 줄어든다던지 하는 일들 - 노름에서 돈을 잃은 조선소 주인의 생색이 몇 번 있었던 터라, 잠잘 곳이 필요했던 세르비체는 자원해서 조선소의 경비를 맡게 되었다. 여하튼, 조선소의 금고에 손상이 가면 그것은 전부 세르비체의 책임이 되는 것이고, 급여는 커녕 거액의 빚과 함께 쫒겨나야 할 판이었다. 남자는 복면을 하고, 조심스레 금고가 있는 쪽으로 접근해서 자물쇠를 열려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남자는 금고에 전념하느라 등 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금고를 털러 온 도둑이 분명하다. 찰나의 순간, 단도는 남자의 등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흡"

순간적인 신음소리와 함께 남자는 조용히 쓰러졌다.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선 쓰러질 정도의 강한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 곤란하다. 어떻게 반격할 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설령 죽더라도, 신원 불명의 좀도둑은 어디론가 버려지면 그만이다. 조선소 주인에게 중요한 것은 금고의 안전 뿐이었고, 이것은 세르비체 역시, 좀 다른 이유로 마찬가지였다.

세르비체는 쓰러진 남자를 적당히 묶었다. 만에 하나 살아있을 경우를 대비해서이기도 하였지만, 이 남자의 시체는 간밤에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때 중요했다. 이미 금고에 손이 가서, 주인은 금고를 보고 밤에 누군가 금고를 만졌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만약 시체를 치운다거나 하면 세르비체는 금고에 손을 댄 것으로 뒤집어씌워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리고 그렇게 범죄자의 낙인이 찍히게 되면, 사정이 곤란해진다. 조선소 주인은 분명 여태까지 잃었던 돈까지 모두 뒤집어씌워 빚을 만들 것이다. 그러면 그런 빚을 전혀 갚을 능력이 없는 세르비체는 노예로 팔릴 것이 분명했다.

남자를 묶는 동안, 느슨해진 복면의 끈이 풀어졌다. 순간적으로 세르비체는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도둑은 바로 조선소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세르비체는 잠시 혼란해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냉정을 되찾고 차근차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조선소 주인은 노름빚이 많은 사람이었다. 급한 것들은 조선소의 돈으로 메꾸더라도, 조선소의 운영자금을 탕진할 수는 없었을 게다. 조선소 주인은 빚도 없애면서 자기의 재산을 보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떠올렸던 것이다. 거리의 부랑아를 조선소에 취직시킨 후, 경비를 세우고, 도둑으로 잠입하여 금고를 털어 재산 손실을 모두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험금이 나올 뿐 아니라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 세르비체를 노예로 팔아서 이득을 챙길 수도 있다. 여자노예보다는 값이 덜 나가겠지만, 힘있는 쓸만한 노예는 제법 값이 매겨진다. 조선소 주인이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세르비체는 조선소 주인의 생각보다 더 생명력이 질기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눈치챈 세르비체는 금고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미 조선소 주인은 금고의 문을 여는 데 성공했었다.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금고는, 쇠로 만들어진 잠금장치가 해제된 채로 조금 열려있었다.

그렇게 그는 파루에서 도망쳤다. 금고 안에 있던 열쇠 하나와, 도크에 있던 바사 한척과 함께. 만약 이대로 조선소에 있는다면 그는 살인자로 몰릴 것이 분명했다. 후에 파루의 조선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수 일 동안의 표루에 가까운 항해 끝에 겨우 리스본에 도착하였다. 지금에서야 얘기하지만, 세르비체란 이름은 이 때 리스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파루의 눈을 피하기 위해, 또 상인 조합에 등록하기 위해 그는 세르비체가 되었고, 텃세를 부리는 조합 마스터에게 조선소에서 가져온 돈의 절반을 바치고 나서야 겨우 조합 등록증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의 장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아, 거리의 부랑아, 살인자의 과거를 버리고 그는 상인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장사란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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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팬픽소설입니다만.. 아직은 캐릭터 설정일 뿐이군요.

파루에는 왜 조선소가 없을까-_- 하다가 생각해 봤습니다;

Lv2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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