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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 부서진 낙원 3화 : 낡은 종탑(1)

로엔베르트
조회: 621
2011-02-28 00:19:03

“이미 늦었네! 이제 와서 가봐야 소용없어!”

“단정하긴 이르지 않습니까! 가야 합니다! 꼭이요!”

“자네마저 잃을 순 없네! 난 자네의 출정을 허락할 수 없어!”

 

야속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와 그와 그의 상관을 비췄다. 그리고 일그러진 그의 얼굴과 안대가 대신한 한쪽 눈에 안타까움이 가득 찬 상관의 얼굴. 그 둘은 둘 사이에 있는 적갈색의 원목 탁자 위에 펼쳐진 한 장의 서류를 보고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왜!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법황청에서 출정명령이 내려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자네도 알고 있잖나!”

“제 가족이 걸린 문제입니다! 저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막지 마십시오!”

 

그는 쓸쓸히 상관에게서 등을 돌린 채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

 

“단장님!”

“루델…. 다나린….”

“단.장.님.!”

“아, 그래. 무슨 일인가?”

 

로체스트 같은 거대한 도시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소규모 마을인 콜헨에 이런 건축물이 서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종탑은 높았다. 기본 구조를 돌로 잡고, 바깥쪽엔 나무를 덧대어 붕괴를 막는 형태의 건설방식. 4~5층뿐인 건물이지만, 각 층마다 높이가 꽤 되기 때문에 외관상으론 위압감마저 느낄 정도로 높아보였다.

 

“대체 무슨 생각 중이신 겁니까! 지휘를 하셔야죠.”

“…….”

“대장님!”

 

마렉은 간절하게 자신의 상관을 불렀다.

 

-키에에에엑

 

하얀 몸통에 언뜻 보면 거대한 털뭉치라 해도 믿어버릴 듯 복슬복슬한 털이 난 커다란 괴물거미는 발광이라도 하듯 8개의 다리를 끊임없이 휘저으며 종탑 위를 향했다. 1층부터 모든 건물 외벽을 부수며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거미를 향해, 아이단은 단호하고 명확한 발음으로 대원들에게 전했다.

 

“저것이 우리 마을의 수호수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저것은 그저 날뛰는 한낱 짐승일 뿐이며! 수호수가 없어진 이상 마을을 지킬 수 있는 건 우리 칼브람 용병단 뿐이다! 전력을 다해라! 그것이 오늘 아침까지 해도 우리 마을을 지켜주던 이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아이단은 숨죽이고 자신을 바라보는 단원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말을 멈추고 등을 돌렸다. 눈 앞에는 거대한 종탑과 함께 한 때 마을을 지켜주었던 존재가 있었다. 마을을 망치는 존재. 힘없는 사람들을 해치는 존재. 아이단은 그런 존재들에 대해 지울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그와 반대로 그의 힘이 부족해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거대거미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발리스타. 조준하라.”

 

그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의 명령을 듣고 전달해야 할 부관은 입을 꾹 다물고 맡은 바 임무를 다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 못합니다. 저건 저희 마을의 수호수라구요. 소중한 것이란 말입니다.”

 

마렉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아이단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의 말은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들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것을 전하는 목소리에는 아무런 힘이 들어있지 않았다. 어느새 마렉의 마음속을 파고든 의심과 배신감, 당혹감이 그에게서 목소리를 빼앗아 간 것만 같았다.

 

“잘 듣게. 저건 더 이상 이 마을의 수호수가 아니란 말일세. 종탑을 부수는 것을 그 눈으로 보게! 이제 저것은 우리 마을과! 소중한 마을 사람들을 부숴버릴 생물이란 말일세! 저 생물이 무녀님과 친하게 지내왔던 것도 사실이고, 무녀님과 자네의 사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네! 하지만 그것은 다 과거일 뿐이야! 우린 현실을 봐야해! 정신 차리게 마렉.”

“……하지만 단장님.”

“전달하게. 어서.”

 

목소리를 잃은 마렉의 힘없는 말투는 자신감 있고 믿음직스러운 아이단의 말에 KO패를 선언하며 조용히 물러났다.

 

“발리스타! 조준하라! 발리스타! 조준하라!”

 

-끼익끼익

 

오거들이나 사용할 법한 커다란 석궁의 조준점을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워낙에 무게가 많이 나가는데다, 조금 움직이는 데에도 큰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세한 조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무식한 무기였다. 고양이가 칠판을 긁는 듣기 거북한 소리가 수차례 울리고 각도를 조정하는 기수들의 굵은 땀방울이 욕조 한 두 개 정도는 가뿐히 넘어갈 정도가 되 서야 모든 발리스타의 조준점 정렬 작업이 끝났다.

 

그 와중에도 거대거미는 쭉쭉 올라가고 있었고, 이 매너 없는 절지동물은 1층을 향해 종탑수리용 자재폭격을 가했다. 발리스타의 사거리는 꽤 큰 편에 속했기 때문에, 무섭게 굴러 떨어지는 돌덩어리나 목재 등에 피해를 입는 단원은 거의 없었다.

 

“조준점 정렬 됐습니다!”

 

배속된 조와는 별개로 발리스타 등의 원거리 공격 무기에 대해 통수권을 쥔 것은 카이였다. 엘프는 뛰어난 궁술을 타고난다. 라는 격언도 격언이지만, 실제 실력으로도 카이와 견줄 만한 실력자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카이가 아이단에게 외치자 아이단은 투구에 달린 눈가리개를 아래로 내렸다. 철컹. 쇠와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가 외쳤다.

