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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장사치 - 2. 새로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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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개
조회: 369
2005-10-08 23:42:09
닭고기 빠에야와 포르투 와인을 살기등등한 기세로 식기도 쓰지 않고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세르비체를 보고 주점 주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음식값을 선불로 내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음식을 팔지 않았을 것이다. 채 반도 못 먹고 접시째 들고 도망갈 때도, 그는 단지 문앞에 소금을 뿌렸을 뿐이다. 괜히 쫒아가서 재수없는 몰골을 보고싶지는 않았다. 그릇 하나 따위, 그다지 비싼 것도 아니다. 주점 주인은 재수없는 거렁뱅이 하나 때문에 시간을 버리기보다는 깨끗이 잊어버리는 쪽을 택했다.

근 20년만의 포식은, 정신적으로는 만족을 줄지는 몰라도 몸은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들어온 음식에 위장이 놀래서 세르비체는 하마터면 기껏 먹은 음식을 모두 토해낼 뻔 했다. 목구멍을 넘어서서 올라오는 음식들을 도로 삼키며 그릇 째 가져온 음식을 모두 먹기까지는 총 한시간이 걸렸다.

조선소에서 훔쳐온 돈은 모두 만 사천 두캇 가량. 이 중에 4천 두캇을 목욕과 옷, 그리고 식사에 투자했다. 결코 싼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물론 세르비체가 가치를 고려해서 투자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욕구불만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흐트러진 머리와 온몸에 붙은 먼지와 때, 그리고 자욱한 수염. 이런 몰골로는 조합의 등록은 커녕 가져온 돈마저 뜯기기 십상이었다. 평생을 부랑아로 무시받으며 살았던 그는, 옷차림이나 행색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런 그는 입고있던 누더기도 벗고 옷도 한벌 새로 맞춰야 했다. 물론 비싸고 좋은 옷은 살 수 없었지만, 그럭저럭 깔끔한 옷차림을 연출할 수 있었다.

조합원은 조합에서 각종 일거리를 알선받을 수 있었다. 물론 세르비체에게 주어지는 일거리는 그다지 보수가 높지 않은 소일거리였으나, 지금은 그나마 감지덕지한 형편이었다. 세르비체가 상인으로서 처음으로 한 일은 조합원이 된 이상 필수로 해야 할 일이었는데, 리스본의 유지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리는 일이었다. 어차피 세르비체는 당장 교역을 하기는 힘들었다. 옷이나 식사 따위에 써버리고 남은 돈 만 두캇 중 절반을 조합에 바쳤던지라, 남은 5천 두캇 가량으로는 교역을 할 정도의 밑천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그보다, 그는 항해에 대해서나, 장사에 대해서나 뭐든 아는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글이라도 알면 책이라도 사보겠지만, 부랑아인 그가 글을 알 리가 없다. 조합에 등록할 조건-옷차림, 배, 뒷돈은 갖추었으나, 그것 만으로는 상인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지방의 유지들은 하나같이, 시종일관 떨떠름한 표정으로 상인조합원 증명서와 세르비체를 번갈아 몇번 훑어보다가 간단히 인사를 받고 이내 쫒아버렸다. 별 볼일 없는 초보 상인에게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그분들은 너무나 고귀하신 분들이었다. 예상했던 결과였고, 세르비체는 특별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에게 무시와 천대는 일상이었고, 그나마 문밖에서 쫒겨나지 않게 해준 조합원 증명서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유지들을 찾아다닌 그는 어느정도 긴장이 풀려있었다. 본질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는 새로운 세계에 적잖이 흥분감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생전 10 두캇 이상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에게 만 사천 두캇이라는 거금이 들어왔을 때부터. 그는 여태까지의 삶을 청산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물론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두려움이었다. 세르비체의 삶을 되돌아볼 때, 그의 손에 들어온 것은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었다. 아직 그는 새 삶이라는 것에 대해 실감하지 못했다. 단지 자기에게 주어진 행운-살인의 대가이긴 하지만-이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종일관 마음졸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불안감을 어느정도 해소시켜 준 것이 바로 등록증이었다. 그는 이제 더이상 경비병들에게 걷어차이지도, 동네 아이들에게 돌멩이를 맞지도 않았다. 옷차림 때문이었는지, 도구상점에서도 의심받지 않고 물건 - 쥐약을 살 수 있었다. 하루를 마칠 즈음, 그는 주점에 앉아 럼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주점 주인은 낮의 그와 지금의 그를 결코 동일인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행색은 변했다.

그렇지만 이 대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상인이 되기로 했다면, 뭔가 시작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선원이 되고 싶소"

다짜고짜 다가와 배를 태워달라는 이상한 남자를 본 페이트는 적잖이 놀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를 선원으로 태워달라며 이 남자는 상인조합 증서를 들이밀었던 것이다.

"아.. 이런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상인분이 왜 이 배에 타려는 거죠?"

"태워줄거요 말거요"

거 참 살벌한 남자군. 페이트는 퀭한 눈빛에 살기마저 어려있는 남자의 모습이 적잖이 꺼려졌지만, 어차피 별로 모여드는 사람도 없고 항해를 그리 오래 할 것도 아닌데 잘됐다 싶었다.

하루 전, 페이트는 항구에 선원 모집 광고를 냈다. 조그만 모험선의 선장이었던 페이트는 그리 많은 인원은 필요 없었다. 단지 모험을 같이 할 서너명의 동료만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 적은 인원을 모으기가 쉽지가 않았다. 언제 항해가 끝날지도, 급료는 제대로 받을지도 모르는 조그마한 모험선의 선원모집 광고같은 것은 대형 상선들의 모집광고에 파뭍혀버렸다.

이런 사실을 개탄하며 한숨짓던 그는 밤중에 주점에서, 럼주를 들이키며 선원 구하기 어렵다는 혼잣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세르비체의 귀에 들렸던 것이다.

"일단 한잔 합시다. 그래 뭐 무슨 사정이 있는지야 말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요. 그나저나 급료는 어느정도 주면 됩니까? 하하. 뭐 전 보시다시피 가난한 모험가일 뿐이고 그렇게 많은 돈을 드릴 수는 없..."

"그냥 태워만 주시오."

"에이, 그래도 어느정도 원하는 건 있을텐데. 뭐 그럼 그 얘긴 나중에 합시다. 근데 선원 경력은 있습니까? 무슨 배를 타 보셨어요?"

"아무것도. 공짜인 대신 배를 모는 걸 가르쳐줬으면 싶소."

"아. 아. 그럼 진작에 그렇게 말씀하시지."

페이트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이런 사람밖에 구할 수 없는 건가? 페이트 역시 누군가를 가르쳐줄 만한 실력은 아니었거니와, 이런 남자는 더더욱 가르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남자의 뭔가를 갈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고 있자면 순간적으로 페이트는 상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뭐 좋아요 좋아. 젠장 운도 없지. 그래, 난 페이트라고 하는 모험가요. 당신은 이름이 뭡니까?"

"세르비체"

"세르비체? 거 귀족같은 이름일세그려. 근데 그런 이름의 귀족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 봤는데. 혹시 다른 나라에서 오신 분입니까?"

"그냥 평민이오."

"흠흠. 글은 압니까?"

"모르오."

우지끈. 페이트는 머릿속에서 뭔가가 부러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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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재미는 없어도 연재는 합니다.

(...사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군요 -_-;;)

좋은 밤 되세요.

Lv2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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