 

“발리스타. 발사하라!”

“발리스타! 발사하라! 발리스타 발사……!”

“안 돼요!”

 

발리스타의 발사 허가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아이단과 가장 가까운 발리스타를 막아선 소녀가 외쳤다. 새하얀 원피스와 금제 팔찌와 목걸이, 단정한 금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콜헨 마을의 무녀 티이. 당황한 아이단과 마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

 

“멈춰라! 어서! 어서 멈춰!”

“발리스타 사격 중지!”

 

조금만 늦었다면 잔칫날 마을 한가운데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통돼지 바비큐마냥 거대한 철제 창에 꿰여버릴 뻔 했던 티이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발리스타 앞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렉과 아이단이 티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무녀님, 위험합니다. 어서 비키세요!”

“티이. 이게 무슨 짓이냐? 어서 비켜!”

 

티이는 크고 푸른 눈으로 아이단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이단은 그런 티이의 눈을 피하며 구석에서 머쓱해하는 피오나와 리시타, 그리고 이비와 카록을 바라보며 눈을 찡그렸다. 피오나조가 이번 임무에서 맡은 것은 ‘무녀의 보호’. 자신들을 질책하는 단장의 눈을 보자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물론 인간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자이언트 카록은 아이단의 실망 어린 눈길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이단 아저씨,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티이의 눈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자신과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온 거미여서 그런지, 아니면 그녀만의 특별한 능력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저 무서운 거대 거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서워…. 무서워….’

 

그런 그의 목소리를 듣는 티이의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티이는 용기를 내어 아이단에게 말했다.

 

“저 아인 원래 저렇게 난폭하지 않아요. 제가 얘기를 해볼게요.”

“마을 사람들이 위험하다. 저건 더 이상 마을의 수호수도, 네 친구도 아니야. 그냥 괴물일 뿐이다. 그만 물러서!”

 

하지만 아이단은 그런 티이의 눈빛에도 흔들림 없이 여전히 단호한 음색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어딘가 괴로워 보이는 것은 단순한 착각일까.

 

“하지만.”

“……. 여긴 우리에게 맡겨라. 다시 장전하라!”

 

슬픔어린 티이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이단은 등을 돌려 용병단을 향해 외쳤다. 마렉은 우물쭈물거리더니 이내 아이단의 외침을 되풀이했다.

 

“재장전 하라!”

 

티이는 이를 꽉 다물고서는 또다시 발리스타 앞을 막아섰다. 두 팔을 벌리고 발리스타의 날카로운 창끝 앞에 선 그녀는 자신을 바쳐서라도 친구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단단한 성벽도 부숴 버리는 무식한 무기 앞에서 돌에 걸려 넘어져도 가볍게 뼈 하나 정도는 부러질 법한 소녀가 무서움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다잡고서 그녀는 아이단을 쳐다보았다.

 

“무녀님! 시간이 없어요!”

 

마렉의 말 처럼, 거미는 이미 종탑의 반 이상을 무너트리며 진행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다간 종탑 전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티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마렉에게 말했다.

 

“마렉. 저를 못 믿나요? 제가 저기로 올라가겠어요. 저 아이는 두려워해요. 무서워하고 있다구요. 저한텐 그 목소리가 들려요.”

 

티이는 불과 몇십 분 전 용병단에 들어갔던 것을 떠올렸다. 그 때 그녀는 피오나의 품에 안겨 울었다. 벤샤르트가 저렇게 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었다. 그래서 그녀는 울었다. 어쩌면 좋냐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지만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뭐가 어떻게 되었건 대화를 하면 될 것 아닌가. 모든 생명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녀의 일이라면, 그녀는 그 일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고 나자마자 티이는 피오나의 품에서 빠져 나와 발리스타를 가로막았다.

 

“후……. 알았다. 대신 내가 함께 가마.”

 

-아빠 아파? 내가 호해줄게.

-호호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니. 이거 왠지 분한 걸?

 

아이단은 머릿속에 잔잔하게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들을 떠올렸다. 어린 두 딸과 아내의 목소리. 눈 먼 화살에 스친 작은 흉터를 볼 때 마다 귀엽고 커다란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딸과 그런 딸의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던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 아이단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딸이 살아있었더라면 너만 했겠구나.”

“네?”

 

티이는 아이단의 중얼거림을 듣고 반문했으나 아이단은 그저 눈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마렉, 피오나조와 함께 나를 따르라.”

“예! 거기 피오나, 리시타, 이비, 카록, 카이는 나와 함께 대장님을 따른다! 이외의 인원은 대기하도록!”

 

티이를 막지 못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피오나조는 무안한 표정으로 마렉을 보며 장비를 재점검했다. 롱소드와 나무 방패를 착용한 피오나와 두 자루의 롱소드를 든 리시타. 마법사인 이비는 브린에게 빌려온 우든 스태프를 들었고, 거대한 몸집의 자이언트 전사 카록은 예의 무시무시한 기둥을 등에 매었다. 발리스타를 진두지휘하던 카이는 카록을 응시하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어깨에 메고 있었던 롱보우를 꺼내들고, 한쪽에 마련된 화살통에서 30여발의 화살을 꺼낸 뒤에 개인용 화살통에 넣었다.

 

왠지 슬프고도 힘겨운 싸움이 될 것만 같아 피오나조의 발걸음은 마치 늪지대라도 걷는 듯 무거웠다.

Lv30 로엔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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